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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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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공옥진은 1931년 전라남도 순천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판소리 명창이자 1인 창무극의 개척자이다. 일곱 살에 일본으로 건너가 최승희에게 춤을 배우고, 이후 아버지에게 판소리를 익혔다. 곱사춤, 원숭이춤 등 독창적인 춤과 노래, 연기를 결합한 1인극을 선보이며 1970년대 후반 서울에서 인기를 얻었다. 1인 창무극은 처음에는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했으나, 2010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29-6호 일인창무극 심청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98년과 2004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 생활을 했으며, 2012년 8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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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옥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씨명공옥진
한글 이름공옥진
한자 이름孔玉振
일본어 이름こう・ぎょくしん
가타카나 이름コン・オクチン
로마자 표기Gong Ok Jin
출생일1931년 8월 14일
출생지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승주군
사망일2012년 7월 9일
사망지대한민국 전라남도 영광
직업무용가
분야한국 전통 음악
한국 전통 무용
종교불교
친척공민지(손녀)
아버지공대일
다른 이름공옥진
활동
개인 정보
가족
친척공명교 (조카)
공민지 (손녀)
기타

2. 생애

판소리 명창 공대일의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공옥진은 곱사춤의 명인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원숭이, 퓨마 등 동물을 흉내 내는 춤과 심청전, 흥부전 등을 엮은 1인극으로 노래, 춤, 연기를 선보였다.

1970년대 후반 서울로 진출하여 곱사두덩이춤과 원숭이춤을 사투리와 함께 선보이며 인기를 얻었다.[2] 1인 창무극은 전수자가 없어 공옥진이 사망하면 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으나, 전통에 기반한 창작이라는 점과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11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29-6호로 지정되었다.[7][8]

199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2004년 다시 뇌졸중으로 왼쪽 몸이 마비되어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2007년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어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생활하다가[9] 2012년 7월 9일 81세(만 80세)를 일기로 뇌졸중으로 별세하였다.[10]

그의 외동딸 김은희도 1995년에 KT 시외전화 CF에 출연했으며, 친정 종손녀 공민지2NE1의 멤버로 활동하다가 해체 후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2에 출연했다.

2. 1. 유년 시절과 초기 활동

1931년 전라남도 승주군(현 순천시) 송광면 월산리 추동마을에서 판소리 명창 공대일의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4]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일본에 가서 최승희에게 춤을 배웠는데, 사실상 천 원에 그녀에게 팔려가서 몸종 노릇을 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5] 일본에서 돌아온 후 아버지에게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1948년에는 고창 명창대회에 나가 장원을 했다.[6]

2. 2. 1인 창무극 개척과 전성기

판소리 명창 공대일의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공옥진은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일본에 가서 최승희에게 춤을 배웠는데, 사실상 천 원에 그녀에게 팔려가서 몸종 노릇을 한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5] 일본에서 돌아온 후 아버지에게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1948년에는 고창 명창대회에 나가 장원을 했다.[6]

곱사춤의 명인이라 부를 만큼 곱사춤을 재주로 피워냈고 더불어 원숭이, 퓨마 등 동물을 모의한 춤까지 추고 있어 전통연예인이면서 예술적 표현력의 왕성함을 보이는 창작인이기도 하다. 심청전, 흥부전 등을 일인극으로 엮어 노래와 춤, 연기, 모방춤으로 이끌어냈다.

1970년대 후반 서울로 진출하여 곱사두덩이춤과 원숭이춤을 사투리와 함께 선보이며 인기를 얻어 대학 축제에도 초청받았다.[2]

공옥진의 1인 창무극은 전수중인 수제자가 없어 그녀가 사망하면 1인 창무극의 맥이 끊기게 되지만, 전통을 계승한 것이 아닌 공옥진 자신의 창작무용이라는 이유로 무형문화재 지정이 거부되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1인 창무극이 비록 공옥진의 창작이긴 하나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고, 문화적 가치도 뛰어나다며 문화재 지정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중, 2010년 11월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29-6호 일인창무극 심청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7][8]

