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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 퓌외레뮈르스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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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VL 퓌외레뮈르스퀴는 핀란드 공군의 프로토타입 전투기로, 1942년 11월에 제작이 주문되어 1945년 11월에 첫 비행을 했다. 독일의 메서슈미트 Bf 109G와 유사한 성능을 목표로 설계되었으며, 금속 부족으로 인해 나무를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1947년까지 총 31번의 시험 비행을 거쳤으나, 전쟁 종결과 자금 부족으로 인해 양산되지 못하고 시제기 1대만 제작되었다. 현재는 중앙 핀란드 항공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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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 퓌외레뮈르스퀴
개요
유형시제 전투기
국적핀란드
제작사발티온 렌토코네테흐다스
설계자토르스티 베르콜라
최초 비행1945년 11월 21일
퇴역1947년
상태퇴역
주요 운용국핀란드 공군
생산 대수1대
개발
명칭
명칭VL 퓌외레뮈르스퀴
의미태풍
이미지
VL 퓌외레뮈르스퀴
VL 퓌외레뮈르스퀴

2. 역사

1942년 11월 26일, 핀란드 공군은 두 대의 ''퓌외레뮈르스퀴''(Pyörremyrsky) 시제기 제작을 주문하며 개발이 시작되었다. 이는 1942년 등장한 소련 공군의 고성능 전투기 La-5 등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개발 목표는 당시 핀란드군 주력기였던 독일제 Bf 109G와 유사한 성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이를 위해 Bf 109G의 다임러-벤츠 DB 605 엔진과 프로펠러를 활용했다. 금속 자원 부족으로 기체 구조에는 목재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으며, 착륙 장치는 야전 운용성을 높이기 위해 날개에 장착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개발 과정에서 시제기 한 대의 제작이 취소되어 PM-1 시제기 한 대만 완성되었다. 제작 도중 제작사가 국영 금속 공장(발메트)으로 개편되면서 'VMT 퓌외레뮈르스퀴'로 불리기도 했고, 공군 코드 PM 때문에 '푸-메르수'(Puu-Mersu, 나무 메서슈미트)라는 별명도 얻었지만, 이는 Bf 109와는 다른 독자적인 설계였다.

개발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등의 이유로 지연되어 첫 비행은 전쟁이 끝난 후인 1945년 11월 21일에야 이루어졌다. 이후 1947년까지 여러 조종사에 의해 시험 비행이 진행되었고, 총 비행 시간은 약 30시간에 달했다. 시험 결과, 퓌외레뮈르스퀴는 Bf 109G-6보다 우수한 상승률과 뛰어난 기동성을 보여주어 성공적인 설계로 평가받았다. 양산 준비도 거의 완료된 상태였으나, 접합부에 사용된 접착제의 품질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서 개발의 시급성이 떨어졌으며 예산도 삭감되었다. 또한 모스크바 휴전 협정에 따라 군비가 제한된 상황에서 핀란드 공군은 보유 중인 Bf 109G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했고, 신형기를 도입할 재정적 여유도 없었다. 결국 퓌외레뮈르스퀴 개발 프로그램은 양산에 이르지 못하고 중단되었고, 시제기 PM-1은 1953년 4월 1일 공군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비록 실전 배치되지는 못했지만, 퓌외레뮈르스퀴의 날개 구조 설계는 이후 핀란드가 개발한 발메트 비후리 훈련기에 영향을 주었다.

2. 1. 개발 배경

1942년 소련 공군의 La-5와 같은 고성능 전투기가 등장하자, 핀란드 공군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전투기 개발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따라 1943년부터 신형 전투기 계획이 시작되었고, 1942년 11월 26일에는 핀란드 공군이 '퓌외레뮈르스퀴'(Pyörremyrsky)라는 이름의 시제기 두 대 제작을 공식적으로 주문했다. 개발 목표는 당시 핀란드군의 주력 전투기였던 독일제 Bf 109G와 유사한 비행 성능을 가진 전투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핀란드는 금속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기체 제작에는 목재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설계가 진행되었다. 동체는 강관 골조를 기반으로 하여 앞부분은 금속 외피로, 뒷부분은 목재 외피로 덮었으며, 날개는 전체를 목제 합판으로 제작했다. 엔진과 프로펠러는 Bf 109G에 사용되던 다임러-벤츠 DB 605 엔진을 그대로 가져와 장착했다. 한편, 착륙 장치는 야전 비행장에서의 운용 편의성을 높이고자 기존 Bf 109G의 동체 수납 방식 대신 날개에 장착하는 방식으로 설계가 변경되었다. 이 설계 변경으로 착륙 장치 유압 장치를 수용하기 위해 날개가 다소 두꺼워져 최고 속도는 약간 감소했지만, 지상에서의 조종성과 이착륙 성능은 크게 향상되는 장점을 얻었다.

