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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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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은 임진왜란 이후 화엄사 재건 과정에서 1634년부터 1635년 사이에 제작된 17세기 불교 조각이다. 3미터가 넘는 초대형 불상으로, 조각으로 표현된 유일한 삼신불 조각상이며,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로 구성된다. 전국 승려집단의 대표인 벽암 각성의 주관 아래, 의창군 이광 부부 등 왕실 인물과 580여 명의 승려를 포함한 1,320명이 시주하여 제작되었다. 당대 최고의 조각승 청헌, 응원, 인균과 그 제자들이 참여하여 각 유파의 조각적 특징을 보여주며, 17세기 불교 조각의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평가받아 국보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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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삼신불좌상 중 비로자나불
삼신불좌상 중 비로자나불
이름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로마자 표기Gurye Hwaeomsa Mokjobirojanasamsinbuljwaseang
국가대한민국
유형보물
지정 번호1548
지정일2008년 3월 12일
주소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화엄사 (황전리)
시대조선시대
소유자화엄사
면적3구
수량해당 없음

2. 역사

화엄사 대웅전에 봉안된 3구의 좌상은 1635년(인조 13년)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약했던 17세기의 대표적인 조각승인 청헌(淸軒 또는 淸憲), 응원(應元), 인균(印均)과 그 제자들이 만든 17세기 대표적인 불교조각으로, 모두 3미터가 넘는 초대형 불상이다.[4] 21세기에 발견된 삼신불 복장유물 등 관련 기록을 통해 임진왜란 때 소실된 화엄사 재건 과정(1630∼1636)과 삼신불 제작 시기(1634∼1635년) 및 과정, 후원자와 참여자들의 실체가 밝혀졌다.[4]

2. 1. 제작 배경

임진왜란으로 화엄사가 소실된 후, 1630년부터 1636년까지 재건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대웅전에 봉안할 삼신불 제작(1634~1635년)과 관련된 시기, 과정, 후원자, 참여자들의 실체가 21세기에 발견된 삼신불 복장유물 등의 기록을 통해 더욱 명확하게 밝혀졌다.[4]

발원문에 따르면, 전국 승려 집단의 대표인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을 역임한 벽암 각성이[5] 주관하고, 선조의 여덟 번째 아들 의창군 이광 부부와 선조의 사위 동양위 신익성 부부 등 다수의 왕실 인물과 580여 명의 승려를 포함한 총 1,320명이 시주자로 참여하였다.[4]

2. 2. 제작 과정

임진왜란 때 소실된 화엄사를 재건(1630∼1636)하면서 대웅전에 봉안하기 위해 삼신불을 제작(1634∼1635년)하였다. 삼신불의 복장유물 등 관련 기록을 통해 제작 과정, 후원자, 참여자들의 실체가 21세기에 더욱 명확하게 밝혀졌다.[4]

1635년(인조 13년)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약했던 17세기의 대표적인 조각승인 청헌(淸軒 또는 淸憲)과 응원(應元), 인균(印均)을 비롯해 이들의 제자들이 제작에 참여했다.[4]

발원문에 의하면 전국 승려집단의 대표라 할 수 있는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을 역임한 벽암 각성의[5] 주관 아래, 선조의 여덟 번째 아들 의창군 이광 부부와 선조의 사위 동양위 신익성 부부 등 다수의 왕실 인물과 승려 580여 명을 포함한 총 1,320명이 시주자로 참여하였다.[4]

3. 의의

이 삼신불상은 조각으로 나타낸 유일한 삼신불 조각이며, 특히 보관을 쓴 노사나불 조각상은 희귀한 예이다.[2] 17세기 불교 조각의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2]

17세기를 대표하는 조각승 청헌, 응원, 인균과 제자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여 완성한 기념비적인 대작으로, 벽암 각성, 의창군 등 왕실의 후원으로 제작되었다. 17세기 제작된 목조불상 중 크기가 가장 크고, 조각으로는 유일하게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여래불로 표현된 삼신불 도상이라는 점에서 불교 조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예술적, 조형적 수준도 조선 후기 불상 중 뛰어나다.[4]

