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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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인(能因)은 일본 헤이안 시대의 승려이자 가인이다. 본래 히고 진사로 불렸으나 26세에 출가하여 고소베 입도라고 칭하며 와카에 능숙했다. 이세히메를 사숙하고, 후지와라 나가요시에게 가도를 사승했으며, 와카 육인당을 지도하며 여러 인물들과 교류했다. 가이국, 무쓰국 등을 여행하며 많은 와카 작품을 남겼으며, 특히 《후습유화가집》 등에 작품이 수록되었다. 그의 작품 중 "미무로 산의 단풍잎"은 《오구라 백인일수》에 실려 널리 알려졌고, "도읍을 안개와 함께 떠났지만 가을 바람이 부는 시라카와의 관"이라는 일화도 전해진다. 현재 오사카부 타카츠키시 고소베 정에는 그의 은거지로 전해지는 쇼린굴 도장과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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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승려) | |
---|---|
기본 정보 | |
이름 | 다치바나노 나가야스 |
다른 이름 | 노인 법사 (能因法師, Nōin-hōshi) |
출생 | 988년 |
사망 | 대략 1051년 |
활동 시기 | 헤이안 시대 중기 |
분야 | 와카 |
스승 | 후지와라노 노리카네 |
인물 정보 | |
본성 | 다치바나 씨 |
계급 | 종5위 하 |
직책 | 와카 작가 승려 |
작품 | |
개인 시집 | 노인 슈 (能因集, Nōin shū) |
칙찬 와카집 | 고슈이 와카슈 (後拾遺和歌集, Goshūi Wakashū) 킨요 와카슈 (金葉和歌集, Kin'yō Wakashū) 시카 와카슈 (詞花和歌集, Shika Wakashū) 슈가이쇼 ( стихотворения, Shūgaishō) |
대표작 | 마음이여, 진실로 꽃을 잊었는가, 옛날 핀 곳을 찾아 돌아왔건만 (心あてに折らばや折らむ初霜のおきまどはせる白菊の花) |
2. 생애
노인은 헤이안 시대 중기의 승려이자 가인(歌人)이다. 젊은 시절 문장생으로 관직에 있었으나 장화 2년(1013년), 26세에 출가하여 와카(和歌) 연구와 창작에 몰두했다.
와카에 능숙하여 이세히메를 사숙하고 후지와라 나가요시를 사사했으며[2], 셋츠국 고소베에 은거하며 '고소베 입도'라 불렸다. 가이국이나 무쓰국 등지를 여행하며 많은 와카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후습유화가집』(31수)을 비롯한 칙찬화가집에 총 67수가 실려 있다.[3] 개인 가집 『능인집』, 사선집 『현현집』, 가학서 『능인 가침』 등을 저술했으며, 와카에 대한 열정은 『고금저문집』 등에 기록된 일화로도 전해진다.
현재 오사카부 타카츠키시 고소베 정에는 그가 은거했던 곳으로 전해지는 쇼린굴 도장(松林窟道場, 통칭 쇼린안(松林庵))과 그의 묘로 추정되는 무덤이 남아 있다.[4]
2. 1. 출가 전
처음 문장생에 보임되어 '''히고 진사'''(肥後進士)라고 불렸다. 이후 장화 2년(1013년), 26세의 나이로 출가하였다.2. 2. 출가와 승려 생활
처음 문장생에 임명되어 히고 진사(肥後進士)라고 불렸으나, 장화 2년(1013년), 26세의 나이에 출가하였다. 와카(和歌)에 능숙하여 이세히메(伊勢姫)를 스승으로 삼았고, 그녀의 옛 저택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은거지를 셋츠국 고소베(古曽部)로 정하여 고소베 입도(古曽部入道)라고 칭했다. 후지와라 나가요시(藤原長能)를 사사하여, 가도(歌道) 사승(師承)의 첫 번째 사례로 여겨진다.[2] 그는 와카 육인당(和歌六人党)을 지도하는 한편, 오에노 요시토키(大江嘉言), 미나모토노 미치나리(源道済) 등과 교류하였다. 가이국이나 무쓰국 등을 여행하며 많은 와카 작품을 남겼다.그의 작품은 『후습유화가집』(後拾遺和歌集, 31수)을 비롯한 칙찬화가집(勅撰和歌集)에 총 67수가 실려 있다.[3] 개인 가집(歌集)으로는 『능인집』(能因集)이 있으며, 그 외에 사선집(私撰集) 『현현집』(玄々集), 가학(歌学)서 『능인 가침』(能因歌枕)이 있다. 특히 가침(歌枕, 와카에 자주 등장하는 명승 고적)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전해지며, 와카에 대한 그의 강한 열정은 다양한 일화를 남겼다.
