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당 (대한민국)
1. 개요
민주공화당은 1963년 2월 26일,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를 중심으로 창당된 대한민국의 정당이다. 민주공화당은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으며, 1972년 유신헌법 공포 이후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하여 사실상 일당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피살 이후 신군부에 의해 1980년 해산되었으며, 이후 민주정의당이 민주공화당의 정신적 계승자로 여겨졌다. 민주공화당은 1963년부터 1978년까지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모두 승리했으며, 여러 차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1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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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해산된 정당 -
신민당 (1967년)
신민당은 1967년 민중당과 신한당이 통합하여 창당된 대한민국의 정당으로, 유진오를 당 대표, 윤보선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여 박정희 정권에 맞섰으나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해산되었다. -
1980년 해산된 정당 -
유신정우회
유신정우회는 박정희 대통령의 주도하에 결성되어 국민회의 추천 의원들로 구성되었으며, 정권의 국회 장악 수단으로 기능하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 후 해체된 대한민국의 정치 조직이다. -
민주공화당 (대한민국) -
김영광 (1931년)
김영광은 1931년생으로, 한양공과대학교 졸업 후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국민대학교 겸임교수와 경남대학교 초빙교수를 역임했으며, 이리역 폭발 사고 당시 피해자 지원을 했고, 안중근 유골 수색 활동에 참여했으며, 제10, 11, 14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
민주공화당 (대한민국) -
오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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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에 관한 -
일당제
일당제는 하나의 정당만이 합법적이거나 권력을 독점하는 정치 체제로, 헌법이나 법률로 규정되기도 하지만 야당 탄압 등으로 구분이 모호해지기도 하며, 정책 결정에 있어 반대 의견 부재로 잘못된 정책이 시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 -
정당에 관한 -
보수당 (영국)
보수당 (영국)은 17세기 토리당에서 유래하여 1834년 로버트 필에 의해 공식 출범했으며, 자유 시장 경제와 온건 보수주의를 지향하며, 브렉시트와 경제 문제로 2024년 총선에서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2. 역사
1963년 1월 김종필은 민주공화당의 사전 조직인 재건당을 창당하였다. 이후 변호사 정구영 등의 학자와, 윤치영, 임영신 등 정치인들을 포섭하여 2월 26일 공화당을 창당하였다.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여당이 되었다. 이후 제6대 대통령 선거와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박정희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 당선시키며 대한민국 제3공화국 기간 동안 여당으로 활동하였다. 1972년 10월 유신 선포 이후에는 박정희에 의해 친위조직이자 제2여당격인 유신정우회가 조직되어 활동하기도 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자, 11월 26일 김종필을 임시 당수로 선출했다. 1980년 윤치영을 임시 당수로 선출했으나 정치활동금지법에 의해 1980년 10월 27일 해산되었다. 공화당은 당 재산을 민주정의당에 양도하기로 결정하였다. 구 민주공화당 인사 중 정치활동금지법에 묶이지 않거나 1981년에 풀린 일부는 1981년 1월 한국국민당을 창당하였다. 공화당계 정당은 1990년까지 존속했는데, 한국국민당은 이후 신민주공화당을 거쳐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이후 국민당과 신민주공화당계열 인사 중심으로 1995년에 창당된 자유민주연합과 그 후신 정당들도 공화당계 정당의 연장선으로 간주되곤 한다.
