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 가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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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니콜 가르시아는 프랑스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배우로서 1960년대 후반부터 영화와 텔레비전에 출연했으며, 1980년 영화 《나의 미국 삼촌》으로 세자르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1986년 단편 영화 《15 ō》로 감독 데뷔 후, 《애인의 아들》(1994), 《방돔 광장》(1998), 《적》(2002), 《찰리 세이즈》(2006), 《단지 세상의 끝》(2016) 등 여러 작품을 연출하며 칸 영화제 등에서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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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 가르시아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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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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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946년 4월 22일 |
출생지 | 오랑, 프랑스령 알제리 |
직업 | 배우 영화 감독 각본가 |
활동 기간 | 1967년 - 현재 |
배우자 | 장 로슈포르(피에르의 아버지) |
자녀 | 피에르 로슈포르(아들) 연출가 프레데리크 벨리에-가르시아 (아들) |
공식 웹사이트 | 니콜 가르시아 |
수상 | |
수상 내역 | 몬트리올 세계 영화제 여우주연상 2001년 《베티 피셔》 |
주요 작품 | |
주요 작품 |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베티 피셔》 《리리》 |
2. 경력
니콜 가르시아는 프랑스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파리 국립고등연극학교에서 연기를 공부한 후 배우로 활동했으며, 특히 일본에서는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가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5] 또한 1980년대부터는 영화 감독으로도 활동 영역을 넓혔다. 2017년에는 프랑스 영화제 참석차 일본을 방문하여 감독으로서 자신의 영화 《사랑을 쓰는 여자》를 홍보하기도 했다.[6]
2. 1. 배우 활동
니콜 가르시아는 프랑스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파리 국립고등연극학교에서 연기를 공부한 후 1960년대 후반부터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주로 텔레비전 작품과 영화에서 단역 및 조연으로 출연하며 경력을 쌓았다.1970년대 후반부터 점차 비중 있는 역할을 맡으며 주목받기 시작했고, 특히 1979년 영화 《르 카발레르》(Le Cavaleur프랑스어)로 세자르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알랭 레네, 클로드 를루슈, 베르트랑 블리에 등 유명 감독들의 작품에 출연하며 프랑스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여러 차례 세자르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며, 1985년에는 Le Quatrième Pouvoir프랑스어로 몬트리올 세계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영화와 TV 시리즈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으며, 자신이 연출한 작품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루팡》(2021)과 영화 《어느 멋진 아침》(2022) 등에 출연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1981)가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5]
2. 1. 1. 초기 활동 (1960년대 ~ 1970년대)
파리의 프랑스 국립 고등 연극 학교(콩세르바투아르)에서 연기를 공부한 니콜 가르시아는 196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주로 텔레비전 작품과 영화에서 작은 역할을 맡으며 배우 경력을 시작했다.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중요한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베르트랑 타베르니에 감독의 《축제는 시작된다》(1975), 베르트랑 블리에 감독의 《칼모스》(1976), 앙리 베르뇌유 감독의 《내 적의 육체》(1976), 그리고 미셸 수터 감독의 《인디언들은 아직 멀리 있다》(1977) 등 여러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특히 자크 리베트 감독의 실험적인 영화 《듀엘》(1976)에서는 1인 2역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1979년에는 필립 드 브로카 감독의 영화 《르 카발레르》(Le Cavaleur프랑스어)에서 마리-프랑스 역을 맡아 세자르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 가르시아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TV 작품에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했다.
