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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요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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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토 요헤이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골키퍼로 활약했다. 1972년 센다이에서 태어나 1991년 가시마 앤틀러스에 입단하여 1997년 J리그컵과 천황배 우승을 이끌었다.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로 이적하여 2000년 J2 리그 우승과 J1 승격을 달성했으며, 주빌로 이와타에서는 2003년 천황배 우승을 경험했다. 2007년 은퇴 후 지도자로 전향하여 베갈타 센다이, JFA U-15, U-22 대표팀, 가시마 앤틀러스 등에서 코치직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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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요헤이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사토 요헤이
원어 이름佐藤 洋平
가타카나 표기사토 요헤이
로마자 표기Satō Yōhei
출생일1972년 11월 22일
출생지미야기현 센다이시
187cm
포지션골키퍼
利き足오른발
클럽 경력
유소년 클럽미야기현 공업 고등학교 (1988-1990)
클럽가시마 앤틀러스 (1991-1998)
콘사돌레 삿포로 (1999-2003)
주빌로 이와타 (2003-2008)
출장 횟수가시마 앤틀러스: 76 (91)
콘사돌레 삿포로: 135
주빌로 이와타: 32 (23)
득점 횟수가시마 앤틀러스: 0
콘사돌레 삿포로: 0
주빌로 이와타: 0
총 출장 횟수243 (258)
총 득점 횟수0
수상 경력
J1리그우승: 1996, 1998
준우승: 1993, 1997
J.리그컵우승: 1997
천황배우승: 1997
준우승: 1993
J1리그준우승: 2003
천황배우승: 2003
준우승: 2004

2. 선수 경력

사토 요헤이는 1972년 11월 22일 센다이에서 태어나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 주빌로 이와타 등 여러 팀을 거치며 골키퍼로 활약했다.


  • 가시마 앤틀러스 (1991-1998): 초기에는 주전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었으나, 1997년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J.리그컵과 천황배 우승에 기여했다.
  •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 (1999-2003): J2 리그로 강등된 팀을 J1 리그로 승격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 주빌로 이와타 (2003-2008): 2003 천황배 우승에 기여했으며, 2004년에는 주전 선수로 활약했다.


2007년 은퇴를 발표했으나, 백업 골키퍼의 부상으로 2008년 6월까지 선수로 복귀했다.

2. 1. 가시마 앤틀러스 (1991-1998)

사토는 1991년 스미토모 금속(나중에 가시마 앤틀러스)에 입단했다. 첫 시즌에는 많은 경기에 출전했지만, 1992년부터는 후루카와 마사아키에 밀려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1994년에 처음으로 경기에 출전했지만, 데뷔 후 3경기에서 연속으로 PK를 실점했다.[1]

1995년에는 후루카와의 부상으로 출전 기회를 얻어 실력을 어필했지만, 여전히 주전 경쟁을 해야 했다.[1] 팀은 1996 J1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제프 이치하라와의 경기에서는 주력 선수의 절반가량이 결장하고 퇴장 선수까지 나온 상황에서, 사토의 선방으로 0대0 무승부를 기록, 승부차기까지 이어졌다. 팀의 실축에도 불구하고 사토는 2개의 PK를 막아내며 4-2 승리를 이끌었다.[1]

1997년 조앙 카를루스 감독은 사토를 주전 골키퍼로 기용했다.[1] 팀은 J.리그컵과 천황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리그 1st 스테이지와 나비스코컵 우승에 기여했지만, 주빌로 이와타와의 챔피언십 2차전에서 나카야마 마사시에게 공을 빼앗겨 실점하며 팀은 우승을 놓쳤다.[1] 그러나 같은 해 천황배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1]

1998년에는 무릎 부상으로 인해 다카쿠와 다이지로에게 주전 골키퍼 자리를 내주었다.[1]

2. 2.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 (1999-2003)

1999년, J2로 강등된 콘사돌레 삿포로J1으로 승격시키려는 오카다 다케시 신임 감독의 제안에 응하여 출전 기회를 얻기 위해 임대 이적했다.[1] 2000년에는 J2 우승 및 J1 승격에 기여했으며, 이 해 J2에서 삿포로의 실점은 경기당 0.55점이라는 경이적인 수치였다.[1] 2001년에는 삿포로로 완전 이적하여 J1 잔류의 주역이 되었고, 일본 대표로도 선출되었다.[1] 오카다 다케시 감독은 "(삿포로가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사토 등, 극히 일부 선수들의 실력에 의존한 것이다"라고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언급했다.[1]

2003년에도 삿포로에 잔류하여 주전 골키퍼와 팀 주장을 맡았다.[1]

2. 3. 주빌로 이와타 (2003-2008)

2003년 9월, 주빌로 이와타로 이적했다.[2] 리그 경기에는 출전 기회가 없었지만, 제83회 천황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모든 경기에 출전하여 우승을 차지했다. 2004년에는 주전 선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2005년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가와구치 요시카쓰가 영입되면서 2005년부터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2007년 11월에 은퇴를 발표했다. 그러나 백업 골키퍼가 부상을 입어 2008년 6월까지 선수로 복귀했다.

