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마 사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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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쿠마 사토루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 그리고 행정가이다. 선수 시절에는 NTT 간토에서 뛰었으며, 고마자와 대학에서는 주장을 맡았다. 은퇴 후에는 오미야 아르디자와 반포레 고후에서 코치, 감독, 단장, 강화부장, 부사장 등을 역임했다. 2007년과 2015년에는 강등 위기에 놓인 팀을 잔류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2021년부터는 반포레 야마나시 스포츠 클럽의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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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마 사토루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사쿠마 사토루 |
원어 이름 | 佐久間 悟 |
로마자 표기 | Sakuma Satoru |
출생일 | 1963년 7월 7일 |
출생지 | 도쿄도 |
신장 | 177cm |
포지션 | 수비수 |
선수 경력 | |
유소년 클럽 | 조사이 대학 부속 가와고에 고등학교 고마자와 대학 |
클럽 | 1986-1991: NTT 간토 |
클럽 출전 및 득점 | NTT 간토: 25경기 0골 |
총 출전 및 득점 | 25경기 0골 |
국가대표 경력 | |
국가대표 | 없음 |
지도자 경력 | |
유소년 감독 | 1998-1999: 오미야 아르디자 유스 |
감독 | 2007: 오미야 아르디자 2011: 방포레 고후 2015-2016: 방포레 고후 |
2. 선수 경력
고마자와 대학 졸업 후 1991년까지 NTT 간토에서 선수로 뛰었다.
2. 1. 초기 경력
사쿠마는 1963년 7월 7일 도쿄도에서 태어났다. 조시 대학 부속 가와고에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전국 고등학교 축구 선수권 대회 사이타마현 예선에서 팀을 8강으로 이끌었다. 이후 고마자와 대학에 진학하여 4학년 때 축구부 주장을 맡았다.대학 졸업 후에는 NTT에 입사하여, 훗날 오미야 아르디자가 되는 NTT 간토 축구부에서 1991년까지 선수로 활동했다. NTT 간토에서는 입단 2년 차에 부주장을 맡았고, 3년 차부터는 주장을 역임했다.
2. 2. NTT 간토 축구부 (현 오미야 아르디자)
고마자와 대학 졸업 후, 1991년까지 NTT 간토에서 선수로 활동하였다.3. 지도자 경력
사쿠마 사토루는 선수 은퇴 후 1991년 오미야 아르디자의 전신인 NTT 간토 축구단의 코치로 부임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오미야 아르디자에서 유스팀 감독, 1군 코치, 헤드 코치 등을 역임했으며, 2003년에는 S급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2004년부터는 구단 프런트로 자리를 옮겨 강화부장, 강화·육성 부장을 지냈다. 2007년 8월, 팀이 부진에 빠지자 로베르트 판 베르베크 감독의 후임으로 시즌 도중 감독직을 맡아 팀의 J1리그 잔류를 이끌었다. 이는 NTT 동일본 소속으로 감독을 맡은 이례적인 '샐러리맨 감독' 사례였다. 2008년에는 테크니컬 디렉터를 맡다가 같은 해 9월 오미야를 떠났다.
2008년 10월 반포레 고후의 제너럴 매니저(GM)로 부임하여 팀 개혁을 주도했다. 2011년 8월과 2015년 5월, 두 차례에 걸쳐 성적 부진으로 감독이 해임되자 GM과 감독직을 겸임하며 팀을 이끌었다. 2011년에는 팀의 J2리그 강등을 막지 못했지만, 2015년과 2016년에는 팀의 J1리그 잔류를 이끌었다. 이후 GM직을 유지하며 2016년부터는 구단 운영 법인의 부사장, 2018년부터는 대표이사 GM을 겸임하는 등 구단 운영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3. 1. 오미야 아르디자
사쿠마 사토루는 선수 은퇴 후 1991년 오미야 아르디자의 전신인 NTT 간토 축구단의 코치로 부임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1995년에는 독일과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나, 리누스 미헬스가 고안한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인 '더치 비전'을 접하며 큰 영향을 받았다. 귀국 후에는 코치와 구단의 프로화 준비실원을 겸임했다.1998년 오미야 아르디자가 창단되면서 유스팀 감독을 맡았고, 1999년에는 1군 코치와 유스 감독을 겸임했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는 헤드 코치로 활동하며 지도자 경력을 이어갔다. 2003년에는 S급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2004년에는 오미야 아르디자의 강화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프런트 업무를 시작했으며, 2006년부터는 강화·육성 부장을 맡았다. 2007년, 사임한 미우라 토시야 감독의 후임으로 로베르트 판 베르베크를 직접 영입했으나, 팀은 전반기 종료 시점에서 18개 팀 중 16위로 부진했다. 결국 2007년 8월, 구단은 베르베크 감독을 해임하고 사쿠마 본인이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이는 NTT 동일본에서 파견된 신분으로 감독을 맡은 이례적인 '샐러리맨 감독' 사례였다.
