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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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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왕간은 소금 생산을 생업으로 하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왕수인에게 입문하여 지량지 설을 계승한 명나라의 학자이다. 그는 격물설에 독창성을 더하여 '독선'에서 탈피할 것을 설파하고 만물일체의 사상을 주장했다.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지방에서 강연 활동을 했으며, 저서로 『왕심재선생집』 5권이 있다.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태주학파는 농·공·상의 서민층을 교화하고 농한기에 강학을 실시했으며, 양명학 내부에서는 이단으로 취급받기도 했지만 근대 연구에서는 근대 사유나 반 권력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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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간
기본 정보
왕간
왕간
이름왕간
초명왕인
여지 (汝止, Ru Zhi)
시호심재 (心斎, Xin Zhai)
출생과 사망
출생1483년
사망1541년
학문
학파태주학파
영향 받은 사상가왕수인
기타
활동 지역태주

2. 생애

왕간은 소금 생산을 생업으로 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산둥으로 여행을 갔다가 취푸의 공묘를 참배한 것을 계기로 학문에 뜻을 두게 되었다. 1520년 왕수인에게 입문하여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왕양명 사후에는 왕기 등 동문들과 함께 지량지 설을 계승했다.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일처사(낭인 학자)로서 지방에서 강연 활동을 펼쳤다. 저서로는 『왕심재선생집』 5권이 있다.

2. 1. 학문

왕간의 학문은 격물설에 독창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자아를 지상으로 삼아 "독선"에서 탈피할 것을 설파했다. 여기서 "독선"은 치국평천하(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것)의 이상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 수양에만 힘쓰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만물일체'''의 사상도 설파했다.

2. 2. 태주학파

왕간의 문하에서는 하수, 한정, 주서와 같이 부유층과는 다른 출신의 학자(지식인)들이 배출되었다. 이들은 주요 활동 장소에 따라 태주학파(별칭 현성파, 또는 근대적인 구분에 따른 좌파, 내지 최좌파)로 불렸다.[1] 태주학파는 농민, 노동자, 상인 등 서민층에 대한 교화를 적극적으로 실천했으며, 농한기를 이용하여 강학을 실시하고 마을을 순회하며 가르침을 전파했다.[1]

2. 2. 1. 태주학파에 대한 평가

양명학 내부에서는 다른 정통파 양명 문하와 구별되는 이단적인 존재로 취급되었다(『명유학안』 등).[1] 근대 연구에서는 태주학파의 사상에서 근대 사유나 반권력과 같은 요소를 발견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1] 전근대와 근대 사이에 태주학파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경향이 있다.[1]

3. 저서

王心齋先生集|왕심재선생집중국어 5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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