가시마 앤틀러스 시절 은사인 조앙 카를루스가 삿포로의 감독으로 취임했지만, 지도 방침으로 대립하여 젊은 후지가야 요스케에게 주전 골키퍼 자리를 빼앗겼다. 그러던 중, 같은 해 시즌 도중에 골키퍼 부족[2] 상태가 된 이와타로부터 오퍼를 받아 임대 이적을 결심했다. 콤비네이션 문제로 리그전 출전 기회는 없었지만, 야마모토 히로마사의 불안정한 플레이가 계속되면서, 천황배에서는 골문을 지켜 안정적인 플레이로 주빌로 이와타의 사상 첫 천황배 제패에 공헌했다. 이듬해에는 완전 이적하여 주전 골키퍼로서 활약했다.

2005년일본 대표의 수호신 가와구치 요시카쓰가 입단하고, 본인의 부상 등으로 벤치를 지키는 일이 많아졌지만, 출전한 경기에서는 안정적인 플레이로 팀을 지탱했다.

2007년 시즌 전, 자신의 팬이 제작한 사이트에 "올해를 라스트 이어로 하겠다"라고 코멘트했고, 구단 측의 설득에도 그 의지는 변하지 않아, 11월 29일에 2007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는 것이 발표되었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발표 후 이와타 외에도 옛 소속팀인 가시마와 출신지 클럽인 베갈타 센다이에서 코치 취임 제안을 받았지만, "어린 선수 육성을 하고 싶다"는 의지에 따라 이와타의 주니어 유스팀 골키퍼(GK) 코치로 취임했다. 그러나 핫타 나오키의 부상으로 팀의 요청을 받아 2008년 2월 21일부터 6월 30일까지 기간 한정으로 선수로 복귀했다.[3] 컵 경기에서는 벤치에 들어갔다.

2009년 베갈타 센다이의 골키퍼(GK) 코치로 취임했다.

2014년 12월 24일, 2015년 JFA의 U-15 일본 대표 골키퍼(GK) 코치로 취임하는 것을 발표했다.[4] U-22 일본 대표 골키퍼(GK) 코치도 겸임했다.

4. 개인 기록

사토 요헤이는 선수 시절 여러 대회에 출전했다. 다음은 그의 클럽 기록을 정리한 표이다.

클럽 기록리그리그 컵대륙 대회합계
시즌클럽리그출장출장출장출장출장
일본리그천황배J리그컵아시아합계
1991/92스미토모 금속JSL 디비전 115000-150
1992가시마 앤틀러스J1 리그-0000-00
1993000000-00
1994500000-50
199526040--300
199615000100-250
19972805060-390
1998201000-30
1999콘사돌레 삿포로J2 리그3503020-400
20003703020-420
2001J1 리그2900020-310
20022701060-340
2003J2 리그7000--70
2003주빌로 이와타J1 리그005000-50
2004230205050350
200560001050120
2006102010-40
2007200010-30
2008000000-00
합계26802603601003300



1997년 J리그 챔피언십 2경기, 2004년 수퍼컵 1경기에 출전했다.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는 2004년과 2005년에 주빌로 이와타 소속으로 총 10경기에 출전했다.


  • J리그 첫 출전: 1994년 8월 10일 대 주빌로 이와타전 (가시마 스타디움)
  • JSL(2부) 첫 출전: 1992년 1월 19일 대 요미우리 주니어전 (스미토모 금속 가시마 종합 그라운드)

4. 1. 수상 경력

구단대회수상 횟수수상 연도
가시마 앤틀러스J1리그 1st 스테이지1회1997년
J리그컵1회1997년
천황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1회1997년
일본 슈퍼컵2회1997년, 1998년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J2리그1회2000년


5. 여담


  • J1 우승, J2 승격 및 J1으로의 승격, J2로의 강등을 모두 선수로서 경험하였다.
  • 현역 생활 마지막 소속 클럽이자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주빌로 이와타와 인연이 깊다. J리그 공식전 데뷔도 이와타전이었으며, 1997년 챔피언십에서 논란이 된 상황(본문 상세 내용 참조) 당시 상대 팀도 이와타였다. 또한, 사토 본인의 말에 따르면 고등학교 시절 스미토모 금속(→가시마)과 야마하 발동기(→이와타)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이와타 입단 직후 인터뷰에서 스미토모 금속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야마하의 주전 골키퍼는 모리시타 신이치였기 때문에 스미토모 금속 쪽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 "경기에서 이겨도 별로 평가받지 못하지만, 실점하거나 경기에서 지면 가장 먼저 책임을 져야 하는 포지션"이라는 이유로 골키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삿포로 시절 디도 하프너의 지도를 수년간 받으면서 골키퍼의 즐거움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고 한다.

참조

[1] 서적 J.LEAGUE OFFICIAL FANS' GUIDE 2007
[2] 문서
[3] 웹사이트 佐藤洋平コーチの現役復帰のお知らせ http://www.jubilo-iw[...]
[4] 웹사이트 佐藤洋平GKコーチ JFA U-15日本代表GKコーチ就任のお知らせ http://www.vegalta.c[...] 201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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