후지와라노 고시
1. 개요
후지와라노 고시는 972년 관백 후지와라노 카네미치의 딸로 태어나, 973년 엔유 천황의 후궁으로 들어가 뇨고를 거쳐 중궁에 책립되었다. 엔유 천황보다 12세 연상이었으나 부부 사이는 좋았지만, 자녀를 두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후 유력한 후견인을 잃고 979년 33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이후 중궁 자리를 두고 후지와라노 쥰시와 후지와라노 센시가 경쟁했다.
| 이름 | 후지와라노 코시 (藤原媓子) |
|---|---|
| 다른 이름 | 호리카와 중궁 (堀河中宮) |
| 로마자 표기 | Fujiwara no Koshi/Teruko |
| 출생 | 947년 |
| 사망 | 979년 6월 29일 |
| 사망 장소 | 호리카와 저택 (藤原兼通 저택) |
| 능묘 | 우지 능 (우지시 코하타) |
| 일본 황후 | 엔유 천황의 황후 |
|---|---|
| 재위 기간 | 973년 8월 1일 – 979년 6월 29일 |
| 뇨고 책봉 | 973년 5월 12일 - 973년 7월 31일 |
| 씨족 | 후지와라 씨 (북가) |
|---|---|
| 아버지 | 후지와라노 카네미치 |
| 어머니 | 쇼시 여왕 (아리아키라 친왕의 딸) |
| 배우자 | 엔유 천황 |
| 중궁대부 | 후지와라노 타메미츠 |
|---|---|
| 중궁권량 | 후지와라노 아사테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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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년 사망 -
딘보린
딘보린은 십이사군의 난을 평정하고 대구월을 건국한 정조의 창건자이자 베트남 최초로 연호를 제정하고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한 초대 황제이다. -
헤이안 시대의 후비후궁 -
고시 내친왕
간무 천황과 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황녀인 고시 내친왕은 준나 천황의 비가 되어 츠네요시 친왕을 낳았으나, 츠네요시 친왕의 황위 계승이 좌절되면서 역사적 맥락을 지닌 인물이 되었고 사후 황후로 추증되었다. -
헤이안 시대의 후비후궁 -
다카시나노 에이시
고시라카와 법황의 측근이자 고토바 천황 옹립에 관여한 다카시나노 에이시는 법황의 총애를 받아 정치에 깊숙이 관여했으나, 고토바 상황의 인세이 시작 후 정치적 영향력을 잃고 정토사에서 여생을 보낸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가마쿠라 시대 초기의 여성이다. -
구조류 -
후지와라노 아키미쓰
후지와라 북가 출신의 헤이안 시대 공경인 후지와라노 아키미쓰는 대신을 역임했으나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와의 갈등과 정치적 실수, 딸 관련 사건 등으로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지만, 조정에 기여한 공로와 유소쿠코지쓰에 대한 지식은 재평가되기도 한다. -
구조류 -
후지와라노 가네이에
후지와라노 가네이에는 헤이안 시대 공경으로, 엔유, 가잔, 이치조 천황 시대에 재상을 지내며 이치조 천황의 외조부로서 섭정이 되어 후지와라 씨의 권력을 강화하고 가잔 천황에게 양위를 강요하여 영향력을 확대했으며, 그의 후손들은 후지와라노 미치나가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2. 생애
남편 엔유 천황보다 12세나 연상이었지만, 부부 사이는 화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식을 얻지 못했고, 조겐 2년(977년)에 아버지 카네미치가 사망한 후에는 유력한 후견인을 잃었다. 덴겐 2년 (979년)에 33세로 붕어하여, 중궁 자리는 후지와라노 요리타다의 딸 쥰시와 후지와라노 카네이에의 딸 센시가 다투게 되었다.
2.1. 초기 생애와 입궁
덴로쿠 3년(972년), 아버지 카네미치가 관백에 취임했다. 덴로쿠 4년(973년) 2월, 엔유 천황의 후궁으로 들어갔다. 같은 해 4월에 뇨고 선하를 받았고, 7월에는 중궁에 책립되었다. 조겐 2년(977년), 아버지 카네미치가 사망하였다.
오오카가미(大鏡)에 따르면, 고시는 어릴 때 아버지 카네미치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지만 뛰어난 인품을 지녔다고 한다. 카네미치에게는 다른 적령기의 딸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인 27세에 입궁했다. 당시 "중간계투"로 여겨졌던 엔유 천황에게 딸을 입궁시키는 것을 많은 귀족들이 꺼렸지만, 카네미치만이 천황의 원복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고시를 입궁시켰다. 또한 엔유 천황의 동복 여동생인 센시 내친왕을 카네미치가 자신의 저택인 호리카와도노(堀河殿)에 데려와 아키코 여왕(昭子女王)・고시 모녀가 양육했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2.2. 중궁 시절과 죽음
972년(덴로쿠 3년), 아버지 후지와라노 카네미치가 관백에 취임했다. 973년(덴로쿠 4년) 2월에 엔유 천황의 후궁에 들어갔다. 같은 해 4월에 뇨고 선하를 받고, 다시 7월엔 중궁에 책립되었다. 977년(조겐 2년), 아버지 후지와라노 카네미치가 사망하였다.
「오오카가미(大鏡)」에 의하면, 어릴 때에는 아버지 후지와라노 카네미치가 돌보지 않았지만, 뛰어난 인품이었다고 한다. 후지와라노 카네미치에게는 달리 적령의 딸도 없었기에,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인 27세로 후궁에 들어갔으며, 후지와라노 카네미치만이 엔유 천황의 원복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후궁으로 보냈다. 엔유 천황의 동복 여동생이었던 센시 내친왕을 후지와라노 카네미치가 자신의 저택인 호리카와도노(堀河殿)에 데려와 아키코 여왕(昭子女王)・고시 모녀가 양육했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남편 엔유 천황보다 12세나 연상이었지만, 부부 사이는 화목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자식을 얻지 못했고, 아버지 후지와라노 카네미치가 죽은 후에는 유력한 후견인을 잃었다. 979년(덴겐 2년), 중궁에 책봉된 지 불과 6년 만에 33세의 나이로 붕어했다. 그 결과, 비어버린 중궁 자리를 둘러싸고 후지와라노 요리타다의 딸 쥰시와 후지와라노 카네이에의 딸 센시가 다투게 되었다.
3. 가계
고시는 후지와라노 가네미치의 딸이었다. 그녀는 아들을 낳아 아버지와 그의 형제 후지와라노 가네이에의 경쟁에서 아버지를 돕기 위해 황실 후궁에 들어갔다. 그러나 황태자를 낳지 못했고, 아버지의 사촌이자 섭정으로 지명된 후지와라노 요리타다의 딸에게 황후 자리를 물려주었다.
4. 참고 문헌
日本女性人名辞典일본어, 하가 노보루 등 감수, 일본도서센터, 199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