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길랴롭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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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블라디미르 길랴롭스키는 1855년(또는 1853년)에 태어나 1935년에 사망한 러시아의 언론인이자 작가이다. 그는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방랑 생활을 하다가 모스크바의 극장에서 일하며 저널리즘에 입문했다. 모스크바의 범죄 기자로 명성을 얻었으며, 첫 번째 책인 『빈민가의 이야기』를 통해 모스크바 빈민가에 대한 경험을 기록했다. 10월 혁명 이후에는 소련의 신문에서 활동하며 회고록을 썼으며, 주요 작품으로 『나의 여행』, 『신문 모스크바』, 『극장 사람들』 등이 있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독특하고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썼으며, 작품에는 모스크바의 명소와 다양한 인물들과의 교류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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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길랴롭스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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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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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블라디미르 알렉세예비치 길랴롭스키 |
출생 | 1853년 11월 26일 |
출생지 | 볼로그다 |
사망 | 1935년 10월 1일 |
사망지 | 모스크바 |
국적 | 러시아 |
언어 | 러시아어 |
직업 | 작가, 저널리스트 |
![]() | |
작품 활동 | |
장르 | 르포르타주 |
기타 정보 |
2. 생애
블라디미르 길랴롭스키는 볼로그다 현 올스피예프 백작의 영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지 임업 감독 조수였고, 어머니는 임업 감독의 딸이었다. 육체노동을 경험한 후 육군 보병 부대에 입대하여 유년 학교에 보내졌으나 규율 위반으로 퇴학당했다. 뱃사공, 짐꾼, 서커스 단원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며 방랑 생활을 했다. 이후 저널리스트 및 작가로 활동했으며, 회고록을 집필하고 1935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2. 1. 초기 생애와 방랑
그는 1855년 11월 26일(교회 기록에 따르면 1853년, 본인의 저서에 따르면) 볼로그다 근처 영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노브고로드 출신)는 그곳에서 영지의 집행관 조수로 일했으며, 그 집행관은 자포로지예 코사크였고, 길랴롭스키는 나중에 그의 딸과 결혼했다. 길랴롭스키는 그의 코사크 혈통을 소중히 여겼다. 젊은 시절 그는 일리야 레핀의 ''자포로지예 코사크의 답장''에 묘사된 코사크 중 한 명의 모델로 포즈를 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또한 니콜라이 고골의 고골(Gogol) 모스크바 기념비의 일부인 타라스 불바의 모델이기도 했다. 레핀은 평생의 친구였으며, 길랴롭스키는 그와 우크라이나어로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다.[2]그는 교육을 잘 받은 어머니(그가 8살 때 사망)와 귀족 계급의 계모에게서 자랐으며, 일찍 집을 떠나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야로슬라블의 유독성 납 페인트 공장, 가정교사, 바지선 인부 등으로 일했으며, 1877-78년 러시아-투르크 전쟁에 자원 입대했다. 지방 배우로서 짧은 경력을 쌓은 후,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3]
2. 2. 언론인으로서의 활동
야로슬라블의 유독성 납 페인트 공장, 가정교사, 바지선 인부 등으로 일했으며, 1877-78년 러시아-투르크 전쟁에 자원 입대했다. 지방 배우로서 짧은 경력을 쌓은 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모스크바 최고의 범죄 기자 중 한 명으로 명성을 얻었다.[3]모스크바의 극장에서 배우 겸 연출 조수로 일한 것을 계기로 저널리즘의 길에 들어섰다. 공장 노동자들의 기록인 『죽어야 할 사람들』의 초고를 글레프 우스펜스키에게 높이 평가받았고, 그 기사는 월간지 『러시아 통보』에서 기명 기사로 게재되었다. 그 이후 『러시아 통보』, 『러시아의 소리』 등 여러 신문에서 활동했다. 안톤 체호프와 발레리 브류소프와 교류했다. 니콜라이 2세 대관식 기념 축전에서의 사고, 세르비아의 밀란 공 암살 미수 사건, 고골리 서거 50주년 기사, 체호프 추도 기사 등을 발표했다.
