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탑골공원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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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구 탑골공원 정문은 일제강점기 탑골공원의 정문으로, 1910년에서 1913년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3.1 운동의 발상지였던 탑골공원의 정문은 1969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정문으로 이전되었고, 현재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의 정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3.1 운동과 4.19 혁명 등 역사적 현장을 지켜본 유산으로서 보존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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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탑골공원 정문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지도 | |
기본 정보 | |
이름 | 구 탑골공원 정문 |
원어 이름 | 舊 塔-公園 正門 |
![]() | |
국가 | 서울특별시 |
유형 | 문화재자료 |
지정 번호 | 68 |
지정일 | 2017년 2월 9일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
소유 | 서울대학교 |
수량 | 4기/ 토지 2.8m2 |
꼬리표 | 서울 연건동 |
문화재청 | 31,00680000,11 |
2. 역사
2. 1. 고려 및 조선 시대
2. 2. 대한제국 시대: 근대 공원으로의 전환
2. 3. 일제강점기: 3.1 운동과 그 이후
1910년 탑골공원의 관리권이 총독부로 이관되었고, 1913년 7~8월에 걸쳐 일반에게 매일 야간까지 개방되었다. 서편의 이왕직양악대와 동편의 북부경찰서(1910년 이전 중부경찰서) 청사 건설 등으로 경계부가 변형되면서 입구부가 넓어진 비대칭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때 일반개방에 따른 화려한 정문(폭 23m의 반원형)이 설치되었고, 이용자 편익 및 휴게시설(사아옥, 온실, 공중변소, 벤치 등)이 보완되었다.1914년부터 1916년까지는 상업시설이 도입되어 도시공원화가 진행되었다. 끽다점(청목당) 및 섬과 다리를 축조한 인공 연못이 조성되었고, 사아옥, 공중변소, 관리사무소가 추가 설치되었으며, 담장 측에만 있던 산책로가 내부 화단 사이에도 조성되었다. 1916년에는 호자식음악당이 철거되고 용산주차군사령부에서 가제보형 음악당을 이축하였다.
1919년 3.1 운동의 핵심적 공간이 된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공원을 폐쇄하였다. 1928년 조선총독부에서 경성부청으로 이관 및 재개방하여 1933년에는 아동공원으로 새 단장 계획을 세웠다.
2. 4. 해방 이후: 민주화 운동의 현장
해방 이후에도 탑골공원은 각종 정치 행사 및 집회의 장소로 이용되었다. 3.1 독립운동을 기념하는 시설 및 이승만, 손병희 동상 등이 설치되었으나, 공원 구조상의 큰 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67년 민자사업으로 파고다공원 현대화가 추진되면서 정문이 현재의 한식 정문으로 교체되었다. 총 공사비 1억 7천여만원을 들여 공원 내 단청과 담장을 개축하고, 독립만세운동 기념 부각 동상 10경을 진열하였으며, 아케이드 상점을 설치하였다. 1967년 12월 12일 중수 준공식을 거행하였다.새 정문은 대한민국의 국보 제51호인 강릉 객사문을 본뜬 한식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글씨가 새겨진 '삼일문'이라는 현판이 부착되었다. 1969년 3.1절 5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시는 탑골공원 원래 정문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정문으로 기증하였다.
2. 5. 1960년대 이후: 공원 정비 및 정문 이전
1919년 3·1 운동의 핵심 공간이 된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공원을 폐쇄하였다. 1928년 조선총독부에서 경성부청으로 이관 및 재개방하여 1933년에는 아동공원으로 새 단장 계획을 세웠다. 광복 전후에도 각종 정치 행사 및 집회 개최 장소 및 도시공원으로 이용되면서 3·1 운동 기념 시설 및 이승만, 손병희 동상 설치 등은 있었으나, 공원 구조상의 변화는 크게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1967년 민자사업으로 추진된 파고다공원 현대화 때 정문을 현재의 한식 정문으로 교체하였다. 공원 내 단청과 담장 개축, 독립만세운동 기념 부각 동상 10경 진열, 아케이드 상점 설치 등을 총 공사비 1억 7천여만 원으로 시행하고 1967년 12월 12일 중수 준공식을 거행하였다. 정문은 기존 정문을 대신하여 국보 제51호 강릉 소재 객사문을 본뜬 한식으로 새로 세웠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글씨가 새겨진 '삼일문'이라는 현판을 부착하였다.
