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몰타 국민투표
1. 개요
1956년 몰타 국민투표는 몰타가 영국의 속령 지위를 벗어나 영국의 일부가 될 것인지에 대한 찬반을 묻는 투표였다. 투표 결과, 통합 찬성이 77.02%로 승인되었으나, 낮은 투표율과 영국 의회의 반대로 인해 실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몰타는 196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영연방 왕국이 되었고, 1974년 공화국으로 전환되었다.
| 제목 | 1956년 몰타 국민투표 |
|---|---|
| 날짜 | 1956년 2월 11일 및 12일 |
| 질문 | 영국과의 통합 |
| 투표 방식 | 찬반 투표 |
| 찬성 | 67,608표 |
|---|---|
| 찬성 비율 | 77.52% |
| 반대 | 19,561표 |
| 반대 비율 | 22.48% |
| 유효표 | 87,169표 |
| 무효/기권표 | 6,304표 |
| 총 투표수 | 93,473표 |
| 등록 유권자 수 | 152,297명 |
| 투표율 | 6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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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선거 -
제4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1956년 7월 8일 실시된 제4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는 자유민주당과 일본사회당의 대결 속에서 참의원 의석 절반과 결원 2석을 선출하는 선거로, 하토야마 이치로 내각의 평화헌법 9조 개헌 추진이 쟁점이 되었으며 자유민주당이 최다 의석을 획득했으나 과반수에는 미치지 못했다. -
1956년 선거 -
1956년 프랑스 총선
1956년 프랑스 총선은 디엔비엔푸 전투 패배로 인한 정치적 위기 속에서 공화전선이 다수 의석을 확보하며 집권에 성공하여 제4공화국의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좌파 정치 세력이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알제리 전쟁 해결이라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
주권 국민투표 -
1991년 소련 국민투표
1991년 소련 국민투표는 고르바초프의 개혁 속에서 소련을 갱신된 연방으로 보존할 필요가 있는지 묻기 위해 실시되었으며, 대다수가 연방 유지를 지지했으나 일부 공화국의 보이콧과 자체 투표로 소련 해체에 복잡한 영향을 미쳤다. -
주권 국민투표 -
2012년 푸에르토리코 지위 주민투표
2012년 푸에르토리코 지위 주민투표는 현 지위 유지 여부와 주 편입, 독립, 자유 연합 중 선택을 묻는 두 가지 질문으로 진행되었으며, 현 지위 유지를 반대하는 의견이 다수였으나, 결과 해석에 논란이 있었다. -
1956년 2월 -
1956년 동계 올림픽
1956년 동계 올림픽은 이탈리아 코르티나담페초에서 개최된 대회로, 소련, 이란, 볼리비아의 첫 참가, 대한민국 재참가, 토니 자일러의 3관왕, 이노야 치하루의 아시아 첫 메달 획득 등의 의미와 함께 다국적 방송 중계로 올림픽에 텔레비전 영향력을 실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
1956년 2월 -
제13회 골든 글로브상
제13회 골든 글로브상은 1956년에 개최되었으며, 영화 부문에서 《에덴의 동쪽》과 《아가씨와 건달들》이 각각 드라마 작품상과 뮤지컬/코미디 작품상을 수상했다.
2. 배경
2.1. 영국의 식민 통치
2.2. 통합 제안의 등장
3. 주요 내용
투표 당시 몰타는 영국 왕실의 속령으로서, 속령 지위를 벗어나 영국의 일부가 될지의 여부를 놓고 실시된 투표였다. 이 방안에 따르면 몰타는 영국 하원에 지역구 의원 3인을 배출하게 될 예정이었다. 또한 몰타 관련 주무부처도 식민지부에서 내무부로 이관되어 정식 영토로 취급받게 된다.
편입 후 영국 의회는 몰타의 국방과 외교를 통제하고 나아가 세금을 직접 걷게 될 수 있는 데 반해, 몰타 의회는 이들을 제외한 부문을 다루는 지역의회로서, 교육과 가톨릭 교회를 비롯한 공공 생활의 전면에 걸쳐 정책을 꾸려나가게 된다. 국민투표 관련 문건에 따르면 영국과 협정을 체결하여 몰타의 임금과 고용 기회, 생활 수준을 영국의 다른 지역과 동등한 수준으로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투표 용지에 기재된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귀하는 1956년 1월 몰타 관보 제10호에 기재된 방안에 찬성하십니까?"
