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석 (18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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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호석(1822년)은 1822년 경기도 광주부 백현리에서 태어났으며, 말년에 감역을 지냈다. 그의 차남은 매국노 이완용이며, 1867년 이완용을 32촌 족형에게 양자로 보냈다. 이호석은 1888년 2월 10일 이전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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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 (1822년)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이호석 |
원어명 | 李鎬奭 |
다른 이름 | 이석준(李奭俊) |
출생일 | 1822년 3월 16일 |
출생지 | 경기도 광주부 낙생면 백현리 |
사망일 | 1888년 2월 10일 |
향년 | 66세 |
사망지 | 서울특별시 경기도 경성부 |
본관 | 우봉 이씨 |
경력 | 감역(監役) |
가족 | |
부모 | 생부 이질(李耋) 양부 이규(李圭) |
배우자 | 영산 신씨 |
자녀 | 슬하 2남 4녀 장남 이면용 차남 이완용32촌 지간에 족형인 이호준의 양자로 들어갔다. 장녀 우봉 이씨 차녀 우봉 이씨 삼녀 우봉 이씨 |
친척 | 조부 이광엽 며느리 양주 조씨 손자 이승구 손자 이항구 |
2. 생애
이호석은 1822년 3월 16일 경기도 광주부 낙생면 백현리(현재의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이석준이었으나, 자식이 없던 이규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이호석으로 개명하였다. 영산 신씨와 혼인하여 2남 3녀를 두었으며, 차남은 이완용이다. 1867년 32촌 지간인 이호준이 이완용을 양자로 들이겠다고 제안하자 이를 허락하였다. 말년에는 감역(監役)을 지냈으며, 의붓아버지 이규의 가르침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행적은 뚜렷하지 않으나, 족형 이호준이 1901년 사망하였으므로, 이호석은 1888년 이호준보다 먼저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
2. 1. 출생과 가계
이호석(李鎬奭)은 1822년 3월 16일 경기도 광주부 낙생면 백현리에서 아버지 이질(李耋)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이름은 이석준(李奭俊)이었으나, 자식이 없던 이규(李圭)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성장 후 이호석(李鎬奭)으로 개명하였다.이호석은 신석우(辛錫祐)의 딸인 영산 신씨와 결혼하여 2남 3녀를 두었는데, 이 중 차남이 이완용이었다. 1867년 32촌 지간인 이호준(李鎬俊)이 찾아와 이완용을 양자로 데려가겠다고 제안하자 이를 수락하였다.
2. 2. 혼인과 자녀
이호석은 신석우(辛錫祐)의 딸과 혼인하여 2남 3녀를 두었다. 차남은 이완용이다.[1] 1867년 32촌 지간인 이호준(李鎬俊)이 찾아와 이완용을 양자로 데려가겠다고 제안하자 이를 수락하였다.[1]2. 3. 이완용의 양자 입적
1867년 32촌 지간이자 감찰공파(監察公派) 후손인 이호준(李鎬俊)이 이완용을 양자로 데려가겠다는 제안을 하자, 이호석은 이를 수락하였다.[1] 이후 이호석은 아들 이완용과 떨어져 지내며 소식이 거의 없었으나, 몇 년 뒤 손주들을 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1]2. 4. 말년
이호석은 말년에 조선에서 감역(監役)을 지냈다. 의붓아버지 이규의 가르침은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1] 그는 신석우(辛錫祐)의 딸인 영산 신씨와 결혼하여 2남 3녀를 두었는데, 차남이 바로 이완용이었다.[1]1867년, 32촌 지간이자 감찰공파(監察公派) 후손인 이호준(李鎬俊)이 이완용을 양자로 보내달라고 제안하자, 이호석은 이를 받아들였다.[1] 이후 이완용과 소식이 거의 없었지만, 몇 년 후 손주들을 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호석은 부인 및 다른 자식들과 함께 지냈다.[1]
이후 이호석의 행적은 뚜렷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족형 이호준이 1901년 2월 28일에 사망한 것으로 보아, 이호석은 1888년 2월 10일에 이호준보다 먼저 사망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1]
3. 가계
이호석의 가계는 조선 후기 양반 가문으로, 증조부 이뢰는 명릉참봉을 지냈고 사후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증조모 해평 윤씨는 홍문관 교리를 지낸 윤득경의 딸이다. 친할아버지는 이광엽, 의붓아버지는 이규, 친아버지는 이질이다. 이호석은 영산 신씨와 혼인하여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 이면용은 진사를 지냈고, 차남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악명 높은 이완용이다.
