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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마르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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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 마르크 가문은 13세기 초 베르크 가문의 방계 가문인 아돌프 1세 폰 데어 마르크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가문은 마르크 백국을 다스렸으며, 율리히, 클레페, 베르크, 헬러 공국과 라벤스베르크 백국까지 소유했다. 라 마르크 가문은 리에주, 뮌스터, 오스나브뤼크의 주교와 쾰른의 대주교를 배출했으며, 안나 폰 클레페가 이 가문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아렌베르크 가문, 스당 공작, 부용 공작, 라멘 영주가 이 가문에서 분가했다. 16세기에는 율리히-클레베-베르크 연합 공국을 통치했으며, 주요 인물로는 아돌프 2세, 엥겔베르트 3세, 아돌프 3세, 윌리엄 1세, 앤 드 클레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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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마르크가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개요
라 마르크 가문의 문장
라 마르크 백작 가문의 문장, 현재 함 시의 문장으로 사용됨
가문 정보
가문라 마르크 가문
모가에초넨 가문 → 베르크 가문
창시자아돌프 1세
최종 통치자해당 사항 없음
최종 수장해당 사항 없음
작위베르크 공작
클레베 공작
겔데르스 공작
율리히 공작
마르크 백작
라벤스베르크 백작
국가신성 로마 제국

2. 역사

라 마르크 가문의 역사는 베스트팔렌 지역의 알테나 성에 거주하던 베르크 가문의 방계 가문 출신인 아돌프 1세 폰 데어 마르크로부터 시작되었다. 13세기 초 아돌프는 오늘날 함 우엔트롭 지역인 마르크 일대의 가문 영지에 자리를 잡았다. 아돌프는 아버지 프리드리히 폰 베르크알테나(1198년 사망)로부터 알테나 일대의 옛 백작령과 마르크 지역의 요새들을 상속받았고 드 라 마르크 백작으로 불리기 시작했다.[1]

원래는 베스트팔렌 공국의 쾰른 대주교가 관리자였으나,[1] 드 라 마르크 가문은 신성 로마 제국의 자유 영지인 마르크 백국을 다스렸으며, 율리히, 클레페, 베르크, 헬러 네 개의 공작령과 더불어 라벤스베르크 백국까지 다스렸다.[1] 가문 출신원들은 리에주, 뮌스터, 오스나브뤼크의 주교와 쾰른대주교가 되기도 했다.[1]

방계 가문은 부용 공작 등을 거쳐 라 투르 도베르뉴 가문이 상속받은 스당 공작, 느베르 공작, 레텔 백작 등의 작위를 보유했다. 안나 폰 클레페는 라 마르크 가문의 본가 출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2. 1. 기원과 초기 역사 (13세기 - 14세기)

라 마르크 가문의 역사는 베스트팔렌 지역의 알테나 성에 거주하던 베르크가의 방계 가문 출신인 아돌프 1세 폰 데어 마르크로부터 시작되었다. 13세기 초 아돌프는 오늘날 함우엔트롭 지역인 마르크 일대의 가문 영지에 자리를 잡았다. 아돌프는 아버지 프리드리히 폰 베르크알테나(1198년 사망)로부터 알테나 일대의 옛 백작령과 마르크 지역의 요새들을 상속받았고 드 라 마르크 백작으로 불리기 시작했다.[1]

원래는 베스트팔렌 공국의 쾰른 대주교가 관리자였으나,[1] 드 라 마르크 가문은 신성 로마 제국의 자유 영지인 마르크 백국을 다스렸으며, 율리히, 클레페, 베르크, 헬러 네 개의 공작령과 더불어 라벤스베르크 백국까지 다스렸다.[1] 가문 출신원들은 리에주, 뮌스터, 오스나브뤼크의 주교와 쾰른대주교가 되기도 했다.[1]

라 마르크 문장, 14세기


초기 마르크 백작 가문의 가계도는 다음과 같다.

  • 아돌프 1세(1249년 사망), 1202년에 처음 ''comes de Marca''로 기록됨[2]
  • * 엥겔베르트 1세(1277년 사망)[2]
  • ** 에버하르트(1308년 사망)[2]

엥겔베르트 2세(1328년 사망)[2]
* 아돌프 2세(1346년 사망), 1332년 클레베의 마르가레트와 결혼[2]
** 엥겔베르트 3세(1391년 사망)[2]
** 아돌프 3세(1334–1394), 1368년부터 클레베 백작[2]
* 엥겔베르트(1304–1368), 리에주 주교 1345–1364, 쾰른 대주교 1364–68[2]
* 에버하르트 1세 (약 1378년 사망), 아렌베르크 백작[2]
아돌프(1288–1344), 리에주 주교 1313–1344[2]

마르크 백작가는 아르테나 백작령을 지배한 베르크 백작가의 분가를 기원으로 한다. 이 가문의 초대 아돌프 1세 폰 마르크는 마르크 성에서 유래하여 이 이름으로 불렸다. 엥겔베르트 2세(1328년 사망)는 아렌베르크 가문의 여자 상속인 마틸데(1348년 사망)와 결혼했고, 그 후 이 가문은 마르크 백작가와 마르크-아렌베르크 가문의 두 계열로 나뉘었다.

