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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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사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된 관직 또는 칭호이다. 고대에는 전문 기술자에게 부여되었으며, 율령제 하에서는 대학 및 음양료 등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시험을 담당하는 직책을 의미했다. 헤이안 시대 이후에는 박사를 배출하는 가문이 고정되었고, 석전 강론의 강사를 지칭하기도 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박사 학위는 고등 교육의 정점으로, 해당 분야의 전문성과 연구 능력을 인정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고대 일본에서는 대학이나 교육 기관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전문 기술자에게도 '박사'라는 칭호를 부여하는 경우가 있었다. 일본서기에는 이러한 사례들이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킨메이 천황 14년(553년) 6월 기록에는 의박사(醫博士), 역박사(易博士) 등이 언급되고, 스슌 천황 원년(588년)에는 사찰 건축 기술자인 로반박사(露盤博士) 백미순(白昧淳), 와박사(瓦博士) 마나문노(麻奈文奴), 양귀문(陽貴文), 료귀문(陵貴文), 석마제미(昔麻帝彌) 등이 등장한다. 또한 스이코 천황 원년(593년) 4월 10일 기록에는 박사 각가(覺哿)의 예가 보인다. 645년 다이카 개신 때에는 국정 자문을 위해 임시 관직으로 국박사 2명을 임명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율령제에서는 대학료에 여러 박사직이 설치되었다. 중앙 대학에서 고전을 가르치는 대학박사 1명과 조교 격인 조박사 2명이 있었으며, 이 외에도 음박사, 서박사, 산박사가 있었다. 이들 박사는 모두 학생을 가르치고 시험을 주관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헤이안 시대 중기 이후, 대학은 점차 쇠퇴하였고, 박사를 배출하는 가문(박사가)이 특정 가문으로 고정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2. 고대
3. 율령제 하의 박사
음양료에도 음양박사, 력박사, 천문박사, 누각박사가 설치되었고, 전약료에는 의박사, 침박사, 안마박사, 주금박사가 있었다. 그 외에도 기전박사, 문장박사, 명법박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박사직이 존재했다.
지방 행정 기관에도 박사가 파견되었다. 다자이후에는 다자이박사가 있었고, 각 국(國)에는 국박사가 1명씩 배치되었다.
관료 등용 시험 시에는 문두박사(주임 시험관), 시박사, 증박사(입회 시험관)와 같은 임시 박사직이 선임되기도 했다.
4. 헤이안 시대 이후
한편, 박사라는 칭호는 본래의 의미 외에도 다르게 사용되기도 했다. 『좌경기』 장원 7년(1034년) 8월 21일 기록에 따르면, 석전에서 강론을 맡은 강사를 해당 학과명을 붙여 "박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또한, 『동사백합문서』의 "정과 2년(1313년) 6월 일 유기지마장 령가방 백성 등 신상안"이라는 문서에서는 "가장 의지할 만한 것"이라는 의미로 박사라는 단어가 사용된 용례를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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