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역모 사무소 방화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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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새역모 사무소 방화사건은 2001년 8월 7일, 일본 도쿄도 분쿄구 혼고에 위치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 사무실에 발생한 방화 사건이다. 시한식 발화 장치가 사용되었고, 경찰은 신좌익 세력의 테러로 규정했다. '혁명군'을 자칭하는 단체가 범행 성명을 통해 도립 양호 학교 교과서 채택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으며, 경찰은 혁노협 반주류파를 용의선상에 두고 수사를 진행했다. 이 사건은 일본 우익 교과서 문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한국에서도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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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역모 사무소 방화사건 | |
|---|---|
| 개요 | |
| 사건 종류 | 방화 |
| 발생일 | 2001년 1월 16일 |
| 발생 위치 | 일본 도쿄도 분쿄구 |
| 목표 |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사무소 |
| 원인 |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역사 수정주의적 견해에 대한 항의 정신 질환 |
| 공격 유형 | 방화 |
| 사망자 | 0명 |
| 부상자 | 0명 |
| 가해자 | 오가와 게이치(小川啓致, 당시 43세) |
| 형량 | 징역 6년 |
| 배경 | |
|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 우익 단체 |
| 논쟁적인 역사관 |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한 부정 또는 축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축소 또는 부정 난징 대학살에 대한 부정 또는 축소 |
| 사건 전개 | |
| 오가와 게이치의 범행 동기 |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역사관에 대한 분노 |
| 방화 | 사무실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름 |
| 체포 | 방화 현장에서 체포됨 |
| 재판 | 도쿄 지방 법원에서 징역 6년 선고 |
| 결과 | |
|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 미친 영향 | 사무실 손실 활동 위축 대중의 비판 증가 |
| 역사 수정주의 논쟁에 미친 영향 | 논쟁 심화 역사 교육에 대한 관심 증가 |
| 같이 보기 | |
| 관련 항목 |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 방화 |
2. 사건의 경위
2001년 8월 7일, 도쿄도 분쿄구 혼고 2초메에 있는 3층 건물 1층에서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1] 이 건물 1층에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사무실이 있었으나, 곧 진화되어 창문 등이 손상되는 정도에서 그쳤다.[1] 주변은 잡거 빌딩이나 주택 등이 밀집한 지역으로, 자칫 큰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1]
경찰 조사 결과, 시한식 발화 장치와 가연성 액체가 담긴 폴리탱크가 발견되었고, 경시청 공안부는 새역모를 표적으로 한 신좌익 세력의 테러 사건으로 단정, 혼후지 경찰서에 수사 본부를 설치했다.[2]
사건 당일 새역모는 기자 회견을 열어 "도쿄도 교육위원회가 후소샤의 교과서 채택을 결정한 당일에 사건이 발생했으며, 이는 채택 방해를 의도한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하며, 폭력에 굴하지 않고 교과서 시정을 추진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3]
8월 10일에는 "혁명군"이라고 자칭하는 자로부터 각 보도 기관에 범행 성명문이 우편으로 발송되었다.[4][5] 성명문에는 "도립 양호 학교에 대한 '역사' '시민' 교과서의 차별주의적 강행 채택에 대한, 혁명적 보복이다"라고 적혀 있었다.[4] 공안부는 이 문구를 통해 혁노협 반주류파의 범행으로 단정했다.[5]
8월 13일, 공안부는 다이토구 이리야에 있는 혁노협 반주류파의 활동 거점 및 개인 주택 등 가나가와현 내 7곳을 현주 건조물 등 방화 혐의로 일제 수색, 기관지 및 플로피 디스크 등 65점을 압수했다.[6][7] 8월 30일에는 고마자와 대학 구내에 있는 활동 거점 등 7곳을 현주 건조물 등 방화 미수 혐의로 가택 수색했다.[8]
2. 1. 초기 수사
3.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반응
4. 범행 성명
2001년 8월 10일, '혁명군'을 자칭하는 자가 각 보도 기관에 범행 성명문을 우편으로 발송했다.[4][5] 성명문에는 "도립 양호 학교에 대한 '역사' '시민' 교과서의 차별주의적 강행 채택에 대한 혁명적 보복이다"라고 기재되어 있었다.[4] 공안부는 이 문구로부터 혁노협 반주류파의 범행으로 단정했다.[5]
이 성명문을 받아 공안부는 같은 해 8월 13일, 다이토구 이리야에 있는 혁노협 반주류파의 활동 거점 및 개인 주택 등 가나가와현 내를 포함하여 7곳을 현주 건조물 등 방화 혐의로 일제 수색, 기관지 및 플로피 디스크 등 65점을 압수했다.[6][7] 또한, 8월 30일에는 고마자와 대학 구내에 있는 활동 거점 등 7곳을 현주 건조물 등 방화 미수 혐의로 가택 수색했다.[8]
4. 1. 경찰의 추가 수사
5. 사건의 의미와 영향
5. 1. 일본 우익 교과서 문제
5. 2. 한국의 관점
참조
[1]
뉴스
東京本郷のビルで爆発? 「歴史教科書をつくる会」事務所入居、窓枠など焦がす
読売新聞
2001-08-08
[2]
뉴스
「つくる会」ビル放火 過激派の犯行断定/警視庁
読売新聞
2001-08-08
[3]
뉴스
採択妨害意図、暴力に屈せず」放火事件で「つくる会」が声明
朝日新聞
2001-08-09
[4]
뉴스
報道機関に犯行声明文 「歴史教科書つくる会」へのゲリラ事件
朝日新聞
2001-08-10
[5]
뉴스
「つくる会」放火事件で犯行声明/警視庁=訂正あり
読売新聞
2001-08-10
[6]
뉴스
「つくる会」放火事件 過激派拠点を捜索/警視庁公安部
読売新聞
2001-08-13
[7]
뉴스
革労協の拠点を警視庁が捜索 「つくる会」放火容疑
朝日新聞
2001-08-13
[8]
뉴스
駒沢大構内の革労協を捜索 つくる会事務所放火
朝日新聞
2001-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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