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큐브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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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탠리 큐브릭은 1928년 뉴욕에서 태어나 사진작가로 경력을 시작하여, 1950년대부터 영화 감독으로 활동하며 영화 제작 전반에 걸쳐 완벽주의적인 면모를 보였다. 그는 《킬링》, 《영광의 길》, 《스파르타쿠스》, 《롤리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계태엽 오렌지》, 《배리 린든》, 《샤이닝》, 《풀 메탈 재킷》, 《아이즈 와이드 셧》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연출하며 영화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큐브릭은 뛰어난 시각적 연출과 음악 사용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아카데미 시각효과상,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골든 글로브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1999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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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큐브릭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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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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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스탠리 큐브릭 |
로마자 표기 | Stanley Kubrick |
출생일 | 1928년 7월 26일 |
출생지 | 뉴욕 뉴욕 시, 미국 |
사망일 | 1999년 3월 7일 |
사망지 | 하트퍼드셔 칠드윅버리, 잉글랜드 |
직업 | 영화 감독 영화 프로듀서 작가 사진작가 |
활동 기간 | 1951년 - 1999년 |
배우자 | |
자녀 | 2명 ( 비비안 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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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 (영어) | /ˈkuːbrɪk/ |
작품 | |
주요 작품 | 『돌격』 (1957년) 『스파르타쿠스』 (1960년) 『롤리타』 (1962년)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1964년) 『2001년 우주 오디세이』 (1968년) 『시계태엽 오렌지』 (1971년) 『배리 린든』 (1975년) 『샤이닝』 (1980년) 『풀 메탈 재킷』 (1987년) 『아이즈 와이드 셧』 (1999년) |
전체 작품 목록 | 전체 목록 |
수상 내역 | |
아카데미상 | 특수 시각 효과상 1968년 『2001년 우주 오디세이』 |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 파시네티상 1972년 『시계태엽 오렌지』 명예 황금사자상 1997년 |
뉴욕 영화 비평가 협회상 | 감독상 1964년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1971년 『시계태엽 오렌지』 |
미국 영화 연구소 (AFI) | SF 영화 탑 10 (1위) 2008년 『2001년 우주 오디세이』 |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 감독상 1975년 『배리 린든』 펠로우십상 1999년 |
기타 수상 | 전미 비평가 위원회상 감독상 1975년 『배리 린든』 |
2. 초기 생애 및 사진작가 경력
큐브릭은 학교생활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19세까지 책을 읽지 않았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였다. 이러한 큐브릭에게 그의 아버지는 사진을 권했고, 그는 취미로 시작한 사진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 16세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죽음을 다룬 세트사진이 《LOOK》지에 실렸고, 17세부터 이 잡지의 견습기자로 활동했다.
이때부터 큐브릭은 현대미술관의 필름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영화에 열중하게 되었다. 그 후 4년간 사진기자 생활을 하면서 《시합의 날(1951)》, 《날으는 목사(1951)》, 《항해자(1953)》 등 세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2. 1. 초기 생애
스탠리 큐브릭은 1928년 7월 26일 뉴욕 맨해튼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1] 아버지 잭 쿠브릭은 의사였고, 가족은 브롱크스에 살았다. 부모는 유대식 결혼을 했지만, 큐브릭은 종교적인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다.[1]어린 시절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아 그리스와 로마 신화, 그림 형제의 이야기 등을 읽었다.[1] 12살 때 아버지에게 체스를 배웠고, 이는 평생의 관심사가 되었다.[3] 13살 때는 아버지에게 그래플렉스(Graflex) 카메라를 선물 받아 사진에 매료되었다.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고등학교에 다녔다.[4] 학교 사진 클럽에서 활동했지만, 학업 성적은 평균 67점(D+)으로 좋지 않았다.[4]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았던 탓에 학교를 자주 빠지고 영화를 보러 다녔다.[4]
저조한 성적과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들의 대학 입학 수요 증가로 인해 대학 진학은 좌절되었다. 훗날 큐브릭은 학교 교육이 비판적 사고와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데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집에서 책을 읽고 사진을 취미로 삼는 것을 허락했다.[4]
고등학교 재학 시절, 큐브릭은 학교 공식 사진사로 선발되었다. 1940년대 중반, 대학교 주간 수업에 입학하지 못하고 뉴욕 시립대학교 야간 수업에 잠시 다녔다.[4] 결국 ''룩'' 잡지에 사진 시리즈를 판매했고,[4] 1945년 6월 26일에 게재되었다. 워싱턴 스퀘어 공원과 여러 맨해튼 체스 클럽에서 체스를 두면서 수입을 보충했다.[4]

2. 2. 사진작가 경력

1945년, 당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죽음을 알리는 사진이 사진 잡지 《룩》(Look)에 실리면서, 수습 사진 기자로 일하게 되었다.[140] 1946년에는 ''룩'' 잡지의 수습 사진 기자가 되었고, 나중에는 정규직 전속 사진 기자가 되었다.
쿠브릭은 사진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능력으로 빠르게 알려졌다. 그의 첫 작품은 1946년 4월 16일에 발표되었고, "영화 발코니에서 본 짧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싸움을 연출했다. 또 다른 과제에서 쿠브릭은 치과 진료실에서 기다리는 여러 사람들의 사진 18장을 촬영했다. 이 프로젝트는 일상적인 환경에서 개인과 그들의 감정을 포착하려는 쿠브릭의 초기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받는다. 1948년에는 포르투갈로 여행 기사를 취재하러 갔고, 그해 말에는 플로리다주 사라소타의 링링 브러더스 앤드 바넘 & 베일리 서커스를 취재했다.

권투 애호가였던 쿠브릭은 잡지를 위해 권투 경기를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의 초기 작품인 "프라이즈 파이터"는 1949년 1월 18일에 발표되었고, 미국 미들급 월터 카르티에를 다룬 권투 경기와 그 과정을 포착했다. 1949년 4월 2일, 그는 ''룩''에 사진 에세이 "시카고-극단의 도시"를 발표했는데, 이는 이미 그의 이미지를 사용한 분위기 연출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듬해인 1950년 7월, 잡지는 그의 사진 에세이 "일하는 데뷔턴트 - 베티 폰 푸르스텐베르크"를 발표했다. 쿠브릭은 또한 프랭크 시나트라와 에롤 가너부터 조지 루이스, 에디 콘돈, 필 나폴레옹, 파파 셀레스틴, 알퐁스 피쿠, 머기 스패니어, 샤키 보나노 등 많은 재즈 음악가들의 사진 촬영을 맡았다.
쿠브릭은 1948년 5월 28일 고등학교 시절 만난 연인 토바 메츠와 결혼했고, 그리니치 빌리지 근처의 작은 아파트에서 함께 살았다. 이들은 1951년에 이혼했다.
3. 영화 경력
스탠리 큐브릭은 1951년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 《시합의 날(Day of the Fight)》을 제작하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후 《플라잉 파드레(Flying Padre)》(1951), 《선원들(The Seafarers)》(1953) 등의 단편 영화와, 첫 장편 영화 《공포와 욕망》(1953), 필름 누아르 《킬러스 키스》(1955)를 만들었다.
1955년, 제임스 B. 해리스와 함께 해리스-큐브릭 프로덕션을 설립했다. 이후 《킬링》(1956), 《영광의 길》(1957)을 제작했다. 《스파르타쿠스》(1960)에서는 최종 편집권과 각본 수정 권한이 없어 갈등을 겪었으며, 이후 큐브릭은 자유로운 작품 활동을 위해 영국으로 건너가 《롤리타》(1962)를 촬영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에서 시작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시계태엽 오렌지》(1971)로 이어지는 미래 시리즈 3부작으로 큐브릭의 영화 세계는 절정기를 맞는다.[31] 특히 영화 혁명으로 불리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인류 역사와 기계 문명에 관한 철학적 성찰이 담긴 영화로 이후 SF 영화 경향을 단번에 뒤바꿨고, 루카스, 스필버그 등 수많은 감독에게 영향을 미쳤다.