2. 2. 분가 및 발전 (14세기 - 16세기)

라 마르크 가문은 베스트팔렌 지역의 알테나 성을 근거지로 둔 베르크 가문의 방계 가문 출신인 아돌프 1세 폰 데어 마르크로부터 시작되었다. 13세기 초, 아돌프는 오늘날 함우엔트롭 지역인 마르크 일대의 영지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아버지 프리드리히 폰 베르크알테나로부터 알테나 일대의 옛 백작령과 마르크 지역의 요새들을 상속받아 드 라 마르크 백작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원래 베스트팔렌 공국의 쾰른 대주교가 관리하던 곳이었으나, 드 라 마르크 가문은 신성 로마 제국의 자유 영지인 마르크 백국을 다스렸고, 율리히, 클레페, 베르크, 헬러 공작령과 라벤스베르크 백국까지 통치했다. 가문 출신들은 리에주, 뮌스터, 오스나브뤼크의 주교와 쾰른대주교가 되기도 했다.

엥겔베르트 2세(1328년 사망)는 아렌베르크 가문의 상속녀 마틸데(1348년 사망)와 결혼하여 가문이 마르크 백작가와 마르크-아렌베르크 가문의 두 계열로 나뉘었다. 이 가문들에서 다시 느베르 공작 가문 및 로슈포르 백작 가문이 나왔다. 방계는 부용 공작을 비롯하여, 라 투르 도베르뉴 가문, 스당 공작, 느베르 공작, 레텔 백작 등을 상속했다. 안나 폰 클레페는 라 마르크 가문의 본가 출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아돌프 2세가 마르크 백작령을 상속받았고, 그 자손은 최종적으로 율리히, 클레페 및 베르크 공작령까지 상속받았지만, 1609년에 단절되었다. 계승 전쟁 끝에 1666년 마르크 백작령은 호엔촐레른 가문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에게 상속되었고,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는 그 후 150년 동안 마르크 백작령을 상속했다.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두 명의 서자에게 마르크 백작 칭호를 부여했다.

2. 2. 1. 아렌베르크 백작가

에라르 3세 폰 데어 마르크 (1496년 사망)가 아렌베르크 영주를 상속했다.[1] 그러나 로베르 3세 대에 이 가문의 남계가 단절되었고, 로베르트의 여동생이자 장 드 리뉴와 결혼한 마르가레테가 상속하여 새로운 아렌베르크 가문을 창설했다.[1]

2. 2. 2. 클레페 공작가 (라 마르크)

아돌프 3세 (1334–1394)는 아돌프 2세와 클레베의 마르가레테의 차남으로, 1357년부터 1363년까지 뮌스터의 주교이자 1363년 쾰른 대주교였다. 그는 외삼촌인 요한 백작이 1368년에 사망하면서 클레베 백국을 상속받았고, 형인 엥겔베르트 3세가 1391년에 사망하면서 마르크 백작이 되었다.

클레베-라 마르크 문장, 15세기


클레베-라 마르크 문장, 15세기

  • 아돌프 1세 (1373–1448): 1417년부터 클레베 공작
  • 클레베의 마르가레테, 바이에른-뮌헨 공작 부인 (1416–1444)
  • 클레베의 카테리네: 헬레 공작 부인 (1417–1479)
  • 요한 1세 (1419–1481)
  • 요한 2세 (1458–1521)
  • 요한 3세 (1490–1539): 1509년 율리히-베르크의 마리아와 결혼, 장인인 율리히-베르크의 빌헬름 4세 공작이 사망하면서 율리히와 베르크 공국 및 라벤스베르크 백국을 상속받았으며, 1521년 부친이 사망하면서 율리히-클레베-베르크 연합 공국을 통치했다.
  • 시빌레 (1512–1554): 작센 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와 결혼
  • 앤 (1515–1557): 영국 왕 헨리 8세와 결혼
  • 빌헬름 "부유한" (1516–1592): 합스부르크의 마리아, 오스트리아 대공녀이자 황제 페르디난트 1세의 딸과 결혼, 1538년 공작 샤를의 사망으로 헬레 공국을 주장했다.
  • 마리 엘레오노레 (1550–1608): 프로이센 공작 알브레히트 프리드리히와 결혼
  • 요한 프리드리히 (1555–1575)
  • 요한 빌헬름 (1562–1609): 가문의 단절, 이후 율리히 계승 전쟁 발발
  • 아말리아 (1517–1586)
  • 엥겔베르트 (1462–1506)
  • 엘리자베트 (1420–1488): 슈바르츠부르크 백작 부인
  • 아그네스 (1422–1446): 나바라 여왕
  • 아돌프 (1425–1492)
  • 마리 (1426–1487): 오를레앙 공작 부인
  • 디트리히 2세 (1374–1398)

