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파도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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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앙리 파도바니는 알제리 출신으로 코르시카에서 성장하여, 1970년대 후반 런던으로 이주하여 펑크 록 음악계에서 활동한 기타리스트이다. 그는 스튜어트 코플랜드, 스팅과 함께 1977년 밴드 더 폴리스를 결성했으나, 앤디 서머스의 합류로 탈퇴했다. 이후 웨인 카운티 & 더 일렉트릭 체어스, 더 미스테르 파이브즈, 더 플라잉 파도바니스를 결성하여 활동했으며, 솔로 앨범을 발매하고 영화 음악을 작곡하는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펼쳤다. 2007년에는 더 폴리스 재결합 투어에 참여했고, 자서전 출판 및 방송 활동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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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파도바니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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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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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앙리 파도바니 |
출생일 | 1952년 10월 14일 |
출생지 | 바스티아, 코르시카, 프랑스 |
직업 | 음악가, 작곡가, 프로듀서 |
장르 | 록, 포스트 펑크, 뉴 웨이브, 레게, 인스트루멘탈 록 |
악기 | 기타, 보컬, 피아노 |
활동 기간 | 1972년–현재 |
과거 멤버 | 폴리스, 웨인 카운티 & 더 일렉트릭 체어 |
2. 초기 생애와 음악 활동 (1952~1976)
앙리 파도바니는 1952년 10월 13일 알제리에서 태어나 코르시카의 산토-피에트로-디-베나코에서 성장했다. 엑상프로방스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중 지미 헨드릭스의 음악을 듣고 밴드 루퍼스를 결성했다.
1977년 2월, 스팅이 리드 보컬과 베이스 기타, 파도바니가 리드 기타, 스튜어트 코플랜드가 드럼과 리듬 기타를 맡은 폴리스는 첫 싱글 "Fall Out" b/w "Nothing Achieving"을 발매했다.[1] 그러나 스팅은 파도바니의 기술적 능력에 불만을 가졌고, 마이크 하울렛의 밴드 스트론튬 90에서 만난 앤디 서머스가 합류하면서 1977년 7월과 8월 짧은 기간 동안 폴리스는 4인조로 활동했다. 서머스는 밴드의 유일한 기타리스트가 되기를 원했고, 파도바니 자신도 두 사람의 기술적 능력 차이가 어색하다고 느꼈다.[3][4] 벨벳 언더그라운드 출신의 존 케일이 프로듀서를 맡은 스튜디오 세션이 중단된 다음 날 밤, 코플랜드는 파도바니에게 전화를 걸어 밴드를 떠나라고 요청했다.[4]
폴리스에서 쫓겨난 후, 파도바니는 코르시카에서 두 달간 휴가를 보낸 뒤 런던으로 돌아와 웨인 카운티 & 더 일렉트릭 체어스의 리듬 기타 자리를 맡았다.[3] 파도바니가 참여한 첫 앨범 ''Storm the Gates of Heaven''에서 그는 "Cry of Angels"의 음악을 작곡하며 작곡가로 데뷔했다. ''Things Your Mother Never Told You'' 앨범 이후 밴드는 둘로 나뉘었고, 파도바니는 베이시스트 발 할러, 드러머 J.J. 존슨과 함께 The Electric Chairs라는 이름으로 싱글 "So Many Ways"를 녹음한 후 해체했다.[5]
2. 1. 런던으로의 이주와 펑크 록 입문
1976년 12월, 앙리 파도바니는 런던으로 이주했다. 친구의 소개로 커브드 에어의 마지막 공연을 보러 갔는데, 공연에는 감명받지 못했지만 드러머 스튜어트 코플랜드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코플랜드는 파도바니에게 자신이 작곡한 곡을 들려주고 펑크 록 장르를 소개했다. 록시 클럽에서 공연을 본 후 파도바니는 펑크 밴드에 합류하기 위해 머리와 수염을 깎고 런던의 오디션에 합격했다.[3]파도바니는 코플랜드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했고, 코플랜드는 그에게 자신의 새로운 밴드인 폴리스에 합류할 것을 제안했다. 코플랜드는 이미 스팅을 섭외했지만, 펑크에 관심이 있고 실제로 연주가 가능한 기타리스트는 파도바니가 유일했다.[3] 코플랜드는 파도바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그는 영어를 잘 못했지만... 몇 개의 코드를 알고 있었고 매우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자르고 나니 정말 그 역할에 어울렸습니다."[3]
3. 더 폴리스 (1977)
1976년 런던으로 이주한 앙리 파도바니는 커브드 에어의 공연 후 스튜어트 코플랜드를 만나 펑크 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코플랜드의 제안으로 파도바니는 스팅과 함께 폴리스를 결성,[3] 1977년 2월 첫 싱글 "Fall Out" b/w "Nothing Achieving"을 발매했다.[1]
3. 1. 앤디 서머스의 합류와 파도바니의 탈퇴
스팅은 앙리 파도바니의 기타 실력에 불만을 품었다.[3] 마이크 하울렛의 밴드 스트론튬 90에서 잠시 활동한 후 만난 앤디 서머스를 영입했다.[4] 1977년 7월과 8월, 폴리스는 파도바니와 서머스가 기타를 나눠 연주하는 4인조로 잠시 활동했다. 밴드의 유일한 기타리스트가 되기를 원했던 서머스는 이러한 상황에 불만을 느꼈다.[4] 파도바니 자신도 두 사람의 기술적 능력 차이 때문에 어색한 구성이 되었다고 느꼈다.[3] 벨벳 언더그라운드 출신의 존 케일이 프로듀서를 맡았던 스튜디오 세션이 중단된 다음 날 밤, 스튜어트 코플랜드는 파도바니에게 전화를 걸어 밴드를 떠나달라고 요청했다.[4]4. 웨인 카운티 & 더 일렉트릭 체어스 (1978~1979)
앙리 파도바니는 더 폴리스에서 탈퇴한 후, 웨인 카운티 & 더 일렉트릭 체어스에 합류하여 리듬 기타를 담당했다.