이후 영국에서 《배리 린든》(1975), 《샤이닝》(1980), 《풀 메탈 재킷》(1987)을 만들었다. 10년간 침묵하다가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 주연의 신작 《아이즈 와이드 셧》 촬영과 최종 편집본을 넘기고 1999년 3월 7일, 71세의 나이로 영국 런던 자택에서 타계했다.
이탈리아의 영화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본 후 큐브릭에게 극찬하는 전보를 보냈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배리 린든》의 정확한 시대 고증을 높이 평가했으며, 말년에는 큐브릭에게 팬레터를 보냈다. 큐브릭은 답장 내용에 고민했지만, 답장을 보내기 전에 구로사와가 세상을 떠났고, 그로부터 6개월 후 큐브릭도 급사했다.
그는 또한 몇몇 영화들을 제작하지 못하고 미완성으로 남기기도 하였다.
3. 1. 초기 단편 영화 (1951–1953)
큐브릭은 1951년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 《시합의 날(Day of the Fight)》을 제작하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이후 《플라잉 파드레(Flying Padre)》(1951), 《선원들(The Seafarers)》(1953) 등의 단편 영화를 제작했다.[6]《시합의 날》 제작 후, 큐브릭은 하워드 O. 삭슬러와 함께 필름 누아르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원래 《키스 미, 킬 미》(Kiss Me, Kill Me), 《님프와 광인》(The Nymph and the Maniac)으로 불렸던 《킬러스 키스》(1955)는 젊은 헤비급 복서가 범죄 조직 보스에게 학대받는 여성과 엮이는 67분짜리 영화였다. 큐브릭의 가족과 친구들이 자금을 지원했으며, 브롱크스 약사 모리스 부스가 4만 달러를 제공했다.[7] 큐브릭은 타임스 스퀘어에서 촬영하며 비전통적인 각도와 영상을 실험했다. 현장 사운드 녹음의 어려움으로 인해 영상을 위해 사운드를 포기하는 결정을 내렸고, 이는 12~14주 촬영 후 7개월 동안 3만 5천 달러를 들여 사운드 작업을 하는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7]
알프레드 히치콕의 《블랙메일》(1929)은 등장인물을 비웃는 그림으로 영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고, 마틴 스코세이지는 《킬러스 키스》에서 큐브릭의 혁신적인 촬영 각도와 분위기 있는 장면이 《성난 황소》(1980)에 영향을 주었다고 언급했다.[7] 《킬러스 키스》는 제한적인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7만 5천 달러의 제작비에 비해 매우 적은 수익을 올렸다.[7] 평론가들은 영화의 촬영 기법을 칭찬했지만, 연기와 스토리는 평범한 것으로 여겨졌다.[7]
3. 2. 초기 장편 영화 (1953–1955)
1953년, 큐브릭은 친구 하워드 삭슬러가 각본을 쓴 첫 장편 영화 ''공포와 욕망''을 만들었다. 큐브릭의 삼촌인 마틴 페르벨러는 영화의 책임 프로듀서로 크레딧을 받는 조건으로 9000달러를 투자했다.[6] 큐브릭은 배우와 제작진 14명을 모아 샌 가브리엘 산맥에서 5주 동안 저예산 촬영을 진행했다.[6] 이 영화는 비행기 추락 후 적진에 고립된 병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풍자극으로, 한 병사가 숲 속의 소녀에게 매료되어 그녀를 나무에 묶는 장면이 유명하다.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해 무성 영화로 만들려 했으나, 음향 효과와 음악 추가로 제작비가 예산을 초과했다.[6]''공포와 욕망''은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몇몇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뉴욕 타임즈는 큐브릭의 사진가로서의 전문성이 영화에 잘 드러났다고 평가했으며, 컬럼비아 대학교의 학자 마크 반 도렌은 나무에 묶인 소녀가 나오는 장면이 그의 재능을 보여주는 "아름답고, 무섭고, 기묘한" 시퀀스라고 언급했다.[6] 큐브릭 자신은 나중에 이 영화에 대해 부끄러움을 표하며, 필름 유통을 막으려 노력했다.[6]
''공포와 욕망'' 이후, 큐브릭은 필름 누아르 ''킬러스 키스''(1955)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젊은 복서가 범죄 조직 보스에게 학대받는 여자와 엮이는 이야기를 다룬다. 큐브릭의 가족과 친구들이 자금을 조달했으며, 타임스 스퀘어에서 촬영하며 비전통적인 각도와 영상을 실험했다. 처음에는 현장에서 사운드를 녹음하려 했으나, 어려움으로 인해 포기하고 후반 작업에 많은 비용을 투자했다.[6]
알프레드 히치콕의 ''블랙메일''(1929)은 이 영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마틴 스코세이지는 ''성난 황소''(1980)에 영향을 준 큐브릭의 혁신적인 촬영 각도와 분위기를 언급했다.[6] ''킬러스 키스''는 제한적인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평론가들은 촬영 기법은 칭찬했지만 연기와 스토리는 평범하다고 평가했다.[6]
3. 3. 할리우드에서의 성공과 그 이후 (1955–1962)
1955년, 제임스 B. 해리스와 함께 해리스-큐브릭 프로덕션을 설립했다. 이후 《살인》(1956), 《영광의 길》(1957)을 제작했다. 《스파르타쿠스》(1960)에서는 최종 편집권과 각본 수정 권한이 없어 갈등을 겪었으며, 이후 큐브릭은 자유로운 작품 활동을 위해 영국으로 건너가 《롤리타》(1962)를 촬영한다.《롤리타》는 중년 남성이 롤리타라는 소녀에게 매혹되어 파멸하는 과정을 그린 블랙 코미디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피터 셀러스, 제임스 메이슨, 셸리 윈터스, 수 라이언이 주연을 맡았다. 큐브릭은 배우 피터 셀러스의 연기에 감명을 받아 자유로운 즉흥 연기를 허용했다.[16] 큐브릭은 엘스트리 스튜디오에서 200만달러의 예산으로 《롤리타》를 촬영했으나,[17] 셸리 윈터스와는 잦은 충돌을 겪었다. 선정적인 내용 때문에 《롤리타》는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결국 검열로 인해 원작 소설의 에로틱한 요소가 상당 부분 삭제되었다.
3. 4. 피터 셀러스와의 협업 (1962–1964)
쿠브릭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로리타》(1962)를 영화화하면서 피터 셀러스와 처음 협업했다. 중년 남성이 12세 소녀에게 매혹되는 내용을 다룬 이 영화는 쿠브릭의 첫 블랙 코미디 시도였다. 제임스 메이슨, 셸리 윈터스, 수 라이언이 출연한 이 영화는 쿠브릭의 영화 경력에 전환점이 되었으며, 자연주의적 영화에서 후기 영화의 초현실주의로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다.[16] 쿠브릭은 촬영 중 세 대의 카메라를 사용하며 셀러스에게 자유로운 즉흥 연기를 허용했는데, 이는 셀러스의 폭넓은 연기력에 감명받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제작 기간 동안 잘 지냈으며, 조기 학교 중퇴, 재즈 드럼 연주, 사진에 대한 관심 등 많은 유사점을 공유했다.[16] 셀러스는 훗날 "쿠브릭은 내게 있어 신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16]《로리타》는 1960년 10월부터 1961년 3월까지 엘스트리 스튜디오에서 200만달러 예산으로 88일 동안 촬영되었다.[16] 셸리 윈터스와는 종종 충돌했는데, 쿠브릭은 그녀를 "매우 어렵고" 요구가 많다고 생각하여 한때 해고할 뻔했다.[16] 선정적인 이야기 때문에 《로리타》는 쿠브릭의 첫 논란을 일으킨 영화가 되었고, 검열로 인해 원작 소설의 에로틱한 요소가 많이 삭제되었다.[16]
이후 쿠브릭은 또 다른 블랙 코미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를 통해 셀러스와 다시 협업했다. 셀러스는 이 영화에서 1인 3역을 맡았다.
