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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 무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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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양동 무첨당(慶州 良洞 無忝堂)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입니다. 1964년 11월 14일에 보물 제41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무첨당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대학자인 회재 이언적(1491∼1553)의 후손 여강 이씨 종가의 사랑채 건물입니다. 이언적의 아버지인 이번(1463∼1500)이 터를 잡고 살던 집에 지어졌습니다.

'무첨(無忝)'이란 '조상에게 욕됨이 없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시경』의 구절에서 유래했습니다. 이언적의 손자인 이의윤(1564~1597)이 자신의 호로 사용하면서 무첨당이라는 당호가 붙여졌습니다. 이의윤은 조상의 업적에 누가 되지 않는 삶을 살고자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했다고 합니다.

무첨당은 별당으로 지어졌지만, 여강 이씨 종택의 역할을 하며 집안의 대소사를 논의하거나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랑채 본연의 기능인 바깥주인의 학문 연마와 정신 수양의 장소로도 활용되었습니다.

건물은 ㄱ자형 평면으로, 서쪽에 온돌방, 그 옆에 대청, 다시 온돌방이 있는 구조입니다. 대청마루에는 '무첨당' 현판과 '좌해금서(左海琴書)'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좌해금서'는 '영남 지방의 거문고와 서책'을 의미하며, 영남 선비들의 풍류와 학문을 기리는 말입니다.

무첨당은 조선시대 양반 가옥의 정자 기능을 보여주는 건축 양식으로, 건축학적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경주 양동 무첨당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개요
무첨당
명칭경주 양동 무첨당
로마자 표기Gyeongju Yangdong Mucheomdang
분류보물
지정 번호411호
지정일1964년 11월 14일
소재지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안길 32-19 (양동리)
시대조선 시대
소유자이지락
수량1동
google_map양동마을 무첨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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