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B-25 폭격기 충돌 사고
1. 개요
1945년 7월 28일, 짙은 안개 속에서 B-25 폭격기가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인해 78층과 80층 사이에 5.5m x 6.1m 크기의 구멍이 생겼고, 건물 내 11명의 민간인을 포함하여 총 14명이 사망했다. 사고 당시 86층 전망대에는 50~60명의 관광객이 있었으며, 폭격기의 엔진이 건물 밖으로 튕겨져 나가 인근 건물에 화재를 발생시키기도 했다. 이 사고는 연방 불법 행위 청구법 통과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사고 발생 48시간 만에 영업을 재개했다.
| 날짜 | 1945년 7월 28일 () |
|---|---|
| 유형 | 악천후 (안개) 속에서 제어 비행 후 지형 충돌 (건물) |
| 발생 유형 | 사고 |
| 위치 | 뉴욕 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
| 인명 피해 | 탑승자: 3명 사망 지상: 11명 사망, 24명 부상 |
| 총 사망자 | 14명 |
| 총 부상자 | 24명 |
| 항공기 종류 | B-25 미첼 |
| 항공기 이름 | '올드 존 페더 머천트' (Old John Feather Merchant) |
| 운영 주체 | 미국 육군 항공대 |
| 기체 등록 번호 | 41-30577 |
| 출발지 | 매사추세츠 주 베드포드 육군 비행장 (한스콤 공군 기지) |
| 목적지 | 뉴저지 주 뉴어크 리버티 국제공항 (뉴어크 메트로폴리탄 공항) |
| 좌표 | 40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피해액 | 100만 미국 달러 |
|---|---|
| 현재 가치 | 미국 달러 (US) |
| 참고 자료 |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항공기 충돌에도 끄떡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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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
앨 스미스
앨 스미스는 뉴욕 주지사를 지낸 미국의 정치인이자 1928년 민주당 대선 후보였으며, 가난한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진보적 개혁을 추진하고 주요 정당 최초의 가톨릭 대통령 후보였으나 대선에서 패배 후 뉴딜 정책에 반대, 사업가로도 활동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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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미국 -
포츠담 협정
포츠담 협정은 1945년 미국, 영국, 소련의 연합국 정상회담에서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일의 점령, 배상, 영토 문제, 전범 재판 등을 합의한 내용으로, 냉전과 한국전쟁의 배경이 되었으며 독일인 추방 문제 등 현재까지도 논란이 있다. -
1945년 미국 -
제17회 아카데미상
194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17회 아카데미상에서는 1944년 영화를 대상으로 《나의 길을 가련다》가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 7개 부문을 수상하며 최다 수상작이 되었고, 밥 호프, 마거릿 오브라이언, 대릴 F. 재넉이 각각 공로상, 아역상, 어빙 탤버그 상을 수상했다.
2. 사고 발생
1945년 7월 28일 토요일, 짙은 안개 속에서 B-25 미첼 폭격기가 뉴어크 리버티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중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충돌했다. 조종사 윌리엄 프랭클린 스미스 주니어 중령은 안개 속에서 방향 감각을 잃고 크라이슬러 빌딩을 지난 후 왼쪽으로 돌려야 할 기수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실수를 범했다.
이 사고로 조종사 스미스 중령, 크리스토퍼 도미트로비치 병장, 해군 항공 기술자 앨버트 퍼나를 포함한 승무원 3명과 건물 내에 있던 민간인 11명, 총 14명이 사망했다. 스미스 중령의 시신은 사고 이틀 후 엘리베이터 줄에 걸렸다가 바닥으로 떨어진 채 발견되었다. 엘리베이터 조종사 베티 로우 올리버는 추락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하여 기네스북에 기록되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큰 피해에도 불구하고 사고 다음 주 월요일에 업무를 재개했다. 이 사고는 미국 연방 불법행위 방지법 개정으로 이어져,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소급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되었다.
2.1. 사고 당시 상황
1945년 7월 28일 토요일, B-25 미첼 조종사 윌리엄 프랭클린 스미스 주니어 중령은 뉴어크 리버티 국제공항으로 이동 중이었다. 짙은 안개로 인해 시야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스미스 중령은 뉴어크 공항 대신 라과디아 공항으로 착륙 허가를 요청했지만,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행하던 스미스 중령은 방향 감각을 상실했고, 크라이슬러 빌딩을 지난 후 왼쪽으로 선회해야 했으나 오른쪽으로 선회했다.
오전 9시 40분, 비행기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북쪽 면의 78층과 80층 사이에 충돌하여 구멍을 냈다. 이 곳에는 미국 전쟁 구호 봉사단과 전국 카톨릭 복지 위원회 사무실이 있었다. 비행기의 쌍발 엔진 중 하나는 남쪽 벽을 뚫고 270m 아래로 추락하여 인근 미술 화랑으로 쓰이던 펜트하우스 지붕에 떨어져 화재를 일으켰다. 나머지 엔진 하나와 랜딩 기어는 엘리베이터 줄에 걸렸다. 화재는 40여 분 만에 진화되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사상 최초로 초고층에서 일어난 화재였다.
2.2. 충돌 및 피해
1945년 7월 28일 오전 9시 40분경, B-25 미첼 폭격기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북쪽 78층과 80층 사이에 충돌하여 5.5x 크기의 구멍을 냈다. 충돌 지점에는 전국 카톨릭 복지 협회 사무실 등이 위치해 있었다. 폭격기의 엔진 하나는 건물 반대편으로 튕겨져 나가 인근 건물 옥상에 떨어져 화재를 일으켰고, 다른 엔진과 랜딩 기어는 엘리베이터 통로에 추락했다. 이 화재는 40분 만에 진화되었으며, 초고층 건물 화재 진압의 역사적인 사례로 기록되었다.
3. 인명 피해
이 사고로 B-25 미첼 조종사 윌리엄 프랭클린 스미스 주니어 중령, 크리스토퍼 도미트로비치 병장, 해군 항공 기술자 앨버트 페르나를 포함한 승무원 3명과 건물 내 민간인 11명 등 총 14명이 사망했다. 스미스의 시신은 사고 이틀 후 엘리베이터 통로에서 발견되었다.
3.1. 승무원
1945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B-25 폭격기 충돌 사고 당시 B-25 미첼 폭격기는 매사추세츠주 워터타운 출신의 윌리엄 프랭클린 스미스 주니어 중령이 조종하고 있었으며, 참모][하사관인 크리스토퍼 도미트로비치 병장과 해군 항공 기계공 앨버트 페르나가 함께 탑승하고 있었다. 사고 이틀 후, 수색대는 엘리베이터 통로에서 페르나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러나 다른 두 명의 승무원은 시신이 심하게 훼손되어 알아볼 수 없었다.
3.2. 엘리베이터 추락 생존자
엘리베이터 조작원 베티 루 올리버는 사고로 부상을 입었다. 구조대가 그녀를 엘리베이터로 옮겼으나, 사고로 약해진 엘리베이터 줄이 끊어지면서 75층 아래로 추락했다. 다행히 올리버는 엘리베이터 추락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건졌다. 기네스북은 올리버를 가장 높은 곳에서 엘리베이터 추락 사고를 겪고도 생존한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다.
4. 사고 여파
큰 파손과 인명 피해에도 불구하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사고 발생 이틀도 채 지나지 않은 다음 월요일에 대부분의 층에서 업무를 재개했다. 아르망 해머(Armand Hammer)는 피해를 입은 78층을 매입하여 개조한 후, 자신의 회사인 유나이티드 디스틸러스 오브 아메리카의 본사로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