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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라이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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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롤라이 35는 1966년 출시된 35mm 필름 카메라로, 독일 카메라 제조업체 롤라이에서 제작했다. 하인츠 바스케가 설계했으며, 작은 크기를 특징으로 한다. 롤라이 35, 35 S, 35 T 등 다양한 모델이 출시되었으며, 렌즈, 셔터, 노출계 등에서 기술적 특징을 보인다. 롤라이 35는 현재 단종되었지만, MiNT camera에서 개선된 버전을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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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라이 35
기본 정보
롤라이 35 S
롤라이 35 S
종류35mm 레인지파인더 카메라
제조사롤라이
생산 기간1966년 - 1999년
특징
렌즈Carl Zeiss Tessar 40mm f/3.5 (롤라이 35, 35 B, 35 T)
Carl Zeiss Sonnar 40mm f/2.8 (롤라이 35 S)
셔터Compur (롤라이 35)
Gossen (롤라이 35 B)
Copal (롤라이 35 T, 35 S)
노출수동
측광 방식CDS 노출계
배터리PX625 (수은 전지, 단종)
크기97 x 32 x 60 mm
무게370g
기타
디자인Heinz Waaske

2. 역사

1960년경, 16mm 필름용 서브미니어처 카메라가 시장에 출시되었을 때, 독일 카메라 제조업체 비르긴의 수석 엔지니어였던 하인츠 바스케는 16mm 서브미니어처 카메라나 하프 프레임 올림푸스 펜 35mm 카메라 구매자들이 작은 필름 형식이 아니라 카메라의 크기 때문에 구매를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비르긴 에딕사 16과 35mm 일안 반사식 카메라를 설계한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뷰파인더 카메라 부피의 3분의 1에 불과한 하우징에 35mm 카메라를 제작하기 시작했다.[1]

1962년, 바스케는 자택에서 여가 시간을 활용하여 이 카메라의 첫 번째 기술 도면을 제작했으며, 프로토타입은 비르긴에서 제작되었다. 3군 40mm f3.5 카사르 렌즈는 C. A. Steinheil & Söhne|슈타인하일de에서 공급받았다.[1]

하인츠 바스케는 비르긴의 사업 종료 결정으로 새로운 직장을 찾아 루드비히 라이츠와 코닥에 자신의 소형 카메라를 제시했으나 거절당했다. 1965년, 바스케는 롤라이에 합류했고, 그의 소형 카메라 프로토타입은 롤라이의 경영진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인리히 페젤 롤라이 전무 이사는 바스케의 카메라를 즉시 대량 생산하기로 결정했다.[1]

롤라이는 자이스 테사 렌즈, 고센 CdS 노출계, 컴퍼 조리개 셔터 등 최고급 부품을 사용하여 카메라를 개선했다. 1966년 포토키나에서 ''롤라이 35''라는 이름으로 정식 출시되었다.[1]

롤라이 35S – 노출계


롤라이는 생산 공장 설립과 동시에 롤라이 35의 생산을 싱가포르로 이전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싱가포르에는 부품 공급업체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부품을 롤라이에서 직접 생산하거나 일본 또는 유럽에서 수입해야 했다. 카메라에는 "Made by Rollei Singapore"라는 각인이 새겨졌다. 기존의 자이스 렌즈 대신 라이선스 생산된 렌즈("Made by Rollei")가 사용되었으며, 닛세이 노출계와 코팔(Nidec Copal Corporation) 리프 셔터(모두 일본 제조업체)가 사용되었다. 싱가포르의 롤라이 공장은 1981년에 문을 닫았다.[1]

롤라이 35S – "Made by Rollei Singapore" 각인

2. 1. 개발 배경

1960년대 초, 16mm 필름용 서브미니어처 카메라가 시장에 출시되었을 때, 독일 카메라 제조업체 비르긴사의 수석 엔지니어였던 하인츠 바스케는 16mm 서브미니어처 카메라나 하프 프레임 올림푸스 펜 35mm 카메라 구매자들이 작은 필름 형식이 아니라 카메라의 크기 때문에 구매를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미 16mm 비르긴 에딕사 16과 35mm 일안 반사식 카메라를 설계한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뷰파인더 카메라 부피의 3분의 1에 불과한 하우징에 35mm 카메라를 제작하기 시작했다.[1]

