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밀러 (영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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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데이비드 밀러는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활동한 영화 감독이다. 그는 단편 영화 편집 및 감독으로 경력을 시작하여, 1940년대부터 장편 영화 감독으로 활동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러브 해피》(1949), 《서든 피어》(1952), 《뉴먼 박사》(1963), 《이그제큐티브 액션》(197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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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밀러 (영화 감독)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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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데이비드 밀러 |
출생일 | 1909년 11월 28일 |
출생지 | 미국 뉴저지주 패터슨 |
사망일 | 1992년 4월 14일 (향년 82세) |
사망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
직업 | 영화 감독 |
2. 참여 작품
데이비드 밀러는 1930년대에 편집 및 감독으로 여러 단편 영화를 제작했다. 1933년 ''인디아 스피크스(India Speaks)''의 편집을 맡았고, 1935년에는 ''훈련된 발굽''(Trained Hoofs)과 ''크루 레이싱''(Crew Racing)을 감독했다. 1936년에는 ''렛츠 댄스(Let's Dance)'', ''탁구(Table Tennis)'', ''헐링''(Hurling)을 감독했다.
1937년에는 ''재주넘기''(Dexterity), ''페니 위즈덤(Penny Wisdom)'', ''테니스 전술''(Tennis Tactics), ''마상 곡예''(Equestrian Acrobats)를 감독했다. 1938년에는 ''라 사바테''(La Savate), ''별 속에 있어''(It's in the Stars), ''주먹질''(Fisticuffs),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 ''위대한 심장(The Great Heart)''을 감독했다. 1939년에는 ''아이스 앤틱스''(Ice Antics)와 ''음주 운전(Drunk Driving)''을 감독했다.
데이비드 밀러는 1940년대에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The Happiest Man on Earth) (1940), ''노스트라다무스에 대해 더''(More About Nostradamus) (1941), ''빌리 더 키드''(Billy the Kid) (1941) / 최후의 무법자 (1941), ''선데이 펀치''(Sunday Punch) (1942), ''노스트라다무스의 추가 예언''(Further Prophecies of Nostradamus) (1942), ''플라잉 타이거즈''(Flying Tigers) (1942) / 플라잉 타이거 (1942, 일본 미개봉), ''운명의 씨앗''(Seeds of Destiny) (1946), ''탑 오 더 모닝''(Top o' the Morning) (1949), ''러브 해피''(Love Happy) (1949) / 노래하는 수사물(1949) 등의 영화를 감독했다.
데이비드 밀러는 1950년대에 새터데이즈 히어로(1951), 서든 피어(1952) / 돌연한 공포(1952), 운명의 갈림길 (''뷰티풀 스트레인저'', 1954), 다이앤(1956), 반대 성(''아퍼짓 섹스'', 1956), 에스터 코스텔로 이야기(1957) / 에스더 코스텔로의 이야기, 해피 애니버서리(1959) 등의 영화를 감독했다.
데이비드 밀러는 1960년대에 미드나잇 레이스(Midnight Lace) (1960), 백 스트리트(Back Street) (1961), 외로운 자는 용감하다(Lonely Are the Brave) (1962), 뉴먼 박사(Captain Newman, M.D.) (1963) 등의 영화를 감독했다. 누군가 노리고 있다(1960), 뒷골목(1961), 탈옥(1962), 뉴먼이라는 남자(1963)로도 알려진 이 작품들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밀러의 감독 역량을 보여준다. 1966년에는 지옥의 종소리가 땡땡거린다(The Bells Of Hell Go Ting-a-ling-a-ling)를 감독했으나 미완성, 미개봉으로 남았다. 이후 해머헤드(Hammerhead) (1968)와 만세, 영웅! (Hail, Hero!) (1969)를 감독했다.
밀러는 1973년 영화 ''이그제큐티브 액션'' (댈러스의 뜨거운 날)을 감독했다. 이 영화는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대한민국에서는 ''댈러스의 뜨거운 날'' 또는 ''달라스의 음모''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후 1976년에는 ''비터스위트 러브''를 감독했는데, 대한민국에서는 ''비터 스위트 러브''(1978)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1979년에는 ''가장 좋은 곳'', ''사랑을 빌려드립니다'', ''골디 앤 더 복서''를 감독했다.
