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전조선축구대회 (평양기독교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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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21년 전조선축구대회 (평양기독교청년회)는 1921년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숭실대학 운동장에서 사회부와 학생부로 나뉘어 진행된 축구 대회이다. 사회부에서는 무오 축구단이 우승했고, 학생부에서는 휘문고등보통학교 축구단이 우승했다. 이 대회는 일제강점기 초기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받는다.

1921년 전조선축구대회 (평양기독교청년회)
대회 정보
대회1921년 전조선축구대회
대회 명칭제1회 전조선축구대회
개최국일제강점기 조선
개최 도시평양
개최 기간1921년 5월 19일 ~ 5월 21일
주최평양기독교청년회
후원동아일보 평양지국
다음 대회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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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회 구성

전조선축구대회는 사회부와 학생부로 구성되었다.

사회부에는 광성 축구단, 기성구락부 축구단, 무오 축구단, 반도청년구락부 축구단, 서울청년회 축구단, 전숭실 축구단, 조선불교청년회 축구단, 천도교청년회 축구단 등 8개 선수단이 참가했다. 경기는 숭실대학 운동장에서 1921년 5월 20일부터 5월 21일까지 진행되었다.

1921년 5월 20일 8시부터 시작된 천도교청년회 축구단조선불교청년회 축구단의 8강 경기는 무승부가 되어 경기 기록 점수로 천도교청년회 축구단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다. 기성구락부 축구단과 전숭실 축구단의 8강 경기는 무승부가 되어 경기 기록 점수로 승패를 가리는 과정에서 패널티킥 횟수에 관한 분쟁이 생겨 중단되었다. 무오 축구단서울청년회 축구단의 8강 경기에서는 무오 축구단이 3점차로 승리했고, 광성 축구단과 반도청년구락부 축구단의 8강 경기는 반도청년구락부 축구단이 3점차로 승리했다.

같은 날 오후에 중단되었던 기성구락부 축구단과 전숭실 축구단의 8강 경기를 재개하여 전숭실 축구단이 경기 기록 점수 4점차로 승리했다. 이어 진행된 무오 축구단과 반도청년구락부 축구단의 준결승 경기는 경기 기록 점수 1점차로 무오 축구단이 결승에 진출했다. 천도교청년회 축구단과 전숭실 축구단의 준결승 경기에서 천도교청년회 축구단이 승리했으나, 경기 직후 전숭실 축구단 측에서 경기 시간이 5분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이 경기를 끝냈다고 항의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천도교청년회 축구단 측에서 기권을 선언했다. 그로 인해 결승 경기는 개최되지 않고 무오 축구단이 대회에서 우승하게 되었다.

학생부에서는 경신학교 축구단, 광성고등보통학교 축구단, 숭덕학교 축구단, 숭실학교 축구단, 신성학교 축구단, 평양관립고등보통학교 축구단, 휘문고등보통학교 축구단 등 7개 선수단이 참가했다. 1921년 5월 19일 13시부터 숭실대학 운동장에서 1라운드 경기가 시작되었다. 광성고등보통학교 축구단숭덕학교 축구단의 경기에서 서로 비겨 경기 기록에 따른 점수로 승패를 가려 기록 점수 2:9로 숭덕학교 축구단이 승리했다. 이어서 진행된 휘문고등보통학교 축구단과 숭실학교 축구단의 경기에서는 휘문고등보통학교 축구단이 1:0으로 승리했고, 평양관립고등보통학교 축구단과 신성학교 축구단의 경기는 평양관립고등보통학교 축구단이 승리했다. 1921년 9월 20일에 진행된 준결승 경기에서 휘문고등보통학교 축구단이 평양고등보통학교 축구단을 이기며 결승에 진출했다. 1921년 9월 21일에 진행된 결승 경기에서 휘문고등보통학교 축구단이 숭덕학교 축구단을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

2.1. 사회부

사회부에는 광성 축구단, 기성구락부 축구단, 무오 축구단, 반도청년구락부 축구단, 서울청년회 축구단, 전숭실 축구단, 조선불교청년회 축구단, 천도교청년회 축구단 등 8개 선수단이 참가했다. 경기는 숭실대학 운동장에서 1921년 5월 20일부터 5월 21일까지 진행되었다.

1921년 5월 20일 8시부터 시작된 천도교청년회 축구단조선불교청년회 축구단의 8강 경기는 무승부가 되어 경기 기록 점수로 천도교청년회 축구단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다. 기성구락부 축구단과 전숭실 축구단의 8강 경기는 무승부가 되어 경기 기록 점수로 승패를 가리는 과정에서 패널티킥 횟수에 관한 분쟁이 생겨 중단되었다. 무오 축구단서울청년회 축구단의 8강 경기에서는 무오 축구단이 3점차로 승리했고, 광성 축구단과 반도청년구락부 축구단의 8강 경기는 반도청년구락부 축구단이 3점차로 승리했다.

같은 날 오후에 중단되었던 기성구락부 축구단과 전숭실 축구단의 8강 경기를 재개하여 전숭실 축구단이 경기 기록 점수 4점차로 승리했다. 이어 진행된 무오 축구단과 반도청년구락부 축구단의 준결승 경기는 경기 기록 점수 1점차로 무오 축구단이 결승에 진출했다. 천도교청년회 축구단과 전숭실 축구단의 준결승 경기에서 천도교청년회 축구단이 승리했으나, 경기 직후 전숭실 축구단 측에서 경기 시간이 5분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이 경기를 끝냈다고 항의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천도교청년회 축구단 측에서 기권을 선언했다. 그로 인해 결승 경기는 개최되지 않고 무오 축구단이 대회에서 우승하게 되었다.