하인리히 비르긴(일명 헨리 비르긴)은 하인츠 바스케가 새로운 카메라 시제품을 제시했을 때, "내 시제품 제작 작업장에서 너 혼자 설계하느라 시간을 낭비한 거냐?!"라며 비난했다. 비르긴은 그 순간에야 수석 엔지니어에게 카메라 생산과 사진 장비 사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1]

새로운 직장을 찾던 바스케는 소형 카메라를 루드비히 라이츠와 코닥에 제시했지만 거절당했다. 1965년 1월, 바스케는 브라운슈바이크에 있는 롤라이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965년 3월, 롤라이의 전무 이사가 된 하인리히 페젤은 우연히 새 직원의 작은 카메라 시제품을 보게 되었다. 페젤은 바스케가 롤라이 부품만을 사용하여 이 카메라를 즉시 대량 생산할 수 있도록 추가 개발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바스케의 작은 카메라는 더 나은 렌즈, 즉 자이스 테사 3.5/40mm 렌즈, 최첨단 Gossen (Unternehmen)|고센de CdS 노출계, 바스크의 특허받은 셔터 설계를 사용하여 컴퍼에서 제작한 정밀한 조리개 셔터를 장착하여 ''롤라이 35''로 1966년 포토키나에서 선보였다.[1]

2. 2. 초기 설계 및 프로토타입

1960년경, 16mm 필름용 최초의 서브미니어처 카메라가 시장에 출시되었을 때, 독일 카메라 제조업체 비르긴의 수석 엔지니어인 하인츠 바스케는 16mm 서브미니어처 카메라나 하프 프레임 올림푸스 펜 35mm 카메라 구매자들이 작은 필름 형식이 아니라 카메라의 크기에 의해 동기를 부여받았다고 생각했다. 비르긴 에딕사 16과 35mm 일안 반사식 카메라를 설계한 그는 당시 뷰파인더 카메라 부피의 3분의 1에 불과한 하우징에 35mm 카메라를 제작하기 시작했다.[1]

1962년, 바스케는 자택에서 여가 시간을 활용하여 이 카메라의 첫 번째 기술 도면을 제작했으며, 프로토타입은 비르긴에서 제작되었다.[1]

3군 40mm f3.5 카사르 렌즈는 C. A. Steinheil & Söhne|슈타인하일de에서 공급받았다.[1] 슬라이딩 튜브 내에 장착된 이 렌즈는 사용하지 않을 때는 카메라 본체 안으로 들어간다.[1]

렌즈 삽입 시 공간 제약으로 인해 일반적인 중앙 셔터의 사용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바스케는 두 부분으로 분리된 새로운 유형의 셔터를 제안했다. 셔터 작동 시계 장치는 카메라 본체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도록 장착되었고, 셔터 날개는 움직이는 슬라이딩 튜브에 장착되었다. 분리된 부분들은 샤프트로 기계적으로 연결되었다. 셔터가 작동되어 날개가 분리되었을 때만 슬라이딩 튜브를 하우징 안으로 삽입할 수 있었다.[1]

바스케는 셔터 구조와 공간 절약형 필름 가이드 5 스프로킷 휠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다. 이 디자인은 8 스프로킷 휠로 필름을 이송하는 일반적인 구조와 달랐다.[1]

전통적인 디자인과의 또 다른 차이점은 윈딩 레버였다. '''롤라이 35'''에서 윈딩 레버는 카메라 바디의 왼쪽 상단에, 필름 되감기 크랭크는 오른쪽 하단에 위치한다 (일반적으로 윈딩 레버는 오른쪽 상단에, 되감기 크랭크는 왼쪽 상단에 위치한다). 필름 카트리지는 카메라의 오른쪽에 위치하며, 그에 따라 노출은 필름에 "거꾸로" 놓이게 된다. 이는 필름의 글자(종류, 프레임 번호)가 뒤집혀서 풍경 사진의 밑면/윗면이 바뀌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필름을 교체하려면, 예를 들어 콘탁스처럼 뒷면을 아래로 밀어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1]

프로토타입 카메라의 셔터 연동 노출계의 경우, 바스케는 Metrawatt|메트라바트de사의 셀레늄 전지 방식 노출계를 선택했다. 수동으로 조절하는 노출 제어 방식은 이후 출시된 모든 ''롤라이 35'' 모델에서도 변경 없이 유지되었다.[1]

