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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폰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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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데이폰테스는 헤라클레스의 후손이자 테메노스의 사위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테메노스가 아들들보다 데이폰테스와 딸 휘르네토를 더 총애하자, 왕자들은 데이폰테스가 왕위를 물려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테메노스를 암살했다. 데이폰테스는 이후 에피다우로스로 이동하여 그곳을 통치했지만, 왕자들에게 살해당하고 휘르네토 또한 죽음을 맞이했다. 데이폰테스의 사후 테메노스의 장남 케이소스가 왕위를 계승했지만, 아르고스 왕권은 점차 쇠퇴하여 민주정으로 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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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폰테스
인물 정보
이름데이폰테스
그리스어Δηιφόντης
로마자 표기Dēiphontēs
성별남성
가족 관계에우리테스의 아들
신화 속 역할
역할트로이아 전쟁의 영웅
관련 사건헬레네 납치, 트로이 함락
배우자헬레네
거주지트로이아
특징아폴론 신전에서 헬레네 살해 시도
참고 사항
추가 정보트로이 전쟁 이후 헬레네와 결혼
사망헬레네에게 살해당함

2. 헤라클레스의 후손, 테메노스

테메노스는 펠로폰네소스 분할 과정에서 아르고스를 분배받자, 딸 히르네토와 그의 남편 데이폰테스에게 모든 애정을 쏟았다. 테메노스가 데이폰테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할 것을 두려워한 그의 아들들은 티탄족을 고용하여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전해진다. 도서관에 따르면, 테메노스가 죽은 후, 아버지를 죽인 행위를 혐오한 군대는 데이폰테스와 히르네토를 그의 정당한 후계자로 선언했다.

그러나 파우사니아스는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테메노스가 죽은 후 그를 계승한 사람은 데이폰테스가 아니라 케이소스였다. 반면에 데이폰테스는 에피다우로스에 살았으며, 군대와 함께 그곳으로 가서 이오니아인 왕 피티레우스를 몰아냈다. 그러나 데이폰테스에게 여동생 히르네토를 빼앗긴 것을 시샘한 그의 매형들은 에피다우로스로 가서 그녀를 설득하여 남편을 떠나게 하려고 했다. 이 시도가 실패하자, 그들은 강제로 그녀를 납치했다. 데이폰테스는 그들을 추격하여 그들 중 한 명인 케리네스를 죽인 후, 다른 형제 팔케스와 레슬링을 했는데, 팔케스는 여동생을 안고 있었다. 이 싸움에서 히르네토는 오빠에 의해 의도치 않게 죽임을 당했고, 팔케스는 도망쳤다. 데이폰테스는 그녀의 시신을 에피다우로스로 가져와 그녀를 위한 성소를 세웠다.

2. 1. 가계


3. 테메노스의 통치와 암살

테메노스는 펠로폰네소스 분할 과정에서 아르고스를 차지했다.[1] 그는 딸 히르네토와 사위 데이폰테스를 총애하여 왕위를 물려줄 것처럼 보였다.[3] 이에 테메노스의 아들들은 아버지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고, 도서관에 따르면 티탄족을 고용하여 실행에 옮겼다고 한다.[1]

3. 1. 아르고스 통치

테메누스가 펠로폰네소스 분할 과정에서 아르고스를 분배받자, 그는 딸 히르네토와 그의 남편 데이폰테스에게 모든 애정을 쏟았다. 그가 데이폰테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할 것을 두려워한 그의 아들들은 티탄족을 고용하여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전해진다. 도서관에 따르면, 테메누스가 죽은 후, 살부(殺父) 행위를 혐오한 군대는 데이폰테스와 히르네토를 그의 정당한 후계자로 선언했다.[1]