1963년부터 1980년까지 민주공화당의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 날짜 | 사건 |
|---|---|
| 1963년 2월 26일 | 민주공화당 창당대회 * 강령과 기본정책 및 당헌 채택 * 총재에 정구영 민주공화당 준비위원회 부위원장 추대 * 당의장에 김정렬 전 국방장관 추대 |
| 1963년 5월 27일 | 민주공화당 제2차 전당대회 * 당헌 개정 *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추대 * 당의장 윤치영 의장서리 임명동의 |
| 1963년 8월 31일 | 민주공화당 제3차 임시 전당대회 * 박정희 의장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 선거 후보 수락 * 총재에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추대 |
| 1963년 12월 2일 | 민주공화당 중앙상임위원회 * 당의장에 김종필 창당준비위원장 임명동의 |
| 1964년 12월 28일 | 민주공화당 제4차 전당대회 * 당의장에 정구영 의장서리 임명동의 |
| 1965년 12월 27일 | 민주공화당 제5차 전당대회 * 총재에 박정희 대통령 추대 * 당의장에 김종필 전 의장 임명동의 * 정책방향 채택 |
| 1967년 2월 2일 | 민주공화당 제6차 전당대회 * 대한민국 제6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박정희 대통령 추대 * 대선공약 채택 |
| 1969년 8월 30일 | 민주공화당 제7차 임시 전당대회 * 3선 개헌 추진결의 |
| 1971년 3월 17일 | 민주공화당 제8차 전당대회 * 대한민국 제7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박정희 대통령 추대 * 선거공약 채택 * 당의장에 백남억 의장서리 임명동의 |
| 1979년 11월 12일 | 민주공화당 당무회의 * 총재에 김종필 전 총리 추대 |
| 1980년 10월 27일 | 신군부에 의해 정당해산 |
2.1. 창당 배경 및 초기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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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한국에서 정권을 잡았던 군부 세력(국가재건최고회의)은 군정에서 민정으로 정권을 이양한 후에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당 창설을 준비하였다. 한국 중앙정보부(KCIA) 초대 부장이었던 김종필을 중심으로 창당이 진행되었고, 5·16 군사혁명 이념 계승 및 세대교체 등을 결당 이념으로 하여 1963년 2월 26일 민주공화당을 결성하였다.
민주공화당 창당 준비 작업 당시, 야권을 중심으로 군사 정부 세력이 창당하는 신당이 "사회노동당"이라는 이름의 좌익 신당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나 군사 정부 측은 "여당의 이름이 사회노동당으로 내정되었다는 일부 보도는 전혀 근거 없는 것"이고 사회주의 정당의 조직을 법으로 막지 않겠다고 하는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민정 이양 후 정치 체제로 보수 양당제가 성립되는 것을 희망한다고 밝혔는데, 이는 훗날 구 민주당 세력 등이 신민당으로 통합하며 현실화됐다.
1963년 2월 26일 창당대회에서 초대 총재에는 정구영, 당 의장에는 김정렬이 선출되었다. 이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8월 26일 육군 대장에서 예비역으로 전역)이 8월 31일 제3차 당 대회에서 당 총재로 추대되었고, 동시에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했다. 10월에 치러진 제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박정희는 민정당 후보 윤보선을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고, 바로 이어진 제6대 총선에서 압승하여 제3공화국에서 여당으로서의 기반을 마련했다.
2.2. 박정희 정부와 경제 성장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 기간(1961년~1979년) 동안, 민주공화당은 국가 주도의 기업주의(corporatism)와 개발주의(developmentalism)를 이끌었다. 이 시기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며, 빈곤한 농업 국가였던 대한민국이 산업화된 “선진국형 경제(tiger economy)”로 변모하는 계기가 되었다. 민주공화당이 주도한 국가와 재벌 기업의 결합은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경제 시스템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2.3. 권위주의 통치와 장기 집권
5·16 군사정변으로 박정희가 집권한 1961년부터 암살된 1979년까지, 민주공화당은 국가 주도의 기업주의와 개발주의 시대, 즉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시대를 이끌었다. 이 기간 동안 빈곤하고 농업 중심이었던 국가는 산업화된 “선진국형 경제”로 변모하였다. 민주공화당이 개척한 국가와 재벌 기업의 결합은 여전히 대한민국 경제 시스템의 기반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1969년 헌법의 3선 금지 규정을 강행으로 개정(3선 개헌)하여,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는 3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에게 맹추격을 당했고, 바로 이어진 총선에서는 단독 개헌에 필요한 3분의 2를 밑도는 결과를 얻었다.
10월 유신헌법이 공포된 1972년 이후, 대통령이 국회의원 3분의 1을 직접 임명하는 등 여러 권위주의적 중앙 집권화 조치가 시행되면서 민주공화당은 전례 없는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였다. 이후 8년 동안 대한민국은 사실상 민주공화당이 지배하는 일당 독재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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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박정희 대통령 서거와 당 해산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 이후 김종필이 당 총재에 취임했으나, 12·12 사태 다음 해인 1980년 10월 27일 제5공화국 헌법 부칙에 따라 해산되었다.
전두환 시대에는 구 공화당 정치인 중 정치풍토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따른 정치 활동 금지 조치 대상이 아니었던 사람들이 한국국민당을 결성해 정치 활동을 재개했지만, 정치 활동 금지 조치를 받은 김종필 등 거물 정치인들은 참여하지 않아 소수 야당에 머물렀다.
