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내일동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내일동은 대한민국 경상남도 밀양시에 속하는 행정동으로, 법정동으로는 내일동, 용평동, 활성동이 있다. 조선 시대에는 밀양읍성의 성지가 있던 곳으로, 1895년 밀양군 부내면의 중심지였으며, 이후 여러 차례 행정 구역 개편을 거쳐 현재의 내일동이 되었다. 주요 문화 유적으로는 영남루, 천진궁, 밀양읍성, 아랑각 등이 있으며, 아랑전설과 관련된 장소이기도 하다. 밀양여자고등학교가 내일동에 위치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밀양시의 행정 구역 - 삼랑진읍
    삼랑진읍은 낙동강과 밀양강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여 세 갈래 물결이 일렁이는 나루라는 뜻으로 유래했으며, 삼랑진역을 중심으로 교통의 요지이고, 만어사, 김범우 순교자 성지, 작원관 등의 문화·관광 자원이 있으며, 딸기와 복숭아가 특산물이다.
  • 밀양시의 행정 구역 - 산내면 (밀양시)
    산내면은 경상남도 밀양시에 위치하며 임고리, 삼양리 등 8개의 리로 이루어져 있고 산내초등학교, 산내남명초등학교, 밀양동강중학교가 있어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면이다.
내일동 - [지명]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아랑각
아랑각
광역시도경상남도
시군구밀양시
면적12.07
세대1,777
세대 조사2011년 6월 1일
인구2615
인구 조사2022년 3월
법정동3
10
46
동주민센터밀양대로 2047
홈페이지내일동주민센터

2. 연혁

1479년 조선 성종 때 밀양읍성을 쌓고, 임진왜란 직전 개축하여 왜구 침입에 대비했던 곳이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성벽 등은 사라졌지만, 동헌 자리에 관아가 복원되었다. '내일동' 명칭은 부내면 중심지라는 뜻이다.[3]

연도내용
1895년 (조선 고종 32년)밀양군 부내면 중심지[3]
1910년 10월 1일밀양군 밀양면 서부, 동부, 로상, 로하, 교리의 일부 합병[3]
1914년밀양군 밀양면 내일동[3]
1931년 4월 1일밀양군 밀양읍 본정[3]
1947년 6월 25일밀양군 밀양읍 내일리[3]
1989년 1월 1일밀양시 내일동 (시 승격, 동사무소 개청)[3]
1998년 9월 21일내일동·용활동(용평동, 활성동) 통합, 내일동[3]


2. 1. 조선 시대

지금으로부터 516년 전인 1479년 (조선 성종 10년)에 밀양읍성을 쌓았고, 임진왜란 2년 전인 1590년 (선조 23년)에는 이를 다시 쌓아 왜구의 침입에 대비한 성지가 자리 잡은 곳이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성벽과 4개 문이 없어졌으나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동헌 자리에는 관아가 복원되었다. 내일동이라는 명칭은 부내면에서 첫째가는 동이라는 뜻과 가장 중심 지역이라는 뜻으로 붙여졌다.[3]

1895년 조선 고종 32년 밀양군 부내면 중심지였다.[3]

2. 2. 일제강점기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밀양읍성의 성벽과 4개 문이 없어졌으나,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동헌 자리에는 관아가 복원되었다.[3] 1914년에는 밀양군 밀양면 내일동이 되었으며, 1931년 4월 1일에는 밀양군 밀양읍 본정으로 변경되었다.[3]

2. 3. 해방 이후

1947년 6월 25일 밀양군 밀양읍 내일리가 되었다.[3] 1989년 1월 1일 밀양시로 승격하면서 내일동이 되었고 동사무소가 개청되었다.[3] 1998년 9월 21일에는 내일동과 용활동(용평동, 활성동)이 통합되어 내일동이 되었다.[3]

연도내용
1947년 6월 25일밀양군 밀양읍 내일리[3]
1989년 1월 1일밀양시 내일동 (시 승격으로 동사무소 개청)[3]
1998년 9월 21일내일동과 용활동(용평동, 활성동) 통합 - 내일동[3]


3. 법정동

내일동에는 법정동인 내일동, 용평동, 활성동이 있다.

4. 문화/관광

내일동에는 상설시장과 5일장이 있다. 상설시장은 겨울에는 난방, 여름에는 냉방 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재래시장은 돔이 설치되어 비를 피하여 쇼핑을 할 수 있다. 5일장은 밀양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재래시장이다.[2]

4. 1. 문화 유적

영남루(보물 147호), 천진궁, 아랑각, 무봉사 석조여래좌상, 월연정, 금시당 등 문화유적지와 아동산, 아북산의 시민 휴식 공간이 있다.[2]

4. 2. 아랑전설

아랑전설에 나오는 아랑의 이름은 윤동옥(尹東玉)이었으며, 그녀는 부친이 영남 밀양태수로 부임하였을 때에 수행하여 밀양에 갔다. 그 고을 통인(通引- 관리명)과 유모의 음모에 빠진 아랑은 어느 날 밤 영남루의 밤 경치를 보러 갔다가 통인 백가(白哥)에게 욕을 당하였다. 아랑이 달 구경을 하며 영남루 위에 있을 때, 음모대로 유모는 사라지고 몰래 기둥 뒤에 숨어있던 백가가 뛰어 나와서 아랑에게 연모의 정을 말하였다. 그러나 아랑은 갑작스런 그의 마음을 거절하였고, 결국 백가는 아랑을 죽여 강가 대숲 속에 던져 버렸다. 다음 날 태수는 사라진 딸을 찾기 위해 여러 조사를 하였으나 아랑을 찾지 못하고 마침내는 자기 딸이 야반도주한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양반 가문에서 그런 불상사가 일어난 이상 근신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여 벼슬을 하직하고 한양 본가로 갔다. 그 뒤로 신관 사또가 부임할 때마다 밤에 처녀귀신이 나타나 신관은 비명횡사하고 만다. 이 때문에 밀양 태수를 자처하는 사람이 없어 지원자를 구하게 되었는데, 이상사(上舍- 지난날, 생원이나 진사를 가리키던 말)라는 사람이 지원하게 된다. 그는 부임한 첫날 밤에 촛불을 켜고 독서를 하고 있었는데 별안간 머리를 풀어 헤치고 목에 칼을 꽂은 여귀가 나타났다. 두려움 없이 앉아있는 그에게 여귀는 자신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애원하였고, 날이 밝자 그는 통인 백가를 잡아 족쳐 자백을 받아내고 여귀가 된 아랑의 원혼을 달래 주었다. 그 이후로 사또의 객사에는 원혼이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4]

아랑각 정면

4. 3. 시장

내일동에는 영남루(보물 제147호), 천진궁, 아랑각, 무봉사 석조여래좌상, 월연정, 금시당 등 문화유적지와 아동산, 아북산의 시민 휴식 공간이 있다. 특히 상설시장은 겨울에는 난방, 여름에는 냉방 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재래시장은 돔이 설치되어 비를 피하여 쇼핑을 할 수 있다. 5일장은 밀양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재래시장이다.[2]

5. 교육

밀양여자고등학교

참조

[1] 웹사이트 내일동의 일반 현황 http://www.miryang.g[...] 2011-07-12
[2] 웹사이트 내일동 소개 http://www.miryang.g[...] 2011-07-08
[3] 웹사이트 내일동의 연혁 및 유래 http://www.miryang.g[...] 2012-08-12
[4] 웹사이트 아랑전설의 유래 http://www.miryang.g[...] 2012-08-12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