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용 앙부일구
1. 개요
휴대용 앙부일구는 조선 세종 시대에 처음 제작되어 조선 말까지 사용된 해시계의 한 종류이다. 궁궐, 관공서, 양반 집 등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정원에 설치하는 것과 휴대용으로 나뉜다. 휴대용 앙부일구는 반구형으로 오목하게 파인 면에 침을 세운 간략한 형태와, 자석을 사용하여 시각을 측정하는 정밀한 형태가 있다. 돌로 제작되었으며, 서울의 위도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제작자의 이름과 제작 연도가 새겨져 있어 학문적 가치가 높으며, 조선시대 과학 기술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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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류 | 해시계 |
|---|---|
| 제작 시기 | 조선 시대 |
| 명칭 | 휴대용 앙부일구 (携帶用 仰釜日晷) |
|---|---|
| 유형 | 보물 |
| 지정 번호 | 852 |
| 지정일 | 1986년 3월 14일 |
| 소유자 | 국유 |
| 관리자 | 국립중앙박물관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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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시계 -
앙부일구
앙부일구는 세종대왕 시대에 만들어진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시계로, 해 그림자를 이용해 시간과 절기를 알려주며, 오목한 가마솥 모양에 12지신 그림과 24절기 선을 넣어 문맹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되어 널리 보급되었다. -
개별 시계 -
자격루
조선 시대 장영실 등이 제작한 자격루는 자동 물시계로, 물의 흐름을 이용해 종, 북, 징을 울려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였으며, 현재 물통 부분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일부 부품은 창경궁에 보존되어 있다. -
조선의 과학과 기술 -
앙부일구
앙부일구는 세종대왕 시대에 만들어진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시계로, 해 그림자를 이용해 시간과 절기를 알려주며, 오목한 가마솥 모양에 12지신 그림과 24절기 선을 넣어 문맹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되어 널리 보급되었다. -
조선의 과학과 기술 -
칠정산
칠정산 외편은 이순지와 김담 등이 회회력을 참고하여 천문 계산, 일식과 월식 예보, 행성 운동 등을 다룬 5책의 역서로, 조선 시대 농업 사회에서 기후와 날씨 예측을 통해 행정 업무를 지원하는 데 기여했다. -
조선 세종 -
김종서 (1383년)
김종서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무신, 학자로, 육진을 개척하고 국경을 확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문신으로서도 활약했으나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에게 살해되었다. -
조선 세종 -
월인천강지곡
《월인천강지곡》은 세종이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찬불가이자 훈민정음 창제 후 초기 한글 활자본으로, 석가모니의 공덕과 교화를 담고 있으며 국보 제320호로 지정된 조선 전기 국어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2. 앙부일구의 종류와 구조
앙부일구는 조선 세종 때 처음 만들어진 대표적인 해시계로, 조선시대 말까지 계속 제작되어 널리 사용되었다. 설치 위치에 따라 크게 정원에 설치하는 고정형과 휴대용으로 나눌 수 있다.
앙부일구의 기본적인 구조는 오목한 반구형의 시반(時盤)과 그림자를 만들어 시간을 알려주는 영침(影針)으로 구성된다. 시반에는 시각선과 24절기를 나타내는 절기선이 새겨져 있어 시간뿐만 아니라 계절도 알 수 있게 하였다. 휴대용의 경우, 간략한 형태와 자석을 부착하여 남북 방향을 정확히 맞춰 정밀도를 높인 형태 두 가지가 있었다.
2.1. 설치 위치에 따른 분류
앙부일구는 조선 세종 때 처음 만들어진 이후 조선 시대 말까지 계속해서 제작된 대표적인 해시계이다. 궁궐이나 관공서, 때로는 양반들도 집에서 널리 사용하였다. 앙부일구는 설치 위치에 따라 크게 정원에 설치하는 것과 휴대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정원에 설치하는 앙부일구는 주로 받침대 위에 올려놓는 고정된 형태였고, 휴대용 앙부일구는 간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각 형태의 특징과 종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위 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1.1. 정원 설치용 앙부일구
앙부일구는 조선 세종 때 처음 만들어진 이후 조선 시대 말까지 계속해서 제작되었으며, 가장 많이 만들어진 대표적인 해시계이다. 궁궐이나 관공서, 때로는 양반들도 집에서 널리 사용하였다. 앙부일구는 크게 정원에 설치해 놓고 시간을 측정하는 것과 휴대용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정원에 설치하는 앙부일구는 대개 받침대 위에 올려놓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재질로는 청동이나 돌로 깎아 만든 것이 많은 편이었고, 자기로 만든 것도 있었다. 이러한 정원 설치용 앙부일구는 대체로 아름답고 품위있게 만들어졌으며, 조각을 새긴 돌받침대 위에 놓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비교적 간략하게 만들어지거나 정밀함을 위해 자석을 부착하기도 했던 휴대용 앙부일구와는 구분되는 특징이다.
2.1.2. 휴대용 앙부일구
앙부일구는 세종 때 처음 만들어진 이후 조선시대 말까지 계속해서 제작되었으며, 가장 많이 만들어진 대표적인 해시계이다. 궁궐이나 관공서, 때로는 양반들의 집에서까지 널리 사용되었으며, 크게 정원에 설치하는 것과 휴대용으로 구분할 수 있다.
휴대용 앙부일구는 표면을 반구형으로 오목하게 파고 그 중심에 침을 세우는 방식의 간략한 형태와, 자석을 이용하여 남북 방향을 정확히 맞춰 시각을 측정할 수 있도록 만든 정밀한 형태의 두 종류가 있다.
현재 전해지는 대표적인 휴대용 앙부일구 유물 중 하나는 세로 5.6cm, 가로 3.3cm, 두께 1.6cm 크기의 돌로 만들어졌으며, 서울의 위도를 표준으로 삼았다. 이 유물에는 제작자의 이름과 제작 연대(1871년)가 새겨져 있어 해시계로서의 학문적 가치를 더한다. 반구형 해시계 면의 직경은 2.8cm이고, 나침반의 직경은 1.9cm이며 그 주위에는 24방향을 나타내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해시계 면에는 낮 시간과 시각선, 그리고 24절기와 절기선들이 표시되어 있다.
이러한 휴대용 해시계는 제작 솜씨가 뛰어나고 매우 희귀한 유물로 평가받으며, 조선시대 과학 기기 제작 기술의 정밀함과 우수성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3. 앙부일구의 가치와 의의
앙부일구는 조선 세종 때 처음 만들어진 이후 조선시대 말까지 계속해서 제작되었고 가장 많이 만들어진 대표적인 해시계이다. 궁궐이나 관공서, 때로는 양반들이 집에서 사용하기 위해 정원에 설치하는 것과 휴대용으로 구분하여 제작되었다.
휴대용 앙부일구 중 하나는 세로 5.6cm, 가로 3.3cm, 두께 1.6cm의 돌로 만들어졌으며, 서울의 위도를 기준으로 제작되었다. 특히 이 유물에는 제작자의 이름과 제작 연대(1871년)가 새겨져 있어 해시계로서의 학문적 가치를 높여준다. 반구형 해시계 면의 직경은 2.8cm이며, 나침반의 직경은 1.9cm으로 그 주위에는 24방향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해시계 면에는 낮 시간과 시각선, 그리고 24절기와 절기선들이 정밀하게 표시되어 있다.
이러한 휴대용 앙부일구는 제작 솜씨가 매우 뛰어나고 현존하는 수가 드물어 희소 가치가 높은 유물이다. 이는 조선시대 과학기기 제작 기술의 정밀함과 우수함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역사적, 기술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