2.2. 학생부

학생부에서는 경신학교 축구단, 광성고등보통학교 축구단, 숭덕학교 축구단, 숭실학교 축구단, 신성학교 축구단, 평양관립고등보통학교 축구단, 휘문고등보통학교 축구단 등 7개 선수단이 참가했다. 1921년 5월 19일 13시부터 숭실대학 운동장에서 1라운드 경기가 시작되었다. 광성고등보통학교 축구단숭덕학교 축구단의 경기에서 서로 비겨 경기 기록에 따른 점수로 승패를 가려 기록 점수 2:9로 숭덕학교 축구단이 승리했다. 이어서 진행된 휘문고등보통학교 축구단과 숭실학교 축구단의 경기에서는 휘문고등보통학교 축구단이 1:0으로 승리했고, 평양관립고등보통학교 축구단과 신성학교 축구단의 경기는 평양관립고등보통학교 축구단이 승리했다. 1921년 9월 20일에 진행된 준결승 경기에서 휘문고등보통학교 축구단이 평양고등보통학교 축구단을 이기며 결승에 진출했다. 1921년 9월 21일에 진행된 결승 경기에서 휘문고등보통학교 축구단이 숭덕학교 축구단을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

3. 경기 진행

3.1. 사회부 경기 진행

1921년 5월 20일부터 21일까지 숭실대학 운동장에서 사회부 경기가 진행되었다. 사회부에는 광성 축구단, 기성구락부 축구단, 무오 축구단, 반도청년구락부 축구단, 서울청년회 축구단, 전숭실 축구단, 조선불교청년회 축구단, 천도교청년회 축구단 등 8개 선수단이 참가했다.

8강전에서 천도교청년회 축구단조선불교청년회 축구단의 경기는 무승부 후 경기 기록 점수로 천도교청년회 축구단이 진출했다. 기성구락부 축구단과 전숭실 축구단의 경기는 무승부 후 경기 기록 점수로 승패를 가리는 과정에서 분쟁으로 중단되었다가 재개되어 전숭실 축구단이 진출했다. 무오 축구단서울청년회 축구단의 경기에서는 무오 축구단이 승리했고, 광성 축구단과 반도청년구락부 축구단의 경기는 반도청년구락부 축구단이 승리했다.

준결승에서 무오 축구단과 반도청년구락부 축구단의 경기는 무승부 후 경기 기록 점수로 무오 축구단이 진출했다. 천도교청년회 축구단과 전숭실 축구단의 경기에서 천도교청년회 축구단이 승리했으나, 경기 종료 시간 관련 항의 사건으로 천도교청년회 축구단이 기권하였다.

결승전은 개최되지 않고 무오 축구단이 우승하였다.

3.2. 학생부 경기 진행

1921년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숭실대학 운동장에서 학생부 경기가 진행되었다. 1라운드, 준결승, 결승전 순서로 경기가 진행되었다. 광성고등보통학교 축구단숭덕학교 축구단의 1라운드 경기에서 무승부 후 경기 기록 점수로 숭덕학교 축구단이 승리했다. 휘문고등보통학교 축구단과 숭실학교 축구단의 경기에서는 휘문고등보통학교 축구단이 1:0으로 승리했고, 평양관립고등보통학교 축구단과 신성학교 축구단의 경기는 평양관립고등보통학교 축구단이 승리했다.

5월 20일에 진행된 준결승에서 휘문고등보통학교 축구단이 평양고등보통학교 축구단을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5월 21일에 진행된 결승 경기에서 휘문고등보통학교 축구단이 숭덕학교 축구단을 이기고 우승하였다. 학생부에는 경신학교 축구단, 광성고등보통학교 축구단, 숭덕학교 축구단, 숭실학교 축구단, 신성학교 축구단, 평양관립고등보통학교 축구단, 휘문고등보통학교 축구단 등 7개 선수단이 참가했다.

4. 논란 및 사건사고

4.1. 사회부 경기 논란

사회부 경기는 숭실대학 운동장에서 1921년 5월 20일부터 5월 21일까지 진행되었다. 8강 경기에서 기성구락부 축구단과 전숭실 축구단의 경기는 무승부 후 경기 기록 점수로 승패를 가리는 과정에서 패널티킥 횟수에 관한 분쟁으로 중단되었다가 재개되어, 전숭실 축구단이 경기 기록 점수 4점차로 승리했다. 천도교청년회 축구단과 전숭실 축구단의 준결승 경기에서는 경기 종료 5분 전에 심판이 경기를 종료시키자, 전숭실 축구단 측에서 항의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천도교청년회 축구단 측은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기권하였다.

5. 의의 및 평가

전조선축구대회는 일제강점기 초기 한국 축구 발전의 중요한 발판이 된 대회로 평가받는다. 경성, 평양 등 여러 지역의 다양한 축구단이 참가하여 경쟁함으로써, 한국 축구의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 특히 학생부 경기는 한국 축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인재들을 발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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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문축구단도시첫 참가횟수비고
사회부광성 축구단평양19211
기성구락부 축구단평양19211
무오 축구단평양19211
반도청년구락부 축구단경성19211
서울청년회 축구단경성19211
전숭실 축구단평양19211
조선불교청년회 축구단경성19211
천도교청년회 축구단경성19211
학생부경신학교 축구단경성19211
광성고등보통학교 축구단평양19211
숭덕학교 축구단평양19211
숭실학교 축구단평양19211
신성학교 축구단선천19211
평양관립고등보통학교 축구단평양19211
휘문고등보통학교 축구단경성19211


이 대회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를 넘어, 당시 암울했던 시대 상황 속에서 한국인들에게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고 단결을 도모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