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국제 관계 (1814년-1919년)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1814년부터 1919년까지의 국제 관계는 유럽 협조 체제의 등장과 붕괴, 민족주의와 통일 국가의 부상, 제국주의 경쟁 심화, 그리고 제1차 세계 대전 발발로 특징지어진다. 빈 회의를 통해 유럽 열강 간의 세력 균형을 추구했으나, 1848년 혁명과 크림 전쟁을 거치며 약화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민족주의가 발흥하여 이탈리아와 독일의 통일을 이끌었으며, 제국주의 열강들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분할하여 식민지를 건설했다. 이러한 제국주의 경쟁과 동맹 시스템의 강화는 발칸 반도의 위기와 함께 제1차 세계 대전을 촉발했고,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새로운 국제 질서가 수립되었다.

2. 유럽 협조 체제와 그 한계 (1814-1871)

빈 회의에서의 협상


빈 회의(1814–1815)는 나폴레옹 전쟁을 종식시키고 나폴레옹이 전복시킨 군주제를 복원하려 하여 반동 시대를 열었다.[6] 오스트리아의 총리(1809–1848)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와 영국의 외무 장관 캐슬레이 경(1812–1822)의 지도 아래, 회의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유럽 협조 체제 시스템을 구축했다. 주요 유럽 열강인 영국,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그리고 (1818년 이후) 프랑스는 차이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회동하기로 약속했다. 이 계획은 국제 연맹과 국제 연합의 전신이었다.[7][8]

회의는 빈에서 폴란드-작센 위기를 해결했고, 라이바흐(류블랴나)에서 그리스 독립 문제를 해결했다. 엑스라샤펠 회의 (1818년)를 포함하여 세 차례의 주요 유럽 회의가 열렸다. 엑스라샤펠 회의에서는 프랑스에 대한 군사 점령을 종식시키고 프랑스가 배상금으로 지불해야 할 7억 프랑을 감액했다.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1세는 빈 조약의 모든 서명국을 포함하는 완전히 새로운 동맹을 결성하여 이 새로운 연합의 모든 구성원의 주권, 영토 보전 및 통치 정부의 유지를 보장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러시아 제국군을 핵심으로 하는 국제군을 제안하여 필요한 모든 국가에 개입할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하고자 했다. 그러나 캐슬레이 경은 이것을 반동 정책에 대한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약속으로 보았고, 영국은 참여를 거부하여 이 아이디어는 폐기되었다.[11]

이후 다른 회의들은 각 국가가 회의가 자신들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무의미해졌고, 분쟁은 점점 덜 효과적으로 해결되었다.[12][13][14][15]

유럽 협조 체제는 지속적인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세력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1860년대까지 빈 회의에서 정해진 영토 경계가 유지되었고,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주요 공격도 없이 균형이라는 주제가 받아들여졌다.[16] 그러나 유럽 열강의 공동 목표가 커져가는 정치적, 경제적 경쟁으로 대체되면서 유럽 협조 체제는 붕괴되었다.[12] 1818년 영국은 대륙 문제에 관여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미래의 혁명을 억압하려는 차르 알렉산드르 1세의 계획을 거부했다. 아르츠는 1822년의 베로나 회의가 "종말을 고했다"고 말한다.[18] 1848년 혁명적 격변 동안 옛 체제를 복원하기 위한 회의는 소집되지 않았다.[19][20] 보수 군주국들은 신성 동맹을 형성했으나,[10] 이 동맹은 동방 문제로 묘사되는 오스만 제국에서의 위기로 인해 1850년대에 분열되었다.[9]

2. 1. 빈 회의와 유럽 협조 체제



빈 회의(1814–1815)는 나폴레옹 전쟁을 종식시키고 나폴레옹이 전복시킨 군주제를 복원하려 하여 반동 시대를 열었다.[6] 오스트리아의 총리(1809–1848)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와 영국의 외무 장관 캐슬레이 경(1812–1822)의 지도 아래, 회의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유럽 협조 체제 시스템을 구축했다. 주요 유럽 열강인 영국,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그리고 (1818년 이후) 프랑스는 차이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회동하기로 약속했다. 이 계획은 국제 연맹과 국제 연합의 전신이었다.[7][8]

회의는 빈에서 폴란드-작센 위기를 해결했고, 라이바흐(류블랴나)에서 그리스 독립 문제를 해결했다. 엑스라샤펠 회의 (1818년)를 포함하여 세 차례의 주요 유럽 회의가 열렸다. 엑스라샤펠 회의에서는 프랑스에 대한 군사 점령을 종식시키고 프랑스가 배상금으로 지불해야 할 7억 프랑을 감액했다. 러시아의 차르 알렉산드르 1세는 빈 조약의 모든 서명국을 포함하는 완전히 새로운 동맹을 결성하여 이 새로운 연합의 모든 구성원의 주권, 영토 보전 및 통치 정부의 유지를 보장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러시아 제국군을 핵심으로 하는 국제군을 제안하여 필요한 모든 국가에 개입할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하고자 했다. 그러나 캐슬레이 경은 이것을 반동 정책에 대한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약속으로 보았고, 영국은 참여를 거부하여 이 아이디어는 폐기되었다.[11]

이후 다른 회의들은 각 국가가 회의가 자신들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무의미해졌고, 분쟁은 점점 덜 효과적으로 해결되었다.[12][13][14][15]

유럽 협조 체제는 지속적인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세력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1860년대까지 빈 회의에서 정해진 영토 경계가 유지되었고,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주요 공격도 없이 균형이라는 주제가 받아들여졌다.[16] 그러나 유럽 열강의 공동 목표가 커져가는 정치적, 경제적 경쟁으로 대체되면서 유럽 협조 체제는 붕괴되었다.[12] 1818년 영국은 대륙 문제에 관여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미래의 혁명을 억압하려는 차르 알렉산드르 1세의 계획을 거부했다. 아르츠는 1822년의 베로나 회의가 "종말을 고했다"고 말한다.[18] 1848년 혁명적 격변 동안 옛 체제를 복원하기 위한 회의는 소집되지 않았다.[19][20] 보수 군주국들은 신성 동맹을 형성했으나,[10] 이 동맹은 동방 문제로 묘사되는 오스만 제국에서의 위기로 인해 1850년대에 분열되었다.[9]

2. 2. 세력 균형 외교와 주요 분쟁

1814년부터 1919년까지 유럽의 국제 관계는 세력 균형의 원칙에 따라 움직였다. 이는 특정 국가가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을 막고, 전쟁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보상' 개념은 한 국가가 영토를 확장하면 다른 국가도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29]

이러한 원칙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여러 차례 주요 분쟁을 겪었다. 폴란드-작센 위기는 세력 균형 원칙이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그리스 독립 전쟁은 1820년대의 주요 군사적 분쟁이었다. 열강들은 오스만 제국의 멸망을 원치 않았기에 그리스를 지원했지만, 초기에는 오스만의 종주권 아래 자치 국가를 세우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1832년 콘스탄티노플 조약을 통해 그리스는 완전한 독립 왕국으로 인정받았다.[29] 그리스 반군은 초기 성공 이후 내부 분쟁에 시달렸고, 이집트의 지원을 받은 오스만 제국은 반란을 잔혹하게 진압했다. 유럽에서는 바이런 경으로 대표되는 인도주의적 우려가 커졌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쇠퇴하는 오스만 제국을 희생시키면서 팽창하는 러시아를 견제하고, 동방 정교회를 믿는 그리스인들을 지원하며,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개입했다.[30][31] 런던 조약을 통해 열강들은 오스만 정부가 그리스인에게 자치를 부여하도록 강요했고, 나바리노 해전에서 연합군은 오스만-이집트 연합군을 격파하여 그리스 공화국을 붕괴로부터 구했다.[32] 이후 1828–29년의 러시아-튀르크 전쟁과 프랑스 원정군의 개입을 통해 그리스의 독립이 확보되었다.[33]

나바리노 (1827년)의 연합군 승리


1832년 독립 이후 1947년까지 그리스의 영토 변화


영국은 이 시기 동안 불개입 정책을 유지하며, 조지 캐닝은 다른 강대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피하는 외교 정책을 펼쳤다. 영국은 영국 해군의 힘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럽 대륙에서 특정 국가의 지배를 막고, 오스만 제국을 지원하여 러시아의 팽창을 저지하려 했다. 또한, 자유주의를 탄압하는 개입에 반대하며, 먼로 독트린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의 독립을 지지하고 프랑스의 지배를 막고자 했다.