2. 3. 롤라이로의 합류와 양산

하인츠 바스케는 비르긴의 사업 종료 결정으로 새로운 직장을 찾아 루드비히 라이츠와 코닥에 자신의 소형 카메라를 제시했으나 거절당했다. 1965년, 바스케는 롤라이에 합류했고, 그의 소형 카메라 프로토타입은 롤라이의 경영진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인리히 페젤 롤라이 전무 이사는 바스케의 카메라를 즉시 대량 생산하기로 결정했다.[1]

롤라이는 자이스 테사 렌즈, 고센 CdS 노출계, 컴퍼 조리개 셔터 등 최고급 부품을 사용하여 카메라를 개선했다. 1966년 포토키나에서 ''롤라이 35''라는 이름으로 정식 출시되었다.[1]

당시 롤라이는 Metrawatt 및 Steinheil과 사업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롤라이의 공급업체 부품을 사용하도록 카메라를 변경해야 했다. 고품질의 테사 렌즈는 자이스(Zeiss)에서 제작했다. 롤라이의 노출계 공급업체는 고센(Gossen)이었다. 광전 셀레늄 센서 또는 CdS 광저항 중 어느 것을 사용할지는 8월에 CdS를 선호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고센은 두 솔루션 모두에 대해 동일한 측정 범위를 지정했다. 셀레늄 전원 노출계는 생산 비용이 저렴했고 배터리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훨씬 작은 CdS 광저항은 카메라의 세련된 외관을 개선했고, 배터리 전원 노출계는 충격에 더 강했으며, "CdS 기술"은 광고에서 판매 포인트로 사용될 수 있었다.[1]

바스케가 노출 시간과 조리개 조절 장치를 렌즈의 오른쪽과 왼쪽에 배치하여 롤라이의 쌍안 반사식 카메라의 외관을 알지 못하게 채택했기 때문에 하우징을 약간만 변경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롤라이의 디자이너 에른스트 뫼클은 하우징을 수정했고, 가장자리 반경을 변경하여 카메라 바디를 더욱 작게 만들었다.[1]

노출계의 수은 배터리 PX 13 (= PX 625 = MR 9)를 위해 카메라 하우징 내부에 자리를 마련했다. 엔지니어링 모델의 필름 되감기 노브는 되감기 크랭크로 교체되었고, 핫슈는 바닥판에 전자 플래시를 장착하기 위해 추가되었다. 노출계와 전달 기어가 있기 때문에 핫슈를 카메라 상단에 장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프레임 커버에 핫슈를 장착하면 당시 무거운 플래시를 사용할 때 손상될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자연스러운 조명을 위해 플래시를 사용할 때는 렌즈 위에 광원을 얻기 위해 카메라를 거꾸로 돌려야 했다. 카메라의 예상 이름은 처음에 '롤라이 프라이베이트'였으며, 이는 1966년 3월 최종 초안에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1966년 4월 Peesel이 모든 롤라이 카메라를 적용된 필름 형식에 따라 지정하기로 결정했을 때 명칭은 롤라이 35가 되었다.[1]

1966년 7월에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광고에는 릴리스 볼팅 장치와 배터리 테스트 키가 있는 카메라가 표시되었다. 첫 번째는 렌즈를 삽입하면 어쨌든 카메라를 릴리스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불필요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후자의 기능은 신뢰성 문제로 인해 제거되었다. 전기 접점이 쉽게 고장날 수 있었다. 수은 배터리의 전압은 배터리 수명이 다할 때 너무 빠르게 떨어져서 잘못된 노출을 얻기 어려웠다. 마찬가지로 노출계 스위치도 제거되었다. 노출계는 렌즈를 삽입한 경우에도 항상 켜져 있었다. 카메라 가방의 어둠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실제로 배터리에서 전류가 거의 소모되지 않아 수년 동안 사용할 수 있었다.[1]

2. 4. 싱가포르 생산



롤라이는 생산 공장 설립과 동시에 롤라이 35의 생산을 싱가포르로 이전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싱가포르에는 부품 공급업체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부품을 롤라이에서 직접 생산하거나 일본 또는 유럽에서 수입해야 했다. 카메라에는 "Made by Rollei Singapore"라는 각인이 새겨졌다. 기존의 자이스 렌즈 대신 라이선스 생산된 렌즈("Made by Rollei")가 사용되었으며, 닛세이 노출계와 코팔(Nidec Copal Corporation) 리프 셔터(모두 일본 제조업체)가 사용되었다. 저렴한 인건비 덕분에 소매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그러나 경쟁 카메라, 특히 롤라이와 달리 전자 장치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이러한 비용 절감 이점은 더 이상 두드러지지 않았다. 싱가포르의 롤라이 공장은 1981년에 문을 닫았다.[1]

3. 모델

롤라이 35는 다양한 파생 모델들이 출시되었다.


