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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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영희는 경기도 평택 출신의 국악인으로, 경기 민속음악, 무속음악, 무용 등을 익혔다. 1930년대부터 서울에서 활동하며 조선음악연구소 악사, 한성준무용단 반주악사, 서울중앙방송국 전속국악사로 활동했다. 1960년대부터 국악예술학교 설립에 참여하고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을 창설하여 초대 상임지휘자를 맡았으며, 해금과 피리 시나위를 바탕으로 해금산조와 피리산조를 완성하여 산조의 대가로 불렸다.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나, 1975년 해외 이민으로 인해 보유자 인정이 해제되었다. 부인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 성금연이며, 자녀와 손자, 증손녀 등 국악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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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희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지영희 |
본명 | 지천만 |
출생일 | 1909년 8월 14일 |
출생지 | 경기도 평택시 |
사망일 | 1980년 2월 2일 |
분야 | 해금 산조, 피리, 시나위 |
직업 | 음악가 |
배우자 | 성금연 |
기타 정보 | |
중요무형문화재 | 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 보유자 |
2. 생애
지영희는 경기도 평택시에서 태어나 경기 민속음악, 무속음악, 무용 등을 익혔다. 1930년대 중반부터 서울특별시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여, 1937년 조선음악연구소 악사, 1938년 한성준무용단의 반주악사, 1946년 서울중앙방송국 전속국악사로 활동하였다.
1960년대부터 국악예술학교 설립에 참여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고, 1966년에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을 창설하여 초대 상임지휘자를 맡았다.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나,[1] 1975년 해외 이민으로 인해 보유자 인정이 해제되었다.[2] 해금과 피리 시나위를 바탕으로 해금산조와 피리산조를 완성하여 산조의 대가로 이름을 알렸다.[3]
2. 1. 초기 생애 및 활동
지영희는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경기 민속음악 및 무속음악, 무용 등을 폭넓게 익힌 후 1930년대 중반부터 서울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1937년 조선음악연구소에 입소하여 악사가 되었고, 1938년에는 한성준무용단(韓成俊舞踊團)의 반주악사로 활약하였으며, 1946년에는 서울중앙방송국 전속국악사가 되었다.1960년대부터는 국악예술학교의 설립에 동참하여 후진을 양성하였고, 1966년에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을 창설하여 초대상임지휘자로 취임하였다.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나,[1] 1975년 해외이민으로 보유자 인정이 해제되었다.[2]
해금과 피리 시나위를 바탕으로 해금산조와 피리산조를 완성하면서 산조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다.[3]
2. 2. 후진 양성 및 국악 발전 기여
지영희는 경기도 평택시에서 태어나 경기 민속음악, 무속음악, 무용 등을 익혔다. 1930년대 중반부터 서울특별시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여, 1937년 조선음악연구소 악사, 1938년 한성준무용단의 반주악사, 1946년 서울중앙방송국 전속국악사로 활동하였다.[3]1960년대부터 국악예술학교 설립에 참여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고, 1966년에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을 창설하여 초대 상임지휘자를 맡았다.[3]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나,[1] 1975년 해외 이민으로 인해 보유자 인정이 해제되었다.[2] 해금과 피리 시나위를 바탕으로 해금산조와 피리산조를 완성하여 산조의 대가로 이름을 알렸다.[3]
2. 3.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및 해제
2. 4. 산조의 대가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경기 민속음악 및 무속음악, 무용 등을 폭넓게 익힌 후 1930년대 중반부터 서울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3] 1937년 조선음악연구소에 입소하여 악사가 되었고, 1938년에는 한성준무용단의 반주악사로 활약하였으며, 1946년에는 서울중앙방송국 전속국악사가 되었다.[3]1960년대부터는 국악예술학교의 설립에 동참하여 후진을 양성하였고, 1966년에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을 창설하여 초대상임지휘자로 취임하였다.[3] 197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나,[1] 1975년 해외이민으로 보유자 인정이 해제되었다.[2]
해금과 피리 시나위를 바탕으로 해금산조와 피리산조를 완성하면서 산조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다.[3]
3. 가족
지영희의 부인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은 성금연이다.[2][4] 자녀로는 지수남, 지수복, 지성자, 지미자, 지순자, 지윤자, 지명자, 지재현이 있다.[2][4] 손자 강봉천은 국악 작곡으로 활약하고 있으며, 지성자의 딸 김귀자, 지순자의 딸 최희연 등이 대를 잇고 있다.[2][4] 지윤자의 자녀들인 이철희, 이상윤도 미국에서 활동 중이다.[2][4]
참조
[1]
웹인용
문화공보부고시제249호(중요무형문화재지정변경)
http://theme.archive[...]
1973-11-05
[2]
웹인용
문화공보부고시제310호(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인정해제)
http://theme.archive[...]
1975-05-30
[3]
서적
김귀자, 성금련 가야금 창작곡집
도서출판 어울림
2006
[4]
뉴스
성금연 명인 20주기 추모공연
https://news.naver.c[...]
2006-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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