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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빈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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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빈 이씨는 1541년 이첨정의 딸로 태어나 명종의 후궁, 선조의 숙의를 거쳐 1755년 빈으로 추증된 인물이다. 1556년 문정왕후의 시녀로 입궁하여 1558년 명종의 후궁이 되었으며, 인빈 김씨의 입궁에 영향을 주었다. 임진왜란 중 연안으로 피난하여 1595년 사망했으며, 영조에 의해 경빈으로 추증되었다. 현재 묘는 고양시 서삼릉 경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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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빈 이씨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인명경빈 이씨
한자 표기慶嬪 李氏
로마자 표기Gyeongbin Issi
별칭숙의 이씨, 숙원 이씨
출생일1541년
사망일1595년 음력 6월 (55세)
매장지경빈 이씨 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가계
왕조조선
아버지이첨정
어머니전주 이씨
친척인빈 김씨 (사촌) 등
혼인
배우자명종
자녀없음
작위
작위후궁 (빈)

2. 생애

1541년 이첨정의 딸로 태어나 1556년 문정왕후의 시녀로 입궁하였다.[6] 1558년 명종의 후궁이 되어 숙원에 봉해졌으며, 명종 승하 후 선조가 즉위하자 숙의로 진봉되었다.[6][1] 선조의 후궁인 인빈 김씨는 그의 외종사촌 여동생이다.[1][7][8]

임진왜란 중인 1595년에는 황해도 연안으로 피난하였으며[9][2], 같은 해 음력 6월 향년 55세[6](또는 54세[2])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사후 1755년 음력 6월 14일, 영조에 의해 정1품 (嬪)으로 추증되어 '''경빈'''(慶嬪)이라는 호를 받았다.[8][1] 이는 당시 함께 추증된 사촌 동생 인빈 김씨와의 관계를 고려한 영조의 결정이었다.[1] 영조는 직접 묘갈(墓碣)을 지었으며[8][1], 1760년부터는 식년(式年)마다 제사를 지내도록 명하였다.[11][3] 현재 묘는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 경내에 있다.[12][4]

경빈 이씨는 사촌 동생인 인빈 김씨를 궁궐로 데려와 양육하고 인순왕후에게 소개함으로써, 훗날 인빈 김씨가 선조의 후궁이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5]

2. 1. 가계와 입궁

조선 제13대 명종의 후궁으로, 1541년(중종 36년) 전의 이씨 이첨정과 전주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6]. 선조의 후궁인 인빈 김씨는 경빈 이씨의 외종사촌 여동생이다[7][8].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조모 나씨 손에서 자랐으며, 1556년(명종 11년) 문정왕후의 시녀로 궁궐에 들어갔다[6]. 이씨의 입궁과 관련하여 《연려실기술》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당시 아들 명종에게 후사가 없어 근심하던 문정왕후의 꿈에 어떤 이가 나타나 "상주에 사는 이 아무개의 딸을 궁중에 들이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정왕후는 꿈에서 깨어 그 사람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는데, 우연히 한 승려가 알려준 곳에서 이씨를 찾아 데려왔다는 것이다[7].

2. 2. 후궁 시절

1558년(명종 13년) 명종의 후궁이 되었고, 명종 말년에 종4품 숙원에 봉해졌다.[6][1] 명종이 승하하고 선조가 즉위한 후에는 여러 차례 진봉되어 종2품 숙의가 되었다.[6][1] 그러나 이후 약 30여 년간 별궁에서 지내면서 머리를 자르고 소식을 하며 지냈다고 전해진다.[6]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황해도 연안으로 피난을 갔다. 1595년(선조 28년) 선조는 연안의 감사에게 당시 피난 중이던 숙의 이씨 등에게 음식물을 지급하라고 명하기도 했다.[9][2] 하지만 이씨는 마음고생으로 병이 심해져 결국 같은 해 음력 6월 정사일, 연안의 우사(寓舍, 임시 거처)에서 향년 55세[6](일부 기록에는 54세[2])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선조는 이씨의 장례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관에서 지급하도록 명하였다.[6]

한편, 이씨는 사촌 동생인 인빈 김씨가 궁에 들어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숙의였던 이씨는 김씨를 궁으로 데려와 양육했으며, 명종의 왕비인 인순왕후에게 김씨를 소개하여 자신의 시중을 들게 했다. 이후 인순왕후가 선조에게 김씨를 후궁으로 추천하여, 김씨는 1573년(선조 6년) 숙원에 책봉될 수 있었다.[5]

2. 3. 사후

1755년(영조 31년) 음력 6월 14일 영조에 의해 정1품 빈(嬪)으로 추증되었다.[8] 당시 사촌 동생인 인빈 김씨에게 시호가 내려지고 그 묘(墓)가 원(園)으로 격상되었는데, 영조는 인빈의 사촌 언니인 이씨 역시 함께 추증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하여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1] 이에 따라 이씨는 '''경빈'''(慶嬪)이라는 호를 받게 되었다. 이때 영조는 친히 묘갈(墓碣, 묘비에 새기는 글)을 지어 써주었으며[8], 1760년(영조 36년)부터는 경빈의 묘에 식년(式年)마다 제사를 지내도록 명하였다.[11][3] 현재 경빈의 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위치한 서삼릉 경내에 있다.[12][4]

3. 인빈 김씨와의 관계

경빈 이씨는 선조의 후궁인 인빈 김씨의 사촌 언니이다.[1] 경빈 이씨는 인빈 김씨가 궁궐에 들어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3][5] 당시 숙의였던 이씨는 사촌 동생인 김씨를 데려와 궁중에서 직접 길렀는데, 이를 계기로 명종의 왕비 인순왕후가 김씨를 눈여겨보고 자신의 심부름을 맡기게 되었다.[13][5] 훗날 인순왕후는 선조에게 김씨를 후궁으로 추천하였고, 김씨는 1573년(선조 6년) 종4품 숙원에 봉해졌다.[13][5]

4. 가족 관계

전의 이씨 이첨정(李添貞)과 전주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6], 선조의 후궁인 인빈 김씨와는 외종사촌 관계이다[7][8].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조모 나씨 손에서 자랐다[6].

'''경빈 이씨의 가족 관계'''
관계이름비고
증조부이항(李沆)
조부이수홍(李守泓)
조모나씨(羅氏)경빈 이씨를 양육함[6]
아버지이첨정(李添貞)
외조부이효성(李孝性)효령대군의 4대손
어머니전주 이씨이효성의 딸
시아버지제11대 중종
시어머니문정왕후
남편제13대 명종
외종사촌인빈 김씨선조의 후궁[7][8]


참조

[1]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 영조 31년 6월 14일 기사 1755-06-14
[2]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 선조 28년 5월 26일 기사 1595-05-26
[3]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 영조 36년 12월 22일 기사 1760-12-22
[4] 뉴스 비운의 왕비 폐비 윤씨 묘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5-01-13
[5] 서적 선조, 조선의 난세를 넘다 해냄 2008-05-15
[6] 상촌선생집 상촌선생집 권24〈숙의이씨묘지명〉
[7] 연려실기술 연려실기술 권22〈원종고사본말〉
[8]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 영조 31년 6월 14일 기사 1755-06-14
[9]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 선조 28년 5월 26일 기사 1595-05-26
[10]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풍양〉항목 https://terms.naver.[...]
[11]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 영조 36년 12월 22일 기사 1760-12-22
[12] 뉴스 비운의 왕비 폐비 윤씨 묘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5-01-13
[13] 서적 선조, 조선의 난세를 넘다 해냄 2008-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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