  • 롤라이 35: 롤라이 35 시리즈의 기본 모델이다. 자이스 테사 렌즈와 고센 노출계를 장착했으며, 초기에는 셀레늄 센서를 사용하다가 CdS 광저항으로 변경되었다. 에른스트 뫼클에 의해 하우징이 수정되었고, 핫슈는 바닥판에 장착되었다. 초기에는 '롤라이 프라이베이트'로 불렸으나, 이후 필름 형식에 따라 롤라이 35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롤라이 35 S: 고급형 모델로, 조나 렌즈를 장착했다. 초기 렌즈 설계 문제로 양산이 지연되기도 했다.
  • 롤라이 35 T: 롤라이 35와 동일한 모델이지만, 이름만 변경되었다.
  • 롤라이 35 TE / SE: 뷰파인더에 노출 제어 디스플레이(LED)를 추가한 모델이다. PX-27 배터리를 사용하며, 필름실을 열지 않고 배터리 교체가 가능하다.
  • 보급형 모델 (B 35, C 35, 35 LED): 자이스 트리오타 렌즈를 장착하고, 셀레늄 노출계(B 35) 또는 LED 노출계(35 LED)를 사용했다. 롤라이 C 35는 노출계가 없는 모델이다.

3. 1. 롤라이 35

롤라이는 Metrawatt 및 Steinheil과 사업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카메라를 롤라이의 공급업체 부품을 사용하도록 변환해야 했다. 고품질의 테사 렌즈는 자이스(Zeiss)에서 제작했다. 롤라이의 노출계 공급업체는 고센(Gossen)이었다. 광전 셀레늄 센서 또는 CdS 광저항 중 어느 것을 사용할지는 8월에 CdS를 선호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고센은 두 솔루션 모두에 대해 동일한 측정 범위를 지정했다. 셀레늄 전원 노출계는 생산 비용이 저렴했고 배터리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훨씬 작은 CdS 광저항은 카메라의 세련된 외관을 개선했고, 배터리 전원 노출계는 충격에 더 강했으며, "CdS 기술"은 광고에서 판매 포인트로 사용될 수 있었다.[1]

Waaske가 노출 시간과 조리개 조절 장치를 렌즈의 오른쪽과 왼쪽에 배치하여 롤라이의 쌍안 반사식 카메라의 외관을 알지 못하게 채택했기 때문에 하우징을 약간만 변경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롤라이의 디자이너 에른스트 뫼클은 하우징을 수정했고, 가장자리 반경을 변경하여 카메라 바디를 더욱 작게 만들었다.[1]

노출계의 수은 배터리 PX 13 (= PX 625 = MR 9)를 위해 카메라 하우징 내부에 자리를 마련했다. 엔지니어링 모델의 필름 되감기 노브는 되감기 크랭크로 교체되었고, 핫슈는 바닥판에 전자 플래시를 장착하기 위해 추가되었다. 노출계와 전달 기어가 있기 때문에 핫슈를 카메라 상단에 장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프레임 커버에 핫슈를 장착하면 당시 무거운 플래시를 사용할 때 손상될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자연스러운 조명을 위해 플래시를 사용할 때는 렌즈 위에 광원을 얻기 위해 카메라를 거꾸로 돌려야 했다. 카메라의 예상 이름은 처음에 '롤라이 프라이베이트'였으며, 이는 1966년 3월 최종 초안에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1966년 4월 Peesel이 모든 롤라이 카메라를 적용된 필름 형식에 따라 지정하기로 결정했을 때 명칭은 롤라이 35가 되었다.[1]

1966년 7월에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광고에는 릴리스 볼팅 장치와 배터리 테스트 키가 있는 카메라가 표시되었다. 첫 번째는 렌즈를 삽입하면 어쨌든 카메라를 릴리스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불필요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후자의 기능은 신뢰성 문제로 인해 제거되었다. 전기 접점이 쉽게 고장날 수 있었다. 수은 배터리의 전압은 배터리 수명이 다할 때 너무 빠르게 떨어져서 잘못된 노출을 얻기 어려웠다. 마찬가지로 노출계 스위치도 제거되었다. 노출계는 렌즈를 삽입한 경우에도 항상 켜져 있었다. 카메라 가방의 어둠 속에 갇혀 있기 때문에 실제로 배터리에서 전류가 거의 소모되지 않아 수년 동안 사용할 수 있었다.[1]