1846년 곡물법 폐지는 자유 무역을 대영 제국의 국책으로 만들었으며, 이는 "맨체스터 학파"의 산업 이익이 보호 무역주의적인 농업 이익보다 우선시됨을 보여주었다.[54] 팜스턴 경은 1830년부터 1865년까지 영국의 외교 정책을 주도하며, 영국의 이익 옹호, 언론 활용, 입헌 자유 정부 확산, 영국의 민족주의 장려, 세력 균형 유지, 전제 국가 견제 등의 목표를 추구했다.[55][56] 그는 프랑스와 협력하면서도 영구적인 동맹은 맺지 않았고, 러시아의 확장을 막기 위해 전제적인 오스만 제국을 지원했다.[57] 애버딘 경은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 프랑수아 기조와 같은 유럽 주요 외교관들과 협력하여 그리스, 포르투갈, 벨기에 문제 등에서 영국을 대륙 외교의 중심에 세웠다. 또한, 미국과의 메인주 국경 분쟁을 해결하고,[58] 아편 전쟁을 통해 홍콩을 장악했다.[59][60]

2. 3. 1848년 혁명과 유럽 협조 체제의 위기

1848년 혁명은 1848년 유럽 전역에서 발생한 일련의 정치적 격변이었다.[64] 이 혁명들은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성격을 띠었으며, 낡은 군주제 체제를 타파하고 독립적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66] 혁명은 프랑스 2월 혁명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50개국 이상이 영향을 받았다.[65] 자유주의 사상은 수십 년 동안 확산되었고, 각국의 활동가들은 공통의 기반에서 혁명의 동력을 얻었지만, 인접 국가의 혁명가들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다.[65]

혁명의 주요 원인으로는 정치 지도부에 대한 불만, 정부 및 민주주의 참여 확대 요구, 언론의 자유 요구, 노동 계급의 요구, 민족주의의 부상 등이 있었다.[66] 당시 자유주의는 전제 정부법치주의에 기반한 입헌 국가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는 부르주아지의 신념이었지만, 그들은 권력을 잡지 못했다. 프랑스에서는 이것이 주요 요인이었다.[67]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서는 민족주의가 주요 요인이었다. 낭만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은 민족주의는 공통의 과거를 가진 민족/언어 집단을 일깨웠다. 독일인과 이탈리아인은 여러 정부 아래에서 살았고, 자체 국가로 통합되기를 원했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경우, 헝가리인을 비롯한 여러 민족들이 외세의 통치에 억압받으며 혁명을 일으켰다.[67]

봉기는 개혁가, 중산층, 노동자들의 일시적인 연합으로 시작되었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68] 프랑스에서 시작된 혁명은 대규모 군중이 루이 필리프 1세 국왕을 퇴위시키면서 유럽 전역에 군주제를 타도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수만 명이 사망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망명했다. 중요한 개혁으로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서의 농노제 폐지, 덴마크의 절대 군주제 종식, 네덜란드의 대의 민주주의 도입 등이 있었다.[68] 혁명은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연방 국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가장 중요했다.[68] 그러나 반동 세력이 궁극적으로 우위를 점했는데, 이는 헝가리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과 전통적인 귀족 및 국교회의 지원 덕분이었다. 혁명은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하게 발생하여 전통적인 세력을 당황하게 했지만, 혁명가들 역시 권력을 유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내분을 겪었다. 반면 귀족들은 막대한 부, 광범위한 네트워크, 많은 종속적인 대상, 그리고 옛 질서 회복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점진적으로 반격했다.[69]

크림 전쟁 (1853년~1856년)은 러시아와 영국, 프랑스, 사르데냐, 오스만 제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러시아의 패배로 끝났다.[78][79] 나폴레옹 3세 치하의 프랑스는 술탄에게 성지 내 기독교 유적 보호자로 인정받도록 강요했고, 러시아는 오스만 제국 내 모든 동방 정교회 기독교도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이에 반발했다. 프랑스가 흑해에 함대를 파견하자 러시아도 무력 시위로 대응했다. 1851년 러시아는 몰다비아왈라키아의 오스만 속령에 군대를 보냈고, 오스만 제국의 안전을 우려한 영국은 프랑스와 연합하여 함대를 파견했다. 외교적 노력은 실패했고, 술탄은 1851년 10월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11월 오스만 해군이 패배한 후,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대부분의 전투는 크림 반도에서 벌어졌고, 연합군이 결국 승리했다.[80]

1856년 파리 회의에서 크림 전쟁을 종결한 외교관들. 에두아르 루이 뒤뷔프의 ''파리 회의''
]]

1856년 3월 30일 파리 조약이 체결되면서 전쟁은 종결되었다. 열강들은 오스만 제국의 독립과 영토 보전을 존중하기로 합의했다. 러시아는 영토 일부를 포기하고 오스만 영토 내 기독교도에 대한 보호권을 포기했다. 흑해는 비무장 지대가 되었고, 다뉴브 강의 항해의 자유와 상업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국제 위원회가 설치되었다. 몰다비아와 왈라키아는 형식적으로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독립적인 헌법과 국민 의회를 부여받았다.[81] 전시 상업에 대한 새로운 규칙으로, 사략선 행위는 불법화되었고, 중립 국기는 밀수품을 제외한 적국 물품을 보호하며, 밀수품을 제외한 중립 물품은 적국 국기 아래에서 압류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봉쇄는 합법적이기 위해 효과적이어야 했다.[82]

크림 전쟁은 철도, 전신, 현대 간호 등 신기술을 도입하여 전쟁 방식을 현대화했다. 러시아 제국군은 취약성, 열악한 지도력, 현대 무기 및 기술 부족을 드러냈고, 러시아 경제는 군사적 모험을 지원할 수 없었다. 러시아는 중앙 아시아의 약소 이슬람 지역으로 관심을 돌리고 유럽 간섭을 자제했다. 러시아 지식인들은 패배를 통해 정부와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했다. 크림 전쟁은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를 약화시켜 카보르 (이탈리아) 및 오토 폰 비스마르크 (독일)가 1860년대에 유럽을 재편하는 전쟁을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83][84]

3. 민족주의와 통일 국가의 등장 (1848-1871)

19세기 초중반, 민족주의는 같은 언어와 종교를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문화적 정체성을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급격히 성장했다. 이는 독일인,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그리스인, 그리고 동남유럽의 슬라브족 사이에서 더 큰 통일 또는 독립을 요구하는 강력한 힘이었다. J. B. 버리는 민족주의가 1830년에서 1870년 사이에 큰 진전을 이루어 훌륭한 문학에 영감을 주고, 학문을 촉진했으며, 영웅들을 길렀다고 주장한다. 또한 독일과 이탈리아의 통합을 이끌었지만,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 제국과 같은 다민족 국가에는 위협이 되었다고 설명한다.[94]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는 1848년부터 1871년까지 이탈리아인들이 북부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와 남부의 스페인 부르봉 왕가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 국가 통일을 이룩한 시기를 말한다.[106][107][108][109] 사르데냐 왕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새로운 이탈리아 국가에 자국의 입헌 체제를 강요했다.

1829년부터 1871년까지의 이탈리아 통일 과정


교황령 통제권을 포기하면 가톨릭 교회가 약화될 것을 우려한 교황청은 통일에 저항하기 위해 프랑스의 지원을 확보했다.[110] 그러나 이탈리아 왕국은 프랑스군이 철수한 1870년에 교황령을 점령했다. 교황 비오 9세는 스스로를 바티칸의 죄수라고 선언했으며, 그의 후임인 교황 비오 11세는 1929년에 이탈리아와 평화 조약을 맺었다.[111]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지도 아래 프로이센 왕국은 독일 전체(오스트리아 제외)를 통일하고, 프로이센 왕이 수장인 새로운 독일 제국을 건설했다.[124][125] 이를 위해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와 일련의 짧고 결정적인 전쟁을 벌였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승리하여 독일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고, 오스트리아는 열강 중 두 번째로 전락했다.[123]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독일 민족주의 정신은 바이에른 왕국작센 왕국과 같은 작은 독일 국가들이 프로이센과 함께 전쟁에 참여하도록 했고, 독일 연합은 손쉽게 승리하여 프랑스를 열강 중 2류 국가로 전락시켰다.