3.1. 통합의 조건
몰타는 투표 당시 영국 왕실의 속령으로서, 속령 지위를 벗어나 영국의 일부가 될지의 여부를 놓고 투표가 실시되었다. 이 방안에 따르면 몰타는 영국 하원에 지역구 의원 3인을 배출하게 되었다. 또한 몰타 관련 주무부처도 식민지부에서 내무부로 이관되어 정식 영토로 취급받게 되었다.
편입 후 영국 의회는 몰타의 국방과 외교를 통제하고 나아가 세금을 직접 걷게 될 수 있는 데 반해, 몰타 의회는 이들을 제외한 부문을 다루는 지역의회로서, 교육과 가톨릭 교회를 비롯한 공공 생활의 전면에 걸쳐 정책을 꾸려나가게 되었다. 국민투표 관련 문건에 따르면 영국과 협정을 체결하여 몰타의 임금과 고용 기회, 생활 수준을 영국의 다른 지역과 동등한 수준으로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투표 용지에 기재된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귀하는 1956년 1월 몰타 관보 제10호에 기재된 방안에 찬성하십니까?"
3.2. 몰타의 자치권
몰타는 투표 당시 영국 왕실의 속령이었으며, 속령 지위를 벗어나 영국의 일부가 될지의 여부를 놓고 투표가 실시되었다. 이 방안에 따르면 몰타는 영국 하원에 지역구 의원 3인을 배출하게 되며, 몰타 관련 주무부처도 식민지부에서 내무부로 이관되어 정식 영토로 취급받게 된다.
편입 후 영국 의회는 몰타의 국방과 외교를 통제하고 세금을 직접 걷게 되는 반면, 몰타 의회는 이들을 제외한 부문을 다루는 지역의회로서, 교육과 가톨릭 교회를 비롯한 공공 생활 전반에 걸쳐 정책을 꾸려나가게 된다. 영국과 협정을 체결하여 몰타의 임금과 고용 기회, 생활 수준을 영국의 다른 지역과 동등한 수준으로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투표 용지에 기재된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귀하는 1956년 1월 몰타 관보 제10호에 기재된 방안에 찬성하십니까?"
3.3. 경제적 혜택
몰타는 투표 당시 영국 왕실의 속령이었으며, 영국과의 합병을 통해 영국 하원에 지역구 의원 3인을 배출할 수 있게 될 예정이었다. 또한 몰타 관련 주무부처가 식민지부에서 내무부로 이관되어 정식 영토로 취급받게 될 예정이었다.
영국 의회는 몰타의 국방과 외교를 통제하고 세금을 직접 걷게 되는 반면, 몰타 의회는 교육과 가톨릭을 비롯한 공공 생활 전반에 걸친 정책을 꾸려나가는 지역의회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영국과의 협정을 통해 몰타의 임금, 고용 기회, 생활 수준을 영국의 다른 지역과 동등한 수준으로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4. 국민투표
투표 결과, 영국과의 통합을 지지하는 표가 77.02%를 차지하여 승인되었다. 그러나 투표율이 전체 유권자 가운데 59%에 불과하여, 야당 측에서 이것만으로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주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더욱이 영국 의회의 일부 의원들도 몰타가 의회에 의원을 배출하게 되면 다른 식민지에도 선례가 될 수 있고, 총선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결국 몰타는 1964년 9월 12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영연방 소속 왕국 (영국 국왕을 국가원수로 삼는 국가)이 되었으며, 1974년 12월 13일 공화국으로 전환되었다. 1979년 3월 31일에는 영국과의 방위 협정도 만료되어 모든 영국군이 몰타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4.1. 투표 질문
4.2. 투표 결과
투표 결과, 영국과의 통합을 지지하는 표가 77.02%를 차지하여 승인되었다. 그러나 투표율이 전체 유권자 가운데 59%에 불과하여, 야당 측에서 이것만으로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주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더욱이 영국 의회의 일부 의원들도 몰타가 의회에 의원을 배출하게 되면 다른 식민지에도 선례가 될 수 있고, 총선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결국 몰타는 1964년 9월 12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영연방 소속 왕국 (영국 국왕을 국가원수로 삼는 국가)이 되었으며, 1974년 12월 13일 공화국으로 전환되었다. 1979년 3월 31일에는 영국과의 방위 협정도 만료되어 모든 영국군이 몰타에서 철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