그러나 파우사니아스는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그에 따르면, 테메누스가 죽은 후 그를 계승한 사람은 데이폰테스가 아니라 케이수스였다. 반면에 데이폰테스는 에피다우로스에 살았다고 하며, 그는 그에게 속한 군대와 함께 그곳으로 가서 이오니아인 왕 피티레우스를 몰아냈다. 그러나 그에게 여동생 히르네토를 빼앗긴 것을 시샘한 그의 매형들은 에피다우로스로 가서 그녀를 설득하여 남편을 떠나게 하려고 했다. 이 시도가 실패하자, 그들은 강제로 그녀를 납치했다. 데이폰테스는 그들을 추격하여 그들 중 한 명인 케리네스를 죽인 후, 다른 형제 팔케스와 레슬링을 했는데, 팔케스는 여동생을 안고 있었다. 이 싸움에서 히르네토는 자신의 오빠에 의해 의도치 않게 죽임을 당했고, 그는 도망쳤다. 데이폰테스는 그녀의 시신을 에피다우로스로 가져와 그녀를 위한 성소를 세웠다.[2]

3. 2. 아들들의 불만과 암살

테메노스 왕은 아들들보다 딸 히르네토와 사위 데이폰테스를 총애했다. 왕의 아들들은 테메노스가 데이폰테스에게 왕위를 물려줄 것을 염려하여 아버지를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3]

도서관에 따르면, 테메누스의 아들들은 티탄족을 고용하여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전해진다.[1] 그러나 테메누스가 죽은 후, 군대는 살부(殺父) 행위를 혐오하여 데이폰테스와 히르네토를 정당한 후계자로 선언했다.[1]

파우사니아스는 데이폰테스가 테메노스에게 중용되어 전시에는 왕의 아들들보다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았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상담역이 되었다고 기록했다. 또한 테메노스가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딸 히르네토를 데이폰테스에게 아내로 주었기 때문에, 왕의 아들들은 더욱 불안감을 느꼈다.[4]

결국 데이폰테스는 테메노스 사후 왕위를 두고 갈등을 벌였다.

3. 2. 1. 히르네토의 죽음

테메누스가 펠로폰네소스 분할 과정에서 아르고스를 분배받은 후, 딸 히르네토와 사위 데이폰테스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1] 데이폰테스를 후계자로 지명할 것을 우려한 테메누스의 아들들은 티탄족을 고용하여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1] 도서관에 따르면, 테메누스가 죽은 후 군대는 살부(殺父) 행위를 혐오하여 데이폰테스와 히르네토를 정당한 후계자로 선언했다고 한다.[1]

그러나 파우사니아스는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1] 테메누스 사후 왕위를 계승한 사람은 데이폰테스가 아니라 케이수스였다.[1] 데이폰테스는 에피다우로스에 살았는데, 군대를 이끌고 가서 이오니아인 왕 피티레우스를 몰아냈다.[1] 히르네토를 빼앗긴 것을 시샘한 매형들은 에피다우로스로 가서 그녀를 설득하여 남편을 떠나게 하려 했다.[1] 이 시도가 실패하자, 강제로 그녀를 납치했다.[1] 데이폰테스는 추격하여 케리네스를 죽였지만, 팔케스와 레슬링 중 히르네토는 의도치 않게 죽임을 당했고, 팔케스는 도망쳤다.[1] 데이폰테스는 시신을 에피다우로스로 가져와 성소를 세웠다.[1]

테메노스 왕은 아들들보다 히르네토와 데이폰테스를 총애하여, 아들들은 테메노스가 왕위를 데이폰테스에게 넘길 것이라 의심하여 테메노스를 암살했다.[3] 그러나 군대의 반대로 왕위 계승에 실패했고, 데이폰테스와 히르네토가 뒤를 이었다.[3]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데이폰테스는 테메노스에게 중용되어 전시에는 왕의 아들들보다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고, 모든 일에 상담역이 되었다.[4] 또한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딸 히르네토를 아내로 주었기에, 왕의 아들들은 데이폰테스에게 왕위를 물려줄 것을 두려워했다.[4]