개발 과정에서 시제기 두 대 중 한 대의 제작이 취소되면서 최종적으로는 PM-1이라는 제식 부호를 가진 시제기 한 대만이 완성되었다. 또한 항공기 제작을 담당하던 공장이 국영 금속 공장(발메트, Valtion Metallitehtaat)으로 개편되면서 'VMT 퓌외레뮈르스퀴'(VMT Pyörremyrsky)라는 명칭이 사용되기도 했다. 핀란드 공군이 부여한 항공기 코드 'PM' 때문에 '푸-메르수'(Puu-Mersu), 즉 '나무 메서슈미트'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으나, 이는 Bf 109를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닌 독자적인 설계에 기반한 기체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개발이 진행되면서 여러 요인으로 인해 개발 일정이 지연되었다. 특히 1944년 소련과의 계속 전쟁모스크바 휴전 협정 체결로 종결되면서 직접적인 위협이 사라지자, 전투기 개발의 시급성이 낮아졌다. 결국 시제기 PM-1의 첫 비행은 전쟁이 끝난 후인 1945년 11월 21일에야 Härmälä에서 에스코 할메(Esko Halme) 조종사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첫 비행은 25분 만에 엔진 카울링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엔진에서 발생한 연기가 조종석으로 유입되는 문제로 인해 비상 착륙으로 끝났지만, 조종사는 산소 마스크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이후 PM-1 시제기는 탐페레에서 세 차례의 시험 비행을 더 거친 뒤, 1946년 1월 16일 Kuorevesi 기지로 옮겨져 본격적인 시험 비행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1947년까지 총 8명의 조종사가 참여하여 31회의 추가 시험 비행을 실시했으며, 총 누적 비행 시간은 27시간에 달했다. 마지막 비행은 1947년 7월 22일 오스모 카우피넨(Osmo Kauppinen) 대위가 조종하여 20분간 진행된 것이었다.

시험 비행 결과, 퓌외레뮈르스퀴는 Bf 109G-6보다 상승률이 더 우수하고 기동성 또한 매우 뛰어난 성공적인 설계로 평가받았다. 기술적으로는 양산 준비가 거의 완료된 상태로 평가되었지만, 구조물 접합에 사용된 접착제의 품질이 낮다는 점이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서 항공기 개발 프로젝트에 배정된 예산이 크게 삭감되었고, 기체는 여전히 시제기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또한 모스크바 휴전 협정에 따른 군비 제한 조건 하에서 핀란드 공군은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Bf 109G 전투기만으로도 충분히 전력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새로운 항공기를 대량으로 구매할 재정적 여유도 부족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퓌외레뮈르스퀴 개발 프로그램은 결국 중단되었다. PM-1 시제기는 총 비행 시간 약 30시간을 기록한 채 지상에 보관되다가 1953년 4월 1일 핀란드 공군 항공기 목록에서 공식적으로 제외되었다. 비록 양산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퓌외레뮈르스퀴의 날개 구조 설계는 이후 핀란드가 개발한 완전 금속제 훈련기인 발메트 비후리에 적용되어 그 기술적 성과를 남겼다.

2. 2. 개발 과정

1942년 11월 26일, 핀란드 공군은 Pyörremyrsky|퓌외레뮈르스퀴fi 시제기 두 대의 제작을 주문했다. 항공기는 1944년 5월까지 완성될 예정이었으나, 이후 시제기 한 대의 제작이 취소되어 실제로는 한 대만 만들어졌다. 제작 도중 항공기 공장이 국영 금속 공장(발메트)으로 개편되면서 'VMT 퓌외레뮈르스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도 했다. 핀란드 공군 코드 PM 때문에 '푸-메르수'(Puu-Mersu, 나무 메서슈미트)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이는 메서슈미트 Bf 109와는 다른 독자적인 설계였다.

개발 배경에는 1942년 등장한 소련 공군의 La-5와 같은 고성능기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1943년부터 계획된 이 전투기는 당시 핀란드군 주력기였던 독일제 Bf 109G형의 다임러-벤츠 DB 605 엔진과 프로펠러를 활용하여 Bf 109G와 유사한 비행 성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했다. 금속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기체 제작에는 나무를 최대한 사용했다. 동체는 강관 골조를 기반으로 앞부분은 금속 외피, 뒷부분은 목재 외피로 덮었으며, 날개는 목재 합판으로 제작되었다. 착륙 장치는 야전 활주로에서의 운용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동체가 아닌 날개에 직접 부착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이로 인해 착륙 장치 유압 장치를 수용하기 위해 날개가 두꺼워져 최고 속도는 약간 감소했지만, 지상 조작성과 이착륙 성능은 크게 향상되었다.