롤라이 35 제원
항목내용
제작 기간1966년 ~ 1974년 8월
렌즈테사 f/3.5, 40mm (1972년 7월~1973년 4월, S-제나 (슈나이더 제조) 렌즈 장착)
노출계배터리 작동식, CdS 광저항 사용
초기 소매 가격크롬 487DEM, 블랙 537DEM
싱가포르 생산품 소매 가격크롬 460DEM, 블랙 520DEM
독일 생산 수량312,000개
싱가포르 생산 수량185,000개 (S-제나 렌즈 장착 30,000개)


3. 2. 롤라이 35 S

롤라이 35 S (검은색 버전)


롤라이 35의 큰 성공으로, 1967년 말부터 고급형 및 보급형 모델이 계획되었다. 그러나 싱가포르로 생산 기지를 이전하면서 5매 렌즈 계산은 1971년에야 자이스에 할당되었다. 이 조나(Sonnar) f/2.8, 40mm 렌즈는 테사처럼 전면 렌즈 초점 조절 장치를 갖추어 슬라이딩 튜브에 유사하게 장착될 예정이었다. 초점을 맞출 때 앞쪽 렌즈 두 개만 움직이도록 설계되었으나, 완성된 렌즈는 근거리에서 초점이 충분히 맞지 않아 양산이 1년이나 지연되었다. 프로젝트는 중단되었고 자이스는 렌즈 전체를 움직여 초점을 조절하는 새로운 렌즈를 설계했다. 롤라이의 개발 책임자였던 리하르트 바이스는 "우리는 이 때문에 위태로운 손실 상황에 빠졌다. 개발자들은 앞으로 칼 자이스에서 만든 렌즈라도 더 회의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새로운 셔터 메커니즘을 생산하기 위한 도구는 자이스의 자회사인 프론토어(Prontor)에서 제작되었으며, 이곳은 이미 콩푸어(Compur)(자이스의 또 다른 자회사)에서 이전 셔터의 제조를 인수했다.[1]

항목내용
렌즈조나 f/2.8, 40 mm
노출계배터리 구동, CdS [광저항] 사용
1976년 소매 가격크롬 470DEM, 블랙 496DEM[1]
생산 수량260,000대


3. 3. 롤라이 35 T

롤라이 35 S 출시와 함께, 이전의 롤라이 35는 변경 없이 롤라이 35 T로 이름이 바뀌었다. 데님 재질 가방과 함께 제공되는 데님 덮개 디자인이 계획되었으나, 섬유 덮개가 해지는 문제로 인해 채택되지 않았다.[1]

  • 생산 기간: 1974년 9월 ~ 1980년 2월
  • 롤라이 35 S와의 구분을 위해 이름만 변경되었을 뿐, 오리지널 35와 사실상 동일하다.
  • 렌즈: 테사 f/3.5, 40mm
  • 총 생산량: 440,000대

3. 4. 롤라이 35 TE / SE

롤라이 35 TE


1979년 여름, 롤라이는 뷰파인더에 노출 제어 디스플레이를 갖춘 ''롤라이 35 TE''와 ''롤라이 35 SE''를 출시했다. 이전에는 뷰파인더에 노출 제어 기능이 없어 카메라를 눈에서 떼어내 노출계 바늘을 확인해야 했다. 롤라이는 뷰파인더 내 노출 제어 디스플레이를 고려했지만, 공간 제약으로 아날로그 디스플레이는 불가능했고, 당시에는 발광 다이오드를 사용할 수 없었다.[1]

전자식 노출계는 더 많은 전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5.6V의 PX-27형 더 큰 배터리가 이전 계측기 무브먼트가 장착되었던 자리에 위치했다. 전자 회로는 이전 배터리함에 내장되었다. 롤라이 35 LED와 달리, 셔터 위치와 조리개 제어 설정은 차동 기어를 사용하여 전기적 접촉 없이 전달되었다. 릴리즈 버튼을 약간 누르면 노출계가 활성화되었고, 뷰파인더의 세 개의 LED는 정확한 노출을 표시했다. 이 시스템은 완벽하게 작동했지만, 이전 모델이 현재 더 인기가 많다.[1]

