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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삼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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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판삼사사(判三司事)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걸쳐 존재했던 관직명입니다. 시대에 따라 그 의미와 역할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고려 시대:


  • 삼사(三司)의 최고 책임자로, 재상(宰相)이 겸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삼사는 전곡(錢穀)의 출납과 회계를 담당하는 기관이었습니다.
  • 공민왕 11년(1362)에는 정1품 독립 관직이 되었습니다.
  • 우왕 때에는 판삼사사 위에 영삼사사(領三司事)라는 직책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 충렬왕 이후에는 삼사직이 전임직으로 독립하고, 판삼사사의 서열이 수상과 아상 사이에 놓이는 등 지위가 승격되었습니다.

조선 시대:

  • 초기에는 삼사의 종1품 벼슬이었으며, 정도전 등이 이 직책을 맡았습니다.
  • 태종 원년(1401)에 삼사가 사평부(司平府)로 바뀌면서 판사평부사(判司平府事)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 태종 5년(1405)에 사평부가 호조(戶曹)에 병합되면서 판삼사사(판사평부사)라는 관직은 사라졌습니다.


판삼사사
기본 정보
조선시대의 관청인 판삼사사
조선시대의 관청인 판삼사사
설치 시기1392년
폐지 시기1400년
주요 역할국가 중대사 결정
위치한성
상세 정보
관할 부서문하부
중추원
정원판사: 4명
지사: 4명
동지사: 4명
첨서사: 2명
검상: 2명
기주관: 2명
특징조선 건국 직후 운영
국가의 중요한 정책 결정
정부의 최고 기관 역할
역사
태조 시기1392년 설치
문하부 및 중추원의 기능 통합
국가 정책 결정 기구로 운영
정종 시기1400년 폐지
의정부로 기능 이관
이후의정부 중심으로 국정 운영 체계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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