프로이센군이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승리 후 파리의 샹젤리제를 행진하고 있다.


오스만 제국의 쇠퇴와 함께 발칸 반도에서는 민족주의 운동이 격화되었다.[70][71] 세르비아는 1804년부터 1835년까지 세르비아 혁명을 통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자치권을 획득하고, 1835년 최초의 성문 헌법을 채택하여 봉건제와 농노제를 폐지했다.[74][75][76][77] 그리스그리스 독립 전쟁을 통해 1832년 콘스탄티노플 조약으로 완전한 독립을 인정받았다.[29]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개입했다. 러시아는 동방 정교회를 믿는다는 이유로 그리스를 지원하였고, 오스만 제국을 희생시키면서 팽창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야망은 다른 유럽 열강들에게 지정학적 위협으로 여겨졌고,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공동 개입했다.[30][31] 나바리노 해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는 그리스 독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33]

몰다비아왈라키아는 1859년 통일하여 최초의 현대 루마니아 국가를 수립하였고, 1878년에 루마니아 왕국은 독립을 달성했다.[85][87]

이러한 발칸 국가들의 독립 과정은 '동방 문제'를 심화시켰다. 오스만 제국의 약화는 유럽 열강, 특히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간의 경쟁을 야기했다. 러시아는 범슬라브주의를 내세워 남하 정책을 추진했고, 이는 오스트리아-헝가리와의 갈등을 초래했다.[216] 세르비아 왕국남슬라브 국가 건설을 목표로 했고,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인들은 세르비아를 민족주의의 중심으로 여겼다.[217]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범슬라브주의와 세르비아 민족주의에 강력하게 반대하여 세르비아와 갈등을 빚었다.[221] 세르비아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지만, 러시아는 초기에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222]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의 시작과 함께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3. 1. 이탈리아 통일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는 1848년부터 1871년까지 이탈리아인들이 북부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와 남부의 스페인 부르봉 왕가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 국가 통일을 이룩한 시기를 일컫는다.[106][107][108][109] 사르데냐 왕국으로 알려진 피에몬테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새로운 이탈리아 국가에 자국의 입헌 체제를 강요했다.

교황청은 통일에 저항하기 위해 프랑스의 지원을 확보했는데, 이는 교황령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하면 가톨릭 교회가 약화되고 자유주의자들이 보수적인 가톨릭 신자들을 지배하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110] 이탈리아 왕국은 결국 1870년에 교황령을 점령했는데, 당시 프랑스군이 철수했기 때문이다. 분노한 교황 비오 9세는 스스로를 바티칸의 죄수라고 선언했으며, 그의 후임인 교황 비오 11세는 마침내 1929년에 이탈리아와 평화 조약을 맺었다.[111] 1870년 이후 이탈리아는 여섯 번째 강대국으로 인정받았지만, 다른 강대국들보다 훨씬 약했다.[112]

3. 2. 독일 통일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지도 아래 프로이센 왕국은 독일 전체(오스트리아 제외)를 통일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프로이센 왕이 수장인 새로운 독일 제국을 건설했다.[124][125] 이를 위해 그는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와 일련의 짧고 결정적인 전쟁을 벌였다. 많은 소규모 독일 국가들은 프로이센을 따라 1871년 프랑스를 격파한 후 마침내 연합했다.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빠르게 승리하여 독일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고, 오스트리아는 열강 중 두 번째로 전락했다.[123]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독일 민족주의 정신은 바이에른 왕국작센 왕국과 같은 작은 독일 국가들이 프로이센과 함께 전쟁에 참여하도록 했고, 독일 연합은 손쉽게 승리하여 프랑스를 열강 중 2류 국가로 전락시켰다. 비스마르크의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고 역동적인 국가가 되었고, 비스마르크는 수십 년 동안 유럽의 평화를 증진했다.

3. 3. 발칸 반도의 민족주의 운동

오스만 제국의 쇠퇴와 함께 발칸 반도에서는 민족주의 운동이 격화되었다.[70][71] 세르비아는 1804년부터 1835년까지 세르비아 혁명을 통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자치권을 획득하고, 1835년 최초의 성문 헌법을 채택하여 봉건제와 농노제를 폐지했다.[74][75][76][77] 그리스그리스 독립 전쟁을 통해 1832년 콘스탄티노플 조약으로 완전한 독립을 인정받았다.[29] 이 과정에서 영국, 프랑스, 러시아는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개입했다. 특히 러시아는 동방 정교회를 믿는다는 이유로 그리스를 지원하였고, 오스만 제국을 희생시키면서 팽창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러시아의 야망은 다른 유럽 열강들에게 지정학적 위협으로 여겨졌고, 영국과 프랑스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공동 개입했다.[30][31] 나바리노 해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는 그리스 독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33]

몰다비아왈라키아는 1859년 통일하여 최초의 현대 루마니아 국가를 수립하였고, 1878년에 루마니아 왕국은 독립을 달성했다.[85][87]

이러한 발칸 국가들의 독립 과정은 '동방 문제'를 심화시켰다. 오스만 제국의 약화는 유럽 열강, 특히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간의 경쟁을 야기했다. 러시아는 범슬라브주의를 내세워 남하 정책을 추진했고, 이는 오스트리아-헝가리와의 갈등을 초래했다.[216] 세르비아 왕국남슬라브 국가 건설을 목표로 했고,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인들은 세르비아를 민족주의의 중심으로 여겼다.[217]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범슬라브주의와 세르비아 민족주의에 강력하게 반대하여 세르비아와 갈등을 빚었다.[221] 세르비아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지만, 러시아는 초기에는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222]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의 시작과 함께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4. 제국주의 경쟁과 세계 분할 (1871-1914)

독일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주재한 베를린 회의는 아프리카에서 유럽의 제국주의를 규제했다.


대부분의 주요 강대국(그리고 벨기에, 네덜란드, 덴마크와 같은 일부 소국)은 제국주의에 참여하여 특히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해외 제국을 건설했다. 수많은 반란이 있었지만, 역사가들은 단 몇 차례의 전쟁만을 꼽으며, 이 전쟁들은 소규모였다: 제1차와 제2차 보어 전쟁 (1880–1881 및 1899–1902), 청일 전쟁 (1894–1895),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1895–1896), 미국-스페인 전쟁 (1898), 필리핀-미국 전쟁 (1899-1902), 그리고 이탈리아-오스만 전쟁 (1911). 가장 큰 전쟁은 1905년의 러일 전쟁으로, 두 강대국이 서로 싸운 유일한 전쟁이었다.[140]

1875년부터 1914년까지의 주요 제국들 중에서, 역사가들은 수익성 측면에서 혼합된 결과를 평가한다. 식민지는 제조 품목에 대한 훌륭한 포로 시장을 제공할 것이라는 가정이 있었다. 인도를 제외하고는, 이것은 거의 사실이 아니었다. 1890년대에 이르러 제국주의자들은 국내 제조업 부문에 공급하기 위한 저렴한 원자재 생산에서 주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전반적으로 영국은 인도에서 상당한 이익을 얻었지만, 제국 대부분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네덜란드는 동인도에서 매우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제국으로부터 거의 무역이나 원자재를 얻지 못했다. 프랑스는 약간 더 나았다. 콩고 자유국은 사유 기업으로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자본주의 고무 농장이었을 때 악명이 높을 정도로 수익성이 높았다. 그러나 노동자 학대와 관련된 스캔들이 잇따르자 국제 사회는 1908년 벨기에 정부가 이를 인수하도록 강요했고, 벨기에령 콩고는 훨씬 덜 수익성이 높아졌다. 필리핀은 미국에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초래했다.[141]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세계의 식민지 인구는 약 5억 6천만 명이었으며, 그 중 70.0%가 영국령, 10.0%가 프랑스령, 8.6%가 네덜란드령, 3.9%가 일본령, 2.2%가 독일령, 2.1%가 미국령, 1.6%가 포르투갈령, 1.2%가 벨기에령, 0.5%가 이탈리아령이었다. 식민 열강들의 본국 인구는 총 3억 7천만 명이었다.[142]