롤라이 35 TE와 SE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1]

  • 1979년 11월 ~ 1981년 9월 제조
  • 테사(TE) 렌즈 또는 조나(SE) 렌즈 장착
  • 뷰파인더 내 LED 표시가 있는 노출계
  • PX27 배터리 사용, 필름실을 열지 않고 배터리 교체 가능
  • 생산 수량: 120,000대 (TE) / 150,000대 (SE)


초기 소매 가격은 롤라이 35 TE가 298DEM, 롤라이 35 SE가 398DEM이었다. 1982년 중반에는 각각 248DEM, 298DEM으로, 1983년 말에는 198DEM으로 가격이 인하되어 판매가 종료되었다.[1]

3. 5. 보급형 모델 (B 35, C 35, 35 LED)



1969년 10월, 자이스 트리오타 f/3.5, 40mm 트리플 렌즈를 장착한 보급형 모델이 출시되었다. 초기에는 렌즈 튜브를 고정하고 셔터 타이밍 범위를 1/30초에서 1/125초로 제한하는 단순화된 컴퍼를 사용하려 했으나, 비용 절감 효과가 충분하지 않았다.

두 번째 연구에서는 렌즈용 슬라이딩 튜브는 유지하면서 셀레늄 노출계를 사용했다. 고센에서 액세서리 슈용 노출계를 제작하기로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연동되지 않은 노출계가 카메라 하우징에 통합되었다.

노출계(독일어: ''B''elichtungsmesser)의 "B"를 따서 ''롤라이 B 35''로 명명되었고, 노출계가 없는 저렴한 모델은 소형 카메라를 뜻하는 '''c'''를 따서 ''롤라이 C 35''로 불렸다. 더 많은 플라스틱 부품을 사용하여 내부 부품을 단순화했고, 본체 제어 휠은 렌즈 튜브의 조리개 제어 장치로, 노출 시간 제어 휠은 본체의 슬라이딩 튜브 베이스에 배치되었다. 이로 인해 삽입된 렌즈가 이전 모델보다 본체에서 약간 더 튀어나오게 되었다. 두 모델 모두 1/30초 ~ 1/500초의 셔터 타이밍 범위와 f/3.5 ~ f/22의 조리개 범위를 제공했으며, 초점 범위는 약 0.91m에서 무한대까지였다. 렌즈 경통의 두 쌍의 점은 f/8 및 f/16의 피사계 심도를 나타낸다. 이 카메라에는 자이스 공식이 영감을 주었다.[1]

북미 시장을 위해 교통-레드, 옐로우-오렌지, 사슴-브라운, 스틸-블루, 화이트 인조 가죽 커버로 된 특별판이 각 색상당 100개씩 제작되었으나, 큰 관심을 끌지 못해 가격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1]

1976년, ''롤라이 B 35''는 ''롤라이 35 B''로 이름이 변경되었다.[1]

싱가포르 생산 시설은 자체 개발 부서가 없어 롤라이 독일에 롤라이 35 B 설계 변경 허가를 요청했다. 셀레늄 노출계는 가변 저항을 사용하는 전자 연동 노출계로 대체되었다. 새 모델명 ''롤라이 35 LED''는 뷰파인더의 발광 다이오드에서 유래했다. 1977년 10월 첫 데이터시트가 공개되었고, 1978년 1월 사전 생산이 시작되었다. 초기 모델은 노출계 전원 스위치 설계 문제로 배터리가 빨리 소모되고, PX-27 배터리를 잘못 삽입하면 전자 장치가 손상될 수 있었다. 1978년 8월부터 릴리즈 버튼을 살짝 누르면 노출계가 활성화되는 개선된 모델이 제작되었다.[1]

모델생산 기간렌즈노출계배터리초기 소매 가격생산 수량
롤라이 B 351969년 10월 ~ 1978년 초트리오타 f/3.5, 40 mm셀레늄 셀, 배터리 불필요없음독일: 78,000대 (크롬), 싱가포르: 95,000대 (크롬), 118,000대 (블랙)
롤라이 C 351969년 10월 ~ 1971년 초트리오타 f/3.5, 40 mm없음없음9,200대 (독일)
롤라이 35 LED1978년 1월 ~ 1980년 말트리오타 f/3.5, 40 mm뷰파인더 내 LED 표시PX27, 필름실 개방 없이 교체 가능229DEM157,500대


4. 기술적 특징

롤라이 35는 하인츠 바스케가 혁신적으로 설계한 소형 카메라이다. 뷰파인더 카메라의 부피를 줄이기 위해, 기존 쌍안 반사식 카메라처럼 노출 시간과 조리개 조절 장치를 렌즈 좌우에 배치했다. 에른스트 뫼클은 하우징을 수정하고 가장자리 반경을 변경하여 카메라 본체를 더욱 작게 만들었다.

