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7년 캄차카 지진
1. 개요
1737년 캄차카 지진은 쿠릴-캄차카 해구의 섭입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모멘트 규모 Mw 9.0~9.3, 표면파 규모 Ms 8.3~8.5로 추정된다. 이 지진은 1952년 세베로쿠릴스크 지진과 함께 캄차카반도 지역에서 발생한 가장 강력한 지진 중 하나로, 쓰나미 피해 데이터를 볼 때 1952년 지진과 비슷하거나 더 큰 규모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는 쿠릴 열도 북부에서 최대 20m, 아바차만에서 30m 높이로 추정되었으며, 앰치커섬에서는 12~16m 높이의 잔해가 발견되었다. 당시 러시아 탐험가 스테판 크라셰니니코프는 지진으로 인한 15분간의 격렬한 흔들림과 가옥 파괴, 쓰나미, 1738년 봄까지 이어진 여진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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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지진 -
쿠릴 열도 해역 지진
쿠릴 열도 해역 지진은 쿠릴 열도 부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2006년과 2007년에 규모 8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여 쓰나미 경보가 발령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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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우스 지진
2024년 우스 지진은 2024년 1월 22일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발생한 규모 7.1의 강진으로, 인접 국가에서도 진동이 감지되었으며, 중국 정부는 구조 및 구호 활동과 함께 피해 지역 주거 환경 개선을 지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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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투스 베링
비투스 베링은 표트르 대제의 명령으로 캄차카 탐험대를 이끌고 시베리아 동부와 북아메리카 북서부 해안을 탐험하여 베링 해협 등 자신의 이름이 붙은 지명을 남긴 덴마크 출신 러시아 해군 장교이자 탐험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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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빌헬름 슈텔러
게오르크 빌헬름 슈텔러는 독일 출신의 박물학자이자 탐험가로, 비투스 베링의 캄차카 탐험에 참여하여 알래스카를 탐험하고 북아메리카의 동식물을 최초로 기록했으며, 캄차카 반도와 베링 섬을 탐험하고 과학적 업적을 남겼다. -
러시아의 지진해일 -
2024년 노토반도 지진
2024년 노토반도 지진은 레이와 6년 노토반도 지진으로도 불리며, 2020년부터 지속된 군발지진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한 규모 M<sub>j</sub> 7.6의 강력한 지진으로 이시카와현에 최대 진도7의 흔들림을 일으키고 쓰나미와 광범위한 피해를 야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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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세베로쿠릴스크 지진
1952년 세베로쿠릴스크 지진은 쿠릴-캄차카 해구에서 발생한 모멘트 규모 9.0의 해구형 지진으로, 쓰나미를 동반하여 세베로쿠릴스크에 큰 피해를 입혔고, 지구 자유진동 확인 및 태평양 전역에 쓰나미 피해를 일으켰다.
2. 지진
1737년 캄차카 지진은 쿠릴-캄차카 해구 섭입대의 역단층 운동과 관련이 있었다. 이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는 1952년 북쿠릴스크 지진과 함께 이 지역에서 발생한 가장 파괴적이고 큰 규모의 쓰나미로 기록되었다.
2.1. 지진 규모
본진은 쿠릴-캄차카 해구 섭입 경계의 충상단층과 관련이 있다. 쓰나미 도달 데이터를 사용해 지진의 규모를 계산하면 모멘트 규모 Mw9.3 가량으로 계산된다.
지진 연구에 따르면 본진의 모멘트 규모는 Mw9.0~9.3, 표면파 규모는 Ms8.3~8.5로 추정된다. 이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는 1952년 세베로쿠릴스크 지진과 함께 캄차카반도 지역에서 발생한 가장 파괴적이고 큰 규모의 해일로 추정된다. 즉 쓰나미 피해 데이터를 살펴볼 때 1737년 지진의 규모는 1952년 지진의 규모와 비슷하거나 더 크다고 추정된다.