3. 4. 1. 롤리타 (1962)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중년 남자가 '롤리타'라는 소녀에게 매혹되어 파멸하는 과정을 그린 블랙 코미디로, 선정적인 내용으로 인해 검열 논란이 있었으나 큰 화제를 모았다. 피터 셀러스와의 첫 협업 작품이기도 하다. 큐브릭은 《스파르타쿠스》에서 최종 편집권과 각본 수정 권한이 없었던 경험 때문에, 더 자유로운 작품 활동을 위해 영국으로 건너가 이 영화를 촬영했다.3. 4. 2.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1964)
피터 셀러스가 1인 3역을 맡아 열연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핵전쟁의 위험을 풍자한 블랙 코미디 영화이다. 쿠브릭은 1950년대 냉전이 심해지면서 핵전쟁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 주제에 관한 40권이 넘는 군사 및 정치 연구 서적을 연구한 끝에 "아무도 실제로 아무것도 모르고 전체 상황이 불합리하다"는 결론을 내렸다.[18][19][20]레드 얼럿이라는 소설의 판권을 구입한 후, 쿠브릭은 피터 조지와 함께 각본을 작업했다. 원래는 진지한 정치 스릴러로 쓰였지만, 쿠브릭은 이 주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것은 믿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내용의 가장 중요한 부분들이 코미디 소재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쿠브릭의 오랜 제작자이자 친구인 제임스 B. 해리스는 이 영화가 진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두 사람은 의견 차이로 인해 결별했다. 해리스는 이후 진지한 냉전 스릴러 《베드퍼드 사건》을 제작 및 감독했다. 쿠브릭과 피터 조지는 각본을 풍자극(가제 "공포의 섬세한 균형")으로 다시 작업했는데, 여기서 《레드 얼럿》의 줄거리는 외계 지성이 만든 영화 속 영화로 설정되었지만, 이 아이디어도 포기되었고, 쿠브릭은 영화를 "터무니없는 블랙 코미디"로 만들기로 결정했다.[21]
촬영 직전, 쿠브릭은 저명한 언론인이자 풍자 작가인 테리 서던을 고용하여 각본을 성적 암시가 가득한 최종 형태의 블랙 코미디로 바꾸었다. 영화 학자 에이브럼스에 따르면, 이 영화는 쿠브릭의 "독특한 종류의 넌센스적인" 재능을 보여주는 작품이 되었다. 서던은 최종 각본에 중요한 기여를 했고,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에서 피터 조지보다 먼저 공동 집필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나중에 그의 집필에 대한 인식이 쿠브릭과 피터 조지 사이에 공개적인 불화로 이어졌다. 피터 조지는 이후 《라이프》 잡지에 보낸 편지에서 서던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기간이 비교적 짧았음에도(1962년 11월 16일부터 12월 28일까지) 언론에서 지나치게 부각되는 반면, 그 자신의 역할인 영화 원작 소설의 저자와 10개월 동안 각본 공동 집필자의 역할은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불평했는데, 쿠브릭은 이에 대해 거의 대응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22]

쿠브릭은 200만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가 "세계 최초의 중요한 시각 효과팀"을 고용했지만, 여러 기술적, 정치적 이유로 미국에서 제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영국으로 제작지를 옮겨야 했다. 15주 동안 촬영이 진행되어 1963년 4월에 종료되었고, 그 후 쿠브릭은 8개월 동안 편집 작업을 했다. 피터 셀러스는 다시 한번 쿠브릭과 함께 작업하기로 동의했고, 영화에서 세 가지 다른 역할을 맡게 되었다.
개봉 후, 이 영화는 많은 논란과 엇갈린 의견을 불러일으켰다. 《뉴욕 타임즈》의 영화 평론가인 보슬리 크라우더는 이 영화가 "우리의 전체 방위 체계에 대한 불명예이자 심지어 경멸이며… 내가 본 것 중 가장 충격적인 병적인 농담"이라고 우려했고, 1970년 2월 기사에서 《아웃 오브 디스 월드》의 로버트 브루스타인은 이를 "유베날리아 풍자"라고 불렀다. 쿠브릭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풍자가는 인간 본성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그것으로부터 일종의 농담을 만들어낼 낙관주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아무리 잔혹한 농담일지라도"라고 말했다.[23] 오늘날, 이 영화는 역대 가장 날카로운 코미디 영화 중 하나로 여겨지며, 91개의 평론을 바탕으로 로튼 토마토에서 거의 완벽한 98%의 평점을 기록하고 있다. 이 영화는 미국 영화 역대 39위이자 미국 코미디 영화 역대 3위로 미국 영화 연구소에 의해 선정되었고,[25][26] 2010년에는 《가디언》에 의해 역대 6번째로 뛰어난 코미디 영화로 선정되었다.[27]
3. 5. SF 3부작 (1965–1971)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를 시작으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와 《시계태엽 오렌지》(1971)로 이어지는 SF 3부작으로 큐브릭의 영화 세계는 절정기를 맞는다.[31]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SF 영화의 경향을 바꾸고, 많은 감독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시계태엽 오렌지》는 인간성 가치에 대한 충격적인 영상으로 논란과 함께 영화 역사상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3. 5. 1.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1968)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아서 C. 클라크와 공동으로 각본을 쓰고,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인류가 달에 착륙하기 1년 전에 만들어졌으며, 일반에게 공개되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31] 혁신적인 특수효과와 영상미, 철학적인 주제로 SF 영화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인류 역사와 기계 문명에 관한 철학적 성찰이 담긴 이 영화는 이후 SF 영화 경향을 단번에 뒤바꿨고, 루카스, 스필버그 등 수많은 감독에게 영향을 미쳤다.[31]196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각본상 후보에 올랐고, 시각효과상을 수상하였다. 같은 해 휴고상 영상 부문, 다비드 디 도나텔로 상 외국 프로덕션상을 수상하였다.
3. 5. 2. 시계태엽 오렌지 (1971)
앤서니 버지스의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큐브릭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작업 중 테리 서던으로부터 이 소설을 받았지만, 당시에는 젊은 십대들이 사용하는 속어인 나드삿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했었다. 그러나 1969년, 큐브릭은 폭력과 법 집행 당국의 실험적인 재활을 탐구하는 내용의 이 영화를 선택했다. 이는 당시 뉴 헐리우드 운동으로 인해 젊은이들의 성적 욕망과 반항성을 묘사한 영화들이 많이 제작되던 시대적 우려를 반영한 결정이었다.[31]영화는 1970년부터 1971년까지 200만파운드의 예산으로 촬영되었다. 큐브릭은 시네마스코프 대신 1.66:1 와이드스크린 포맷을 선택했는데, 이는 "장관과 친밀함 사이의 적절한 타협"이라고 판단했으며, 그의 "엄격하게 대칭적인 프레이밍"을 통해 "구도의 아름다움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영화는 당시의 "팝 에로티시즘"을 많이 담고 있었으며, 흰색 플라스틱으로 된 커다란 남성 생식기 세트를 포함한 장식은 큐브릭이 영화에 "약간 미래적인" 모습을 주려는 의도였다.

