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흥천사 시왕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서울 흥천사 시왕도는 1885년 조선 왕실 상궁들의 시주로 제작된 불화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0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폭은 시왕과 지옥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19세기 말 서울·경기 지역 시왕도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뛰어난 묘사, 붉은색과 금의 사용, 왕실 발원 불화로서의 품격을 보여준다. 일부 방제와 내용의 혼동으로 인해 원형 장황 복원이 필요하며, 화계사 시왕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885년 작품 - 서울 흥천사 극락보전 극락구품도
서울 흥천사 극락보전 극락구품도는 19세기 유행한 형식으로 극락정토를 묘사한 불화로, 석가모니의 영산회상도와 구품연못 등을 표현하며, 1885년 화승들이 상궁들의 시주를 받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사실적인 묘사와 독특한 표현 방식이 특징이다. - 1885년 작품 - 탈아론
탈아론은 후쿠자와 유키치가 주창한 사상으로, 일본이 아시아적 가치에서 벗어나 서구 문명과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다는 비판을 받으며 동아시아 역사 인식 관련 논쟁적인 주제로 남아있다. - 시왕도 - 서울 안양암 명부전 시왕도 및 사자도
서울 안양암 명부전 시왕도 및 사자도는 망자를 심판하는 시왕과 사자를 묘사한 그림으로, 19세기 말 서울·경기 지역 시왕도의 도상을 따르며 화가 고산의 화풍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 문화재자료이다. - 시왕도 - 고성 옥천사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
고성 옥천사 지장보살도 및 시왕도는 1744년에 효안 등 11명의 화승이 제작하여 옥천사에 봉안된 불화로, 지장보살도와 독특한 구성의 시왕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2016년 제2초강대왕도가 환수되어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 지장보살도는 1994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조선 후기 불교 미술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 서울 성북구의 문화유산 - 한량무
한량무는 조선 후기 남사당패에서 유래하여 진주 교방에서 전승되는 7인의 춤으로, 한량, 별감, 승려, 색시 등의 등장인물을 통해 당시 사회상을 풍자하며, 북, 장구 등 악기 반주에 맞춰 춤사위를 펼친다. - 서울 성북구의 문화유산 - 정릉 (신덕왕후)
조선 태조의 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은 신덕왕후 사후 태종에 의해 후궁으로 격하되어 능이 천장되는 등 부침을 겪었으나, 이후 왕후로 복권되고 신덕고황후로 추존되었다.
서울 흥천사 시왕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흥천사 시왕도 | |
![]() | |
국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유형 | 유형문화재 |
번호 | 423 |
지정일 | 2018년 2월 8일 |
주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흥천사길 29 |
관리 | 대한불교조계종 흥천사 |
수량 | 4점 |
2. 지정 사유
흥천사 시왕도는 조선 왕실의 상궁들이 시주·발원하여 1885년에 제작되었다.[1] 각 인물의 표현, 뛰어난 지옥 묘사, 적색과 풍부한 금의 사용, 각종 기물, 호위신장들의 갑옷에 이르기까지 매우 완성도 높은 왕실발원 불화로서의 품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1]
흥천사 시왕도는 10폭으로, 각 폭마다 규격이 조금씩 다르다.[1] 1·3왕도는 100×133cm, 99.5×133cm이고, 2·4왕도는 134.5×99.7cm, 134.5×100.5cm이다.[1] 5·7·9왕도는 122.7×70.4cm, 122.7×74.5cm, 122.7×70.8cm이며, 6·8·10왕도는 72.2×122.4cm, 73.2×123.5cm, 72.5×121.5cm이다.[1]
흥천사 시왕도(1885)는 19세기 말 서울·경기 지역에서 유행했던 대표적인 시왕도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보광사 시왕도(1872), 화계사 시왕도(1878), 봉국사 시왕도(1898), 봉원사 시왕도(19세기 말) 등과 유사한 도상을 보여준다.[1]