4. 1. 아프리카 분할

이집트가 영국에 의해 70년 동안 점령된 것은 영국-이집트 전쟁에서 비롯되었다.[148] 오스만 제국은 1914년까지 명목상 소유권을 유지했지만,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만 제국은 런던의 일방적인 개입에 분노했다.[149] 역사학자 A.J.P. 테일러는 이를 "위대한 사건, 실제로 세당 전투와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의 패배 사이 국제 관계에서 일어난 유일한 실제 사건"이라고 평가한다.[150] 테일러는 영국의 이집트 점령이 권력 균형을 변화시켜, 영국에게 인도로 가는 길을 안전하게 해주고 동지중해와 중동의 지배자가 되게 했으며, 10년 후 프랑스-러시아 동맹의 길을 열었다고 강조한다.[151]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과 그의 자유당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수에즈 운하를 보호하기 위한 긴급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정책 전환의 주요 원인으로 제시되었다.[152] 이집트를 완전히 식민지로 넘겨받는 것은 대규모 전쟁을 야기할 수 있다는 위험이 있었다.[153][154] 비평가들은 영국 금융가들의 투자와 이집트 채권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155]

1898년 파쇼다 사건 당시의 중앙 및 동아프리카


1882년 영국의 이집트 점령은 "아프리카 분할" 경쟁을 촉발시켰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이 아프리카에서 식민 제국을 확장했다. 벨기에 국왕은 콩고를 개인적으로 지배했다. 20세기에는 아프리카 분할이 비난받았지만, 당시에는 폭력과 착취에 대한 해결책으로 칭찬받았다. 비스마르크는 1884~1885년 베를린 회의를 통해 아프리카에서의 갈등을 피하기 위한 기본 규칙에 합의했다.

영국과 프랑스 간의 긴장은 1898년 파쇼다 사건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프랑스군은 수단 남부 지역을 점령하려 했으나 영국군에 의해 저지당했다. 프랑스는 철수했고, 영국은 이집트에 대한 통제권을, 프랑스는 모로코에 대한 지배적인 세력권을 인정받았다.

오스만 제국은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에 대한 명목상의 통제권을 잃었고, 이집트에 대한 명목상의 통제권만 유지했다. 1875년, 영국은 이스마일 파샤로부터 수에즈 운하 주식을 매입했다.

1892년 알프레드-아메데 도즈 대령이 이끄는 세네갈 티레유가 다호미 (현재의 베냉)를 침공했다.


포르투갈 왕국은 16세기부터 브라질을 비롯하여 아프리카, 남아시아, 동아시아 해안에 무역 기지를 설립했다. 1815년 이후, 앙골라와 모잠비크를 통제했다. 노예 무역은 1836년에 폐지되었다.[177][178]

이탈리아는 1880년대 아프리카 분할에 참여하여 식민지 확장을 시도했다. 1881년 프랑스가 튀니지에 보호령을 선포하자 이탈리아는 좌절했다. 에티오피아 제국 정복을 시도했으나 1896년 아두와 전투에서 패배했다. 1911년 이탈리아-터키 전쟁을 통해 리비아를 점령했지만, 리비아 평정 과정에서 막대한 사상자를 냈다.[179][180]

4. 2. 아시아에서의 제국주의 경쟁

19세기 대부분 동안 영국과 러시아는 중앙아시아남아시아에서 그레이트 게임이라 불리는 정치적, 외교적 대립을 벌였다.[158] 영국은 인도로 가는 모든 접근로를 보호하고자 하였고, 러시아는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정복을 통해 영국을 압박하려 했다.[159] 양국은 내부 아시아에서 식민지 확장을 시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불신과 전쟁 위협이 고조되었다.[160][161]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러시아와 영국 모두 중앙아시아 지배를 중시한다는 점을 이용하여, 1871년부터 1890년까지 러시아가 아시아에 더 많은 군대를 투입하도록 유도했다.[162]

1860년대부터 일본은 서구식 근대화를 통해 근대 국가로 빠르게 변모했다.[181] 일본은 오키나와와 대만을 장악하고, 한국만주 지배를 추구하며 청일 전쟁(1894~1895)과 러일 전쟁(1904~1905)을 일으켰다.[182]

청일 전쟁에서 일본은 청나라를 격파하고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타이완, 펑후 제도, 랴오둥반도를 할양받았다.[184][185] 그러나 삼국 간섭으로 인해 랴오둥반도는 반환되었다.[185]

[[File:Putting_his_foot_down.jpg|thumb|250px|"발을 딛다": 엉클 샘(미국)이 1899년 주요 열강들이 청나라를 분할하려는 가운데 "문호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독일 제국, 이탈리아 왕국, 대영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러시아 제국 & 프랑스 제3공화국은 각각 빌헬름 2세, 움베르토 1세, 존 불, 프란츠 요제프 1세 (후면) 엉클 샘, 니콜라이 2세, 그리고 에밀 루베로 묘사된다. ''펀치'' 1899년 8월 23일 J. S. Pughe

러일 전쟁에서 일본은 러시아에 기습 공격을 감행하여 승리함으로써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변화시켰다.[190][191] 이는 근대 시기에 아시아 국가가 유럽 국가를 상대로 거둔 최초의 주요 군사적 승리였다.[191]

한편, 청나라는 영국, 프랑스, 일본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19세기 중반부터 1920년대까지 유럽 열강과 일본에 의해 실질적으로 지배당했다.[193] 이들은 불평등 조약을 통해 치외 법권을 행사했다.[194][195] 1899~1900년, 미국은 모든 국가가 중국 항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문호 개방 정책을 추진했다.[196]

5.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 (1914)

1870년부터 1914년까지 오스만 제국의 붕괴 위협과 발칸 반도의 기독교 민족주의 고조는 유럽 열강 간의 갈등을 야기했다.[210] 특히 러시아 제국흑해지중해를 연결하는 콘스탄티노폴리스 해협 통제를 목표로 했고, 영국은 러시아의 확장을 막기 위해 오스만 제국을 지원했다. 그러나 윌리엄 글래드스턴이 불가리아 기독교인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만행을 폭로하면서 상황이 악화되었고,[210] 아르메니아인 학살과 러시아의 유대인 박해는 유럽 전역의 여론을 악화시켜 타협을 어렵게 만들었다.[210]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통치하는 다문화 국가로, 민족주의 운동이 성장하고 있었다. 헝가리인들은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타협을 통해 자치를 얻었지만, 다른 소수 민족들은 소외감을 느꼈다. 수데텐란트의 독일 민족주의자들은 베를린을 바라보았고,[212] 오스트리아 내 독일어 사용 오스트리아인들은 제국 내에서 고위직을 차지하며 번성했다. 러시아는 제국 내 슬라브족과 세르비아의 민족주의 단체들을 지원하며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주요 적대 세력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 이탈리아는 삼국 동맹을 맺었지만,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에 불만을 품고 영토를 요구했다.

줄라 안드라시 외무 장관(1871~1879)은 영국과 독일의 지원을 받아 제국을 동남 유럽으로 확장하려 했고,[213][214] 러시아의 팽창주의와 슬라브 민족주의 운동을 경계했다.[213][214] 20세기 초, 알로이스 렉사 폰 에렌탈 외무 장관(1906~1912)은 슬라브 민족의 통합과 발칸 동맹의 위협을 과소평가하고 오스만 제국의 동맹 제안을 거부하는 등 오판을 거듭하여 오스트리아의 적들을 강화했다.[215]

"러시아의 위협: 1877년의 진지하고 우스꽝스러운 전쟁 지도", 1877년 영국 만화로, 러시아를 오스만 제국을 특히 포함하여 인접한 땅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문어로 묘사


세르비아 왕국남슬라브 국가 건설을 목표로 했고,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인들은 세르비아를 민족주의의 중심으로 여겼지만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1908년 오스트리아의 보스니아 합병은 세르비아인들을 격분시켰고, 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로 이어졌다.[218] 세르비아는 아드리아 해 진출을 원했지만 오스트리아가 이를 막았고, 세르비아는 1913년 노비 파자르와 마케도니아 일부를 획득한 후에야 접근이 가능했다.[219] 세르비아, 그리스, 몬테네그로, 불가리아는 발칸 동맹을 결성하여 1912~1913년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했지만,[220] 오스트리아는 범슬라브주의와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전쟁을 준비했다.[221] 세르비아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지만, 러시아는 1914년까지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다가 군사적 지원을 약속했다.[222]