데이비드 밀러는 1981년에 ''골디 앤 더 복서 할리우드에 가다''(Goldie and the Boxer Go to Hollywood)를 감독했다.
2. 1. 1930년대
데이비드 밀러는 1930년대에 편집 및 감독으로 여러 단편 영화를 제작했다. 1933년 ''인디아 스피크스(India Speaks)''의 편집을 맡았고, 1935년에는 ''훈련된 발굽''(Trained Hoofs)과 ''크루 레이싱''(Crew Racing)을 감독했다. 1936년에는 ''렛츠 댄스(Let's Dance)'', ''탁구(Table Tennis)'', ''헐링''(Hurling)을 감독했다.1937년에는 ''재주넘기''(Dexterity), ''페니 위즈덤(Penny Wisdom)'', ''테니스 전술''(Tennis Tactics), ''마상 곡예''(Equestrian Acrobats)를 감독했다. 1938년에는 ''라 사바테''(La Savate), ''별 속에 있어''(It's in the Stars), ''주먹질''(Fisticuffs),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 ''위대한 심장(The Great Heart)''을 감독했다. 1939년에는 ''아이스 앤틱스''(Ice Antics)와 ''음주 운전(Drunk Driving)''을 감독했다.
2. 2. 1940년대
데이비드 밀러는 1940년대에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The Happiest Man on Earth) (1940), ''노스트라다무스에 대해 더''(More About Nostradamus) (1941), ''빌리 더 키드''(Billy the Kid) (1941) / 최후의 무법자 (1941), ''선데이 펀치''(Sunday Punch) (1942), ''노스트라다무스의 추가 예언''(Further Prophecies of Nostradamus) (1942), ''플라잉 타이거즈''(Flying Tigers) (1942) / 플라잉 타이거 (1942, 일본 미개봉), ''운명의 씨앗''(Seeds of Destiny) (1946), ''탑 오 더 모닝''(Top o' the Morning) (1949), ''러브 해피''(Love Happy) (1949) / 노래하는 수사물(1949) 등의 영화를 감독했다.2. 3. 1950년대
데이비드 밀러는 1950년대에 새터데이즈 히어로(1951), 서든 피어(1952) / 돌연한 공포(1952), 운명의 갈림길 (''뷰티풀 스트레인저'', 1954), 다이앤(1956), 반대 성(''아퍼짓 섹스'', 1956), 에스터 코스텔로 이야기(1957) / 에스더 코스텔로의 이야기, 해피 애니버서리(1959) 등의 영화를 감독했다.2. 4. 1960년대
데이비드 밀러는 1960년대에 미드나잇 레이스(Midnight Lace) (1960), 백 스트리트(Back Street) (1961), 외로운 자는 용감하다(Lonely Are the Brave) (1962), 뉴먼 박사(Captain Newman, M.D.) (1963) 등의 영화를 감독했다. 누군가 노리고 있다(1960), 뒷골목(1961), 탈옥(1962), 뉴먼이라는 남자(1963)로도 알려진 이 작품들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밀러의 감독 역량을 보여준다. 1966년에는 지옥의 종소리가 땡땡거린다(The Bells Of Hell Go Ting-a-ling-a-ling)를 감독했으나 미완성, 미개봉으로 남았다. 이후 해머헤드(Hammerhead) (1968)와 만세, 영웅! (Hail, Hero!) (1969)를 감독했다.2. 5. 1970년대
밀러는 1973년 영화 ''이그제큐티브 액션'' (댈러스의 뜨거운 날)을 감독했다. 이 영화는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대한민국에서는 ''댈러스의 뜨거운 날'' 또는 ''달라스의 음모''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후 1976년에는 ''비터스위트 러브''를 감독했는데, 대한민국에서는 ''비터 스위트 러브''(1978)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1979년에는 ''가장 좋은 곳'', ''사랑을 빌려드립니다'', ''골디 앤 더 복서''를 감독했다.2. 6. 1980년대
데이비드 밀러는 1981년에 ''골디 앤 더 복서 할리우드에 가다''(Goldie and the Boxer Go to Hollywood)를 감독했다.참조
[1]
웹사이트
David Miller Remembered
http://www.thecolumn[...]
2012-02-13
[2]
웹사이트
Lonely Are the Brave (1962)
http://www.emanuelle[...]
2009-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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