개발 도중 소련과의 휴전 협정이 성립되면서 당면한 위협이 사라지자 개발 속도는 늦춰졌다. 시제기 PM-1의 첫 비행은 1945년 11월 21일 Härmälä에서 에스코 할메의 조종으로 이루어졌다. 25분간의 비행 후, 엔진 카울링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조종석으로 연기가 유입되는 문제가 발생하여 비상 착륙해야 했다. 조종사는 산소 마스크 덕분에 무사했다. 이후 탐페레에서 세 번의 시험 비행을 더 진행했고, 세 번째 비행은 1946년 1월 16일 Kuorevesi로 기체를 옮기는 비행이었다. Kuorevesi에서는 1947년까지 총 31번의 추가 시험 비행이 이루어졌으며, 누적 비행 시간은 27시간이었다. 시험 비행에는 총 8명의 조종사가 참여했다.

'''퓌외레뮈르스퀴 시험 비행 조종사'''
조종사 이름
에스코 할메
라우리 해매래이넨
에르키 이터부오리
오스모 카우피넨
라세 헤이키나로
마르티 라이티넨
헤이키 케소
라우리 라우타매키



마지막 비행은 1947년 7월 22일 오스모 카우피넨 대위가 조종했으며, 20분간 진행되었다.

퓌외레뮈르스퀴의 설계는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았다. Bf 109G-6보다 상승률이 우수했고 기동성도 뛰어났다. 양산을 위한 준비도 거의 완료된 상태였다. 다만 설계상 주요 문제점으로는 접합부에 사용된 접착제의 품질이 낮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서 항공기는 여전히 시제기 단계에 머물렀고, 프로젝트 예산도 삭감되었다. 핀란드 공군은 모스크바 휴전 협정 조건 하에서 허용된 전투 부대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Bf 109G를 보유하고 있었고, 새로운 항공기를 구매할 자금도 부족했기 때문에 퓌외레뮈르스퀴 프로그램은 총 비행 시간 약 30시간을 기록한 채 종료되었다. 시제기 PM-1은 1953년 4월 1일 공식적으로 핀란드 공군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하지만 퓌외레뮈르스퀴의 날개 구조 설계는 이후 핀란드가 개발한 완전 금속제 훈련기인 발메트 비후리에 활용되었다.

2. 3. 시험 비행

''퓌외레뮈르스퀴'' 시제기 PM-1은 1945년 11월 21일 Härmälä에서 에스코 할메(Esko Halme)의 조종으로 첫 비행을 실시했다. 25분간의 비행 후, 엔진 덮개(카울링)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엔진에서 발생한 연기가 조종석으로 들어오는 문제가 발생하자 할메는 착륙해야 했다. 조종사는 산소 마스크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이 항공기는 탐페레에서 총 세 번의 시험 비행을 했으며, 세 번째 비행은 1946년 1월 16일 Kuorevesi로 기체를 옮기기 위한 비행이었다.

Kuorevesi에서는 1947년까지 총 31번의 추가 시험 비행이 이루어졌고, 총 비행 시간은 27시간에 달했다. 이 기간 동안 총 8명의 조종사가 시험 비행에 참여했다.

'''퓌외레뮈르스퀴 시험 비행 조종사'''
이름
에스코 할메 (Esko Halme)
라우리 해매래이넨 (Lauri Hämäläinen)
에르키 이터부오리 (Erkki Itävuori)
오스모 카우피넨 (Osmo Kauppinen)
라세 헤이키나로 (Lasse Heikinaro)
마르티 라이티넨 (Martti Laitinen)
헤이키 케소 (Heikki Keso)
라우리 라우타매키 (Lauri Rautamäki)



마지막 비행은 1947년 7월 22일 오스모 카우피넨 대위가 조종했으며, 20분 동안 진행되었다.

시험 결과, ''퓌외레뮈르스퀴''의 설계는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당시 핀란드 공군이 운용하던 독일제 Bf 109G-6보다 상승률이 높았고, 기동성도 매우 뛰어났다. 양산 준비가 거의 완료된 것으로 여겨졌으나, 설계상의 유일한 주요 문제점은 접합부에 사용된 접착제의 품질이 낮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항공기는 여전히 시제기 단계에 머물렀고, 이는 프로젝트에 할당된 자금이 감소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퓌외레뮈르스퀴'' 시제기는 약 30시간의 비행 시간을 기록한 후 착륙했으며, 핀란드 공군에 새로운 항공기를 구매할 자금이 부족했고 모스크바 휴전 협정 조건 하에서 허용된 전투 부대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Bf 109G 전투기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프로그램은 결국 종료되었다. PM-1은 1953년 4월 1일에 핀란드 공군 목록에서 공식적으로 제외되었다.