감독 취임 당시 남은 16경기에서 8승, 승점 40점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으나, 최종적으로 5승 4무 7패를 기록하며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시즌 최종 순위 15위를 기록하며 팀의 J1리그 잔류를 성공시켰다. 시즌 종료 후인 2007년 12월 6일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2008년에는 테크니컬 디렉터로 구단에 남았으나, 같은 해 9월 17일 오미야 아르디자를 떠났다.
3. 2. 반포레 고후
2008년 10월 1일, 오미야 아르디자에서 퇴단한 지 2주 만에 반포레 고후의 단장(GM)으로 취임했다. 그는 부임 직후 전년도 팀 부진의 원인을 분석하고 팀 개혁에 착수했다. 고후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자체 선수 선발 방식을 폐지하고, 득점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격진을 교체했으며, 취약했던 수비진 보강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2009년 팀은 시즌 내내 승격 경쟁을 벌이며 4위를 기록했고, 2010년에는 2위를 차지하며 4년 만에 J1리그로 승격하는 성과를 거두었다.2011년 8월, 성적 부진으로 미우라 토시야 감독이 해임되자 사쿠마는 GM 겸 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팀의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1년 만에 J2리그로 강등되었다.
2012년에는 조후쿠 히로시가 새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사쿠마는 다시 GM 역할에 전념했다. 팀은 그해 J2리그에서 우승하며 1년 만에 J1리그로 복귀했고, 조후쿠 감독 체제 하에서 2013년과 2014년에도 J1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2015년 시즌 도중, 히구치 야스히로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5월에 해임되자, 사쿠마는 다시 GM 겸 감독이 되었다. 이는 오미야 시절을 포함해 세 번째 시즌 중도 감독 부임이었다. 감독 부임 후 그는 11경기에서 20실점을 내주며 불안했던 수비 조직력을 재정비했다. 그 결과 1st 스테이지 남은 6경기를 4승 2무 무패로 마치며 12위로 스테이지를 마무리했고, 2nd 스테이지에서는 다소 주춤했지만 연간 순위 13위를 기록하며 팀의 3년 연속 J1리그 잔류를 이끌었다.
2016년에는 처음으로 시즌 시작부터 GM 겸 감독으로 팀을 이끌었다. (사쿠마는 전년도 가시와 레이솔 감독이었던 요시다 타츠마를 초빙하려 했으나, 리그 개막이 빨라 팀 구성 시간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포기했다고 밝혔다[3]). 같은 해 3월 29일에는 구단 운영 법인인 반포레 야마나시 스포츠 클럽의 부사장직까지 겸임하게 되어[4] 총 3개의 직책을 맡게 되었다. 이 해에는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이적이 잇따르면서 시즌 최종전까지 강등권 경쟁을 벌여야 했다. 11월 3일 최종전에서 패배했지만, 다른 경기 결과 덕분에 연간 순위 14위로 4년 연속 J1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경기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사쿠마는 "다음 시즌은 새로운 감독에게 맡길 것"이라며 2016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날 것을 발표했다[5]。 11월 15일, 요시다 타츠마가 신임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사쿠마는 부사장과 GM직을 계속 겸임하게 되었다[6]。
2021년 3월, 반포레 고후의 운영 법인인 반포레 야마나시 스포츠 클럽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반포레 고후에서의 주요 경력'''
기간 | 직책 |
---|---|
2008년 10월 – 2011년 8월 | 제너럴 매니저 |
2011년 8월 – 2011년 12월 | 감독 (GM 겸임) |
2012년 – 2017년 | 제너럴 매니저 |
2015년 5월 – 2016년 | 감독 (GM 겸임) |
2016년 – 2017년 | 반포레 야마나시 스포츠 클럽 부사장 (GM 겸임) |
2018년 – | 대표이사 제너럴 매니저 (2021년 3월부터 사장 겸임) |
4. 행정가 경력
선수 은퇴 후, 사쿠마 사토루는 지도자와 축구 행정가의 길을 걸었다. 오미야 아르디자에서 코치, 강화부장, 테크니컬 디렉터 등 다양한 보직을 거치며 경험을 쌓았다. 특히 2007년에는 시즌 도중 감독 대행을 맡아 팀의 J1 잔류를 이끌기도 했다.