그의 첫 번째 책인 ''빈민가의 이야기''(1887)는 모스크바 빈민가, 가난과 범죄의 모스크바에 대한 그의 경험을 기록했으며, 그 전형을 키트로프카 지역에서 찾았다.[3]
10월 혁명 이후에는 『이즈베스티야』, 『문학 신문』, 『석간 모스크바』 등 소련의 신문에서도 집필 활동을 했다.
2. 3. 혁명 이후
10월 혁명 이후 그는 회고록 집필에 전념했다. ''나의 여행''(1928), ''신문 모스크바''(사후 출판), ''극장 사람들''(사후 출판) 등이 대표적인 회고록이다. ''신문 모스크바''에서는 혁명 이전 모스크바의 신문 사업과 안톤 체호프 등 그가 함께 일했던 유명 인사들에 대한 회상을 담았다.[3] 그는 1935년 10월 1일 모스크바에서 사망했다. 혁명 이후에는 『이즈베스티야』, 『문학 신문』, 『석간 모스크바』 등 소련의 신문에서도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3. 작품 세계
길랴롭스키는 지식인부터 하층 계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독특하고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썼다. 빈민굴에 관해 쓴 기사를 모아 첫 단행본 《빈민굴의 사람들》을 출판했지만, 검열로 인해 분서되었다. 그 빚을 갚기 위해 《경마 저널》을 발행하기도 했다.[1]
4. 작품 목록
제목 | 출판 연도 | 비고 |
---|---|---|
《트루쇼브니예 사람들》 (Трущобные люди) | 1887 | |
《모스크바와 모스크바 사람들》 (Москва и москвичи) | 1926 | 무라테 요시하루 역, 『제정 말기의 모스크바』 (주오코론사, 1985년 / 주코 문고, 1990년), 나카타 호 역, 『세기말의 모스크바, 모스크바와 모스크바 사람들』 (군조샤, 1985년)로 번역 출간됨. |
《나의 바람》 (Мои скитания) | 1928 | |
《극장의 사람들》 (Люди театра) | 1941 | |
《모스크바는 신문이다》 (Москва газетная) | 1960 | |
《제정 말기의 러시아인》 | 1986 | 무라테 요시하루 역, 주오코론사, 1986년 / 주코 문고, 1990년. 글레프 우스펜스키, 체호프, 드미트리 야볼니츠키, 알렉산드르 오스트로프스키, 막심 고리키, 알렉세이 사브라소프, 수호보 코발린, 레프 톨스토이, 엘피디포르 바르소프, 발레리 브류소프 등과의 교류에 대한 회상록. |
5. 한국어 번역
- Москва и москвичи|모스크바와 모스크바 사람들ru』 무라테 요시하루 역, 주오코론사, 1985년 / 주코 문고, 1990년
- : 빈민굴 히트로프카와 고물 시장 수하레프카, 목욕탕, 러시아 요리 식당 등 모스크바의 명소를 소개하고 있다.
- 『Москва и москвичи|세기말의 모스크바, 모스크바와 모스크바 사람들ru』 나카타 호 역, 군조샤, 1985년 - 다른 번역본
- 『Люди театра|제정 말기의 러시아인ru』 무라테 요시하루 역, 주오코론사, 1986년 / 주코 문고, 1990년
- : 글레프 우스펜스키, 체호프, 드미트리 야볼니츠키, 알렉산드르 오스트로프스키, 막심 고리키, 알렉세이 사브라소프, 수호보 코발린, 레프 톨스토이, 엘피디포르 바르소프, 발레리 브류소프 등과의 교류에 대한 회상록.
참조
[1]
웹사이트
Там детство я провёл, там родина моя…
http://mosarchiv.mos[...]
Главное архивное управление города Москвы
2016-05-09
[2]
웹사이트
Художник Рєпін і журналіст Гіляровський листувалися українською. Їх єднала любов до України
https://www.radiosvo[...]
2021-04-21
[3]
웹사이트
Репортажи
http://az.lib.ru/g/g[...]
Lib.ru: Классика
2009-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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