2. 3. 스당 공작 및 부용 공작가

로베르 1세 드 라 마르크는 1487년/1489년에 스당 영지를 상속받아 부용 공국도 지배했다. 로베르 2세는 "아르덴의 악마"라고 불렸다. 로베르 3세 드 라 마르크(1536년 사망)와 로베르 4세 드 라 마르크(1556년 사망)는 모두 프랑스 원수로 임명되었다. 앙리-로베르는 공국의 대부분을 잃고 스당 공이라고 칭했다. 그의 딸이자 상속인인 샤를로트 드 라 마르크(1594년 사망)가 라 투르 도베르뉴 가문과 결혼하면서 공국은 라 투르 도베르뉴 가문에 계승되었다.

2. 4. 라멘 영주가

"아르덴의 멧돼지"라고 불린 빌헬름 1세(1483년 사망)가 오늘날 벨기에의 랑멘을 상속받았다. 그의 자손인 빌헬름 2세는 고이센의 우두머리가 되었지만, 1578년에 독살당했다.[1] 필리프(1613년 사망)는 만더샤이트-슈라이덴의 여성 상속인과 결혼했고, 그의 아들 에른스트(1654년 사망)는 슈라이덴 및 자펜부르크를 상속받았다.[1] 같은 가문의 여성 상속인 마르가레테는 아렌베르크 공작 카를과 결혼하여 영지는 아렌베르크 가문에 상속되었다.[1]

3. 주요 인물


  • 아돌프 드 라 마르크 (1288–1344), 리에주 공국 주교
  • 아돌프 2세 폰 데어 마르크 (1347년 사망), 마르크 백국 백작, 엥겔베르트 1세 폰 데어 마르크의 아들[1]
  • 엥겔베르트 3세 폰 데어 마르크 (1333–1391), 마르크 백국 백작, 아돌프 2세 백작의 아들[2]
  • 아돌프 3세 폰 데어 마르크 (–1394), 뮌스터 공국 주교, 이후 쾰른 대주교 선제후, 이후 클레베 백작, 이후 마르크 백국 백작 추가
  • 엥겔베르트 드 라 마르크 (1304–1368), 리에주 공국 주교, 이후 쾰른 대주교 선제후
  • 윌리엄 1세 드 라 마르크 (1445–1486), 리에주 공국 주교 암살, 공국 내 내전 유발
  • 에라르 드 라 마르크 (1472–1538), 윌리엄 1세 드 라 마르크의 조카, 1506년부터 1538년까지 공국 주교 역임
  • 로베르 2세 드 라 마르크, 윌리엄 1세 드 라 마르크의 조카, 부용 공작, 세당 영주 및 플랑주 영주
  • 로베르 3세 드 라 마르크 (1491–1537), 로베르 2세 드 라 마르크의 아들, 1526년 프랑스 원수 및 역사가
  • 로베르 4세 드 라 마르크 (1520–1556), 부용 공작 및 세당 공, 1547년 프랑스 원수
  • 윌리엄 2세 드 라 마르크 (1542–1578), 게즈 드 메르의 제독, 80년 전쟁 (1568–1648)에서 싸운 소위 '바다 거지'. 윌리엄 1세 드 라 마르크의 증손자.
  • 안 드 클레브, 잉글랜드 국왕 헨리 8세의 네 번째 부인, 이 가문의 일원이며 요한 3세의 딸.
  • 루이 피에르 엥겔베르, 라 마르크 백작 (1674–1750)
  • 루이 엥겔베르, 라 마르크 백작 (1701–1773), 마르크 백국 백작의 마지막 남성 후손. 그의 칭호인 "라 마르크 백작"은 그의 딸 루이즈-마르그리트와 아렌베르의 샤를 마리 레이몽의 결혼으로 그의 손자에게 넘어갔다.
  • 오귀스트 마리 레이몽, 라 마르크 백작 (1753–1833)

참조

[1] 서적 Dictionary of Pastellists before 1800 http://www.pastellis[...]
[2] 서적 Correspondance entre le comte de Mirabeau et le comte de La Marck: pendant les années 1789, 1790 et 1791 https://books.google[...] V. Le Normant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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