2008년 10월 1일부터는 반포레 고후로 자리를 옮겨 제너럴 매니저(GM)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반포레 고후에서는 오랜 기간 GM으로 활동하며 팀의 선수단 구성과 운영 전반을 책임졌고, 팀의 J1 승격과 잔류 과정에 기여했다. 오미야 시절과 마찬가지로 2011년과 2015년에는 시즌 중 감독직을 겸임하기도 했다. 이후 구단 부사장, 대표이사 GM을 거쳐 2021년 3월에는 구단 운영 법인인 반포레 야마나시 스포츠 클럽의 사장으로 취임하여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4. 1. 오미야 아르디자
은퇴 후 NTT 관동과 오미야 아르디자에서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1995년에는 독일과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나, 리누스 미헬스가 고안한 지도자 양성 프로그램인 '더치 비전'에 접하며 큰 영향을 받았다. 귀국 후에는 코치와 프로화 준비실원을 겸임했고, 2003년에 S급 라이선스를 취득했다.2004년에는 오미야 아르디자의 강화부장에 취임했으며, 2006년부터는 강화·육성 부장이 되었다. 2007년, 사임한 미우라 토시야 감독을 대신하여 로베르트 판 베르베크를 영입했지만 팀은 전반기 종료 시 16위로 부진했다. 결국 2007년 8월, 사쿠마 본인이 직접 감독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당시 그의 신분은 NTT 동일본에서 파견된 상태였기에, 이는 이례적인 '샐러리맨 감독' 사례였다. 감독 취임 시 내걸었던 '남은 16경기에서 8승, 승점 40점 달성'이라는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5승 7패 4무의 성적으로 2007 시즌을 15위로 마치며 팀의 J1 잔류를 이끌었다. 이후 2007년 12월 6일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2008년에는 테크니컬 디렉터로 클럽에 남았지만, 같은 해 9월 17일 오미야 아르디자를 떠났다.
'''오미야 아르디자 주요 경력'''
기간 | 직책 |
---|---|
1998년 ~ 1999년 | 유스 감독 |
1999년 | 코치 (유스 감독 겸임) |
2000년 ~ 2002년 | 헤드 코치 |
2004년 ~ 2006년 | 강화부장 |
2006년 ~ 2007년 | 강화·육성 부장 |
2007년 8월 ~ 12월 | 감독 |
2008년 1월 ~ 9월 | 테크니컬 디렉터 |
4. 2. 반포레 고후
오미야 아르디자 퇴단 2주 후인 2008년 10월 1일, 반포레 고후의 단장(GM)으로 취임했다. 그 해 팀 부진의 원인을 분석하고 개조에 착수하여, 기존의 자체 선수 선발 방식을 폐지하고 득점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공격진을 교체했으며, 취약했던 수비진 보강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2009년에는 시즌 내내 승격 경쟁을 벌여 4위를 기록했고, 2010년에는 2위를 차지하며 팀의 4년 만의 J1 승격을 이끌었다.2011년 8월, 성적 부진으로 해임된 미우라 토시야의 후임으로 GM 겸 감독으로 취임했으나, 팀의 부진을 막지 못하고 1년 만에 J2로 강등되었다. 2012년에는 조후쿠 히로시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사쿠마는 다시 GM 역할에 전념하게 되었다. 팀은 그 해 J2 우승을 차지하며 1년 만에 J1으로 복귀했고, 2013년과 2014년에도 조후쿠 감독 체제 하에서 J1 잔류에 성공했다.