비록 양산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PM-1의 날개 구조 설계는 나중에 핀란드가 개발한 완전 금속제 훈련기인 발메트 비후리에 영향을 주었다.

2. 4. 개발 중단

1942년 등장한 소련 공군의 La-5 등 고성능기에 대응하기 위해 1943년부터 개발이 계획된 전투기였다. 당시 핀란드 공군이 운용하던 독일제 Bf 109G 전투기의 다임러-벤츠 DB 605 엔진을 활용하면서도, 독자적인 설계를 적용하여 Bf 109G와 유사하거나 더 나은 성능을 목표로 했다. 특히 금속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기체 구조에 목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동체는 강관 골조를 기반으로 전반부는 금속 외피, 후반부는 목제 외피였으며, 날개는 목제 합판으로 제작되었다. 착륙 장치는 야전 활주로에서의 운용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동체가 아닌 날개에 장착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1942년 11월 26일, 핀란드 공군은 시제기 2대 제작을 주문했으나, 이후 1대가 취소되어 최종적으로 1대의 시제기(PM-1)만 제작되었다. 항공기 제작 중 국영 금속 공장(발메트)으로 개편되면서 'VMT 퓌외레뮈르스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도 했다. 시제기 PM-1은 1945년 11월 21일 첫 비행에 성공했다. 이후 1947년 7월까지 총 31회의 시험 비행을 통해 총 27시간의 비행 시간을 기록했다. 시험 결과, 퓌외레뮈르스퀴는 Bf 109G-6보다 상승률이 높고 기동성도 뛰어난 성공적인 설계로 평가받았으며, 양산 준비도 거의 완료된 상태였다. 다만 접합부에 사용된 접착제의 품질 문제는 개선점으로 지적되었다.

그러나 개발 도중 제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되고 소련과의 모스크바 휴전 협정이 체결되면서 개발의 시급성이 크게 낮아졌다. 전쟁이 끝나면서 프로젝트에 배정된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고, 핀란드 공군은 새로운 항공기를 대량 구매할 자금 여력이 부족했다. 또한, 휴전 협정 조건 하에서 허용된 전투 부대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수의 Bf 109G 전투기를 이미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전투기의 필요성도 감소했다.

결국 퓌외레뮈르스퀴는 성공적인 성능 평가에도 불구하고 양산에 이르지 못하고 시제기 1대 제작에 그친 채 개발 프로그램이 종료되었다. 시제기 PM-1은 1953년 4월 1일 핀란드 공군 목록에서 공식적으로 제외되었다. 이후 퓌외레뮈르스퀴의 날개 구조 설계는 발메트 비후리 훈련기 개발에 영향을 주었다.

3. 특징

VL 퓌외레뮈르스퀴는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핀란드에서 개발한 전투기 시제기이다. 1942년 등장한 소련 공군의 고성능 전투기에 대응하기 위해 1943년부터 계획되었으며, 당시 핀란드 공군이 운용하던 독일Bf 109G 전투기의 DB 605 엔진을 활용했다.[3] 동체와 날개는 금속과 목재를 혼합하여 제작되었다.[4] 개발 과정 중 핀란드소련 간의 계속 전쟁이 휴전으로 마무리되면서 개발의 시급성이 낮아져 계획이 지연되었다. 첫 비행은 전쟁이 끝난 후인 1945년 11월에 이루어졌으나, 전쟁 종결로 인해 전투기의 필요성이 사라져 시제기 1대 생산에 그치고 양산 계획은 취소되었다.

3. 1. 설계

VL 퓌외레뮈르스퀴(기둥 뒤, 메서슈미트 Bf 109 옆)와 앞쪽의 발메트 비후리.


1942년 등장한 소련 공군의 라보츠킨 La-5와 같은 고성능 전투기에 대응하기 위해 1943년부터 계획된 전투기이다. 당시 핀란드 공군이 운용하던 독일제 Bf 109G 전투기에 탑재된 DB 605 엔진을 활용하여 개발되었다. 동체 구조는 강관 골조를 사용했으며, 전반부는 금속 외피로, 후반부는 목제 외피로 덮여 있었다. 날개는 목제 합판으로 제작되었다. 이는 VL 뮈르스키 전투기와 유사한 구조 방식이다.