1876년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터키에 선전포고했지만 패배했고,[224] 글래드스턴의 불가리아 참극 폭로는 영국 내 반(反) 터키 여론을 일으켰다. 러시아는 터키에 선전포고하여 승리했고, 1878년 산 스테파노 조약을 체결하여 러시아와 불가리아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왔다.[225] 그러나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는 베를린 회의 (1878)를 통해 조약을 수정했고, 독일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중재했다.[226] 회의 결과 독일과 러시아의 유대가 약화되었고,[227] 오스트리아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장악하여 1908년 합병, 세르비아인들의 분노를 샀다.[229]

프랑스-러시아 동맹

보스니아 위기 당시의 프랑스 주간지 ''르 프티 저널'' 표지


비스마르크 해임(1890) 이후 독일이 러시아와의 재보험 조약 갱신을 거부하면서 프랑스와 러시아는 동맹을 맺게 되었다.[245] 프랑스는 러시아 경제 발전에 자금을 지원하고 군사 동맹을 모색했으며,[245] 1894년 비밀 조약은 독일 공격 시 상호 지원을 규정했다.[247][248] 조지 F. 케넌은 러시아가 비스마르크의 동맹 정책을 붕괴시키고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이끈 주범이라고 비난한다.[249]

1908–1909년 보스니아 위기는 오스트리아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합병 발표로 시작되었다.[250] 이 지역은 1878년 베를린 회의에서 오스트리아에 위임되었지만,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다. 오스트리아의 조치는 불가리아의 독립 선언과 맞물려 열강, 특히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의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1909년 베를린 조약 수정으로 위기는 종식되었지만,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 이탈리아, 러시아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러시아는 군비 증강을 서둘렀고,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의 분노는 1914년 프란츠 페르디난트 암살로 이어졌다.[250]

오스만 제국의 쇠퇴는 1912-1913년 발칸 전쟁으로 이어졌고, 이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서막이 되었다.[251] 1900년경 발칸 반도에는 불가리아 왕국, 그리스 왕국, 몬테네그로 왕국, 세르비아 왕국이 형성되었지만, 많은 동족들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1912년 이들 국가는 발칸 동맹을 결성했다. 제1차 발칸 전쟁은 오스만 제국의 개혁 실패, 열강들의 갈등, 발칸 동맹의 자신감 때문에 발발했다.[252][253] 발칸 동맹은 오스만 제국을 격파하고 런던 조약을 체결했지만, 불가리아는 마케도니아 분할에 불만을 품고 제2차 발칸 전쟁을 일으켰다. 부쿠레슈티 조약으로 불가리아는 영토를 잃었고, 발칸 반도의 긴장은 고조되었다.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의 관계는 악화되었고, 러시아는 굴욕감을 느꼈다. 불가리아와 터키도 불만을 품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트리아와 독일에 합류했다.[254]

1871년 독일에 의해 빼앗긴 알자스-로렌 지방에 대해 프랑스 학생들이 배우고 있다.


1871년 패배 이후 프랑스는 독일에 대한 복수심(복수주의)을 품었고,[262] 알퐁스 드 누빌의 그림처럼 패배의 굴욕을 강조하는 작품들이 인기를 끌었다.[263] 프랑스는 알자스-로렌 반환 없이는 독일과의 우호 관계가 불가능하다고 여겼고, 독일은 반환을 거부했다.[264] 프랑스는 러시아, 영국과의 동맹을 모색했고,[264] 1914년에는 삼국 협상이 형성되어 제1차 세계 대전 연합국의 기반이 되었다.

프랑스는 프랑스-러시아 동맹을 통해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났고, 1904년 영국-프랑스 협상과 1907년 영국-러시아 협상을 통해 영국을 삼국 협상으로 끌어들였다.

5. 1. 동맹 시스템의 형성과 발칸 위기

1870년부터 1914년까지 오스만 제국의 붕괴 위협과 발칸 반도의 기독교 민족주의 고조는 유럽 열강 간의 갈등을 야기했다.[210] 특히 러시아 제국흑해지중해를 연결하는 콘스탄티노폴리스 해협 통제를 목표로 했고, 영국은 러시아의 확장을 막기 위해 오스만 제국을 지원했다. 그러나 윌리엄 글래드스턴이 불가리아 기독교인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만행을 폭로하면서 상황이 악화되었고,[210] 아르메니아인 학살과 러시아의 유대인 박해는 유럽 전역의 여론을 악화시켜 타협을 어렵게 만들었다.[210]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통치하는 다문화 국가로, 민족주의 운동이 성장하고 있었다. 헝가리인들은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 타협을 통해 자치를 얻었지만, 다른 소수 민족들은 소외감을 느꼈다. 수데텐란트의 독일 민족주의자들은 베를린을 바라보았고,[212] 오스트리아 내 독일어 사용 오스트리아인들은 제국 내에서 고위직을 차지하며 번성했다. 러시아는 제국 내 슬라브족과 세르비아의 민족주의 단체들을 지원하며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주요 적대 세력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 이탈리아는 삼국 동맹을 맺었지만,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에 불만을 품고 영토를 요구했다.

줄라 안드라시 외무 장관(1871~1879)은 영국과 독일의 지원을 받아 제국을 동남 유럽으로 확장하려 했고,[213][214] 러시아의 팽창주의와 슬라브 민족주의 운동을 경계했다.[213][214] 20세기 초, 알로이스 렉사 폰 에렌탈 외무 장관(1906~1912)은 슬라브 민족의 통합과 발칸 동맹의 위협을 과소평가하고 오스만 제국의 동맹 제안을 거부하는 등 오판을 거듭하여 오스트리아의 적들을 강화했다.[215]

세르비아 왕국남슬라브 국가 건설을 목표로 했고,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인들은 세르비아를 민족주의의 중심으로 여겼지만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1908년 오스트리아의 보스니아 합병은 세르비아인들을 격분시켰고, 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로 이어졌다.[218] 세르비아는 아드리아 해 진출을 원했지만 오스트리아가 이를 막았고, 세르비아는 1913년 노비 파자르와 마케도니아 일부를 획득한 후에야 접근이 가능했다.[219] 세르비아, 그리스, 몬테네그로, 불가리아는 발칸 동맹을 결성하여 1912~1913년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했지만,[220] 오스트리아는 범슬라브주의와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전쟁을 준비했다.[221] 세르비아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지만, 러시아는 1914년까지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다가 군사적 지원을 약속했다.[222]

1876년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터키에 선전포고했지만 패배했고,[224] 글래드스턴의 불가리아 참극 폭로는 영국 내 반(反) 터키 여론을 일으켰다. 러시아는 터키에 선전포고하여 승리했고, 1878년 산 스테파노 조약을 체결하여 러시아와 불가리아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왔다.[225] 그러나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는 베를린 회의 (1878)를 통해 조약을 수정했고, 독일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중재했다.[226] 회의 결과 독일과 러시아의 유대가 약화되었고,[227] 오스트리아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장악하여 1908년 합병, 세르비아인들의 분노를 샀다.[229]

프랑스-러시아 동맹

비스마르크 해임(1890) 이후 독일이 러시아와의 재보험 조약 갱신을 거부하면서 프랑스와 러시아는 동맹을 맺게 되었다.[245] 프랑스는 러시아 경제 발전에 자금을 지원하고 군사 동맹을 모색했으며,[245] 1894년 비밀 조약은 독일 공격 시 상호 지원을 규정했다.[247][248] 조지 F. 케넌은 러시아가 비스마르크의 동맹 정책을 붕괴시키고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이끈 주범이라고 비난한다.[249]

1908–1909년 보스니아 위기는 오스트리아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합병 발표로 시작되었다.[250] 이 지역은 1878년 베를린 회의에서 오스트리아에 위임되었지만,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다. 오스트리아의 조치는 불가리아의 독립 선언과 맞물려 열강, 특히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의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1909년 베를린 조약 수정으로 위기는 종식되었지만,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 이탈리아, 러시아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러시아는 군비 증강을 서둘렀고,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의 분노는 1914년 프란츠 페르디난트 암살로 이어졌다.[250]