2015년에는 히구치 야스히로가 감독으로 취임했으나, 1st 스테이지 11라운드 종료 후 성적 부진으로 해임되자 사쿠마가 다시 GM 겸 감독으로 취임했다. 이는 오미야 시절을 포함하여 시즌 도중 감독직을 맡은 세 번째 경우였다. 감독 취임 후, 11경기에서 20실점을 내주며 불안했던 수비를 재건하여 1st 스테이지 남은 6경기를 4승 2무 무패로 마감하며 12위로 스테이지를 마쳤다. 2nd 스테이지에서는 다소 부진했지만, 연간 순위 13위를 기록하며 팀의 3년 연속 J1 잔류를 이끌었다.
2016년에는 GM과 감독을 겸임하며 처음으로 시즌 시작부터 팀을 지휘했다. (사쿠마는 전년도 가시와 레이솔 감독이었던 요시다 타츠마를 초빙하려 했으나, 리그 시작이 빨라 팀 구축 시간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단념했다고 밝혔다[3]). 3월 29일에는 클럽 부사장직도 겸임하는 것이 발표되어[4], 총 3개의 직책을 맡게 되었다. 그 해 팀은 주력 선수들의 부상과 이적이 잇따르며 최종 라운드까지 잔류 경쟁을 벌였다. 최종 라운드에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경기 결과 덕분에 연간 14위로 4년 연속 J1 잔류에 성공했다. 경기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내년에는 새로운 감독에게 맡기겠다"며 2016 시즌을 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날 것을 발표했다[5]。 11월 15일, 전년에 영입을 검토했던 요시다 타츠마가 신임 감독으로 취임했으며, 사쿠마는 부사장과 GM을 겸임하는 것으로 발표되었다[6]。
2021년 3월, 반포레 고후를 운영하는 반포레 야마나시 스포츠 클럽의 사장으로 취임했다.
반포레 고후 관련 주요 경력
기간 | 직책 | 소속 | 비고 |
---|---|---|---|
2008년 10월 - 2011년 8월 | 제너럴 매니저 | 반포레 고후 | |
2011년 8월 - 2011년 12월 | 감독 | 반포레 고후 | GM 겸임 |
2012년 - 2017년 | 제너럴 매니저 | 반포레 고후 | |
2015년 5월 - 2016년 | 감독 | 반포레 고후 | GM 겸임 |
2016년 - 2017년 | 부사장 | 반포레 야마나시 스포츠 클럽 | GM 겸임 (2016년 감독 겸임) |
2018년 - 2021년 2월 | 대표이사 제너럴 매니저 | 반포레 야마나시 스포츠 클럽 | |
2021년 3월 - 현재 | 사장 | 반포레 야마나시 스포츠 클럽 |
5. 감독 통산 성적
팀 | 기간 시작 | 기간 종료 | 기록 | |||
---|---|---|---|---|---|---|
경기 | 승 | 무 | 패 | |||
오미야 아르디자 | 2007 | 2007 | 16 | 5 | 4 | 7 |
벤포레 고후 | 2011 | 2011 | 14 | 5 | 1 | 8 |
벤포레 고후 | 2015 | 2016 | 57 | 15 | 17 | 25 |
총합 | 87 | 25 | 22 | 40 |
연도 | 클럽 | 소속 | 리그전 | 컵전 | ||||||
---|---|---|---|---|---|---|---|---|---|---|
순위 | 승점 | 경기 | 승 | 무 | 패 | 나비스코컵 | 천황배 | |||
2007 | 오미야 | J1 | 15위 | 19 | 16 | 5 | 4 | 7 | - | 4회전 탈락 |
2011 | 고후 | 16위 | 16 | 14 | 5 | 1 | 8 | - | 3회전 탈락 | |
2015 | 13위 | 31 | 23 | 8 | 7 | 8 | 예선 리그 탈락 | 베스트 16 | ||
2016 | 14위 | 31 | 34 | 7 | 10 | 17 | 예선 리그 탈락 | 2회전 탈락 |
- 2007년, 2011년은 8월, 2015년은 5월 13일 이후의 성적 (순위는 최종 순위).
