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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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6년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는 1986년 9월 14일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청사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사건이다. 폭발물은 콤퍼지션-4로 추정되었고, 사건 발생 다음 날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의 방한을 앞두고, 당국은 국가 이미지 관리를 위해 현장 보존 없이 사건을 서둘러 종결했다. 이후 범인과 범행 목적을 밝혀내지 못하고 미제사건으로 남았으나, 2009년 팔레스타인 출신 아부 니달이 북한의 사주를 받아 테러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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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명칭 |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 |
발생 위치 | 서울특별시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
날짜 | 1986년 9월 14일 |
시간 | 오후 3시 12분 |
시간대 | UTC+9 |
공격 정보 | |
유형 | 폭탄 테러 |
공격 목표 | 민간인 |
사망자 | 5명 |
부상자 | 30–36명 |
가해자 | 북한 |
기타 정보 | |
참고 자료 | https://www.nytimes.com/1986/09/15/world/5-dead-36-hurt-in-an-explosion-at-seoul-airport.html |
뉴스 인용 | https://www.mk.co.kr/news/economy/743406 |
2. 사건 발생
경찰은 1986년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 현장에서 건전지 2개, 전기줄, 철제 신관, 테이프 등 파편 30여 점을 수거하였다. 테러범은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청사 1층 5번과 6번 출입문 사이 외부에서 폭탄을 터뜨렸으며, 파편이 인도와 횡단보도 쪽으로 퍼지도록 폭파 각도를 맞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장소는 공항버스 정류장과 택시 승강장이 있어 평소 사람이 붐비는 곳이며, 특히 외국인보다 한국인이 많은 곳이었다. 경찰은 테러범이 이를 노리고 폭발물을 설치한 것으로 보고 있다.[7]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폭발 후 잿빛 연기가 났으며, 폭발물의 종류는 콤퍼지션-4(C-4)로 잠정 확정되었다. 콤퍼지션-4는 1983년 버마에서 발생한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에서 사용된 폭발물과 동일하다. 당시 민간에서는 이 폭약을 사용할 수 없었다는 점을 통해 당국은 이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지었다.[7]
폭탄 테러 특성상 현장 보존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대처는 미흡했다. 사건 발생 직후 기본적인 현장 통제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국가 이미지 관리에만 신경 쓴 나머지 사건 현장을 빨리 정리하는 데 급급하여 청소부들을 시켜 잔해를 치우고 현장을 청소해 버렸다.[8]
2. 1. 피해 상황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파편 30여 점을 수거하였으며, 테러범이 5번과 6번 출입구 사이 인도와 횡단보도 쪽으로 파편이 퍼지도록 폭파 각도를 맞춘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 장소는 공항버스 정류장과 택시 승강장이 있어 평소에도 사람이 많고, 특히 외국인보다 한국인이 많은 곳이었다. 이를 통해 테러범이 계획적으로 한국인을 노리고 폭발물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7]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폭발 후 잿빛 연기가 났으며, 이를 토대로 폭발물은 콤퍼지션-4(C-4)로 잠정 확정되었다. 콤퍼지션-4는 1983년 버마에서 발생한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에서 사용된 폭발물이다. 당시 민간에서는 이 폭약을 사용할 수 없었다는 점을 통해 당국은 이 사건도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지었다.[7]
폭탄 테러 특성상 현장 보존이 중요하지만, 당국의 대처는 매우 초보적이었다. 사건 발생 직후 기본적인 현장 인원 통제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외국인 선수단이 몰려오는 상황에서 국가 이미지 관리를 위해 사건 현장을 빨리 정리하는 데 급급했다. 결국 청소부들을 불러 잔해를 치우고 현장을 청소해 버렸다.[8]
이 때문에 사건 현장 보존은 실패하였고, 범행 용의점이 있는 내외국인의 출국을 막고 조사했으나 혐의점을 찾지 못하였다. 천만 원의 포상금을 걸고 인터폴 회원국에 수사 협조를 요청했으나, 범인과 범행 목적을 밝혀내지 못한 채 미제사건으로 종결되었다.[8]
3. 사건 조사 및 대응
경찰은 사건 현장을 조사하여 건전지 2개, 전기줄, 철제 신관, 테이프 등 파편 30여 점을 수거했다. 테러범이 5번과 6번 출입구 인도와 횡단보도 쪽으로 파편이 비산하도록 폭파 각도를 맞춘 것으로 추정되었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5번과 6번 출입문 사이는 공항버스 정류장과 택시 승강장이 있어 평소에도 인파가 붐볐으며, 외국인보다 한국인이 많은 장소라는 것을 테러범이 계획적으로 노린 것으로 보인다.[7]
폭탄 테러 특성상 현장 보존이 중요했지만, 당국은 초동 대처에 미흡했다. 범행 용의점이 있는 내외국인의 출국을 막고 연행, 조사했으나 혐의점을 찾지 못했으며, 1000만원의 포상금을 걸고 인터폴 회원국에도 수사 협조를 요청했으나 결국 미제사건으로 종결되었다.[8]