2. 3. 투병과 말년

1998년에 뇌졸중으로 한 차례 쓰러졌고, 2004년에 두 번째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에는 왼쪽 몸이 마비돼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9] 2007년에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었으며,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교촌리 예술연구소에서 생활하다가[9] 2012년 7월 9일 향년 81세(만 80세)로 노환인 뇌졸중으로 별세하였다.[10]

2009년에는 뇌출혈과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쓸쓸하고 가난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다시 주목받게 되었고, 그녀의 집에 건강 보조제와 식량이 전달되었다.[2]

3. 가족 관계

관계이름출생사망비고
아버지공대일1910년1990년판소리 명창, 남도 인간문화재
조카공명규1957년아르헨티나 탱고 댄서 및 홍보대사
외동딸김은희1948년
손녀김형진1972년
친정 종손녀공민지1994년2NE1의 전 멤버[3]


4. 출연 작품

공옥진은 영화와 광고에 출연했다.

종류제목 및 내용
영화꼬방동네 사람들 (1982년), 허튼소리 (1986년), 고독이 몸부림칠 때 (2004년)
광고KT 시외전화 (1995년)[1]


4. 1. 영화

4. 2. 광고

KT 시외전화 (1995년)[1]

5. 1인 창무극과 무형문화재 지정 논란

1931년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명창 공데일(孔黛乙)의 딸로 태어났다. 본관은 곡부 공씨이다.[1] 7세 때 일본에 거주하던 무용가 최승희(崔承喜) 밑에서 가정부로 일했고,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 귀국하여 광주시 남구 양림동의 다리 밑에서 판소리만담, 춤과 노래를 결합한 1인극을 선보였다.[2]

1970년대 후반 서울특별시로 진출하여 곱사두덩이춤과 원숭이춤을 사투리와 함께 선보이며 인기를 얻어 대학 축제에도 초청받았다.[2] 1998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기력이 쇠하여 거의 공연을 할 수 없게 되었다. 2009년에는 뇌출혈과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쓸쓸하고 가난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다시 주목받게 되었고, 2010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2] 2012년 7월 9일 뇌졸중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81세.

5. 1.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지정 (2010년)

2010년 전라남도 문화재위원회는 공옥진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했다. 그녀는 혼자 '창무극' 작품인 '심청가'를 공연했는데, 위원회는 이 작품이 그녀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된 춤과 노래라는 이유로 그동안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했으나, "'심청가' 등 판소리(한 명의 가수와 북으로 하는 음악극)를 기반으로 발전한 것이며, 보존·전승할 가치가 있다"는 판단으로 지정하였다.[2]

참조

[1] 웹사이트 (103)곡부 공씨(曲阜孔氏)-73,093명 http://www.seoulecon[...] 2022-08-17
[2] 뉴스 一人唱舞劇の孔玉振さん無形文化財に http://www.chosunonl[...] 2011-09-02
[3] 뉴스 “女版BigBang”2NE1別樣魅力吸引歌迷 http://chn.chosun.co[...] 2011-09-02
[4] 뉴스인용 병신춤 공옥진 바쁘다 새해첫달 방송 · 대학로서 활약 http://newslibrary.n[...] 한겨레 1996-01-04
[5] 뉴스인용 공옥진 갈피갈피 한 서린 창무 현대사 http://newslibrary.n[...] 한겨레 1992-04-29
[6] 뉴스인용 ‘병신춤’ 공옥진 예술 끊기나 http://www.hani.co.k[...] 한겨레 2012-06-23
[7] 뉴스인용 공옥진, 무형문화재 될까?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09-10-31
[8] 뉴스인용 [광주CN] 공옥진 선생, 일인창무극 심청가 무형문화재 지정 http://news.cnbnews.[...] CNB뉴스
[9] 뉴스인용 병신춤 대가 공옥진 여사, 11년째 뇌졸중 투병 https://news.naver.c[...] 연합뉴스 2012-06-23
[10] 뉴스인용 ‘1인 창무극’ 대가 공옥진 여사 별세 http://www.seoul.co.[...] 서울신문 2012-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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