6. 평가
고후의 단장(GM)으로서는 예산 제약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고후 사장이었던 우미노 카즈유키는 "나의 가장 큰 성과는 사쿠마를 데려온 것"이라며 깊은 신뢰를 보였으며, 2011년 사쿠마가 J2 강등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려 하자 "패배한 채 도망갈 것이냐", "사쿠마가 그만두면 나도 그만두겠다"며 만류하기도 했다.
감독으로서는 2007년과 2015년 강등권에 있던 팀을 맡아 잔류시킨 점이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반면, 사커 다이제스트와 같은 일부 매체는 사쿠마에게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 2015년 히구치 감독 후임으로 부임했을 때, 해당 매체는 과거 감독 시절(2011년)의 이해하기 어려운 작전 지휘나 발언을 언급하며 선임에 의문을 제기했다.[7] (다만, 사쿠마는 이 시즌에 팀을 잔류시키는 데 성공했다.) 또한 2016년 시즌 종료 후에는, 사쿠마가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는 성격 탓에 훈련 중에도 자주 말을 길게 이어가 선수들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설명 도중 선수들의 몸이 식어 부상 위험을 높인다는 현장의 지적이 있었다.[8]
7. 기타
- 같은 해에 태어난 미우라 토시야(전 오미야, 삿포로 감독)와는 코마자와 대학 동기이다. 2004년에는 강화부장이었던 사쿠마의 추천으로 미우라가 오미야 감독으로 두 번째 부임하게 되었고, 팀의 J1 승격을 이끌었다. 2011년에는 미우라가 고후의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5년 만에 다시 함께 일하게 되었으나, 성적 부진으로 미우라 감독이 물러나고 사쿠마가 후임 감독을 맡게 되었다.
- 고후의 단장(GM)으로서는 제한된 예산 속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고후의 사장으로 경영 재건에 힘썼던 우미노 카즈유키는 "내 최고의 영입은 사쿠마를 데려온 것"이라며 깊은 신뢰를 보였다. 2011년 팀이 J2로 강등되자 사쿠마가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지만, 우미노 사장은 "패배한 채로 도망갈 건가", "사쿠마가 그만둔다면 나도 그만두겠다"며 그를 만류했다.
- 감독으로서는 강등 위기에 처했던 팀을 2007년과 2015년에 잔류시키는 데 성공하며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반면, 일본 축구 전문지 사커 다이제스트는 사쿠마에게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 2015년 히구치 야스히로 감독의 후임으로 부임했을 때, "(2011년 감독 시절의) 이해하기 어려운 작전 지휘나 발언을 생각하면, 솔직히 이번 결정에는 의문이 든다"고 평가했다.[7] 다만, 사쿠마는 이 시즌에도 팀을 강등권에서 구해내며 잔류에 성공했다. 또한 2016년 시즌 종료 후에는 "모든 것을 말로 설명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격 때문에 연습을 자주 중단하고 장황한 설명을 이어가, 현장에서는 "선수들의 집중력이 떨어진다", "설명 중에 선수들의 몸이 식어 부상자가 늘어나는 원인이 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8]
참조
[1]
J리그
J.League Data Site
https://data.j-leagu[...]
[2]
서적
1990-1991JSLイヤーブック
[3]
웹사이트
【フレームの外の景色】第2話:甲府の監督は吉田達磨だったかもしれない
http://www.targma.jp[...]
川本梅花フットボールタクティクス
2016-09-29
[4]
간행물
(株)ヴァンフォーレ山梨スポーツクラブ役員人事のお知らせ
http://www.ventforet[...]
ヴァンフォーレ甲府
2016-03-29
[5]
뉴스
甲府・佐久間監督は退任へ、GMに専念 後任に吉田達磨氏、ゴトビ氏の名
http://www.sanspo.co[...]
2016-11-03
[6]
간행물
吉田 達磨氏 監督就任のお知らせ
http://www.ventforet[...]
ヴァンフォーレ甲府
2016-11-15
[7]
축구
【甲府】ずさんだった樋口采配と佐久間体制で透ける不安
http://www.soccerdig[...]
サッカーダイジェスト
2015-05-14
[8]
뉴스
内部崩壊寸前だった甲府が、それでもJ1に残れた理由
サッカーダイジェスト
201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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