린제이 앤더슨의 《if....》(1968)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말콤 맥도웰이 주인공 앨릭스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큐브릭은 맥도웰이 "소년의 순수함에서 거만함으로, 필요하다면 폭력으로 변하는" 능력에 감명을 받았으며, 그가 없었다면 아마 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영화는 웬디 칼로스와 큐브릭의 첫 번째 협업 작품으로, 칼로스는 헨리 퍼셀의 《메리 여왕 장례식을 위한 음악》과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전자적으로 편곡하여 제공했다.[31]
십대 폭력을 묘사했기 때문에 《시계태엽 오렌지》는 개봉 당시 가장 논란이 많은 영화 중 하나가 되었으며, 영화 속 폭력과 그 미화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1971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개봉하여 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X등급을 받았다. 많은 평론가들은 영화에 묘사된 폭력의 대부분이 풍자적이며, 한 달 전에 개봉한 《짚가방》보다 덜 폭력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영화를 바탕으로 한 모방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고 큐브릭이 살해 위협을 받자, 그는 영국에서 직접 개봉을 취소했다. 이로 인해 큐브릭 사후까지 영국에서는 합법적으로 볼 수 없었으며, 2000년에야 재개봉되었다. 큐브릭은 1970년대 초 영국 언론의 영화가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는 보도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폭력 범죄는 항상 오랫동안 반사회적 행동을 해온 사람들이 저지른다"고 주장했다.
영화 검열관 존 트레벌리언은 《시계태엽 오렌지》를 "내가 본 것 중 가장 훌륭한 영화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했고, 폭력 묘사에 있어 "사디스트적인 광경이 아니라 지적인 주장"을 제시한다고 믿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시계태엽 오렌지》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등 4개 부문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고, 뉴욕 영화 비평가 협회로부터 1971년 최우수 영화로 선정되었다. 윌리엄 프리드킨이 그 해 《프렌치 커넥션》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후, 그는 언론에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스탠리 큐브릭이 올해 최고의 미국 영화 제작자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올해뿐만 아니라 최고의 영화 제작자입니다."라고 말했다.
3. 6. 시대극 및 공포 영화 (1972–1980)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의 소설 《배리 린든의 행운》을 각색한 시대극 《배리 린든》(1975) 이후, 큐브릭은 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한 공포 영화 《샤이닝》(1980)을 제작했다. 《샤이닝》은 현재 공포 영화의 고전으로 여겨지며,[41] 미국 영화 연구소는 2001년에 이 영화를 역대 29번째로 훌륭한 스릴러 영화로 선정했다.[42]이후 큐브릭은 존 르 카레의 소개로 작가 마이클 허를 만나 베트남 전쟁을 다룬 그의 책 《디스패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구스타프 하스퍼드의 소설 《숏 타이머스》에도 매료되어, 이를 바탕으로 영화 《풀 메탈 재킷(1987)》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큐브릭은 허와 하스퍼드와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고, 하스퍼드의 소설이 "잔혹할 정도로 정직하다"고 판단하여 소설에 충실하게 영화를 촬영하기로 했다.
《풀 메탈 재킷》은 1700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1985년 8월부터 1986년 9월까지 큐브릭의 집에서 30마일 반경 내에서 촬영되었다. 리 어미의 사고로 인해 제작이 5개월간 중단되기도 했다. 런던 도크랜드 지역 벡턴의 폐허가 된 가스 공장이 폐허가 된 후에 시로 사용되어, 다른 베트남 전쟁 영화와는 시각적으로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북아프리카에서 200그루의 야자수를 수입하고, 홍콩에서 수천 그루의 플라스틱 식물을 주문하여 영화 촬영을 위한 녹지를 조성했다. 큐브릭은 자연광을 사용하고, 스테디캠 샷을 덜 안정적으로 만들어 "뉴스릴 효과"를 냈으며, 이는 영화의 음울함과 진지함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43]
영화에는 아이러니한 음악 선택, 인간성을 상실한 남성의 묘사, 사실성을 위한 세부 묘사 등 큐브릭 영화의 특징이 담겨 있다. 후반부 장면에서 미 해병대는 미키 마우스 클럽의 주제가를 부르며 폐허를 순찰한다. 1987년 6월 개봉하여 50일 만에 3000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지만,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에 가려졌다. 매튜 모딘은 큐브릭이 가장 좋아한 평론 중 하나가 "《풀 메탈 재킷》의 전반부는 훌륭하다. 그런 다음 영화는 걸작으로 퇴보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44]
3. 6. 1. 배리 린든 (1975)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의 소설 《배리 린든의 행운》을 각색한 시대극으로, 촛불 조명을 활용한 촬영 기법으로 유명하다.3. 6. 2. 샤이닝 (1980)
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1980년 영화이다. 잭 니콜슨이 로키 산맥의 고립된 호텔의 겨울 관리인 직책을 맡은 작가 역할을 맡았다. 그는 셸리 듀발이 연기한 아내와 초자연적인 능력을 보이는 어린 아들과 함께 겨울을 보낸다. 그들의 체류 기간 동안, 그들은 잭의 광기에 대한 몰락과 호텔에 도사리고 있는 겉으로 드러나는 초자연적인 공포에 맞서게 된다.[40]큐브릭은 배우들에게 대본을 확장하고 때때로 즉흥적으로 연기할 자유를 주었고, 그 결과 니콜슨은 '여기 조니!' 대사와 타자기를 치고 앉아 아내에게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을 담당하게 되었다. 큐브릭은 종종 같은 장면을 70번이나 80번까지 재촬영하도록 요구했다. 큐브릭이 의도적으로 고립시키고 논쟁을 벌였던 듀발은 지칠 줄 모르는 야구 방망이 장면을 127번이나 연기해야 했다.[40] 유령 바텐더가 있는 바 장면은 36번 촬영되었고, 대니(대니 로이드)와 홀로런(스캣맨 크로더스)의 캐릭터가 나오는 부엌 장면은 148번이나 촬영되었다.

오버룩 호텔의 항공 촬영은 오리건 주 후드 산의 팀버라인 로지에서 촬영되었고, 호텔의 내부는 1978년 5월부터 1979년 4월까지 잉글랜드의 엘스트리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다. 영화 세트의 모든 것을 종이 모형으로 만들었고, 조명은 엄청난 작업이었으며 전기 배선에 4개월이 걸렸다. 큐브릭은 새로 발명된 스테디캠(무게 균형이 잡힌 카메라 지지대)을 광범위하게 사용했는데, 이는 기존 카메라 트랙이 실용적이지 않은 장면에서 부드러운 핸드헬드 카메라 움직임을 가능하게 했다. 스테디캠 발명가인 가렛 브라운에 따르면, 이것은 스테디캠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한 최초의 영화였다.
''샤이닝''은 큐브릭과 관련이 있는 유일한 공포 영화가 아니었다. 그는 1966년 친구에게 "관객의 악몽 공포를 이용하는 일련의 에피소드를 포함하여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엑소시스트''(1973)와 ''엑소시스트 2: 이단자''(1977)의 감독직을 거절했다. 큐브릭은 다시 카를로스와 함께 작업했는데, 그는 헥토르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에서 ''진노의 날'' 부분의 전자 버전을 제공했다.
