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문수사 목조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 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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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창 문수사 목조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 일괄은 전라북도 고창군 문수사 명부전에 봉안된 불상들로, 지장보살상 1구와 시왕상 10구로 구성되어 있다. 1654년 벽암각성, 회적성오, 상유 등 벽암각성의 문도들이 시주하여 조성되었으며, 대웅전 석가여래삼불좌상을 제작한 해심 등 15명의 조각승이 참여했다. 2004년 일부 시왕상과 인왕상이 도난당했으나, 시왕상 4구는 회수되었다. 지장보살상은 목조에 개금되었고 시왕상은 목심에 소조 후 개채되었으며, 17세기 중엽 명부조각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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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 문수사 목조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 일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이름 | 고창 문수사 목조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 일괄 |
| 영문 이름 | Gochang Munsusa Mokjo Jijangbosal Jwasang 및 Siwangsang Ilgwal |
| 지정 유형 | 보물 |
| 지정 번호 | 1920 |
| 지정일 | 2016년 11월 16일 |
| 해지 여부 | 아니오 |
| 수량 | 11구(지장보살상 1구, 시왕상 10구) |
| 재질 | 나무(木) |
| 규격 (cm) | 지장보살좌상: 앉은 높이 84, 무릎 폭 64 |
| 제작 시기 | 1654년(효종 5) |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수면 칠성길 135 문수사 |
| 관련 웹사이트 | 문화재청 |
| 유형 문화재 정보 | |
| 지정 유형 | 유형문화재 |
| 지정 번호 | 208 |
| 지정일 | 2006년 6월 16일 |
| 해지일 | 2016년 11월 16일 |
| 문화재청 | 21,02080000,35 |
2. 문수사 명부전
문수사 대웅전 왼쪽에 북향으로 위치한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부에는 지장보살상 1구와 시왕상 10구 등 총 11구의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1] 지장보살상은 목조에 개금하였고, 시왕상은 목심에 소조 후 개채하였다.[1] 지장보살상은 높이 84cm, 무릎폭 64cm이며, 시왕상은 117.5cm~135cm 내외이다.[1]
고창 문수사 대웅전 왼쪽에 있는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명부전 내부에는 지장보살상 1구와 시왕상 10구 등 총 11구의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1] 지장보살상은 목조에 개금(改金)하였고, 시왕상은 목심에 소조(塑造) 후 개채(改彩)하였다.
원래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상과 시왕상 외에 인왕상 2구 등 총 13구의 불상이 봉안되어 있었으나, 2004년 3월 제1진광대왕, 제4오관대왕, 제5염라대왕, 제9도시대왕 및 인왕상 2구 등 6구가 도난당했다.[1] 이후 시왕상 4구는 되찾았으나, 인왕상은 아직 찾지 못해 현재는 11구의 불상만 남아있다.[1]
2004년 시왕상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의해 순치 11년(1654년) 벽봉당 각성의 시주로 일괄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1] 현재 문수사 한산전에 걸려 있는 〈문수사 창건기〉(1758년) 및 〈고창현청향산문수사한산전중창기〉(1843년)에 따르면, 1653년 매석당 성오대사가 대웅전을 창건한 후 이듬해 성유스님이 대웅전 삼존불과 함께 조성한 것으로 확인되었다.[1]
3. 봉안 불상
원래 명부전에는 인왕상 2구도 함께 봉안되어 있었으나, 2004년 3월 도난 사건으로 시왕상 4구와 인왕상 2구가 사라졌다. 이후 시왕상 4구는 되찾았지만, 인왕상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2004년 시왕상의 복장(腹藏)에서 발견된 발원문(發願文)에 따르면, 이 불상들은 순치 11년(1654년)에 벽봉당 각성(覺性)의 시주로 조성되었다. 이는 문수사 한산전에 걸려 있는 〈문수사 창건기〉(1758년)와 〈고창현청향산문수사한산전중창기〉(1843년)의 기록과도 일치하며, 1653년 매석당 성오대사가 대웅전을 창건한 후 다음 해에 성유 스님이 대웅전 삼존불과 함께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1]
3. 1. 지장보살상