3. 이념 및 정책
10월 9일 신민당 대통령 후보 윤보선은 안동 유세에서 "민주공화당은 공산당의 돈을 가지고 공산당 간첩이 와서 공산당 식으로 조직한 공산주의 정당"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황태성이가 200000USD를 가지고 왔는데, 김종필씨가 조선호텔에 모셔다가 서울에 밀봉교육처를 다섯 군데나 만들어놓고 공산당 식으로 점조직을 한 공화당이 어떻게 민주주의 정당이냐"고 비판했다.
민주공화당은 5·16 군사혁명 이념 계승 및 세대교체 등을 결당 이념으로 1963년 2월 26일 결성되었다.
3.1. 정치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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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월 군사 쿠데타 이후 한국에서 정권을 잡았던 군부 세력(국가재건최고회의)은 군정에서 민정으로 정권을 이양한 후에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민주공화당을 창설하였다. 한국 중앙정보부(KCIA) 초대 부장이었던 김종필을 중심으로 창당이 진행되었고, 5·16 군사혁명 이념 계승 및 세대교체 등을 창당 이념으로 하여 1963년 2월 26일 결성되었다.
군부와 관료 조직에 구축한 강력한 조직력을 활용하여 1967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는 윤보선을 큰 차이로 재선시켰고, 이어진 총선에서도 압승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주류파와 이후락 대통령 비서실장 및 김형욱 한국 중앙정보부 부장 등을 중심으로 한 반김종필계 비주류파의 대립과 세력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국민복지연구회 사건과 4·8 항명 사건 등 당 간부 및 의원 숙청도 잇따랐다. 1969년 헌법의 3선 금지 규정을 강행으로 개정(3선 개헌)하여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는 3선에 성공했지만 신민당의 김대중 후보에게 맹추격을 당했고, 이어진 총선에서는 단독 개헌에 필요한 3분의 2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얻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종신 집권을 목표로 10월 유신을 단행하여 출범한 제4공화국에서는 공화당과 별도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된 의원들이 결성한 유신정우회가 제2여당으로 등장하면서 여당으로서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4. 당내 갈등
1967년 대통령 선거와 총선에서 민주공화당은 박정희 후보와 함께 압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주류파와 이후락 대통령 비서실장, 김형욱 중앙정보부 부장 등을 중심으로 한 반김종필계 비주류파 간의 대립과 세력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국민복지연구회 사건과 4.8 항명 사건 등 당 간부 및 의원 숙청이 잇따랐다.
4.1. 4.8 항명 사건
1969년 4월 7일, 신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권오병 문교부 장관에 대한 해임 권고 건의안을 제출하였다. 해임 건의안 제출 이유는 문교 행정의 실패, 사학 특감 및 68회 임시국회에서의 폭언이었다.
4월 8일, 국회 본회의 표결 결과, 재적 152명 중 찬성 89명, 반대 53명, 기권 3명으로 해임 권고안이 통과되었다. 당시 공화당 총재였던 박정희는 "1주일 안에 이번 사건을 주동한 반당 분자를 철저히 규명하여 그 숫자가 몇 십 명이 되더라도 가차 없이 처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969년 4월 15일, 박정희 총재의 지시에 따라 의원총회에서 양순직, 예춘호, 박종태, 정태성, 김달수 의원이 제명되었다. 1969년 7월 12일에는 당명에 불복한 중앙위원 11명, 지구당 부위원장 4명을 포함한 93명을 제명하였다.
4.8 항명이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는 개헌 논의에 대한 반대 의사였으며, 당 제명 조치 역시 그에 따른 숙청(肅淸) 조치였다.
5. 평가
민주공화당은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군부 세력이 정권 유지를 위해 김종필을 중심으로 창당한 정당이다. 중앙정보부의 강력한 조직력을 기반으로 장기간 집권하였으나, 당내 권력 투쟁과 부정부패, 3선 개헌과 유신 체제 강행 등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10월 유신 이후에는 유신정우회라는 제2여당의 등장으로 여당으로서의 지위가 약화되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 사망 이후 해산되었으며, 일부 인사들은 한국국민당을 창당하여 정치 활동을 이어갔지만, 김종필 등 주요 인사들은 참여하지 않아 소수 야당에 머물렀다.
