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쥐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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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앙리 쥐베르는 1844년 알자스에서 태어난 프랑스의 화가로, 해군 장교로 복무하며 멕시코와 조선을 방문했다. 1866년 병인양요에 참전하여 강화도와 한강 수로를 조사했으며, 이후 화가로 전업하여 풍경화와 해양화를 주로 그렸다. 그는 1873년 여행 잡지에 조선에서의 경험을 기고하고, 19세기 조선의 풍물을 묘사한 작품들을 남겨 역사적,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1886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훈하고 1909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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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쥐베르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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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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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장 앙리 쥐베르 |
출생 | 1844년 6월 24일 |
출생지 | 릭사이, 오랭, 알자스, 프랑스 |
사망 | 1909년 4월 7일 |
사망지 | 파리, 프랑스 |
국적 | 프랑스 |
분야 | 풍경화 |
소속 | 1869년 프랑스 예술가 살롱 1884년 프랑스 수채화 협회 |
수상 | |
훈장 | 레지옹 도뇌르 훈장 - 슈발리에 (1886년) |
2. 생애
1868년 샤를 글레르의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배우고, 1869년 살롱 도 뫼아르티스트 프랑세에 작품을 출품했다. 1873년에는 자신의 삽화와 함께 한국에서의 경험을 아셰트의 정기간행물인 ''르 투르 뒤 몽드''에 게재했다.
1884년부터 프랑스 수채화가 협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1886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를 수훈했다.
1909년 4월 7일 파리에서 사망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릭스하임에 쥐베르 & 시를 설립한 장 쥐베르였다.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앙리 쥐베르는 1844년 프랑스 알자스 지방 오랭 주의 릭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릭사임에서 벽지 회사를 운영했으며, 이러한 환경은 그가 예술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스트라스부르와 파리에서 수학한 후, 1861년 브레스트의 해군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862년부터 1863년까지 해군 사관학교에서 해양 화가 오귀스트 메이에에게 그림과 제도를 배웠다.2. 2. 해군 장교 복무 및 병인양요 참전
1861년 브레스트의 해군 학교에 입학했다. 해군 학교에서는 1862년부터 1863년까지 해양 화가 오귀스트 메이에(Auguste Mayer)에게 그림과 제도를 배웠다.1864년 해군 장교가 되어 프리깃함 "La Thémis"에 승선하여 멕시코 황제가 되기 위해 멕시코로 건너가는 막시밀리안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다. 1865년 코르벳함 "프리모게(Le Primauguet)"에 배속되었다. 프리모게는 사이공에 기지를 둔 프랑스 극동 함대에 합류하기 위해 항해했으며, 항해 중 기항한 각지의 풍경을 스케치했다. 사이공에서 홍콩, 요코하마에도 기항했다. 1866년 10월 조선에서 프랑스인 선교사가 처형(병인박해)된 것을 계기로, 조선과 프랑스군 간에 전투(병인양요)가 발생했고, 프랑스군은 강화도에 상륙하여 한강을 잇는 요새를 점령했다. 프리모게도 이 원정에 참가하여 쥐베르는 강화도와 한강의 수로 조사 등의 임무에 종사했다. 임무를 마치고 자바, 호주를 경유하여 프랑스로 귀국했다.
2. 3. 화가로서의 활동
1868년 귀국한 쥐베르는 화가가 되기 위해 해군에서 퇴역하고, 샤를 글레르의 화숙에서 그림을 배웠다. 1869년 살롱 도 뫼아르티스트 프랑세에 작품을 출품했다. 1870년 보불전쟁이 발발하자 군에 복귀하여 파리 방어전에 참전했다. 전쟁 후 파리에 정착하여 1872년 파리에 스튜디오를 열었다. 1874년에는 파리의 알자스 출신자들이 설립한 에콜 알자시엔(École alsacienne)의 설립자 중 한 명이 되었다.1880년대 초, 프랑스 수채화가 협회(Société d'aquarellistes français)의 회원이 되어 매년 협회 전람회에 출품했으며, 런던에서도 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했다. 1897년 프랑스 예술가 협회 전람회 심사위원을 맡았으며, 프랑스 학사원 입회는 거절했다.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메달을 수상했다.
1886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를 수훈했고, 1906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 오피시에를 수훈했다.
3. 쥐베르와 조선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해군 장교로 조선을 방문했다. 1873년 아셰트의 여행 잡지 《르 투르 뒤 몽드》에 조선에서의 경험을 담은 삽화와 글을 기고했으며, 쥐베르가 제작한 조선반도 지도는 당시 조선의 지리 정보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었다.
4. 작품
앙리 쥐베르는 풍경화와 해양화를 주로 그렸다. 샤를 글레르의 화실에서 그림을 공부했으며, 1869년 살롱 도 뫼아르티스트 프랑세에 입회했다. 1873년에는 아셰트의 정기간행물인 ''르 투르 뒤 몽드''에 자신의 삽화와 함께 한국에서의 경험을 담은 글을 게재했다.[4] 1884년부터는 프랑스 수채화가 협회인 소시에테 데 자쿼렐리스트 프랑세의 회원이었다.[5]
4. 1. 대표작
5. 평가 및 영향
쥐베르의 작품은 19세기 후반 프랑스 회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 조선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역사적 기록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그의 작품은 한국 근대사 연구, 특히 병인양요와 관련된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그는 1868년 샤를 글레르의 아틀리에에 들어가 1869년 살롱 도 뫼아르티스트 프랑세에 입회했다. 1873년에는 자신의 삽화와 함께 한국에서의 경험을 아셰트의 정기간행물인 ''르 투르 뒤 몽드''에 게재했다. 1884년부터는 소시에테 데 자쿼렐리스트 프랑세(프랑스 수채화가 협회)의 회원이었다.[1] 1886년에는 프랑스 Légion d'honneur|레지옹 도뇌르 훈장프랑스어 기사 작위를 받았다.[2]
참조
[1]
서적
Biographies alsaciennes avec portraits en photographie - Creator: Antoine Meyer (photographs) - [unpaginated; screen 164–168/286]
http://gallica.bnf.f[...]
2022-07-10
[2]
웹사이트
Une expédition en Corée - ''Le Tour du monde: Nouveau journal des voyages''
https://fr.wikisourc[...]
Hachette
[3]
서적
Société d'aquarellistes français: Première exposition; rue Laffitte, 16: Catalogue [s.n.]
https://archive.org/[...]
Paris: Imprimerie de D. Jouaust
2022-07-10
[4]
간행물
L'imagerie coréenne dans le livre et la presse en France. Périple à grands traits jusqu'à Zuber
[5]
간행물
Henri Zuber, un étonnant témoin de l'expédition de l'amiral Roze
2009-03/2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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