목조에 개금(改金)한 불상으로, 높이는 84cm, 무릎폭은 64cm이다. 팔각삼단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자세로, 왼손으로 보주를 들고 있다. 얼굴은 통통하게 살이 오른 중후한 인상이며, 사용된 주름은 힘 있고 간결한 선을 사용하였다.[1] 비구형(比丘形)의 지장보살상과 제왕형(帝王形)의 십대왕(十大王)으로 구성되어 있다.[1]
이 지장시왕상을 조각한 수조각승 해심은 1630년대부터 무염의 문하에서 조각수업을 배운 조각승으로, 1640년대 후반에는 수조각승으로서의 조각적 역량을 갖추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의 작품으로는 1648년에 사옹행사(師翁幸思)와 양사무염(養師無染)을 위로 모시고 수화원(首畵員)으로 참여한 해남 도장사 석가여래삼존좌상과 1654년에 수조각승으로 제작한 같은 절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이 있는데, 대체로 중량감 있는 양감을 통해 중후하고 실재감 있는 존상 표현을 구현한 스승 무염의 조각 전통을 최대한 존중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지장시왕상 역시 이러한 무염의 조각전통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는 해심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된다.[1]
3. 2. 시왕상
시왕상은 목심에 소조 후 개채(改彩)한 불상으로, 크기는 117.5~135cm 내외이다. 제왕의 관복을 갖추어 입고 엉덩이가 꼭 끼는 의좌에 앉아 지옥에 있는 중생을 심판하는 모습인데, 때로는 사실적으로, 때로는 익살스럽게 연출하였다.[1]
3. 3. 도난 및 회수
2004년 3월, 시왕상 4구(제1진광대왕, 제4오관대왕, 제5염라대왕, 제9도시대왕)와 인왕상 2구 등 총 6구가 도난당했다. 이후 시왕상 4구는 회수되었으나, 인왕상 2구는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1]
4. 조성 배경 및 역사
1654년(순치 11년), 벽봉당 각성의 시주로 고창 문수사 목조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 일괄이 조성되었다.[1] 順治|순치중국어는 청나라 세조의 연호이다. 1758년에 작성된 〈문수사 창건기〉와 1843년에 작성된 〈고창현청향산문수사한산전중창기〉에 따르면, 1653년 매석당 성오대사가 대웅전을 창건한 후 성유 스님이 대웅전 삼존불과 함께 조성하였다고 한다.[1]
제8 평등대왕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을 통해, 당시 불교계를 대표했던 벽암각성과 회적성오, 그리고 회적성오의 제자 상유 등 벽암각성의 문도들이 주도한 불사임을 알 수 있다. 조각은 대웅전 석가여래삼불좌상을 만들었던 해심 등 15인의 조각승들이 모두 참여하였다.[1]
5. 조각승 해심
수조각승 해심은 1630년대부터 무염의 문하에서 조각 수업을 받았으며, 1640년대 후반에는 수조각승으로서의 역량을 갖추었다.[1] 해심은 스승 무염의 조각 전통을 계승하여 중량감 있는 양감을 통해 중후하고 실재감 있는 불상 표현을 구현하였다.[1]
해심의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1]
| 제작 연도 | 작품명 | 역할 | 비고 |
|---|---|---|---|
| 1648년 | 해남 도장사 석가여래삼존좌상 | 수화원(首畵員) 참여 | 사옹행사(師翁幸思)와 양사무염(養師無染)을 위로 모심 |
| 1654년 |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 수조각승 |
6. 보물 승격 사유
고창 문수사 지장보살상 및 시왕상 일괄은 승려형(비구형)의 지장보살상과 제왕형의 십대왕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상들은 1654년에 조성되었으며, 당시 불교계를 대표했던 벽암각성과 회적성오, 그리고 회적성오의 제자 상유 등 벽암각성의 문도들이 주도한 불사(佛事)였다. 조각은 대웅전 석가여래삼불좌상을 만들었던 해심 등 15명의 조각승들이 참여하였다.[1]
지장보살상은 팔각삼단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자세로, 왼손으로 보주를 들고 있다. 얼굴은 통통하게 살이 오른 중후한 인상이며, 힘 있고 간결한 선으로 주름을 표현하였다. 시왕상은 제왕의 관복을 입고 의자에 앉아 지옥중생을 심판하는 모습인데, 사실적이면서도 익살스럽게 표현되었다.[1]
이 지장시왕상을 조각한 수조각승 해심은 1630년대부터 무염의 문하에서 조각을 배웠으며, 1640년대 후반에는 수조각승으로서의 역량을 갖추었다. 그의 작품으로는 해남 도장사 석가여래삼존좌상(1648년)과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1654년)이 있다. 해심은 스승 무염의 조각 전통을 존중하여 중량감 있는 양감을 통해 중후하고 실재감 있는 불상을 표현하였다. 이 지장시왕상 역시 무염의 조각 전통을 충실히 계승한 해심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된다.[1]
이 지장보살상과 시왕상은 일부 권속들이 소실되거나 도난당하여 완전하지 않지만, 고색이 찬연한 채색과 명부존상으로서의 위엄 있는 기품, 감각적인 표현 기법이 돋보이는 17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명부조각의 기준 작품으로 평가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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