초기 모델은 C. A. Steinheil & Söhne|슈타인하일de의 3군 40mm f3.5 카사르 렌즈를 사용했다. 렌즈는 슬라이딩 튜브에 장착되어 사용하지 않을 때는 카메라 본체 안으로 들어갔다. 공간 제약으로 일반적인 중앙 셔터 사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하인츠 바스케는 두 부분으로 분리된 새로운 유형의 셔터를 고안했다. 셔터 작동 시계 장치는 카메라 본체에 고정되었고, 셔터 날개는 움직이는 슬라이딩 튜브에 장착되었다. 분리된 부분은 샤프트로 기계적으로 연결되었으며, 셔터가 작동되어 날개가 분리되었을 때만 슬라이딩 튜브를 하우징 안으로 넣을 수 있었다.

롤라이는 자이스의 고품질 테사 렌즈를 사용했으며, 노출계고센에서 공급받았다. 셀레늄 센서와 CdS 광저항 중에서는 CdS 광저항이 채택되었는데, 이는 카메라의 세련된 외관을 개선하고 충격에 더 강하다는 장점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8 스프로킷 휠 대신 공간 절약형 5 스프로킷 휠 필름 가이드가 적용되었고,[1] 필름 윈딩 레버는 카메라 본체 왼쪽 상단, 필름 되감기 크랭크는 오른쪽 하단에 있어 일반적인 카메라와 달랐다.[2] 필름 교체는 카메라 뒷면을 완전히 제거해야 했다.[2]

초기 모델은 셀레늄 전지를 사용한 노출계를 탑재했는데, 생산 비용이 저렴하고 배터리가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CdS 광저항을 사용한 노출계가 채택되었고, "CdS 기술"이라는 점을 광고에 활용했다. 이후 발광 다이오드를 뷰파인더에 표시하는 전자 연동 노출계를 적용한 ''롤라이 35 LED'' 모델이 출시되기도 했다.

4. 1. 렌즈 및 셔터

초기 모델은 C. A. Steinheil & Söhne|슈타인하일de에서 공급받은 3군 40mm f3.5 카사르 렌즈를 사용했다. 렌즈는 슬라이딩 튜브에 장착되어 사용하지 않을 때는 카메라 본체 안으로 들어갔다. 렌즈 삽입 시 공간 제약으로 인해 일반적인 중앙 셔터 사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하인츠 바스케는 두 부분으로 분리된 새로운 유형의 셔터를 고안했다. 셔터 작동 시계 장치는 카메라 본체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도록 장착되었고, 셔터 날개는 움직이는 슬라이딩 튜브에 장착되었다. 분리된 부분들은 샤프트로 기계적으로 연결되었다. 셔터가 작동되어 날개가 분리되었을 때만 슬라이딩 튜브를 하우징 안으로 삽입할 수 있었다.

롤라이는 Metrawatt 및 C. A. Steinheil & Söhne|슈타인하일de과 사업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자이스에서 제작한 고품질 테사 렌즈를 사용했다. 노출계 공급업체는 고센이었다. 처음에는 셀레늄 센서와 CdS 광저항 중 어느 것을 사용할지 논의되었으나, 최종적으로 CdS를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고센은 두 솔루션 모두에 대해 동일한 측정 범위를 제시했지만, CdS 광저항이 카메라의 세련된 외관을 개선하고 충격에 더 강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1966년부터 1974년 8월까지 제작된 오리지널 롤라이 35는 테사 f/3.5, 40mm 렌즈를 사용했지만, 1972년 7월부터 1973년 4월까지의 많은 제품은 슈나이더에서 제조한 S-제나 렌즈를 사용했다. 노출계는 배터리로 작동하는 CdS 광저항을 사용했다.

고급형 모델인 롤라이 35 S는 조나 f/2.8, 40mm 렌즈를 사용했다. 자이스에서 이 렌즈를 개발하는데 어려움을 겪어 양산이 1년 지연되기도 했다. 새로운 셔터 메커니즘은 자이스의 자회사인 프론토어에서 제작되었다.