개발 과정 중 핀란드소련 간의 계속 전쟁이 휴전 협정으로 마무리되면서 개발의 시급성이 낮아져 계획이 지연되었다. 첫 비행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인 1945년 11월에 이루어졌다. 시험 비행 결과 성능은 양호했으나, 전쟁 종결로 인해 전투기의 필요성이 사라져 시제기 1대 생산에 그치고 양산 계획은 취소되었다.

다음은 VL 퓌외레뮈르스퀴의 제원이다.[3]

VL 퓌외레뮈르스퀴 제원
항목내용
승무원1명
전장9.13m
전폭10.38m
전고3.89m
익면적19m2
에어포일루트: NACA 0019; 팁: NACA 23009[4]
공허 중량2619kg
최대 이륙 중량3310kg
엔진다임러-벤츠 DB 605AC V-12 액체 냉각식 왕복 엔진 1기 (1100kW)
프로펠러3엽 정속 프로펠러
최고 속도620km/h
상승 한도11250m
상승률18.5m/s
익면 하중174kg/m2
무장 (제안)
폭장 (제안)


3. 2. 성능


  • 승무원: 1명
  • 전장: 9.13m[3]
  • 전폭: 10.38m[3]
  • 전고: 3.89m[3]
  • 익면적: 19m2[3]
  • 익형: '''루트:''' NACA 0019; '''팁:''' NACA 23009[4]
  • 공허 중량: 2619kg[3]
  • 최대 이륙 중량: 3310kg[3]
  • 엔진: 1 × 다임러-벤츠 DB 605AC V-12 액체 냉각식 왕복 엔진, 1100 kW (1,475 hp)[3]
  • 프로펠러: 3엽 정속 프로펠러[3]
  • 최대 속도: 650 km/h
  • 항속 거리: 700km
  • 상승 한도: 11250m
  • 상승률: 18.5m/s[3] (해수면 고도 기준, 고도 2000m에서는 21m/s)
  • 익면 하중: 174kg/m2[3]
  • 무장 (제안되었으나 시제품에는 장착되지 않음)[3]
  • 기관총: 2 × LKk/42 12.7mm 기관총 (각 300발)
  • 기관포: 1 × MG 151/20 20mm 기관포 (200발)
  • 폭탄[3]
  • 4 × 50kg 폭탄 또는
  • 4 × 100kg 폭탄

3. 3. 무장


  • '''기관총''': 2 × 12.7 mm LKk/42 기관총 (각 300발) (제안되었지만 시제품에는 장착되지 않음)[3]
  • '''기관포''': 1 × 20 mm MG 151/20 (200발) (제안되었지만 시제품에는 장착되지 않음)[3]
  • '''폭탄''':[3]
  • * 4 × 50kg 폭탄
  • * 4 × 100kg 폭탄

4. 제원

'''일반 특성'''[3]


  • 승무원: 1명
  • 전장: 9.13m
  • 전폭: 10.38m
  • 전고: 3.89m
  • 익면적: 19m2
  • 에어포일: '''루트:''' NACA 0019; '''팁:''' NACA 23009[4]
  • 공허 중량: 2619kg
  • 최대 이륙 중량: 3310kg
  • 동력원: 1 × 다임러-벤츠 DB 605AC V-12 액체 냉각식 왕복 엔진, 1100kW (1,475 hp)
  • 프로펠러: 3엽 정속 프로펠러


'''성능'''[3]

  • 최대 속도: 620km/h
  • 항속 거리: 700km
  • 상승 한도: 11250m
  • 상승률: 18.5m/s (해발 16m/s, 고도 2000m에서 21m/s)
  • 익면 하중: 174kg/m2


'''무장'''[3]

  • 기관총: (제안되었으나 시제품에는 미장착)
  • 2 × 12.7 mm LKk/42 기관총 (각 300발)
  • 기관포: (제안되었으나 시제품에는 미장착)
  • 1 × 20 mm MG 151/20 (200발)
  • 폭탄:
  • 4 × 50kg 폭탄
  • 4 × 100kg 폭탄

5. 보존

PM-1 프로토타입은 현재 중앙 핀란드 항공 박물관 (티카코스키)에서 볼 수 있다.

참조

[1] 문서 Note: All Finnish designed (military) airplanes have traditionally been named after weather phenomena; ''pyörremyrsky'' means [[tropical cyclone]] or [[hurricane]].
[2] 웹사이트 Me 109 G Flight Tests http://www.wwiiaircr[...] 2022-11-29
[3] 서적 Swanborough 1971, p. 275.
[4] 웹사이트 The Incomplete Guide to Airfoil Usage https://m-selig.ae.i[...] 201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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