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동독 국민투표
1. 개요
1951년 동독 국민투표는 동독에서 실시된 국민투표로, '재무장과 평화조약 조인'에 대한 찬반을 묻는 내용이었다. 총 유권자 13,700,000명 중 99.42%가 투표에 참여했으며, 95.98%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이 투표 결과에 따라 평화조약 조인은 부결되었고, 동독 정부는 서독의 재무장과 서방과의 협력에 반대하는 입장을 강화했다. 이 사건은 냉전 시기 독일 분단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1951년 동독 국민투표
국민투표 정보
| 제목 | 독일 재무장 반대 및 1951년 독일과의 평화 조약 체결 찬성 여부 |
|---|---|
| 국가 | 동독 |
| 날짜 | 1951년 6월 5일 |
| 선거인 수 | 13,700,000명 |
투표 결과
| 찬성 | 13,034,477표 |
|---|---|
| 반대 | 546,622표 |
| 무효표 | 37,625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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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결과
1951년 동독 국민투표는 '재무장과 평화조약 조인'에 대한 찬반 투표였다. 투표 결과는 하단의 표와 같다.
이 투표 결과에 따라 1951년의 평화조약 조인은 거부되었고, 1954년에 평화조약 조인에 대해 다시금 투표하게 되었다.
2.1. 투표 결과
| 선택 | 득표수 | % |
|---|---|---|
| 찬성 | 13,034,477 | 95.98 |
| 반대 | 546,622 | 4.02 |
| 무효/기권표 | 37,625 | - |
| 총계 | 13,618,724 | 100 |
| 등록 유권자/투표율 | 13,700,000 | 99.42 |
| 출처: [http://www.sudd.ch/event.php?lang=en&id=de011951 Direct Democracy] | ||
투표 결과, '재무장과 평화조약 조인'은 95.98%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부결되었다. 무효/기권표는 37,625표였다. 총 투표수는 13,618,724표, 투표율은 99.42%였다. 1951년의 평화조약 조인은 거부되었고, 1954년에 평화조약 조인에 대한 투표가 다시 실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