5. 더 미스테르 파이브즈 (1980)
파도바니, 할러, 존슨은 일렉트릭 체어스 해체 이후에도 협업을 이어갔다. 1980년, 이들은 셋과 기타를 연주하는 크리스 리브스를 포함하여 더 미스테르 파이브즈(The Mystere Five's영어)를 결성했다.[6] 밴드 이름의 "Five" 표기는 밴드 레코드에서도 일관되지 않게 "five", 아라비아 숫자, 로마 숫자를 혼용했지만, 아포스트로피는 항상 이름의 공식 표기에 나타났다.
마크 "프렌치" 글로더는 밴드에서 연주 역할은 없었지만 모든 가사를 쓰고, 레코드 커버를 디자인하고, 레코드 레이블을 소유하며 참여했다. 글로더를 제외한 모든 멤버가 리드 보컬을 맡았다. 이 그룹은 의도적으로 익명 이미지를 사용하여 개별 멤버를 크레딧하지 않았다. 플라민 그루비스의 "Shake Some Action" 커버를 제외하고, 모든 곡은 그룹 전체가 작곡하고 프로듀싱한 것으로 크레딧되었다.[6]
더 미스테르 파이브즈는 1980년에 두 개의 인디 싱글 "Shake Some Action" b/w "No Message"와 "Never Say Thank You" b/w "Heart Rules the Head"를 녹음했다.[5] 두 싱글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고(''New Musical Express''는 첫 번째 싱글을 "완벽한 레코드"라고 불렀고, 나중에 두 번째 싱글을 "실제로 더 좋다"고 평가했다), 인디 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했으며, 라디오에서도 많은 방송을 탔다.[6] 싱글 발매 즈음 밴드 멤버들은 다른 프로젝트로 이동했고, 파도바니는 더 플라잉 파도바니스를 결성했다.[5]
6. 더 플라잉 파도바니스 (1981~1987, 2007~현재)
더 미스테르 파이브즈 활동 이후, 파도바니는 자신의 밴드인 더 플라잉 파도바니스를 결성했다.[5] 이 새로운 밴드는 더블 A-사이드 싱글 "Western Pasta" b/w "Vas plus haut" (1981)를 발매했다.[7] 더 플라잉 파도바니스는 EP ''Font L'Enfer''과 앨범 "''They Call Them Crazy''를 녹음하고 1987년 말에 해체했다.
2007년, 파도바니는 솔로 앨범 ''À croire que c'était pour la vie''를 녹음하면서 더 플라잉 파도바니스 시절 동료였던 크리스 머스토와 다시 만났다.
7. 솔로 활동 및 기타 활동 (1988~현재)
파도바니는 조니 선더스와 패티 팔라딘의 앨범 ''Copy Cats''에 참여했고, IRS 레코드의 부사장으로 재직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1]
8. 더 폴리스 재결합 (2007)
2007년 더 폴리스 재결합 투어 당시, 파도바니는 9월 29일 파리 공연의 마지막 앙코르 무대에 밴드와 함께 참여했다. 4인조로 구성된 더 폴리스는 밴드의 첫 앨범 ''Outlandos d'Amour''에 수록된 "Next to You"를 연주했다.[1]
9. 디스코그래피
앙리 파도바니는 스튜디오 앨범, 싱글, 컴필레이션 앨범을 포함한 다양한 음반을 발매했다.
9. 1. 스튜디오 앨범
연도 | 앨범 제목 | 비고 |
---|---|---|
1982 | 지옥에서 온 편지(Font L'Enfer) | |
1987 | 그들은 그들을 미쳤다고 부른다(They Call Them Crazy) | |
2007 | 3인조의 말썽(Three for Trouble) | |
2007 | 아 크로아 케 세테 푸르 라 비 | |
2016 | 아이 러브 투데이 | |
2022 | 코르시칸 검보 |
9. 2. 싱글
9. 3. 컴필레이션 앨범
- ''나는 아이들이 춤을 추도록 로큰롤만 연주해요: 조니 썬더 헌정'' (1998)
10. 영상 목록
- 《레가타 드 블랑》(2007)
- 《락앤롤... 오브 코스!》(2017)
참조
[1]
웹사이트
Cannes Film Festival
https://www.telegrap[...]
2010-05-22
[2]
간행물
The Hard Line
A&M Records Ltd.
[3]
서적
L'Historia Bandido
Proteus Books
[4]
서적
One Train Later
St. Martin's Press
[5]
웹사이트
JJ Johnson: Drummer Electric Chairs
http://www.punk77.co[...]
2010-08-01
[6]
웹사이트
New Wave Music – Mystere Five
http://www.drumpunk.[...]
2010-08-14
[7]
서적
NME Rock 'N' Roll Years
Reed International Books Ltd
[8]
웹사이트
Festa di a Nazione in Lisula, a Vergine Maria glurificata
https://www.cors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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