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동독 총선거
1. 개요
1986년 동독 총선거는 1986년에 동독에서 치러진 인민의회 선거이다. 국민전선 명부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99.94%)와 높은 투표율(99.74%)을 보였지만, 극히 낮은 반대표는 선거의 자유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선거 결과는 독일 통일사회당을 비롯한 여러 정당 및 단체가 참여한 국민전선에 의해 500석의 의석이 배분되었으며, 선거 조작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 국가 | 동독 |
|---|---|
| 선거 유형 | 입법부 |
| 투표율 | "99.74%" (%, 0.53%p) |
| 이전 선거 | 1981년 동독 총선거 |
| 이전 선거 년도 | 1981 |
| 선거일 | 1986년 6월 8일 |
| 다음 선거 | 1990년 동독 총선거 |
| 다음 선거 년도 | 1990 |
| 선출 의석수 | 인민의회의 모든 500석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지도자 | 에리히 호네커 |
|---|---|
| 정당 |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 |
| 연합 | 민족전선 |
| 의석수 | 500 |
| 직책 | 각료회의 의장 |
|---|---|
| 선거 전 | 빌리 슈토프 |
| 선거 전 정당 |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 |
| 선거 후 | 빌리 슈토프 |
| 선거 후 정당 |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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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선거 -
제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1990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실시된 제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이 전체 의석을 차지하고 투표율 100%를 기록하며 각 선거구별 당선자를 결정했다. -
1986년 6월 -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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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6월 -
1986년 FIFA 월드컵
1986년 FIFA 월드컵은 콜롬비아의 개최권 반납 후 멕시코에서 개최되어 디에고 마라도나의 활약 속에 아르헨티나가 우승했으나, "신의 손" 골 논란과 고지대 경기장의 영향, FIFA 투명성 문제 등이 제기되었다. -
동독의 선거 -
1981년 동독 총선거
1981년 동독 총선거는 1981년에 치러진 인민의회 선거로, 높은 투표율 속에 독일 통일사회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얻었다. -
동독의 선거 -
1976년 동독 총선거
1976년 동독 총선거는 독일 사회주의 통일당의 주도하에 단일 명부 찬반투표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민족전선이라는 조직이 선거를 관리했으며, SED의 통제하에 결과가 사전에 결정되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2. 선거 결과
공식 선거 결과에서는 99.74%의 매우 높은 투표율과 함께, 대부분의 표가 국민전선 명부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라이너 에펠만 목사 등의 검증 결과, 공식 발표된 내용과 실제 투표 결과 사이에 차이가 발견되어 선거 조작 의혹이 제기되었다.
2.1. 공식 결과
공식 선거 결과에 따르면 유권자 12,434,444명 중 12,402,013명이 투표에 참가해 99.74%의 투표율을 기록했으며, 나머지 2,407표는 무효표였다. 유효표의 99.94%(12,392,094표)가 국민전선 명부에 찬성했으며, 0.06%(7,512표)가 반대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이는 매우 낮은 반대표 비율로, 선거가 자유롭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아홉 번째 인민의회 의원 목록도 참고
2.2. 선거 조작 의혹
동독 선거법은 문서상으로 개표 결과에 대해 공개 검증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탄압에 대한 두려움으로 공개 검증 요구가 거의 없었다. 1986년 총선에서 라이너 에펠만 목사를 중심으로 한 일단의 그룹이 선거법상 보장된 검증을 시도해, 베를린 프리드리히스하인의 제8 투표소에 대한 검증을 할 수 있었다. 검증 결과 8선거구에서만 547명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공식 선거 결과는 동베를린 전체에서 840명이 기권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두 수치로 인해 선거 조작 가능성이 높게 제기되었다. 1989년 실시된 동독 지방선거에서도 일단의 시민들이 같은 선거구에서 개표 검증을 했고, 이때는 선거 조작이 드러나게 된다. 이 사건은 동독 붕괴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되었다.
3. 같이 보기
아홉 번째 인민의회 의원 목록
1989년 동독 지방선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