1980년 5월 23일 개봉 5일 후, 큐브릭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극장 관객들의 흥분을 목격한 후 불필요하다고 판단하여 호텔 매니저 울먼(배리 넬슨)이 병원에 있는 웬디(셸리 듀발)를 방문하는 마지막 장면을 삭제하도록 명령했다. ''샤이닝''은 강력한 박스오피스 수입으로 개봉하여 첫 주말에 100만달러를 벌었고, 연말까지 미국에서 3090만달러를 벌었다. 초기 비평가들의 반응은 엇갈렸고, 킹은 이 영화와 큐브릭을 싫어했다. ''샤이닝''은 현재 공포 고전으로 여겨지고 있으며,[41] 미국 영화 연구소는 2001년에 이 영화를 역대 29번째로 훌륭한 스릴러 영화로 선정했다.[42]
3. 7. 후기 작품 및 마지막 시기 (1981–1999)
1980년 《샤이닝》을 제작한 후, 1987년 《풀 메탈 재킷》을 만들었다. 이후 10년간 침묵하다가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 주연의 신작 《아이즈 와이드 셧》 촬영과 최종 편집본을 넘기고 1999년 3월 7일 향년 71세 나이로 영국 런던 자택에서 타계했다.3. 7. 1. 풀 메탈 재킷 (1987)
구스타프 해스퍼드의 소설 《숏 타이머스》를 원작으로 한 베트남 전쟁 영화이다. 전쟁의 폭력성과 비인간성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3. 7. 2. 아이즈 와이드 셧 (1999)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소설 《꿈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에로틱 스릴러 영화이다.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뉴욕의 부부로 출연하여 성적 방황을 그렸으며, 큐브릭의 유작이다. 큐브릭은 1999년 3월 7일, 최종 편집본을 넘기고 며칠 후 향년 71세의 나이로 영국 런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했다.[46]큐브릭은 1926년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소설 《트라움노벨레》(영어 제목: 《꿈 이야기》)를 20세기 초 비엔나에서 1990년대 뉴욕으로 배경을 옮겨 이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이 소설에 대해 "묘사하기 어려운 책—좋은 책이 그렇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행복한 결혼의 성적 양면성을 탐구하고, 성적 꿈과 있었을 수도 있는 일들의 중요성을 현실과 동등하게 평가하려고 한다. 슈니츨러의 모든 작품은 심리적으로 뛰어나다."라고 말했다.
큐브릭은 거의 70세였지만, 1999년 7월 16일 예정된 개봉일에 맞추기 위해 15개월 동안 쉴 새 없이 작업했다. 프레데릭 라파엘과 함께 각본 작업을 시작했고, 영화에 대한 완벽한 기밀을 유지하면서 하루 18시간 일했다.
《아이즈 와이드 셧》은 이전의 《로리타》와 《시계태엽 오렌지》처럼 개봉 전 검열에 직면했다. 큐브릭은 개봉 몇 달 전 미완성 예고편을 배우와 제작자들에게 보냈지만, 1999년 3월 7일 편집을 마친 지 며칠 후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그는 대중에게 공개된 최종 버전을 보지 못했지만, 워너 브라더스, 크루즈, 키드먼과 함께 영화 예고편을 보았고, 워너 임원 줄리안 시니어에게 이것이 자신의 "역대 최고의 영화"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영화에 대한 비평가들의 의견은 엇갈렸고, 큐브릭의 다른 영화들보다 덜 호평을 받았다. 에버트는 4점 만점에 3.5점을 주면서 구조를 스릴러에 비유하고 "놓친 기회와 피한 기회에 대한 에로틱한 백일몽과 같다"고 쓰면서, 크리스마스 조명 사용이 영화를 "도시의 옆 구경거리처럼 다소 화려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46] 워싱턴 포스트의 스티븐 헌터는 이 영화를 싫어하며 "실제로 나쁘다기보다는 슬프다. 낡고, 고대하며, 희망 없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으며, 젊은 시절의 뜨거운 금기를 사로잡고 현대의 성이 된 그 뒤틀린 것과 연결될 수 없다"고 썼다.[47]
3. 8. 미완성 프로젝트

- '''나폴레옹'''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이후, 큐브릭은 나폴레옹의 일생을 다룬 영화 제작을 계획했다. 큐브릭은 나폴레옹의 삶과 "자기 파괴"에 매료되어[45] 약 2년간 나폴레옹의 삶에 대해 조사하며 수백 권의 책을 읽고 그의 개인 회고록과 논평에 접근했다. 그는 나폴레옹에 관한 모든 영화를 보려고 노력했지만, 아벨 갱스의 1927년 영화를 포함하여 그 어떤 것에도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정말 끔찍한" 영화라고 생각했다.[46]
큐브릭은 1961년에 시나리오 초고를 작성했으며, 최대 4만 명의 보병과 1만 명의 기병을 동원하는 "웅장한" 서사 영화를 구상했다. 그는 나폴레옹의 전투를 "광대하고 치명적인 발레와 같이 아름답고", "군사적 마음이 없어도 감상할 수 있는 미적 탁월함"을 지녔다고 생각하여, 영화 제작을 위해 한 국가의 전군을 고용할 의향이 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스크린에서 가능한 한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싶어했다.[47]
큐브릭은 유럽 전역의 촬영지를 물색하기 위해 조사팀을 파견했고, 앤드류 버킨에게 엘바 섬, 아우스터리츠, 워털루로 보내 수천 장의 사진을 찍어 나중에 검토하도록 했다. 큐브릭은 오드리 헵번을 조세핀 황후 역으로 고려하는 등 여러 스타들에게 주요 배역을 제안했지만, 그녀는 반 은퇴 상태였기 때문에 역할을 수락할 수 없었다.[53]
데이비드 헤밍스와 이언 홀름 등 영국 배우들이 나폴레옹 역으로 고려되었고, 잭 니콜슨이 캐스팅되었다.[48] 이 영화는 1969년에 사전 제작이 상당히 진행되어 촬영을 시작할 준비가 되었지만, MGM이 프로젝트를 취소했다. 프로젝트가 중단된 이유로는 예상 제작비, MGM의 소유권 변경,[45] 그리고 1970년 나폴레옹을 다룬 소련 영화 ''워털루''의 부정적인 반응 등 여러 가지가 제기되었다.