1969년 3·1절 기념 5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시에서 탑골공원 원 정문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정문으로 기증하였다.
3. 구 탑골공원 정문
구 탑골공원 정문은 정사각 기둥 4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177-1, 180-3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울대학교가 소유하고 있다.[2]
원래 탑골공원에 세워졌던 대문 기둥으로, 탑골공원은 조선시대에 원각사가 있던 자리였다.[2] 조선 말기인 1897년에 탑과 대문을 세우고 파고다 공원(현재 탑골공원)으로 부르게 되었다.[2] 이 공원 안에서 3.1독립선언문이 선포됨으로써 전국적인 독립운동의 발상지가 되기도 하였다.[2]
1969년 3.1절 5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특별시가 독립선언기념탑을 세우면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이 기둥 4개를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문 기둥으로 기증하였다.[2] 이후 197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현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 교문 기둥으로 사용되고 있다.[2]
구 탑골공원 정문은 3·1 운동, 4.19 혁명 등 역사적 현장을 지켜온 유산으로 보존 가치가 높다. 탑골공원은 고려시대 흥복사, 조선시대 원각사가 있던 자리였으며, 대한제국 시대에 문을 세우고 서울 최초의 도시공원인 파고다 공원으로 정비되었다. 구 탑골공원 정문은 1910~1913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967년 공원 정비 당시 서울대학교 법대 정문으로 이전(1969년 실시)되어 현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의 정문으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성지였던 탑골공원의 정문이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3. 1. 건립 시기 및 특징
1910년 관리권이 총독부로 이관된 후, 1913년 7~8월에 걸쳐 일반에게 매일 야간까지 개방되었다. 서편의 이왕직양악대와 동편의 북부경찰서(1910년 이전 중부경찰서) 청사 건설 등으로 경계부가 변형되면서 입구부가 넓어진 비대칭 형태를 띠게 되었다. 이 때 일반개방에 따른 화려한 정문(폭 23m의 반원형)이 설치되었고, 이용자 편익 및 휴게시설(사아옥, 온실, 공중변소, 벤치 등)이 보완되었다.3. 2. 이전 과정
구 탑골공원 정문은 조선시대에 원각사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던 대문 기둥이었다.[2] 1897년 탑과 대문을 세우고 파고다 공원(현재 탑골 공원)으로 부르게 되었다.[2] 이 공원 안에서 3.1독립선언문이 선포됨으로써 전국적인 독립운동의 발상지가 되기도 하였다.[2]1969년 3.1절 50주년을 기념하여 서울특별시가 독립선언기념탑을 세우면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독립정신을 높여주기 위해 이 기둥 4개를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문 기둥으로 기증하였다.[2] 그 후 197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 교문 기둥으로 남게 되었다.[2]
3. 3. 문화재적 가치
구 탑골공원 정문은 3.1 독립운동, 4.19 혁명 등 역사적 현장을 지켜온 유산으로 보존 가치가 충분하다.[2] 탑골공원은 고려시대 흥복사, 조선시대 원각사가 있던 자리였으며, 대한제국 시대에 문을 세우고 서울 최초의 도시공원인 파고다 공원으로 정비되었다.[2] 구 탑골공원 정문은 1910~1913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967년 공원 정비 당시 서울대학교 법대 정문으로 이전(1969년 실시)되어 현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의 정문으로 이용되고 있다.[2]4. 현대적 의의
4. 1. 역사 교육의 장
4. 2. 시민 휴식 공간
4. 3. 문화 유산 보존
참조
[1]
간행물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지정 고시
http://event.seoul.g[...]
서울특별시
2017-02-09
[2]
문서
현지 안내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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