4. 2. 필름 이송 및 되감기

일반적인 8 스프로킷 휠 대신 공간 절약형 5 스프로킷 휠 필름 가이드가 적용되었다.[1] 일반적인 카메라와 달리, 롤라이 35는 필름 윈딩 레버가 카메라 본체 왼쪽 상단에, 필름 되감기 크랭크는 오른쪽 하단에 있다.[2] 필름을 교체하려면 카메라 뒷면을 완전히 제거해야 했다.[2]

4. 3. 노출계

초기 롤라이 35 모델은 셀레늄 전지를 사용한 노출계를 탑재했는데, 이 방식은 생산 비용이 저렴하고 배터리가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CdS 광저항을 사용한 노출계가 카메라의 외관을 개선하고 충격에 강하며, "CdS 기술"이라는 점을 광고에 활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채택되었다. 노출계는 항상 켜져 있었지만, 카메라 가방 안에 넣어두면 배터리 소모가 적어 수년간 사용이 가능했다.

이후 싱가포르 생산 시설에서 발광 다이오드를 뷰파인더에 표시하는 방식의 전자 연동 노출계로 변경한 ''롤라이 35 LED'' 모델을 출시했다. 초기 모델은 전원 스위치 설계 문제로 배터리가 빨리 소모되고, 배터리를 잘못 삽입하면 전자 장치가 손상될 수 있었다. 이후 릴리즈 버튼을 살짝 누르면 노출계가 활성화되는 방식으로 개선되었다.

''롤라이 35 TE''와 ''롤라이 35 SE'' 모델은 뷰파인더 내에 LED 표시등을 통해 노출을 확인할 수 있도록 개선되었다. 셔터와 조리개 설정은 전기적 접촉 없이 전달되었고, 릴리즈 버튼을 누르면 노출계가 활성화되었다. 이전 모델보다 더 큰 PX-27 배터리가 사용되었다.

롤라이 35 TE와 SE 모델의 생산 및 가격 정보는 다음과 같다.

모델생산 기간렌즈노출계배터리초기 소매 가격생산 수량
롤라이 35 TE1979년 11월 ~ 1981년 9월테사뷰파인더 내 LED 표시PX-27298DEM120,000대
롤라이 35 SE1979년 11월 ~ 1981년 9월조나뷰파인더 내 LED 표시PX-27398DEM150,000대


4. 4. 디자인

하인츠 바스케는 뷰파인더 카메라의 부피를 줄이기 위해 혁신적인 설계를 적용했다. 롤라이의 쌍안 반사식 카메라처럼 노출 시간과 조리개 조절 장치를 렌즈의 오른쪽과 왼쪽에 배치했다. 에른스트 뫼클은 하우징을 수정, 가장자리 반경을 변경하여 카메라 바디를 더욱 작게 만들었다.

5. 현대적 사용

롤라이 35는 오래된 모델이므로, 현재 사용 시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특히,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수은 배터리를 사용했던 모델의 경우 배터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5. 1. 배터리 문제

롤라이 35, 롤라이 35 S, 롤라이 35 T는 환경 문제로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1.35V MR-9 수은 배터리를 사용한다. 아연-공기 전지는 1.35V를 제공하지만, 설계에 따라 처음 활성화된 후 사용 시간이 1~6개월로 제한된다. 수은 프리 산화은 배터리를 사용하려면 노출계를 조정해야 한다. 조정하지 않으면 1.55V의 더 높은 전압 때문에 노출이 2~3 스탑 과다 노출될 수 있다. 작은 산화은 배터리를 배터리 함에 맞추려면 어댑터가 필요하다. 원래 MR-9과 크기가 가장 가까운 배터리는 SR-44이다. LR-9(PX 625U) 같은 알칼리 배터리는 사용할 수 없다. 알칼리 전지는 일정한 전압을 제공하지 않으며, 절반 정도 소모되면 노출 부족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1.5V 배터리에 맞게 카메라를 개조하는 방법도 있다.

5. 2. 민트 카메라의 롤라이 35

민트 카메라는 자동 초점 및 내장 플래시와 같은 추가 기능을 갖춘 롤라이 35의 개선된 버전을 개발 중이다.

참조

[1] 웹사이트 Website of DHW Fototechnik on Rollei 35 http://www.dhw-fotot[...]
[2] 웹사이트 A *NEW* 35mm Compact Camera in Development https://mint-cam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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