일부 방제가 누락되거나 그 내용 역시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패널에 오려 붙일 때 그 내용과 순서에 다소 혼동이 있어 후에 재개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1] 19세기 말 서울·경기지역에서 성행했던 대표적인 시왕도 금이 많이 사용된 당대의 완성도 높은 수준작으로 평가된다.[1]
서울 지역의 시왕도 형식을 대표하는 작품에 속한다는 점에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1]
3. 규격
4. 조사 보고서
시왕도는 패널에 오려 붙인 형식으로, 열 명의 왕 중 2~3명을 한 폭에 담은 4폭 형식이다.[1] 지장시왕도를 중심으로 우측(향좌)으로 1왕·3왕도 1폭, 5왕·7왕·9왕도 1폭, 좌측(향우)으로 2왕·4왕도 1폭, 6왕·8왕·10왕도 1폭이 배치되는 것이 원칙이나, 일부 방제가 누락되거나 내용이 일치하지 않아 패널에 오려 붙일 때 순서에 혼동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 즉, 1왕·3왕과 2왕·4왕의 방제가 뒤바뀌고, 5왕인 염라대왕에 제7태산대왕의 방제가 붙어있다.[1] 이는 각 왕의 방제가 각 화면에 쓰인 것이 아니라 두 화면에 걸쳐 쓰여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되며, 원형 장황 복원이 필요하다.[1]
화면 상단에는 시왕을 중심으로 심판 장면이, 하단에는 지옥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1] 시왕이 있는 곳은 성 안쪽, 지옥 형벌을 받는 곳은 성 바깥쪽으로 표현되었으며, 성벽과 구름, 산수, 성문 등으로 장면이 분할되어 조선 후기 시왕도의 특징을 보여준다.[1] 상단에는 병풍을 배경으로 시왕이 의자에 앉아 있고, 주위 난간과 계단 아래에 권속들이 시립하고 있다.[1] 옥졸은 대부분 창과 같은 무기를 들고 있으며, 판관은 복두를 쓰고 傘이나 扇 등을, 동자는 벼루, 두루마리, 책, 천녀는 扇을 들고 있다.[1] 하단은 지옥 형벌 장면으로 채워져 있으며, 각 대왕도 아래 지옥 장면은 다음과 같다.[1]
5·7·9왕도와 6·8·10왕도의 화기(畫記)는 배접할 때 일부 잘려졌으나, "삼각산 흥천사 명부전에 봉안되었으며", "상궁이 시주하였다"는 내용은 읽을 수 있다.[1] 특히 "을유(乙酉)"의 "유(酉)"가 남아있어 1885년에 제작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1]
10장면이 담긴 4폭이 모두 남아 있는 시왕도(1885)는 한 군데 찢어진 손상을 제외하면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1] 화계사 시왕도(1878)를 참조하여 원형 장황을 복원할 필요성이 제기된다.[1]
이 시왕도는 상궁들이 참여하여 시주·발원한 작품으로, 금이 많이 사용된 당대 최고 수준의 작품으로 평가된다.[1] 화계사 시왕도는 6·8·10왕도 1폭이 결실되었으나, 흥천사 시왕도는 4폭 모두 남아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1] 각 인물 표현, 뛰어난 지옥 묘사, 붉은색과 풍부한 금의 사용, 각종 기물, 호위신장들의 갑옷 등 매우 정교하고 완성도 높은 왕실 발원 불화의 품격을 보여주며, 조선 말기 서울 지역 시왕도 형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1]
4. 1. 구성 및 형식
4. 2. 도상 특징
4. 3. 방제 혼동 및 복원 필요성
시왕도는 패널에 오려 붙인 형식으로, 열 명의 왕 중 2왕 또는 3왕을 한 폭(점)으로 구성한 4폭(점) 형식이다.[1] 지장시왕도를 중심으로 우측(향좌)으로 1왕·3왕도 1폭, 5왕·7왕·9왕도 1폭, 좌측(향우)으로 2왕·4왕도 1폭, 6왕·8왕·10왕도 1폭 등이 배치되는 것이 원칙이나 일부 방제가 누락되거나 그 내용 역시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패널에 오려 붙일 때 그 내용과 순서에 다소 혼동이 있었다고 생각된다.[1]
확인 결과, 1왕·3왕과 2왕·4왕의 방제가 뒤바뀌고 5왕인 염라대왕에는 제7태산대왕의 방제가 붙어있었다.[1] 이는 원래 각 왕의 방제가 각 화면에 쓰여진 것이 아니라 두 화면에 걸쳐있는 것도 있다 보니 판넬에 오려 붙일 때 혼동이 된 것으로 보인다.[1]
5·7·9왕도와 6·8·10왕도의 화기는 배접할 때 일부 잘려졌으나 “삼각산 흥천사 명부전에 봉안되었으며”, “상궁이 시주하였다”는 내용은 읽을 수 있다.[1] 특히 “을유(乙酉)”의 “유(酉)”가 남아있어 1885년에 제작된 것을 이번 조사에서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1]
따라서 서울 화계사 시왕도(1878)를 참조하여 원형의 장황을 복원해야할 필요성이 있다.[1]
4. 4. 화기(畵記)
4. 5. 유사 도상
5. 의의 및 가치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