2013년 3월, 스티븐 스필버그는 쿠브릭의 원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나폴레옹''을 TV 미니시리즈로 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54]

- '''A.I. 인공지능'''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 큐브릭은 브라이언 올디스와 협력하여 그의 단편 소설 "슈퍼토이즈 라스트 올 서머 롱"을 3막으로 구성된 영화로 확장했다. 그것은 아이처럼 생겨서 행동하는 로봇과, 피노키오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짜 소년'이 되려는 노력에 관한 미래적인 동화였다. 큐브릭은 1995년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AI 대본을 건네며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하고 큐브릭이 제작하는 것을 제안했다. 큐브릭은 스필버그와 영화에 대해 장시간 전화 통화를 했고, 스필버그에 따르면 어느 시점에서는 이 소재가 그의 감성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48]
1999년 큐브릭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스필버그는 쿠브릭과 그의 작가들이 남긴 초고와 메모를 가지고 쿠브릭의 감독 하에 작성된 이언 왓슨의 90페이지 분량의 초기 스토리 구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나리오를 작성했다.[49] 쿠브릭의 제작팀 잔여 인원과 함께 그는 2001년 영화 ''A.I. 인공지능''[49][50]을 감독했으며, 쿠브릭의 오랜 제작자(이자 매형)인 Jan Harlan이 제작을 맡았다.[51]
스필버그는 쿠브릭이 없는 상황에서 자율적으로 작업할 수 있었지만, "그를 기리기 위해 억제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으며, 가능한 한 충실하게 쿠브릭의 시각적 구성표를 따랐다. 스필버그는 이제 제작이 시작되자 "마치 유령에게 코칭받는 기분이었다"고 인정했다. 이 영화는 2001년 6월에 개봉되었다. 영화는 시작 부분에 스탠리 쿠브릭의 사후 제작 크레딧과 마지막에 "스탠리 쿠브릭에게"라는 간단한 헌정 문구를 담고 있다. John Williams의 음악에는 다른 쿠브릭 영화에서 들을 수 있는 곡들에 대한 많은 암시가 담겨 있다.[52]
4. 연출 기법 및 특징
쿠브릭은 사진사로서의 초기 경험 덕분에 장면 촬영이 수월했다고 한다.[55] 그는 촬영 대본에 카메라 지시 사항을 거의 추가하지 않았고, 시각적인 부분이 가장 쉬웠기 때문에 장면이 만들어진 후 처리하는 것을 선호했다.[55] 소품과 배경을 결정할 때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고 가능한 한 많은 배경 자료를 수집하려고 노력했는데, 감독은 이러한 활동을 "탐정"과 같은 일이라고 비유했다.[55] 쿠브릭과 네 편의 영화에서 긴밀히 협력했고, ''배리 린든''으로 아카데미상 최우수 촬영상을 수상한 촬영감독 존 올콧은 쿠브릭이 "모든 것을 질문한다"고 말했다.[55] 카메라 배치, 장면 구성, 렌즈 선택, 심지어 촬영감독에게 맡겨지는 카메라 조작을 포함한 영화 제작의 기술적 측면에도 관여했다. 올콧은 쿠브릭을 "내가 함께 일했던 천재에 가장 가까운 사람, 모든 천재의 문제점을 가진 사람"이라고 여겼다.[55]
쿠브릭의 촬영 기법 혁신에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볼 수 있는 특수 효과의 사용이 포함된다. 그는 슬릿 스캔 사진과 프런트 스크린 프로젝션을 모두 사용했는데, 이로 인해 쿠브릭은 특수 효과 부문에서 유일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일부 평론가들은 비디오 클립을 사용하여 쿠브릭의 "원근법" 사용을 설명하고 예시를 보여주었는데, 이는 시청자의 시선을 중앙 소실점으로 이끈다. 이 기법은 장면에서 평행선을 사용하여 복잡한 시각적 대칭을 만들고, 모두 단일 지점에 수렴하여 시청자로부터 멀어지는 데 의존한다. 카메라 움직임과 결합하면 한 작가가 "최면적이고 스릴 넘치는" 효과라고 설명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70]
''샤이닝''은 당시 혁신적인 스테디캠을 사용한 최초의 6편의 장편 영화 중 하나였다(1976년 영화 ''글로리 바운드'', ''마라톤 맨'', ''록키'' 이후). 쿠브릭은 스테디캠을 최대한 활용하여 관객에게 부드럽고 안정적인 카메라 모션 추적을 제공했다. 쿠브릭은 스테디캠을 "마법의 양탄자"와 같다고 묘사하며, ''샤이닝''의 미궁에서 "빠르고 유연한 카메라 움직임"을 가능하게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55]
쿠브릭은 촬영 중 비디오 어시스트를 사용한 최초의 감독 중 한 명이었다. 1966년에 사용을 시작했을 당시, 그것은 최첨단 기술로 간주되어 그가 직접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촬영 중에 비디오 어시스트를 설치함으로써, 그는 촬영 직후 테이크의 비디오를 볼 수 있었다.[55] ''배리 린든''과 같은 일부 영화에서는 맞춤형 줌 렌즈를 사용하여 클로즈업으로 장면을 시작하고 천천히 줌 아웃하여 풍경의 전체 파노라마를 캡처하고 카메라가 움직이는 동안 조리개를 조정하여 변화하는 야외 조명 조건에서 롱 테이크를 촬영했다. 로브루토는 쿠브릭의 렌즈에 대한 기술적 지식이 "제조업체 엔지니어들을 놀라게 했고, 그를 현대 영화 제작자들 중 전례 없는 인물로 만들었다"고 지적한다.[55] ''배리 린든''을 위해 그는 촛불만으로 촬영된 수많은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원래 NASA에서 개발된 특수하게 개조된 고속(f/0.7) 자이스 카메라 렌즈를 사용했다. 배우 스티븐 버코프는 쿠브릭이 "순수한 촛불"을 사용하여 장면을 촬영하기를 원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쿠브릭은 "회화로 거슬러 올라가는 영화 예술에 독특한 공헌을 했다... 마치 초상화를 위해 포즈를 취하는 것 같았다"고 회상한다.[55] 로브루토는 전 세계의 촬영감독들이 쿠브릭의 "마법 렌즈"에 대해 알고 싶어했고, 그는 전 세계 촬영감독들 사이에서 "전설"이 되었다고 지적한다.[55]
쿠브릭은 편집에 막대한 시간을 할애했으며, 종종 일주일에 7일,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하루에 더 많은 시간을 일했다.[55] 쿠브릭에게 각본 대사는 미장센(무대 연출), 음악, 그리고 특히 편집과 균형을 이루는 요소 중 하나였다. 푸도프킨의 영화 편집에 관한 논문에서 영감을 받은 쿠브릭은 편집실에서 연출을 만들어낼 수 있고, 종종 영화를 "재연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편집을 좋아합니다. 영화 제작의 다른 어떤 단계보다 편집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합니다… 편집은 다른 어떤 예술 형식과도 닮지 않은 영화 제작의 유일무이한 측면입니다. 너무 중요해서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점입니다… 편집은 영화를 성공 또는 실패로 이끌 수 있습니다."[55] 전기 작가 존 벡스터는 "쿠브릭은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각본에서 영화의 지적인 중심을 찾는 대신, 각 장면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고 각 대사에 수많은 테이크를 요구함으로써 영화의 최종 버전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런 다음 수개월에 걸쳐… 그는 수만 개의 필름 조각을 재배열하여 편집 과정에서야 비로소 드러나기 시작한 비전에 맞추었습니다."라고 말했다.[55]
쿠브릭의 음악에 대한 세심한 주의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완벽주의"와 미세한 디테일에 대한 극도의 집중으로 언급한 것의 한 측면이었으며, 그의 아내 크리스티안은 이를 음악 중독으로 돌렸다. 그의 마지막 여섯 편의 영화에서 쿠브릭은 대개 기존 소스의 음악, 특히 고전 작품을 선택했다. 그는 영화를 위해 작곡하는 것보다 녹음된 음악을 선택하는 것을 선호했는데, 고용된 작곡가가 공개 도메인 고전 작곡가만큼 잘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위대한 음악으로 장면을 구성하는 것이 최고의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다.[55] 한 예로, ''배리 린든''의 한 장면에서 단순히 "배리가 불링던 경과 결투를 벌인다"라고 각본에 쓰여 있던 장면을 위해 그는 편집 단계에서 42일 동안 작업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17세기와 18세기 음악의 모든 이용 가능한 녹음"이라고 묘사한 것을 듣고, 그 장면에 사용된 헨델의 사라반드를 찾기 위해 수천 장의 레코드를 구입했다.[55] 니콜슨은 또한 쿠브릭의 음악에 대한 주의를 관찰하면서 쿠브릭이 "자신에게 맞거나 흥분시키는 것을 발견할 때까지 음악을 끊임없이 들었다"고 말했다.[55]
쿠브릭은 ''2001'', ''샤이닝'', ''아이즈 와이드 셧''에 그의 음악을 포함시킴으로써 헝가리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를 광범위한 서구 관객들에게 소개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2001''의 음악은 그가 영화를 구상할 때 "쿠브릭의 마음속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55] 초기 상영회에서 그는 멘델스존의 음악과[55] 보건 윌리엄스의 음악을 연주했으며, 쿠브릭과 작가 클라크는 13세기 성스럽고 세속적인 노래로 구성된 카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의 편곡을 들었다.[55] 리게티의 음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천히 변하는 지속적인 불협화음 코드를 사용하는 미세 다성 음악의 새로운 스타일을 사용했는데, 이는 그가 창안한 스타일이다. 영화에 포함된 것은 요한 슈트라우스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배경 음악과 함께 소개되었기 때문에 "비교적 무명의 작곡가에게는 행운"이 되었다.[55]
리게티 외에도 쿠브릭은 작곡가 웬디 카를로스와 협업을 즐겼는데, 그녀의 1968년 앨범 ''스위치드 온 바흐''(바로크 음악을 무그 신시사이저를 사용하여 재해석한 앨범)이 그의 관심을 끌었다. 1971년에 카를로스는 ''시계태엽 오렌지''의 사운드트랙을 위해 음악을 작곡하고 녹음했다. 영화에 사용되지 않은 추가 음악은 1972년 ''웬디 카를로스의 시계태엽 오렌지''로 발매되었다. 쿠브릭은 나중에 ''샤이닝''(1980)에서 카를로스와 협력했다. 영화의 오프닝은 카를로스가 엑토르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의 "진노의 날"(Dies Irae)을 연주한 것을 사용한다.[71]
영화 감독을 목표로 한 이유에 대해 "현역 감독들보다 잘 찍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55] 초기부터 감독뿐 아니라 영화 제작 전반에 걸쳐 모든 것을 장악하려는 자세를 유지했다. 사소한 장면조차도 만족할 때까지 계속 촬영하는 자세는 완벽주의자라고 불렸으며,[143][144] 특히 말년에는 영화 제작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로 유명했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이후의 각본, 편집, 음악 선곡 모두 독특한 감각과 날카로움이 있으며, 자신의 작품 공개에 있어서는 상영 극장의 지리적 상황에서부터 상영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통제하려고 노력했다. 일본에서의 공개 당시에는 자막 번역도 재번역을 교열하는 방식으로 감수했다.