연도 | 제목 | 배역 | 비고 |
---|---|---|---|
1967 | Hôtel Racine | 오딜 | 텔레필름 |
1967 | Boys and Girls | 코코 | |
1968 | 경찰관은 결혼한다 | 어린 소녀 | |
1969 | Léonce et Léna | 레나 공주 | 텔레필름 |
1970 | Au théâtre ce soir | 프랑수아즈 | TV 시리즈 |
1971 | Madame êtes-vous libre ? | 모니크 | TV 시리즈 |
1971 | Hot Pants | ||
1974 | 'La Mort dun enfant'' | 마담 그리니 | 텔레필름 |
1975 | 축제는 시작된다 | 라 필리옹 | 원제: Que la fête commence프랑스어 |
1976 | 칼모스 | 실험실 직원 | |
1976 | 듀엘 | 잔느 / 엘자 | |
1976 | 내 적의 육체 | 헬렌 모브 | 원제: Le Corps de mon ennemi프랑스어 |
1976 | Les Enquêtes du commissaire Maigret | 닥터 슈타이너 | TV 시리즈 |
1977 | La Question | 아그네스 찰레그 | |
1977 | 인디언들은 아직 멀리 있다 | 안나 | 원제: Les Indiens sont encore loin프랑스어 |
1978 | 어깨 위의 나비 | 소니아 | 원제: Un papillon sur l'épaule프랑스어 |
1978 | 'Ce diable dhomme'' | 아드리엔 르쿠브뢰르 | TV 미니시리즈 |
1978 | Aurélien | 블란셰트 | 텔레필름 |
1978 | Gaston Phoebus | 아그네스 드 나바르 | TV 미니시리즈 |
1979 | 르 카발레르 | 마리-프랑스 | 세자르상 여우조연상 수상. 원제: Le Cavaleur프랑스어 |
1979 | Le Mors aux dents | 마담 르 귕 | |
1979 | Ogro | 카르멜 |
2. 1. 2. 주연 배우로의 성장 (1980년대 ~ 현재)
1980년대에 들어서며 니콜 가르시아는 프랑스 영화계의 주요 배우로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알랭 레네 감독의 영화 `나의 미국 삼촌`(1980)에서 자닌 가르니에 역을 맡아 세자르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주목받았다. 이듬해에는 클로드 를루슈 감독의 대작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Les Uns et les autres, 1981)에 안 메이어 역으로 출연하며 국제적인 인지도를 높였다. 같은 해 베르트랑 블리에 감독의 `장인`(Beau-père, 1981)에도 마르틴 역으로 출연했다.1983년에는 `Les Mots pour le dire`에서 마리 역으로 다시 한번 세자르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이브 몽탕과 함께 출연한 `웨이터!`(Garçon !, 1983)에서는 클레어 역을 연기했다. 1985년에는 미셸 드빌 감독의 `프랑스 정원의 죽음`(Péril en la demeure)으로 세 번째 세자르상 여우주연상 후보 지명을 받았으며, 같은 해 출연한 `Le Quatrième Pouvoir` (제4의 권력)으로는 카트린 카레 역을 맡아 몬트리올 세계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1986년에는 클로드 를루슈 감독의 `남과 여: 20년 후`(Un homme et une femme : Vingt ans déjà)에 본인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1999년에는 미국 영화 `로스트 & 파운드`에 단역으로 출연했으며, 2001년 자신이 감독하기도 한 영화 `알리아스 베티`(Betty Fisher et autres histoires)에서는 주연 마고 피셔 역을 맡아 몬트리올 세계 영화제 여우주연상과 시카고 국제 영화제 실버 휴고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세자르상 여우조연상 후보에도 올랐다.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에도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고잉 사우스`(Plein sud, 2009), `파리 북역`(Gare du Nord, 2013),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니`(Celle que vous croyez, 2019)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연기 경력을 이어갔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루팡`(2021)에서 안 펠레그리니 역으로 출연하여 다시 한번 대중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미아 한센뢰베 감독의 영화 `어느 멋진 아침`(2022)에서는 프랑수아즈 역을 연기하며 노련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2. 2. 감독 활동
니콜 가르시아는 배우 활동 외에도 영화 감독으로서 꾸준히 활동하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5] 연출하는 작품들이 주요 영화제에서 주목받으며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았다. 2017년에는 일본에서 열린 프랑스 영화제에 참석하여 자신의 연출작 ''사랑을 쓰는 여자''를 소개하기도 했다.[6]2. 2. 1. 초기 연출작 (1980년대 ~ 1990년대)
1986 칸 영화제 단편 영화 황금종려상 후보세자르상 최우수 작품상 후보
세자르상 감독상 후보
세자르상 감독상 후보
세자르상 각본상 후보
제55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