관계 | 이름 | 비고 |
---|---|---|
증조부 | 이뢰(李耒) | 명릉참봉, 증 이조참판 |
증조모 | 해평 윤씨(海平尹氏) | 홍문관교리 윤득경(尹得敬)의 딸 |
친조부 | 이광엽(李光燁) | |
의붓아버지 | 이규(李圭) | |
친아버지 | 이질(李耋) | |
친어머니 | 미상 | |
배우자 | 영산 신씨 | 신석우(辛錫祐)의 딸 |
장남 | 이면용(李冕用) | 1885년 진사, 정릉 영 |
차남 | 이완용 | 친일반민족행위자 |
족숙 | 이해(李垓) | |
족형 | 이호준 | 1864년 문과, 판중추부사, 이완용의 의붓아버지 |
이완용의 아들 이항구 역시 이왕직 차관을 지내고 남작 작위를 받는 등, 이호석의 후손들은 일제강점기 동안 친일 행위를 통해 부와 권력을 누렸다.
3. 1. 직계
- 친아버지: 이질(李耋)
- 친어머니: 미상
- 배우자: 영산 신씨(1827~1893)
- * 장인: 신석우(辛錫祐)
- 장남: 이면용(李冕用, 1843~?) - 1885년 진사, 정릉 영(靖陵令)
- 차남: 이완용(李完用, 1858~1926)
3. 2. 방계
- 증조할아버지: 이뢰(李耒, 1733~1756) - 명릉참봉(明陵參奉) 역임, 사후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
- 증조할머니: 해평 윤씨(海平尹氏, 1732~1809) -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윤득경(尹得敬, 1702~1742)의 딸.
- 친할아버지: 이광엽(李光燁)
- 의붓아버지: 이규(李圭)
- 친아버지: 이질(李耋)
- 친어머니: 미상
- 배우자: 영산 신씨(1827~1893)
- 장인: 신석우(辛錫祐)
- 장남: 이면용(李冕用, 1843~?) - 1885년 진사, 정릉 영(靖陵令) 역임.
- 손자: 이학구(李鶴九, 1862~?) - 1891년 진사. 건원릉(健元陵)·현릉(顯陵)·목릉(穆陵)·휘릉(徽陵)·숭릉(崇陵)·혜릉(惠陵)·원릉(元陵)·수릉(綏陵)·경릉(景陵) 참봉(參奉) 역임.
- 손자: 이인구(李麟九, 1867~?) - 1894년 진사. 공릉(恭陵)·순릉(順陵)·영릉(永陵) 참봉 역임.
- 차남: 이완용(李完用, 1858~1926)
- 손자: 이승구(李升九, 1880~1909)
- 손부: 임건구(任乾九, ?~?) - 풍천 임씨(豊川任氏) 임대준(任大準, 1857~?)의 딸.
- 증손자(양자): 이병길(李丙吉, 1905~1950) - 일본 궁내성(宮內省) 식부직(式部職) 역임. 중추원 참의, 남작 작위 승계. 친일반민족행위자. 생부 이항구(李恒九).
- 증손부: 이병전(李丙田) - 전주 이씨(全州李氏) 이인영(李仁榮)의 장녀.
- 현손자: 이윤형(李允衡) - 대한사격연맹 사무국장 역임.
- 손자: 이항구(李恒九, 1881~1945) - 이왕직 차관 역임, 남작 작위.
- 손부: 김진구(金鎭九, ?~1933) - 안동 김씨(安東金氏) 김문규(金文圭)의 딸.
- 증손자: 이병길(李丙吉, 출계)
- 증손자: 이병희(李丙喜, 출계)
- 증손자: 이병주(李丙周, 1913~?) - 일본 학습원고등과(東京學習院高等科) 졸업. 남작 작위 승계. 1962년 일본 밀항 후 일본 국적 취득.
- 현손자: 이석형
- 증손자: 이병철(李丙喆) - 일본 학습원중등과(東京學習院中等科) 졸업.
- 증손녀: 이병오(李丙吾) - 일본 여자실천학교(東京女子實踐學校) 졸업.
- 손녀: 요절
- (친)족숙: 이해(李垓)
- 족형: 이호준(李鎬俊, 1821∼1901) - 1864년 문과, 판중추부사. 시호는 충익(忠翼). 이완용의 의붓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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