5. 사생활
큐브릭은 1948년 5월 29일, 19세의 나이에 고등학교 시절 연인이었던 토바 메츠와 결혼했다.[57] 두 사람은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함께 살았지만, 3년 후인 1951년에 이혼했다. 1952년에는 두 번째 아내인 오스트리아 출신 무용가이자 연극 디자이너인 루스 소보트카를 만났다. 두 사람은 1952년부터 뉴욕시 이스트 빌리지에서 함께 살다가 1955년 1월에 결혼하여 같은 해 7월 할리우드로 이주했다. 루스는 큐브릭의 영화 ''킬러스 키스''(1955)에 발레리나로 짧게 출연했고, 이듬해에는 ''킬링''(1956)의 미술 감독을 맡았다. 두 사람은 1957년에 이혼했다.[57]
1957년 초 뮌헨에서 ''영광의 길''을 제작하는 동안 큐브릭은 독일 배우 크리스티아네 할란을 만나 연애를 시작했고, 1958년에 결혼하여 1999년 사망할 때까지 40년 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슬하에 의붓딸 카타리나, 두 딸 아냐 레나타(1959년 4월 6일~2009년 7월 7일)와 비비안 바네사(1960년 8월 5일 출생)를 두었다.[57]
1965년, 큐브릭 부부는 영국 엘스트리/보어햄우드 스튜디오 단지의 남서쪽에 있는 바넷 레인에 있는 애벗츠 미드를 구매했다. 큐브릭은 거의 14년 동안 이 집에서만 일하면서 연구, 특수 효과 기술 발명, 특수 개조된 카메라를 위한 초저조도 렌즈 설계, 사전 제작, 편집, 후반 제작, 광고, 배급을 맡았으며, 그의 네 편의 영화의 모든 측면을 신중하게 관리했다. 1978년, 큐브릭은 허트퍼드셔에 있는 차일드위크버리 저택으로 이사했다. 이 저택은 큐브릭과 그의 아내를 위한 작업장이 되었고, 크리스티아네는 "완벽한 가족 공장"이라고 불렀다.[57] 큐브릭은 마구간을 추가적인 제작실로 개조했고, 집 안에는 편집과 보관에 사용하는 방이 있었다.[57]
일 중독자였던 큐브릭은 사망하기 전 40년 동안 거의 휴가를 가지 않았고 영국을 떠나지도 않았다.[57] 큐브릭의 폐쇄적인 생활 방식과 사생활에 대한 욕구 때문에 그레타 가르보, 하워드 휴즈, J. D. 샐린저와 같은 은둔자에 대한 이야기와 유사하게 그의 은둔 생활에 대한 허위 이야기들이 생겨났다.[57] ''풀 메탈 재킷''의 공동 각본가이자 그를 잘 알고 있던 마이클 허는 그의 "은둔 생활"을 신화라고 생각한다.[57]
6. 사망
1999년 3월 7일, 아이즈 와이드 셧의 최종 편집본을 넘긴 지 6일 만에 70세의 나이로 잠자는 동안 심장마비로 타계했다.[73] 5일 후 차일드위크버리 저택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는데, 친한 친구들과 가족들만 참석하여 약 100명 정도였다. 언론은 정문 밖 약 1.61km 떨어진 곳에 머물렀다. 장례식에는 첼리스트, 클라리넷 연주자, 가수들이 큐브릭이 가장 좋아하는 고전 음악 작품들을 연주했다. 유대인 장례 기도인 《카디시(Kaddish)》가 낭송되었고, 그의 부고 기사 중 일부에서는 그의 유대인 배경을 언급했다. 조사를 맡은 사람들 중에는 그의 처남 얀 할란, 테리 세멀, 스티븐 스필버그, 니콜 키드먼, 톰 크루즈가 있었다. 그는 저택에 있는 가장 좋아하는 나무 옆에 묻혔다. 그의 아내 크리스티안은 그를 기리는 책에 오스카 와일드의 "노년의 비극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젊다는 것이다."라는 그의 가장 좋아하는 인용구를 포함시켰다.
7. 유산 및 영향
스탠리 큐브릭은 20세기 후반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감독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96] 그의 영화는 혁신적인 영상 기술과 독창적인 연출 스타일로 영화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20세기 세계 영화에 대한 가장 중요한 공헌 중 하나"로 여겨진다.[96]
마틴 스코세이지,[101][102] 스티븐 스필버그,[103] 웨스 앤더슨,[104] 조지 루카스,[105] 제임스 카메론,[106] 테리 길리엄,[107] 코엔 형제,[108] 리들리 스콧,[109] 조지 A. 로메로[110] 등 많은 영화감독들이 큐브릭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103][111] 스필버그는 큐브릭의 영화 연출 방식에 대해 "우리가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 방식과 정반대"이며 "역사상 누구도 그보다 더 잘 영화를 찍을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112]
크리스토퍼 놀란,[113] 토드 필드,[114] 데이비드 핀처, 기예르모 델 토로, 데이비드 린치,[115] 라스 폰 트리어,[116] 팀 버튼,[117] 마이클 만,[118] 가스파르 노에[119] 등도 큐브릭을 주요한 영향으로 언급했다. 프랭크 다라본트[120]를 포함한 많은 영화 제작자들이 큐브릭의 독창적인 카메라 움직임, 프레이밍, 음악 사용 등을 모방한다.
영화 외 분야에서도 큐브릭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는 예술가들이 많다. 영국의 음악가이자 시인인 피제이 하비는 큐브릭의 영화, 특히 ''영광의 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배리 린든'' 등에서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한 무언가...너무 많은 공간, 너무 많은 침묵" 속에서 "삶의 본질을 포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121] 칸예 웨스트는 노래 "러너웨이"의 뮤직 비디오에서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 영감을 받았으며,[122] 레이디 가가는 콘서트에서 ''시계태엽 오렌지''의 대화, 의상, 음악을 사용하기도 했다.[123]
큐브릭의 작품들은 현재까지도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재해석되고 있다.