3. 피해와 보고
스테판 크라셰니니코프는 1755년에 출판한 캄차카 지역에 대한 설명서에서 지진의 영향에 대해 설명하면서, 지진이 약 15분간 지속되었으며 흔들림이 매우 격렬했고, 나무와 가죽으로 지어진 원주민의 가옥이 많이 붕괴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쓰나미가 덮친 후에도 여러 여진이 느껴졌으며, 1738년 봄까지 이어졌다고 기록했다.
지진으로 발생한 해안의 지형 변화가 너무 급격해서 원주민들이 지역을 인식하거나 마을 위치를 찾기 어려웠고, 오호츠크해 연안 캄차카반도 지역은 지진과 그 영향이 눈에 띄지 않았다.
3.1. 크라셰니니코프의 기록
스테판 크라셰니니코프는 1755년에 출판한 캄차카 지역에 대한 설명서에서 1737년 캄차카 지진의 영향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지진이 약 15분간 지속되었으며 흔들림이 매우 격렬했다고 말했다. 나무와 가죽으로 지어진 원주민의 가옥이 많이 붕괴되었다. 또한 쓰나미가 덮친 후에도 여러 여진이 느껴졌다고 기록했다. 여진은 1738년 봄까지 이어졌다.
지진으로 발생한 해안의 지형 변화가 너무 급격해서 원주민들도 지역이 어딘지 인식하거나 마을 위치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오호츠크해 연안 캄차카반도 지역은 지진과 그 영향이 눈에 띄지 않았다.
3.2. 지형 변화
스테판 크라셰니니코프가 1755년에 출판한 캄차카 지역에 대한 설명서에서는, 지진으로 해안의 지형 변화가 너무 급격해서 원주민들이 지역이 어딘지 인식하거나 마을 위치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기록했다.
3.3. 오호츠크해 연안
캄차카의 오호츠크해 연안에서는 지진과 그 영향이 감지되지 않았다.
4. 지진해일
1737년 캄차카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는 이 지역에서 발생한 가장 파괴적이고 큰 규모였으며, 1952년 북쿠릴스크 지진과 함께 기록되었다. 1952년 지진과 크기가 비슷하거나 더 컸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지진으로 해안 지형이 크게 변동하여 원주민들은 해당 지역을 알아볼 수 없었고, 자신들의 정착지를 찾을 수 없었다. 캄차카의 오호츠크 해 해안에서는 지진과 쓰나미의 영향이 감지되지 않았다.
4.1. 쓰나미 높이
쿠릴 열도 북부에서 예상 쓰나미 높이는 20m였으며, 아바차만에서는 30m로 추정되었다. 앰치커섬에서는 섬에서 발견된 나무조각 잔해의 높이를 통해 최대 쓰나미 높이를 12m에서 16m 사이로 추정했다. 1740년 독일의 탐험가인 게오르크 빌헬름 슈텔러는 캄차카 지역을 방문했을 때 해안선 위에서 발견한 해양 포유류의 뼈와 잔해, 그리고 해발 70m 높이의 산등성이에서 나무조각의 퇴적층을 발견했다고 기록했다.
크라셰니니코프는 약 6.3m 높이의 쓰나미가 해안을 침수시켰다고 기록했다. 또한 63m에 달하는 또 다른 해일이 해안선 전체를 휩쓸면서 수많은 원주민이 사망하고 마을이 파괴되었다고 말했다. 이 때 쓰나미의 힘이 너무 강력해서 흙과 모래가 쓸려내려가 제2쿠릴해협의 지하 암반이 드러났다.
4.2. 슈텔러의 기록
게오르크 빌헬름 슈텔러는 1740년 캄차카 지역을 방문했을 때 해안선 위에서 해양 포유류의 뼈와 잔해를 발견했다. 또한 해발 70m 높이의 산등성이에서 나무 조각 퇴적층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