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훈야노 야스히데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훈야노 야스히데는 덴무 천황의 후손으로, 877년 야마시로노다이죠 등을 역임했으며, 미카와 권수를 지냈다. 《고금와가집》에서는 그의 문장에 대해 평가가 있었으며, 오노노 고마치와 친밀한 관계였다고 전해진다. 《고킨와카슈》에 4수, 《고잔와카슈》에 1수가 수록되었으며, 그의 대표작인 "부는 바람에 가을의 초목이 쓰러지니, 그래서 산바람은 폭풍이라던가."는 오구라 백인일수에 수록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훈야씨 - 훈야노 아사야스
    훈야노 아사야스는 헤이안 시대의 귀족이자 시인으로, 스루가 국 국사와 대사인을 역임하며 "간페이 어시 후궁 가합" 등에서 활약, 『고금와카집』을 포함한 칙찬 와카집에 작품이 수록되었고, 특히 가을 들판을 묘사한 와카가 『오구라 백인일수』에 선정되어 유명하다.
  • 훈야씨 - 훈야노 미야타마로
    훈야노 미야타마로는 헤이안 시대 초기의 관료로, 지쿠젠노카미를 역임했으나 신라와의 무역 관련 모반 혐의로 유배되었다가 위령되었다.
  • 9세기 사망 - 알자히즈
    알자히즈는 9세기 이라크의 학자이자 작가로서, 다양한 분야에 걸쳐 방대한 지식을 갖추고 200여 권의 책을 저술했으며, 특히 《동물에 관한 책》에서 진화론과 유사한 사상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 9세기 사망 -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는 9세기 아일랜드 출신 철학자이자 신학자로, 샤를 2세의 초청으로 궁정학교에서 교수직을 맡아 스콜라 철학 발전에 기여했으며, 《자연 분할론》 저술 및 위(僞) 디오니시오스 저작 번역을 통해 서유럽에 영향을 미쳤다.
  • 9세기 시인 - 당 덕종
    당 덕종은 779년 즉위하여 재정 개선과 양세법 시행을 시도했지만, 절도사 반발과 환관 중용으로 실패하고 반란과 토번 침입을 겪었으며, 중앙 집권 약화와 당나라 멸망의 원인을 제공한 황제이다.
  • 9세기 시인 -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는 헤이안 시대의 학자이자 정치가, 시인으로, 뛰어난 문장으로 관직에 진출했으나, 유력 귀족들의 반발로 좌천되어 사망 후 원령으로 여겨져 덴진 신앙으로 이어졌으며, 문학적 업적으로 일본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훈야노 야스히데
기본 정보
이름분야노 야스히데
다른 이름분린
출생불명
사망니나 원년 (885년)?
직업시인
시대헤이안 시대 전기
관직
관위정6위상・누이도노노스케
주군요제이 천황
가문
씨족분야 씨
자녀아사야스

2. 생애

덴무 천황의 손자인 지누 왕(智努王)의 후손으로, 오이치 왕(大市王)이 훈야(文室)라는 가바네(姓)를 하사받으면서 훈야 씨가 시작되었다.[5] 훈야노 야스히데는 877년(간교 원년) 야마시로노다이죠(山城大掾), 880년(간교 3년) 봉전조(縫殿助) 등 다소 낮은 관직을 역임했다.[5] 860년(조간 2년)에는 형부성 중판사를 역임했다는 기록이 있으며,[5] 미카와 권수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5]

《고킨와카슈》의 가나(仮名) 서문에는 "말은 교묘하지만 그 모습이 몸에 맞지 않아, 비유하자면 상인이 좋은 옷을 입은 것과 같다"는 평가가 있다.[5]

같은 육가선의 한 사람인 오노노 고마치와는 친밀한 사이였으며, 미카와 죠로 부임했을 때 오노노 고마치를 불렀는데, 이에 고마치는 "쓸쓸해지니, 제 몸은 덧없는 풀과 같아 뿌리가 끊어졌습니다. 유혹하는 물만 있다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わびぬれば 身をうき草の 根を絶えて 誘ふ水あらば いなむとぞ思ふ일본어)라는 노래를 지어 대답했다고 전해진다.[5] 훗날 《고금저문집》이나 《십훈초》 등의 설화집에 이 노래를 주제로 한 이야기가 실리기도 했다.[5]

3. 오노노 고마치와의 관계

오노노 고마치와는 친밀한 관계였으며, 미카와 국사로 부임했을 때 오노노 고마치를 초대했다. 이에 대해 고마치는 "쓸쓸해지니, 제 몸은 덧없는 풀과 같아 뿌리가 끊어졌습니다. 유혹하는 물만 있다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わびぬれば 身をうき草の 根を絶えて 誘ふ水あらば いなむとぞ思ふ일본어)라는 시를 읊어 답했다. 이후 《고금저문집》이나 《십훈초》와 같은 설화집에 이 시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실리게 되었다.[5]

4. 대표작

오구라 백인일수 22번에 수록된 와카와 그 외의 와카가 대표작이다.

4. 1. 와카

부는 바람에 가을 초목이 쓰러지니 그래서 산바람을 폭풍이라 하는가 (오구라 백인일수 22번).吹くからに 秋の草木の しをるれば むべ山風を 嵐といふらむ일본어

봄날 햇살을 쬐는 나인데 머리 위에 눈이 내리니 서글프다.

참조

[1] 서적 Kokin Wakashu: The First Imperial Anthology of Japanese Poetry: With 'Tosa Nikki' and 'Shinsen Waka' https://books.google[...] Stanford University Press 1985
[2] 논문 Review of Uncovering Heian Japan: An Archeology of Sensation and Inscription https://www.jstor.or[...] 2001
[3] 서적 Optical Allusions Brill 2012-01-01
[4] 논문 Teika e l'eccellenza poetica: uno sguardo al Kokinshū attraverso lo Ogura Hyakunin isshu http://dspace.unive.[...] Università Ca'Foscari Venezia 2018
[5] 문서 『勅撰作者部類』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