8. 작품 목록
스탠리 큐브릭은 단편 영화 3편과 장편 영화 13편, 총 16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 《시합날 (Day Of The Fight영어)》 (1951)
- 《플라잉 파드레 (Flying Padre영어)》 (1951)
- 《선원들 (The Seafarers영어)》 (1953)
영화 작가 패트릭 웹스터는 큐브릭의 시나리오 작성 및 장면 구성 방식이 고전적인 오토르 이론의 연출 방식과 일치하며, 촬영 중 배우들과의 협업과 즉흥 연기를 허용했다고 평가한다.[63] 맬컴 맥도웰은 큐브릭과의 협업을 강조하며 즉흥 연기를 허용했던 일화를 회상하며, "대본은 있었지만, 잘 진행되지 않으면 그는 알아챘고, 지칠 때까지 계속해서 리허설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64]
큐브릭은 장면 연출에 확신을 갖고 배우들이 준비되면 카메라와 조명 배치를 포함한 시각적 측면을 개발했다. 워커는 큐브릭이 "조명 사진가에게 원하는 정확한 효과를 지시할 수 있는 극소수의 영화 감독 중 한 명"이라고 평가한다.[65] 벡스터는 큐브릭이 그의 혈통, 특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막스 오퓔스 및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 대한 존경심의 영향을 받아 항상 유럽적인 관점을 영화 제작에 반영했다고 믿는다.[66]
길버트 에이더는 ''풀 메탈 자켓'' 서평에서 "큐브릭의 언어 접근 방식은 환원적이고 결정론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는 언어를 환경적 조건의 산물로 보고, 주관성과 내면성, 변덕, 색조, 개인적 표현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평가했다.[67] 존슨은 큐브릭이 "시각적 영화 제작자"였지만, 단어를 사랑했고 작가와 같은 접근 방식을 취했으며, 독특하다고 생각한 이야기에 매우 민감했다고 지적한다.[68] 큐브릭은 촬영 전 대본을 최대한 완성하려 했지만, 촬영 중 변경할 여지를 남겨두었고, "리허설 전에 연출, 카메라, 대사에 대한 아이디어를 고정하지 않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69] 그는 로버트 에밋 기나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소품 선택, 이야기, 세트, 의상, 사진, 연기 창작, 편집, 음악 효과, 광학 효과, 메인 타이틀 사용 등 모든 과정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작업 분할은 매우 나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70] 또한 "최고의 줄거리는 명백한 줄거리가 없는 것이다. 느린 시작으로 관객을 참여시키고, 우아한 음표와 부드러운 음색을 감상하게 하며, 긴장감 있는 도구로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71]
쿠브릭의 영화는 사후 분석에서 "인간혐오", 감상적이지 않은 스타일, 등장인물의 특정 감정이나 성격 특성에 대한 무관심 등이 특징으로 꼽힌다.[72] 영화 제작자 쿠엔틴 타란티노는 큐브릭의 등장인물 및 영화 작성 방식을 "냉정하고 초연하다"고 묘사했다.[73]
큐브릭은 장편 영화 제작 과정에서 많은 테이크를 촬영하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이는 배우들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 잭 니콜슨은 큐브릭이 한 장면에 대해 50테이크까지 요구했다고 말했으며, 니콜 키드먼은 잦은 테이크가 배우의 기술에 대한 의식적인 생각을 억누르고 집중력을 분산시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도록 돕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74] 큐브릭은 "[배우들은] 감정을 생성하는 도구이며, 어떤 배우들은 항상 준비되어 있지만 다른 배우들은 한 테이크에서 환상적인 수준에 도달하고 다시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부 비평가들은 큐브릭의 높은 테이크 비율을 비이성적이라고 비판했지만, 그는 배우들이 촬영 중에 최고의 모습을 보인다고 확신하며, "50명 앞에서 옷을 벗는 것과 같다. 일단 익숙해지면, 다른 사람이 있으면 불협화음을 일으켜 자의식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1987년 ''롤링 스톤''지 인터뷰에서 큐브릭은 과도한 테이크에 대한 질문에 "배우들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 대사를 모르면 연기할 수 없다. 단어를 생각해야 한다면 감정에 대해 작업할 수 없다. 그래서 30테이크를 찍어도 여전히 그들의 눈에서 집중력을 볼 수 있다. 대사를 모르기 때문에 찍고 또 찍어서 무언가를 얻기를 바란다"고 답했다.[75] 그는 또한 "[배우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할 수 있으며, 대사를 생각하면서 말할 수 있을 만큼만 배웠을 때, 장면의 감정에 대해 작업하거나 카메라 마크를 찾아야 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강한 감정적 장면에서는 배우에게 감정의 연속성을 허용하기 위해 완전한 테이크로 촬영하는 것이 좋으며, 대부분의 배우가 최고의 연기를 한두 번 이상 하는 것은 드물다"고 말했다.
매슈 모딘은 ''풀 메탈 자켓''에서 큐브릭에게 많은 테이크를 하는 이유를 묻자, 큐브릭이 잭 니콜슨을 예로 들며 "잭은 블로킹 중에 들어와 대사를 더듬었다. 촬영을 시작하고 몇 테이크 후에는 모두가 만족할 만한 연기를 얻지만, 10~15테이크까지 가면 형편없어진다. 그러다 대사의 의미를 이해하고 무의식적으로 말하게 되면서 30~40테이크쯤에는 대사가 다른 것이 된다"고 설명했다고 회상했다.[76]
반면, ''풀 메탈 자켓'' 촬영 중 R. 리 어미는 2~3테이크 만에 큐브릭을 만족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큐브릭은 어미를 훌륭한 배우라고 칭찬하며, ''롤링 스톤''지에 어미의 역할에 대한 깊은 친숙함이 연기와 즉흥 연주의 유창성을 완성하여 전문 배우에게서 기대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했다.[77] 그는 ''워싱턴 포스트''지에 "훈련 교관은 8주마다 새로운 사람들에게 같은 말을 처음 하는 것처럼 말하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배우다"라고 덧붙였다.[78]
8. 1. 장편 영화
연도 | 제목 | 감독 | 각본 | 제작 | 비고 | Ref(s). |
---|---|---|---|---|---|---|
1953 | 공포와 욕망 (Fear and Desire) | 편집 및 촬영 감독도 맡음 | [74][75] | |||
1955 | 킬러스 키스 ('Killers Kiss'') | [76] | ||||
1956 | 킬링 (The Killing) | [77] | ||||
1957 | 영광의 길 (Paths of Glory) | [78][79] | ||||
1960 | 스파르타쿠스 (Spartacus) | [80] | ||||
1962 | 롤리타 (Lolita) | [81][82] | ||||
1964 |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Dr. Strangelove) | [83] | ||||
1968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A Space Odyssey) | 특수 사진 효과 감독 및 디자인도 맡음 | [84][85] [86][87] | |||
1971 | 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 [88][89] | ||||
1975 | 배리 린든 (Barry Lyndon) | [90][91] | ||||
1980 | 샤이닝 (The Shining) | [92] | ||||
1987 | 풀 메탈 자켓 (Full Metal Jacket) | [93] | ||||
1999 | 아이즈 와이드 셧 (Eyes Wide Shut) | 사후 개봉 | [94][95] | |||
8. 2. 단편 영화
큐브릭은 사진기자 기간을 거치면서 《시합의 날 Day of the Fight영어》(1951), 《플라잉 파드레 Flying Padre영어》(1951), 《선원들 The Seafarers영어》(1953) 세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74][75]9. 수상 내역
스탠리 큐브릭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로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받았고,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작품상 및 감독상,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황금사자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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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에서 '기생충'보다 더 성공한 '킹 오브 킹스'…성공 비결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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