유명한 일화 중 하나가 『고금저문집』(古今著聞集)에 실려 있다. 어느 날 능인은 "도성을 안개와 함께 떠났지만 가을 바람이 부는 시라카와의 관문이로다(都をば霞とともに立ちしかど秋風ぞ吹く白河の関)"라는 노래를 읊었다. 이 노래의 완성도에 스스로 만족했지만, 사실 능인은 시라카와 관문을 직접 여행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여행을 떠났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집에 숨어 지내며 일부러 햇볕에 피부를 태우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춘 뒤에야 이 노래를 발표했다고 한다.
현재 오사카부 다카쓰키시 고소베 정(古曽部町)에는 그가 은거했던 곳으로 전해지는 쇼린굴 도장(松林窟道場, 통칭 쇼린안(松林庵))과 그의 묘로 추정되는 무덤이 남아 있다.[4]
2. 3. 작품 활동과 여정
처음 문장생으로 임명되어 '''히고 진사'''(肥後進士)라 불렸으나, 장화 2년(1013년), 26세에 출가했다. 와카(和歌)에 능숙하여, 유명한 여성 가인 이세(伊勢)를 스승으로 삼아 따랐으며, 이세가 살던 옛 터를 그리워하며 셋츠국 고소베(古曽部)에 은거지를 정하고 스스로 '''고소베 입도'''(古曽部入道)라 칭했다. 후지와라 나가요시(藤原長能)를 직접 스승으로 모시며 와카를 배웠는데, 이는 가도(歌道, 와카를 짓는 길)에서 스승에게 학문을 이어받는 사승(師承)의 첫 사례로 여겨진다[2]. 와카 육인당(和歌六人党)을 이끌며 제자들을 가르쳤고, 오에노 요시토키(大江嘉言), 미나모토노 미치나리(源道済) 같은 당대의 문인들과 교류했다. 가이국(甲斐国)이나 무쓰국(陸奥国) 등 여러 지방을 여행하며 많은 와카를 남겼다.그의 작품은 『후습유화가집(後拾遺和歌集)』에 31수가 실린 것을 비롯하여, 천황의 명으로 편찬된 칙찬화가집(勅撰和歌集)에 총 67수가 선정되었다[3]. 개인 시집으로는 『능인집』(能因集)이 있고, 직접 편찬한 시선집 『현현집』(玄々集)과 와카 이론서인 『능인 가침』(能因歌枕)도 남겼다. 특히 와카에 자주 등장하는 명소인 가침(歌枕)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와카에 대한 그의 열정을 보여주는 여러 일화가 전해진다.
대표적인 일화는 『고금저문집(古今著聞集)』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어느 날 노인은 "도성을 안개와 함께 떠났건만, 가을바람 부는 시라카와 관문(白河の関)이로구나"(都をば霞とともにたちしかど秋風ぞ吹く白河の関일본어)라는 와카를 지었다. 그는 이 시의 완성도에 매우 만족했지만, 실제로는 시라카와 관문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여행을 다녀왔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집에 몰래 머물면서 햇볕에 피부를 태우는 등 실제 여행한 것처럼 꾸민 뒤에야 이 시를 발표했다고 한다.