오스만 제국의 쇠퇴는 1912-1913년 발칸 전쟁으로 이어졌고, 이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서막이 되었다.[251] 1900년경 발칸 반도에는 불가리아 왕국, 그리스 왕국, 몬테네그로 왕국, 세르비아 왕국이 형성되었지만, 많은 동족들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1912년 이들 국가는 발칸 동맹을 결성했다. 제1차 발칸 전쟁은 오스만 제국의 개혁 실패, 열강들의 갈등, 발칸 동맹의 자신감 때문에 발발했다.[252][253] 발칸 동맹은 오스만 제국을 격파하고 런던 조약을 체결했지만, 불가리아는 마케도니아 분할에 불만을 품고 제2차 발칸 전쟁을 일으켰다. 부쿠레슈티 조약으로 불가리아는 영토를 잃었고, 발칸 반도의 긴장은 고조되었다.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의 관계는 악화되었고, 러시아는 굴욕감을 느꼈다. 불가리아와 터키도 불만을 품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트리아와 독일에 합류했다.[254]

1871년 패배 이후 프랑스는 독일에 대한 복수심(복수주의)을 품었고,[262] 알퐁스 드 누빌의 그림처럼 패배의 굴욕을 강조하는 작품들이 인기를 끌었다.[263] 프랑스는 알자스-로렌 반환 없이는 독일과의 우호 관계가 불가능하다고 여겼고, 독일은 반환을 거부했다.[264] 프랑스는 러시아, 영국과의 동맹을 모색했고,[264] 1914년에는 삼국 협상이 형성되어 제1차 세계 대전 연합국의 기반이 되었다.

프랑스는 프랑스-러시아 동맹을 통해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났고, 1904년 영국-프랑스 협상과 1907년 영국-러시아 협상을 통해 영국을 삼국 협상으로 끌어들였다.

5. 2. 1914년 7월 위기와 전쟁 발발

1870년대 또는 1880년대에 이르러, 모든 주요 강대국들은 대규모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전쟁을 예상하지 못했다.[261] 영국 해군을 증강하는 데 집중한 영국을 제외하고, 독일 제국, 프랑스,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 왕국, 러시아 제국 및 일부 소규모 국가들은 징병 제도를 도입하여 젊은이들이 군 복무 후 예비군으로 편성되도록 하였다.[261]

각 국가는 예비군을 신속하게 소집하여 철도로 주요 지점으로 보낼 수 있는 동원 시스템을 고안했다. 매년 계획은 복잡성이 더해져 갱신되고 확장되었다. 각국은 수백만 명에 달하는 군대를 위해 무기와 물자를 비축했다.[261] 1874년 독일은 42만 명의 정규 직업 군인과 130만 명의 예비군을 보유했으며, 1897년에는 정규군이 54만 5천 명으로 증가했고 예비군은 340만 명에 달했다. 1897년 프랑스는 340만 명의 예비군을, 오스트리아는 260만 명을, 러시아는 400만 명을 보유했다. 각국의 다양한 전쟁 계획은 1914년까지 완벽하게 다듬어졌지만,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는 효율성 면에서 뒤처졌다. 모든 계획은 결정적인 개시와 단기전을 요구했다.[261]

6. 베르사유 조약과 새로운 국제 질서

윌리엄 오르펜의 그림 '거울의 방에서 열린 베르사유 평화 조약 조인식, 1919년 6월 28일'의 세부 묘사로, 승전국의 대표단 맞은편에서 한 하급 독일 관리가 평화 조약에 서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File:Big-Four-Paris_1919.jpg|thumb|200px|left|"4강" :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오를란도, 조르주 클레망소, 우드로 윌슨 (1919년 파리 강화 회의)]

1919년, 파리 강화 회의에서 승전국들이 세계 대전을 종식시켰다. 27개국이 대표단을 파견했고, 많은 비정부 단체가 참여했지만, 패전국들은 초대받지 못했다.[291][292]

"4강"은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 영국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프랑스 총리 조르주 클레망소, 이탈리아 총리 비토리오 오를란도였다. 그들은 145번의 비공식 회동을 가졌으며, 주요 결정을 내렸고, 이 결정들은 다른 참가국들의 비준을 받았다.[293]

주요 결정 사항으로는 국제 연맹 창설, 패전국과의 5개 평화 조약 (특히 독일과의 베르사유 조약), 독일에 부과된 막대한 배상금, 독일 및 오스만 제국의 해외 영토를 주로 영국과 프랑스에 "위임통치" 형식으로 할당, 그리고 민족주의의 힘을 더 잘 반영하기 위한 새로운 국경선 설정 (때로는 국민투표를 통해) 등이 있었다. "죄과 조항" (제231조)에서, 전쟁의 책임은 "독일과 동맹국의 침략"으로 돌려졌다. 독일은 1931년에 배상금 지급이 중단되기 전까지 배상금의 극히 일부만 지불했다.[294][295]

한편, 일제강점기를 맞이한 한국은 이러한 국제 정세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못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으로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된 한국은, 국제 사회에서 독립된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일본의 일부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3·1 운동과 같은 독립운동의 배경이 되었고,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베르사유 조약과 국제연맹 체제는 한국의 독립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

6. 1. 한국 관련 내용

1905년, 일본 제국과 대한제국은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한국을 일본의 보호령으로 만들고 일본의 세력권에 편입시켰다. 이 조약은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일본이 한반도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192] 이 조약은 2년 후인 정미 7조약 체결로 이어졌다. 1907년 조약은 한국이 일본인 통감의 지도를 받도록 하고, 한국의 내정을 일본의 통제 하에 두도록 했다.[192] 대한제국 고종은 헤이그 특사 파견으로 일본의 행위에 항의한 탓에, 그의 아들인 순종에게 양위해야 했다.[192] 결국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어 한국은 일본에 정식으로 병합되었다.[192]