3. 1. 폭발물 분석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폭발 후 잿빛 연기가 났으며, 이는 콤퍼지션-4(흔히 C-4라고 부름) 폭약의 특징과 일치했다. 콤퍼지션-4는 3년 전인 1983년 버마에서 발생한 북한 소행의 테러인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에서도 사용된 폭발물이다. 당시 민간용으로는 이 폭약을 사용할 수 없었다는 점을 통해 당국은 이 사건도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지었다.[7]3. 2. 초동 대처 미흡
사건 발생 직후, 당국은 기본적인 현장 통제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초동 대처에 미흡한 모습을 보였다.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대한민국에 외국인 선수단이 몰려오는 데다, 사건 발생 다음날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방한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당국은 국가 이미지 관리를 위해 사건 현장을 빨리 정리하는 데 급급했다.[8] 청소부들을 동원해 잔해를 무단으로 치우고 현장을 청소하여, 사건 현장 보존에 실패했다.[8]3. 3. 수사 결과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건전지 2개, 전기줄, 철제 신관, 테이프 등 파편 30여 점을 수거했다. 테러범은 5번과 6번 출입구 인도와 횡단보도 쪽으로 파편이 퍼지도록 폭파 각도를 맞춘 것으로 추정되었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5번과 6번 출입문 사이는 공항버스 정류장과 택시 승강장이 있어 평소에도 사람이 많고, 특히 외국인보다 한국인이 많은 장소라는 점을 테러범이 계획적으로 노리고 폭발물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폭발 후 잿빛 연기가 났다고 하며, 이를 토대로 폭발물의 종류는 콤퍼지션-4(C-4)로 잠정 확정되었다. 콤퍼지션-4는 3년 전인 1983년 버마에서 발생한 북한 소행의 테러인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에서 사용된 폭발물이다. 당시 민간용으로는 이 폭약을 사용할 수 없었다는 점을 통해 당국은 이 사건도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지었다.[7]
폭탄 테러 특성상 현장 보존이 매우 중요하지만, 당국의 대처는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사건 발생 직후 가장 기본적인 현장 인원 통제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등 거의 패닉 상태였다.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대한민국에 외국인 선수단이 몰려오고, 사건 발생 다음 날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방한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당국은 국가 이미지 관리를 위해 사건 현장을 빨리 정리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하고 청소부들을 불러 잔해를 무단으로 치우고 현장을 청소해 버렸다.
이 때문에 사건 현장 보존은 실패했다. 범행 용의점이 있는 내외국인의 출국을 막고 연행, 조사했으나 아무런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천만 원의 포상금을 걸고 인터폴 회원국에도 수사 협조를 요청했으나, 결국 범인은 물론 범행 목적도 밝혀내지 못한 채 미제사건으로 종결되었다.[8]
4. 진실 규명
사건 발생 23년 후인 2009년 월간조선은 아부 니달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기사를 보도했다.[9]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관련 자료들을 통해 아부 니달이 북한의 청부를 받고 그 하수인들을 대한민국에 잠입시켜 폭탄 테러를 일으킨 것으로 판단했다.
4. 1. 아부 니달과 북한의 연계
2009년 월간조선 2009년 3월호는 아부 니달(본명 사브리 알 바나)을 범인으로 지목했다.[9] 아부 니달은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1985년 로마 공항, 빈 공항 테러와 1986년 팬 아메리칸 항공 73편 납치 사건 등을 주도한 인물이다. '사막의 독사'라고 불렸으며, 온건파인 PLO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의 측근까지도 살해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관련 자료들을 통해 아부 니달이 북한의 청부를 받고 그 하수인들을 대한민국에 잠입시켜 폭탄 테러를 일으킨 것으로 판단했다.5. 영향 및 평가
1986년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는 대한민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참조
[1]
뉴스
5 DEAD, 36 HURT IN AN EXPLOSION AT SEOUL AIRPORT
https://www.nytimes.[...]
1986-09-15
[2]
웹사이트
The bombing at Kimpo International Airport appears to have...
https://www.upi.com/[...]
2018-07-11
[3]
서적
Routledge Handbook of Sport and Politics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16-10-04
[4]
뉴스
Bomb Kills 5 in Seoul; North Koreans Blamed
https://www.latimes.[...]
2018-07-11
[5]
웹사이트
Massive Security For Seoul Olympics
https://apnews.com/c[...]
2018-07-11
[6]
뉴스인용
김포공항서 폭탄테러
https://www.mk.co.kr[...]
1986-09-15
[7]
뉴스인용
"염려했던 것 현실로 나타났다." 김포공항 테러를 보는 각국의 눈
https://www.joongang[...]
1986-09-15
[8]
뉴스인용
[외교문서] 장난? 혼선유도?…1986년 김포공항 폭발테러 의문의 제보
https://n.news.naver[...]
2017-04-11
[9]
뉴스인용
[일본인 스위스 기자의 슈타지(STASI) 자료 발굴] 5명 사망, 29명 부상한 1986년 9월 14일 김포공항 테러의 진실
https://monthly.chos[...]
200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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