3. 1. 도상학적 특징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은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여래불로 구성된 삼신불 도상이다.[4] 조각으로 나타낸 유일한 삼신불 조각이며, 특히 보관을 쓴 노사나불이 조각으로 남아 있는 이른 예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2]

삼신불좌상은 화려한 연꽃을 갖춘 대좌(臺座, 부처가 앉는 자리)와 팔각형 목조대좌에 다리를 서로 꼰 결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다. 거대한 규모와 더불어 단순하면서도 선이 굵게 처리된 조각 솜씨로 인해 중후한 느낌을 더한다.[4] 크기가 거대하고 단순하며 깊이의 강약이 느껴지는 굵직한 옷주름의 표현은 한층 상의 중후함을 더해 준다.[2]

이 삼신불상은 당시 가장 유명했던 조각승 집단인 청헌파와 응원‧인균파가 참여한 만큼 표현에서도 각 유파의 조각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근엄한 표정의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상은 청헌파가 제작한 것으로 판단되는 반면, 부드러운 얼굴에 작은 눈과 두툼한 눈두덩이가 표현된 노사나불상은 응원과 인균의 작품으로 추정된다.[4]

3. 2. 조형적 특징

삼신불좌상은 화려한 연꽃을 갖춘 대좌(臺座, 부처가 앉는 자리)와 팔각형 목조대좌에 다리를 서로 꼰 결가부좌(結跏趺坐) 자세로 앉아 있다. 거대한 규모와 더불어 단순하면서도 선이 굵게 처리된 조각 솜씨로 인해 중후한 느낌을 더한다.[4]

이 삼신불상은 당시 가장 유명했던 조각승 집단인 청헌파와 응원‧인균파가 참여한 만큼 표현에서도 각 유파(流派)의 조각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근엄한 표정의 비로자나불석가모니상은 청헌파가 제작한 것으로 판단되는 반면, 부드러운 얼굴에 작은 눈과 두툼한 눈두덩이가 표현된 노사나불상은 응원과 인균의 작품으로 추정된다.[4]

4. 평가

이 삼존불은 조각으로 나타낸 유일한 삼신불 조각이다. 특히 보관을 쓴 노사나불이 조각으로 남아 있는 예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2]

크기가 거대하고 단순하며 깊이의 강약이 느껴지는 굵직한 옷주름의 표현은 상의 중후함을 더해 준다. 특히 『화엄사사적기』(1697)에 의해 조성연대를 짐작할 수 있고, 도상이나 양식면에서 17세기의 기준이 되는 불상으로 높은 의의가 있는 상으로 평가된다.[2]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은 당시 가장 유명했던 조각승 집단인 청헌파와 응원‧인균파가 참여한 만큼 표현에서도 각 유파(流派)의 조각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근엄한 표정의 비로자나불과 석가여래상은 청헌파가 제작한 것으로 판단되는 반면, 부드러운 얼굴에 작은 눈과 두툼한 눈두덩이가 표현된 노사나불상은 응원과 인균의 작품으로 추정된다.[4]

따라서 17세기를 대표하는 조각승 청헌, 응원, 인균과 제자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여 완성한 기념비적인 대작(大作)으로, 이는 불사를 주관한 벽암 각성, 의창군 이광 등 왕실의 후원이 합쳐진 결과이다. 17세기 제작된 목조불상 중 크기가 가장 크고, 조각으로 유일하게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여래로 표현된 삼신불 도상이라는 점에서 불교조각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크고 중요할 뿐 아니라 예술‧조형적 수준도 조선 후기 불상 중에서 단연 돋보이므로 대한민국의 국보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으로 인정받아 2021년 6월 23일 승격되었다.[4]

5.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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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문서
[2] 간행물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및 지정번호변경 문화재청장 2008-03-12
[3] 웹인용 국보 제336호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求禮 華嚴寺 木造毘盧遮那三身佛坐像) : 국가문화유산포털 - 문화재청 https://www.heritage[...] 2021-06-23
[4] 웹인용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국보 지정 https://www.cha.go.k[...] 2021-06-23
[5]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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