참조

[1] 서적 A Generation of Materialism: 1871–1900 1941
[2] 서적 Reaction and Revolution: 1814–1832 1934
[3] 서적 The Transformation of European Politics: 1763–1848 1996
[4] 논문 The nineteenth century system: balance of power or political equilibrium? https://www.jstor.or[...] 1989
[5] 서적 Crisis Diplomacy: The Great Powers Since the Mid-Nineteenth Century https://books.google[...] Cambridge UP
[6] 서적 A Diplomatic history of Europe since the Congress of Vienna 1958
[7] 서적 The League of Nations in retrospect https://books.google[...] Walter De Gruyter 2016-02-24
[8] 서적 Great Power Diplomacy: 1814–1914 1992
[9] 서적 The Collapse of the Concert of Europe https://www.worldcat[...] Macmillan Education, Limited 2015
[10] 서적 The Holy Alliance, 1815–1853 https://www.cambridg[...]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1-10-08
[11] 서적 Great Power Diplomacy: 1814–1914 1992
[12] 서적 International Relations, 1815–1830 1965
[13] 서적 Allied Diplomacy in Peacetime: The Failure of the Congress 'System', 1815–23 1979
[14] 서적 Reaction and Revolution: 1814–1832 1934
[15] 서적 The Transformation of European Politics: 1763–1848 1996
[16] 서적 The System of Alliances and the Balance of Power 1960
[17] 서적 A World Restored: Metternich, Castlereagh and the Problems of Peace, 1812–22 1957
[18] 서적 Reaction & Revolution: 1814–1832 1934
[19] 서적 The Transformation of European Politics: 1763–1848 1996
[20] 서적 Great Power Diplomacy: 1814–1914 1992
[21] 서적 A Mad, Bad, and Dangerous People?: England 1783–1846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22] 서적 Defence and Diplomacy: Britain and the Great Powers, 1815–1914 1993
[23] 서적 Encyclopedia of the middle passage https://books.google[...] Greenwood Press
[24] 논문 Slave Smuggling by Foreign Privateers: The Illegal Slave Trade and the Geopolitics of the Early Republic 2013
[25] 서적 Abolition: A History of Slavery and Antislave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9
[26] 서적 The Spanish American Revolutions 1808–1826 1986
[27] 서적 Latin American Revolutions, 1808–1826: Old and New World Origins 1994
[28] 서적 Spain, 1808–1975 1982
[29] 서적 Great Power Diplomacy: 1814–1914 1992
[30] 서적 A world restored: Metternich, Castlereagh, and the problems of peace, 1812–22 1957
[31] 서적 The Transformation of European Politics: 1763–1848 1996
[32] 서적 Modern British Foreign Policy: The nineteenth century, 1814–80 1975
[33] 서적 Greek Struggle for Independence: 1821–1833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3
[34] 논문 Ocean Freight Rates and Economic Development 1730–1913 https://ideas.repec.[...] 1958
[35] 서적 Oceans of Grain: How American Wheat Remade the World https://www.amazon.c[...] 2022
[36] 논문 Submarine telegraph cables: Business and politics, 1838–1939 https://www.jstor.or[...] Business History Review 2001
[37] 서적 Boats, Ships and Shipyards: Proceedings of the Ninth International Symposium on Boat and Ship Archaeology, Venice 2000 https://books.google[...] Oxbow Books
[38] 서적 Greyhounds of the Sea: The Story of the American Clipper Ship
[39] 서적 The Oxford Encyclopedia of Economic History
[40] 서적 The Tentacles of Progress: Technology Transfer in the Age of Imperialism, 1850–1940
[41] 논문 The Suez Canal and World Shipping, 1869–1914 https://www.jstor.or[...] Journal of Economic History 1958
[42] 논문 The Ascendancy of the Sailing Ship 1850–1885 https://www.jstor.or[...] Economic History Review 1956
[43] 서적 A Splendid Exchange: How Trade Shaped the World https://books.google[...] Grove/Atlantic 2016-02-24
[44] 서적 The Naval Institute Historical Atlas of the U.S. Navy https://books.google[...] Naval Institute Press
[45] 논문 The Compound Steam Engine and Productivity Changes in the German Merchant Marine Fleet, 1871–1887 https://www.jstor.or[...] Journal of Economic History 1968
[46] 논문 The King Edward and the development of the Mercantile Marine Steam Turbine http://www.tandfonli[...] Mariner's Mirror 2002
[47] 서적 The Victorian Internet: the remarkable story of the telegraph and the nineteenth century's online pioneers
[48] 서적 The struggle for control of global communication: The formative century
[49] 논문 "The Transatlantic Telegraphs and the 'Class of 1866'—the Formative Years of Transnational Networks in Telegraphic Space, 1858–1884/89" Historical Social Research/Historische Sozialforschung 2010
[50] 서적 The Invisible Weapon: Telecommunications and International Politics, 1851–1945
[51] 서적 The Crimean War: A History
[52] 서적 Great Power Diplomacy: 1814–1914
[53] 서적 A Scrap of Paper: Breaking and Making International Law during the Great War https://books.google[...] Cornell University Press 2016-02-24
[54] 논문 The Anti-Corn Law League History Today 1968
[55] 서적 Mastering Modern British History
[56] 서적 British foreign policy in the age of Palmerston
[57] 논문 Palmerston and Anglo–French Relations, 1846–1865 Diplomacy and Statecraft 2006
[58] 논문 Lord Ashburton and the Maine Boundary Negotiations Mississippi Valley Historical Review 1953
[59] 서적 Biographical dictionary of British prime ministers
[60] 서적 Britain in Europe: 1789–1914
[61] 서적 A Diplomatic history of Europe since the Congress of Vienna
[62] 서적 The Low Countries 1780–1940
[63] 서적 The Transformation of European Politics 1763–1848
[64] 서적 The Revolutions of 1848
[65] 논문 Transurban interconnectivities: an essay on the interpretation of the revolutions of 1848 European Review of History 2012
[66] 서적 The Revolutions in Europe 1848–1849
[67] 간행물 1848: A Turning Point?
[68] 서적 Political and social upheaval, 1832–1852 https://archive.org/[...]
[69] 논문 Crafting Counterrevolution: How Reactionaries Learned to Combat Change in 1848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2016
[70] 서적 The Ottoman Empire, 1700–1922
[71] 서적 Great Power Diplomacy: 1814–1914 1992
[72] 논문 Three British Prime Ministers and the Survival of the Ottoman Empire, 1855–1902 2014
[73] 서적 New Cambridge Modern History: 1870-1898 1962
[74] 서적 A History of Serbia and the Serbian Revolution John Murray 1847
[75] 서적 Empires and Peninsulas: Southeastern Europe Between Karlowitz and the Peace of Adrianople, 1699–1829 https://books.google[...] LIT Verlag Münster 2016-02-24
[76] 웹사이트 Dr http://www.ius.bg.ac[...] 2015-03-29
[77] 웹사이트 Serbian Revolution: Negotiations Legal Status Of Serbia http://www.museumstu[...]
[78] 간행물 The war that would not boil 1951
[79] 서적 The Crimean War https://archive.org/[...] 1960
[80] 서적 The Crimean War: A History 2011
[81] 논문 The Treaty of Paris of 1856 and Its Execution https://www.jstor.or[...] 1932
[82] 서적 The Cambridge History of British Foreign Policy, 1783–1919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6-02-24
[83] 서적 Aspects of European History 1789–1980 2001
[84] 논문 Long-term consequences of aggressive diplomacy: European relations after Austrian Crimean War threats http://www.roberttra[...] 2012
[85] 서적 The Union of Moldavia and Wallachia, 1859: An Episode in Diplomatic History Cambridge UP 2011
[86] 서적 The Romanians, 1774–1866 1996
[87] 서적 Russia and the formation of the Romanian National State 1821–1878 1984
[88] 서적 Rumania, 1866–1947 1994
[89] 웹사이트 US Army, Military History, Chapter 8, Mexican American War and After https://history.army[...]
[90] 웹사이트 Treaty of Guadalupe Hidalgo http://www.ourdocume[...] ourdocuments.gov 2007-06-27
[91] 논문 The War of the Triple Alliance https://www.jstor.or[...] 1987
[92] 서적 A brief history of Brazil https://archive.org/[...] 2010
[93] 서적 The history of Argentina https://archive.org/[...] 2015
[94] 서적 Nationality and nationalism 1960
[95] 서적 England and Italy, 1859–60 1961
[96] 논문 The Intervention Crisis of 1862: A British Diplomatic Dilemma? 2014
[97] 서적 Great Britain and the Schleswig-Holstein question, 1848–64: a study in diplomacy, politics, and public opinion 1975
[98] 논문 Partner or Puppet? Lord John Russell at the Foreign Office, 1859–1862 1987
[99] 서적 Greater France: A History of French Overseas Expansion 1996
[100] 논문 Napoleon III and the Second French Empire https://www.jstor.or[...] 1936
[101] 서적 France: 1814–1919 1963
[102] 서적 France, 1848–1945: Ambition, love and politics 1973
[103] 논문 The impact of Napoleon III on British politics, 1851–1880 https://books.google[...] 2001
[104] 서적 Struggle for Mastery
[105] 서적 Europe: Grandeur and Decline 1967
[106] 서적 Italian Unification 1820–71 2003
[107] 문서 Struggle for Mastery