현재 오사카부 타카츠키시 고소베 정(古曽部町)에는 노인이 은거했다고 전해지는 쇼린굴 도장(松林窟道場, 통칭 쇼린암(松林庵))과 그의 묘로 추정되는 무덤이 남아 있다[4].
3. 일화
와카에 대한 강한 열정을 가졌던 노인에게는 여러 일화가 전해진다. 특히 『고금저문집』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노인은 都をば 霞とともに 立ちしかど 秋風ぞ吹く 白河の関|도성을 안개와 함께 떠났지만 가을 바람이 부는 시라카와의 관일본어이라는 와카를 지었다. 이 노래의 완성도에 스스로 만족했지만, 정작 노인은 시라카와를 여행한 경험이 없었다. 이에 그는 자신이 여행을 떠난 것처럼 소문을 내고, 집 안에 숨어 지내면서 일부러 햇볕에 피부를 그을리는 등 치밀하게 준비한 뒤에야 이 노래를 발표했다고 한다.
3. 1. 쇼린굴 도장
노인은 와카 시인 이세히메를 사숙하였는데, 그녀의 옛 저택을 그리워하여 셋츠국 고소베에 자신의 은거지를 정하고 '고소베 입도'라고 칭했다. 현재 오사카부 타카츠키시 고소베 정에는 노인의 은거지로 전해지는 쇼린굴 도장(쇼린암)이 있다. 이곳에는 노인의 묘라고 전해지는 것도 함께 존재한다.[4]4. 와카 작품
노인 법사의 와카 작품 중 일부는 『오구라 백인일수』와 『후습유와카집』(後拾遺和歌集) 등에 수록되어 전해진다. 그의 시 중 오구라 백인일수 69번으로 선정된 작품은 특히 잘 알려져 있다.
4. 1. 오구라 백인일수
노인 법사의 시 중 하나는 ''오구라 백인일수'' 69번으로 선정되었다.嵐吹く三室の山のもみぢ葉は竜田の川の錦なりけり|아라시 후쿠 미무로노 야마노 모미지바와 다쓰타노 가와노 니시키 나리케리일본어
번역: 거친 바람 부는 미무로 산의 단풍잎은, 다쓰타 강의 비단이로구나.
출처: 『후습유와카집』(後拾遺和歌集) 권5 추상(秋上) 366번
또한, 『후습유와카집』에는 다음과 같은 그의 시도 실려 있다.
번역: 도읍을 안개와 함께 떠났지만 가을 바람이 부는 시라카와의 관.
출처: 『후습유와카집』(後拾遺和歌集) 권9 기려(羈旅) 518번
4. 2. 기타 작품
그의 시 중 하나는 ''오구라 백인일수''에 수록되어 있다.- 후습유와카집 5:366 수록 시
- 원문: 嵐吹く三室の山のもみぢ葉は|일본어 龍田の川の錦なりけり|일본어
- 독음: 嵐吹く三室の山のもみぢ葉は|아라시 후쿠 미무로노야마노 모미지바와일본어 龍田の川の錦なりけり|다쓰타노 가와노 니시키 나리케리일본어
- 번역: 폭풍에 날리는 미무로 산의 단풍잎은 다쓰타 강의 비단이 되었네!
- 오구라 백인일수 69번 수록 시 (''후습유와카집'' 가을·366)
거친 바람 부는 미무로 산의 단풍잎은, 다쓰타 강의 비단이로구나
- 고금저문집 언급 시 (''후습유와카집'' 기려·518)
도읍을 안개와 함께 떠났지만 가을 바람이 부는 시라카와의 관
참조
[1]
서적
McMillan
2008
[2]
웹사이트
高槻ゆかりの歌人 -伊勢と能因-
https://www.library.[...]
高槻市立図書館
2020-03-31
[3]
뉴스
國學院校訂 勅撰作者部類
https://dl.ndl.go.jp[...]
国立国会図書館デジタルコレクション
2020-03-31
[4]
웹사이트
伝能因法師墳
http://www.city.taka[...]
高槻市 街にぎわい部 文化財課
2020-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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