데이폰테스는 도리스인을 이끌고 에피다우로스에 도달, 피튀레우스(이온의 아들)에게 싸우지 않고 에피다우로스를 양도받았다.[5] 이후 에피다우로스로 이주한 도리스계 아르고스인들은 본국 아르고스와 결별했다.[5] 테메노스 사후, 데이폰테스가 왕권을 두고 왕의 아들들과 대립했을 때, 에피다우로스의 아르고스인들은 데이폰테스와 히르네토 편을 들었다.[5]

그러나 데이폰테스와 히르네토는 왕의 아들들에게 살해당했다.[5] 그들은 에피다우로스에 와서 히르네토를 설득하여 데이폰테스와 헤어지게 하려 했다.[5] 실패하자 히르네토를 붙잡아 달아났다.[5] 데이폰테스는 아내를 구하려 뒤쫓았지만, 그 과정에서 히르네토는 목숨을 잃었다.[5] 데이폰테스와 아이들은 히르네토의 유해를 에피다우로스로 옮겨 매장하고, 영웅 묘 '''히르네티온'''을 건설했다.[5] 이후 데이폰테스도 모살당하고, 테메노스의 장남 케이소스가 왕위를 계승했다.[5]

4. 아르고스 왕권의 쇠퇴와 몰락

이때부터 왕권은 급격하게 쇠퇴하기 시작했다. 케이수스(키수스) 다음으로 라키다무스가 왕위를 계승했지만, 그는 왕이라는 칭호 외에는 별다른 권한이 없었다. 그의 아들 멜타스는 이러한 제약에 불만을 품고 고대 왕국의 위엄을 되살리려 했으나, 너무 늦은 시도였다. 그 당시 백성들은 그의 계획을 알아차리자마자 효과적으로 저지하고 왕정을 종식시켰으며, 정부를 민주주의로 전환하고 왕자를 사형에 처했다.[1]

4. 1. 왕권 약화

케이수스(키수스) 다음으로 라키다무스가 왕위를 계승했지만, 그는 왕이라는 칭호 외에는 별다른 권한이 없었다. 그의 아들 멜타스는 이러한 제약에 불만을 품고 고대 왕국의 위엄을 되살리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 당시 백성들은 너무나 강력하고 완고해져서 그의 계획을 알아차리자마자 효과적으로 이를 저지하고 왕정을 종식시켰으며, 정부를 민주주의로 전환하고 불행한 왕자를 사형에 처했다.[1]

4. 2. 멜타스의 노력과 실패

키수스 다음으로 라키다무스가 왕위를 계승했지만, 그는 왕이라는 칭호 외에는 별다른 권한이 없었다. 그의 아들 멜타스는 이러한 제약에 불만을 품고 고대 왕국의 위엄을 되살리려 노력했으나, 너무 늦은 시도였다. 그 당시 백성들은 매우 강력하고 완고해져 있었기 때문에 멜타스의 계획을 알아차리자마자 효과적으로 저지했다. 그들은 왕정을 종식시키고 정부를 민주주의로 전환했으며, 불행한 왕자를 사형에 처했다.[1]

4. 3. 민주정으로의 전환

키수스 다음으로 라키다무스가 왕위를 계승했지만, 그는 왕이라는 칭호 외에는 별다른 권한이 없었다. 그의 아들 멜타스는 이러한 제약에 불만을 품고 고대 왕국의 위엄을 되살리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 당시 백성들은 그의 계획을 알아차리자마자 효과적으로 이를 저지하고 왕정을 종식시켰으며, 정부를 민주주의로 전환하고 불행한 왕자를 사형에 처했다.

참조

[1] 서적 New Century Classical Handbook https://archive.org/[...] Appleton-Century-Crofts
[2] 문서 パウサニアス、2巻19・1。
[3] 문서 アポロドーロス、2巻8・4。
[4] 문서 パウサニアス、2巻26・1。
[5] 문서 パウサニアス、2巻26・2。
[6] 문서 パウサニアス、2巻28・6。
[7] 문서 パウサニアス、2巻28・5。
[8] 문서 パウサニアス、2巻28・3。
[9] 문서 パウサニアス、2巻28・4。
[10] 문서 パウサニアス、2巻28・6-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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