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태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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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원태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리, 대한민국 농림부 및 내무부 차관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관리가 되었으며, 함경북도 상무과장과 온성군 군수를 지냈다. 해방 후 미군정 하에서도 관료로 활동했으며, 제4대, 제8대, 제9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자유당과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활동하며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 협력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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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경제학자이자 정치인으로,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의 요직을 거쳐 경제기획원 장관, 내각 수반, 주미 한국 대사 등을 역임하며 경제 발전과 외교에 기여했다는 평가와 군사 정권에 협력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 대한민국의 농림부 차관 - 김주수 (1952년)
김주수(1952년)는 제44, 45, 46대 경상북도 의성군수를 역임했으며, 성균관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공공정책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과거 음주운전 사고 후 도주, 뇌물 수수 혐의로 논란이 있었다. - 경성사범학교 동문 - 이병린
이병린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변호사로 활동하며 서울변호사회 부회장,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6.3 사태 당시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며 구속되었으며,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공동대표와 유신헌법 철폐 운동을 주도하며 인권 운동에도 힘썼고, 법치주의 확립과 사법권 독립을 강조하며 민주화 운동에 기여한 인물이다. - 경성사범학교 동문 - 박두진
박두진은 일제강점기 안성 출생의 청록파 시인으로,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시와 시대적 저항시를 썼으며, 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고, 후기에는 종교적 성찰과 사회 비판을 담은 작품을 남겼다. - 괴산군 출신 - 경대수
경대수는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법조인 출신 정치인으로, 검사로서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장 등을 역임하고, 새누리당 소속으로 19대와 20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국회 및 당내 주요 직책을 맡았으나 아들의 병역 면제 논란이 있었다. - 괴산군 출신 - 이기붕
이기붕은 이승만 정권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며 권력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으나,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으로 몰락하여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김원태 (정치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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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김원태 |
원래 이름 | 金元泰 |
출생일 | 1909년 8월 29일 |
출생지 | 대한제국 충청북도 괴산 |
사망일 | 1997년 12월 22일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 |
사인 | 파킨슨병 |
별명 | 아호는 괴남(槐南) |
일본식 이름 | 가카와 모토타이(駕川元泰) |
종교 | 유교(성리학) |
학력 | |
학력 | 경성사범학교 |
정당 | |
정당 | 무소속 |
경력 | |
경력 | 농림부 차관 자유당 국회의원 무소속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대한유도회 고문 |
대통령/부통령 | |
대통령 | 이승만 |
부통령 | 함태영 장면 |
직책 | |
직책 | 대한민국 제14대 내무부 차관 |
임기 | 1955년 11월 17일 ~ 1957년 2월 14일 |
장관 | 김형근 내무부 장관 이익흥 내무부 장관 장경근 내무부 장관 이근직 내무부 장관 |
2. 생애
김원태는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면에서 태어나 괴산군 증평면에서 성장했다.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조선총독부 관리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 동안 함경북도 상무부 상무과장과 함경북도 온성군 군수를 역임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에 선정되었다.
2. 1. 해방 이후 활동
태평양 전쟁 종전 후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관리에 발탁되었다. 대한민국 내무부 재정과장, 행정과장 등을 거쳐 제1공화국에서 농림부와 내무부 차관을 역임했다. 《대한민국건국십년지》에는 성실성과 탁월한 행정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인물평이 실려 있다.[1]2. 2. 정치 활동
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고향 괴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대한민국 제8대 국회의원 선거와 대한민국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공천을 받아 당선되며 3선 의원이 되었다.3. 평가
《대한민국건국십년지》에는 성실성과 탁월한 행정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인물평이 실려 있다.[1]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관료 부문에 선정되었다. 이는 김원태가 일제 강점기 고위 관료로서 친일 행위에 가담했음을 보여준다.
4. 역대 선거 결과
연도 | 선거명 | 대수 | 직책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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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 총선 | 4대 | 국회의원 | 충북 괴산군 | 자유당 | 33,411표 (55.92%) | 1위 | 당선 | 초선 |
1960년 | 총선 | 5대 | 국회의원 | 충북 괴산군 | 무소속 | 10,244표 (21.06%) | 2위 | 낙선 | |
1971년 | 총선 | 8대 | 국회의원 | 충북 괴산군 | 민주공화당 | 37,294표 (69.38%) | 1위 | 당선 | 재선 |
1973년 | 총선 | 9대 | 국회의원 | 충북 진천군·괴산군·음성군 | 민주공화당 | 40,932표 (33.80%) | 2위 | 당선 | 3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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