5.1. 부정적 평가
10월 9일 신민당 대통령 후보 윤보선은 안동 유세에서 "민주공화당은 공산당의 돈을 가지고 공산당 간첩이 와서 공산당 식으로 조직한 공산주의 정당'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북한의 무역성 부상 황태성이가 200000USD를 가지고 왔는데, 김종필씨가 조선호텔에 모셔다가 황태성 지시에 따라 서울에 밀봉교육처를 다섯 군데나 만들어놓고 공산당 식으로 점조직을 한 공화당이 어떻게 민주주의 정당이냐"하고 반문하면서, "공화당은 보수정당도 아니고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정당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윤보선의 안동 발언은 막바지에 이른 선거 정국을 바짝 긴장시켰다.
6. 역대 지도부
민주공화당의 지도부는 총재, 부총재, 당의장 등으로 구성되었다. 1963년 2월 26일 창당대회에서 초대 총재에 정구영, 당의장에 김정렬이 선출되었다. 같은 해 8월 31일, 박정희가 총재로 추대되었다.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후, 1979년 11월 12일 당무회의에서 김종필이 총재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신군부에 의해 1980년 10월 27일 민주공화당은 해산되었다.
6.1. 역대 총재
6.3. 역대 당의장
| 대수 | 역대 대표 | 직함 | 임기 | 비고 |
|---|---|---|---|---|
| 1 | 김정렬 | 의장 | 1963년 2월 26일 ~ 1963년 4월 22일 | 총재가 의장 지명토록 사퇴 |
| 임시 | 윤치영 | 임시의장 | 1963년 5월 2일 ~ 1963년 5월 27일 | 총재가 지명 |
| 2 | 의장 | 1963년 5월 27일 ~ 1963년 12월 2일 | ||
| 3 | 김종필 | 의장 | 1963년 12월 2일 ~ 1964년 6월 5일 | 장경순 파동으로 사퇴 |
| 임시 | 정구영 | 의장서리 | 1964년 6월 8일 ~ 1964년 12월 28일 | 총재가 지명 |
| 4 | 의장 | 1964년 12월 28일 ~ 1965년 8월 26일 | 사퇴 | |
| 5 | 김종필 | 의장 | 1965년 12월 27일 ~ 1968년 5월 30일 | 국민복지회 사건으로 탈당 |
| 6 | 윤치영 | 의장서리 | 1968년 6월 5일 ~ 1970년 12월 26일 | 총재가 지명 |
| 임시 | 백남억 | 의장서리 | 1970년 12월 26일 ~ 1971년 3월 17일 | 총재가 지명 |
| 7 | 의장 | 1971년 3월 17일 ~ 1972년 7월 24일 | 병역비리로 사퇴 | |
| 8 | 정일권 | 의장서리 | 1972년 7월 26일 ~ 1973년 3월 8일 | 총재가 지명 |
| 9 | 이효상 | 의장서리 | 1973년 3월 8일 ~ 1979년 2월 19일 | 총재가 지명 |
| 10 | 박준규 | 의장서리 | 1979년 2월 19일 ~ 1979년 11월 14일 | 사퇴 |
| 임시 | 김종필 | 총재 겸 의장대행 | 1979년 11월 14일 ~ 1980년 3월 31일 | 총재직 겸임 |
| 11 | 전례용 | 의장서리 | 1980년 4월 3일 ~ 1980년 10월 27일 | 신군부에 의해 당 해산 |
7. 주요 선거 결과
민주공화당은 제5대 대통령 선거부터 제9대 대통령 선거까지, 그리고 제6대 총선부터 제10대 총선까지 여러 차례 승리하며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 정치의 중심 세력이었다.
| 선거 | 후보 | 득표율 (%) | 결과 |
|---|---|---|---|
| 제5대 대통령 선거 | 박정희 | 46.6 | 당선 |
| 제6대 대통령 선거 | 51.4 | ||
| 제7대 대통령 선거 | 53.2 | ||
| 제8대 대통령 선거 | 99.9 | 당선5대~7대 대통령선거는 직접 선거로 이루어졌고, 8대~9대는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간접 선거로 이루어졌다. | |
| 제9대 대통령 선거 | 99.9 | ||
| 선거 | 득표율 (%) | 의석 수 | 결과 | 비고 |
|---|---|---|---|---|
| 제6대 총선 | 33.5 | 110 / 175 | 제1당 | |
| 제7대 총선 | 50.6 | 129 / 175 | ||
| 제8대 총선 | 48.8 | 113 / 204 | ||
| 제9대 총선 | 38.7 | 73 / 146 | 유신정우회 창당 | |
| 제10대 총선 | 31.7 | 68 / 1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