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오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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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주오광대는 경상남도 진주 지역에 전승되는 탈 가면극이다. 1911년 경남일보에 기록이 처음 발견되었으며, 1920년대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으로 중단되었다가 1960년대 초에 다시 재현되었다. 정인섭본, 송석하본, 최상수본 등 1930년대의 대사가 완벽하게 채록되었고, 1960년대 이명긴본 연희본과 가면이 전승되어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진주시 전통예술회관에서 전승되고 있으며, 진주논개제의 메인 테마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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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오광대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진주오광대 |
한자 표기 | 晉州五廣大 |
![]() | |
지정 번호 | 27 |
유형 | 경상남도의 무형문화재 |
지정일 | 2003년 6월 7일 |
전승지 | 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 산171-1 전통예술회관 |
2. 역사
2. 1. 기원과 초기 전승
2. 2. 일제강점기 중단과 복원
1920년대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으로 쇠퇴하여 1937년 무렵 중단되었고 1960년 대 초에야 다시 재현되었다.[4] 1949년 개천절부터 시작된 개천예술제의 초창기에는 계속 공연을 하였고, 개천예술제 제 10회 때는 진주와 통영의 놀이패들을 선발하여 공연이 이루어졌다.1911년 2월 17일 금요일자 경남일보에 처음 기록이 발견되며[3], 진주오광대는 서부경남 지역인 진주에 전승되는 탈 가면극으로 다른 지역의 탈놀이보다 앞서 있고, 전승 과정에서 정인섭본, 송석하본, 최상수본 등 1930년대의 대사가 완벽하게 채록되어 있다.[4] 또한 1960년 당시 연희자들이 만들었던 이명긴본이라는 연희본이 남아 있는데다가 당시에 사용되었던 가면이 잘 전해져 오고 있어서 대사와 가면의 전승이 온전하다. 일제강점기에 연희되었던 오광대에 참여했던 배또문준이 예능보유자로 생존해 있어서 복원에 있어서도 사실성이 입증되었으며, 오광대의 맥을 되살렸다.[4]
현재 진주시 판문동 산171-1의 진주시 전통예술회관에서 전승되고 있으며, 5월 진주논개제의 메인 테마로 공연되고 있다.
2. 3. 현대의 전승
1920년대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으로 쇠퇴하여 1937년 무렵 중단되었고 1960년 대 초에 다시 재현되었다.[4] 1949년 개천절부터 시작된 개천예술제의 초창기에는 계속 공연을 하였고, 개천예술제 제 10회 때는 진주와 통영의 놀이패들을 선발하여 공연이 이루어졌다.1911년 2월 17일 금요일자 경남일보에 처음 기록이 발견되며[3], 진주오광대는 서부경남 지역인 진주에 전승되는 탈 가면극으로 다른 지역의 탈놀이보다 앞서 있고, 전승 과정에서 정인섭본, 송석하본, 최상수본 등 1930년대의 대사가 완벽하게 채록되어 있다.[4] 1960년 당시 연희자들이 만들었던 이명긴본이라는 연희본이 남아 있는데다가 당시에 사용되었던 가면이 잘 전해져 오고 있어서 대사와 가면의 전승이 온전하다. 일제강점기에 연희되었던 오광대에 참여했던 배또문준이 예능보유자로 생존해 있어서 복원에 있어서도 사실성이 입증되었으며, 오광대의 맥을 되살렸다.[4]
현재 진주시 판문동 산171-1의 진주시 전통예술회관에서 전승되고 있으며, 5월 진주논개제의 메인 테마로 공연되고 있다.
3. 구성
다양한 진주오광대 문둥이탈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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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진주오광대 문둥이탈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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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오방신장무 마당
wikitable다양한 진주오광대 문둥이탈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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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문둥이마당
3. 3. 양반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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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4. 중마당
wikitable
3. 5. 할미·영감마당
wikitable다양한 진주오광대 문둥이탈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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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용되는 탈
5. 의의와 평가
5. 1. 문화재 지정
진주오광대는 진주에 전승하는 서부경남의 대표적인 가면극으로, 전문가들의 학술적 조명이 어느 탈놀음보다 앞섰다. 정인섭본, 송석하본, 최상수본 등 1930년대의 대사가 완벽하게 채록되어 있으며, 1960년대 당시 연회자들이 만든 이명길본이란 연희본이 남아있는 등 가면이 잘 전해져 오고 있어서 대사와 가면의 전승이 온전하다고 할 수 있다.지정 심의를 위한 공연을 보면 과거 질퍽하고 소박한 탈놀음의 맛은 적으나,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다른 탈놀음도 비슷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진주오광대는 정갈하게 연희하는 양상이 도시형 탈놀음으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이며, 연기력도 수준급으로 평가된다.
1930년대부터 탈놀음의 연희를 맡았던 배또문준 씨가 생존하여 후진에게 전승시키고 있고, 탈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60년대에 한국의 대부분 전승가면극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진주오광대만 지정되지 못했다. 따라서 도지정 문화재로 지정하여 전승을 도모하는 것이 전통문화 계승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5. 2. 비판적 시각
참조
[1]
간행물
도 문화재 등 확정고시
http://www.gyeongnam[...]
경상남도지사
2003-06-12
[2]
서적
진주시사
진주시사편찬위원회
1995
[3]
웹인용
진주오광대 최초기록 경남일보 기사 발견
https://web.archive.[...]
경남일보
2008-12-15
[4]
웹인용
진주오광대
http://jinju.grandcu[...]
한국학중앙연구원
2008-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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