[108] 웹사이트 A history of European diplomacy, 1815–1914 https://archive.org/[...] 1922
[109] 문서 Great Power Diplomacy 1814–1914
[110] 서적 Pio Nono: A Study in European Politics and Religion in the Nineteenth Century 1954
[111] 간행물 Prisoner in the Vatican: Rome In 1870 History Today 1970-09
[112] 서적 An Economic History of Liberal Italy: 1850–1918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14
[113] 서적 The Cause of All Nations: An International History of the American Civil War 2017
[114] 서적 The United States and France: Civil War Diplomacy 1970
[115] 문서 Great Power Diplomacy 1814–1914
[116] 서적 Abraham Lincoln and a New Birth of Freedom: The Union and Slavery in the Diplomacy of the Civil War 2002
[117] 서적 The Routledge Handbook of Smuggling Taylor & Francis 2021-12-21
[118] 서적 A World on Fire: Britain's Crucial Role in the American Civil War 2012
[119] 서적 The Alabama, British Neutrality, and the American Civil War https://books.google[...] Indiana University Press 2016-02-24
[120] 문서 A Diplomatic history of Europe since the Congress of Vienna 1958
[121] 문서 Struggle for Mastery of Europe: 1848–1918
[122] 간행물 Austrian Foreign Policy During the Schleswig-Holstein Crisis of 1864: An Exercise in Reactive Planning and Negative Formulations Diplomacy & Statecraft 1991
[123] 서적 The Franco-Prussian War https://www.amazon.c[...] 2003
[124] 문서 Great Power Diplomacy 1814–1914
[125] 문서 Struggle for Mastery of Europe: 1848–1918
[126] 논문 Arms versus Allies: Trade-offs in the Search for Security https://www.jstor.or[...] International Organization 1993
[127] 문서 A Diplomatic history of Europe since the Congress of Vienna 1958
[128] 문서 The Struggle for Mastery in Europe: 1848–1918 1954
[129] 서적 The Age of Empire: 1875–1914 1987
[130] 웹사이트 Letters from the Berlin Embassy, 1871–1874, 1880–1885 https://archive.org/[...] 1944
[131] 서적 France, 1848–1945: Volume II: Intellect, Taste, and Anxiety 1977
[132] 서적 A Generation of Materialism, 1871–1900 1941
[133] 간행물 Germany and France before the First World War: A Reassessment of Wilhelmine Foreign Policy https://www.jstor.or[...] English Historical Review 2000
[134] 서적 Fifty Years of Europe: A study in pre-war documents 1933
[135] 간행물 Bismarck and the Three Emperors' Alliance, 1881–87 https://www.jstor.or[...] Transactions of the Royal Historical Society 1945
[136] 서적 A Generation of Materialism, 1871–1900 1941
[137] 서적 A Generation of Materialism, 1871–1900 1941
[138] 서적 A Generation of Materialism, 1871–1900 1941
[139] 문서 The Great Illusion: 1900–1914
[140] 서적 Europe Overseas: Phases of Imperialism 1968
[141] 서적 The Great Illusion, 1900–14 1971
[142] 간행물 Colonial tariff policies https://archive.org/[...] U.S. Tariff Commission 1922
[143] 서적 Great Power Diplomacy: 1814–1914 1992
[144] 서적 The Cause of All Nations: An International History of the American Civil War https://books.google[...] Basic Books 2016-02-24
[145] 논문 United States-French Relations Regarding French Intervention in Mexico: From the Tripartite Treaty to Queretaro 1965
[146] 서적 Mexico and the Foreign Policy of Napoleon III 2001
[147] 서적 The Struggle for Mastery in Europe, 1848–1918 1954
[148] 서적 The Cambridge History of Egypt Volume 2 Modern Egypt, from 1517 to the end of the twentieth century https://archive.org/[...] 1998
[149] 서적 The Failure to Prevent World War I: The Unexpected Armageddon https://books.google[...] Routledge
[150] 서적 International Relations 1962
[151] 문서 International Relations
[152] 논문 From Liberalism to Imperialism: The Case of Egypt 1875–1887 1973
[153] 서적 Rivalries in the Mediterranean, the Middle East and Egypt 1962
[154] 논문 Three British Prime Ministers and the Survival of the Ottoman Empire, 1855–1902 2014
[155] 논문 Gentlemanly capitalism and British expansion overseas II: new imperialism, 1850‐1945 https://www.jstor.or[...] 1987
[156] 서적 The 'Urabi revolution and the British conquest, 1879–1882 1998
[157] 논문 The British occupation of Egypt: another view 1978
[158] 논문 Great Britain's Great Game: An Introduction https://www.jstor.or[...]
[159] 서적 St. Petersburg and Moscow : Tsarist and Soviet foreign policy, 1814-1974 https://www.worldcat[...] Indiana University Press 1974
[160] 뉴스 An Endless Progression of Whirlwinds https://www.lrb.co.u[...] 2021-09-04
[161] 논문 The Great Game in Asia https://www.jstor.or[...] 1980
[162] 논문 Bismarck and the Great Game: Germany and Anglo-Russian Rivalry in Central Asia, 1871–1890 2015
[163] 서적 Scramble for Africa: The White Man's Conquest of the Dark Continent from 1876–1912 1991
[164] 서적 The English and Their History https://books.google[...] Knopf Doubleday Publishing
[165] 서적 Bismarck, Europe and Africa: The Berlin Africa conference 1884–1885 and the onset of partition 1988
[166] 논문 The 'Indianization' of the Egyptian Administration under British Rule https://www.jstor.or[...] 1963
[167] 논문 From 'War-in-Sight' to Nearly War: Anglo–French Relations in the Age of High Imperialism, 1875–1898 2006
[168] 서적 France under the Republic: The Development of Modern France (1870–1930) 1940
[169] 서적 The diplomacy of imperialism: 1890–1902 1951
[170] 서적 Africa Since 1875: A Modern History 1974
[171] 문서 Africa to 1875
[172] 서적 Kenya: From Colonization to Independence, 1888–1970 2005
[173] 논문 Kenya's 'Forgotten' Engineer and Colonial Proconsul: Sir Percy Girouard and Departmental Railway Construction in Africa, 1896–1912 2006
[174] 서적 The Portuguese seaborne empire, 1415–1825 1969
[175] 서적 A History of Portugal and the Portuguese Empire, Vol. 2: From Beginnings to 1807: the Portuguese empire https://www.amazon.c[...] 2009
[176] 서적 The Portuguese Seaborne Empire, 1415–1825 1969
[177] 서적 A New History of Portugal 1966
[178] 서적 The Third Portuguese Empire, 1825–1975: A Study in Economic Imperialism 1985
[179] 서적 Italian National Identity in the Scramble for Africa: Italy's African Wars in the Era of Nation-Building, 1870–1900 2010
[180] 서적 Europe and Italy's Acquisition of Libya, 1911–1912 1942
[181] 서적 Sino-Japanese Naval War 1894–1895 https://books.google[...] MMPBooks
[182] 서적 The Russo-Japanese War in Global Perspective: World War Zero https://books.google[...] BRILL
[183] 서적 Okinawa: The history of an island people Tuttle Publishing 2013
[184] 서적 The Diplomacy of imperialism: 1890–1902 1960
[185] 서적 China's Last Empire: The Great Qing https://books.google[...] Harvard UP
[186] 서적 Forbidden Nation: A History of Taiwan https://www.amazon.c[...] 2008
[187] 뉴스 The Koo family: a century in Taiwan http://www.taipeitim[...] 2002-04-15
[188] 서적 Forbidden Nation: A History of Taiwan 2008
[189] 간행물 ‘Weak ally’ or ‘strong enemy?’: Japan in the eyes of Russian diplomats and military agents, 1900–1907. 2016
[190] 서적 The Origins of the Russo–Japanese War 1985
[191] 서적 The Russo-Japanese War 1904–1905 https://www.amazon.c[...] 2002
[192] 서적 The Japanese seizure of Korea, 1868–1910: a study of realism and idealism in international relations 1960
[193] 서적 Great Power Diplomacy: 1814–1914 1992
[194] 서적 Legal imperialism: sovereignty and extraterritoriality in Japan, the Ottoman Empire, and China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0
[195] 서적 Grounds of Judgment: Extraterritoriality and Imperial Power in Nineteenth-Century China and Japan Oxford University Press 2012
[196] 간행물 "The Rise of an American Principle in China: A Reinterpretation of the First Open Door Notes toward China" Greenwood 2003
[197] 서적 The Rise of Free Trade Imperialism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0
[198] 간행물 "Finance and 'Informal Empire' before the First World War," https://www.jstor.or[...] 1976
[199] 간행물 "Salisbury" 2003
[200] 서적 The War That Ended Peace: The Road to 1914 2013
[201] 서적 Splendid Isolation?: Britain, the Balance of Power and the Origins of the First World War 1999
[202] 서적 The Politics of Grand Strategy: Britain and France Prepare for War, 1904–1914 https://books.google[...] Ashfield Press
[203] 간행물 "Fleet Street and the Kaiser: British Public Opinion and Wilhelm II." 2008
[204] 서적 Historical Dictionary of European Imperialism https://books.google[...] Bloomsbury Academic
[205] 서적 The Rise of the Anglo-German Antagonism, 1860–1914 1987
[206] 간행물 "The Liberal Pro-Boers." 1975
[207] 간행물 "The South African War (1899–1902): context and motive reconsidered." https://learn.gold.a[...] 1990
[208] 서적 The Eastern question, 1774-1923: A study in international relations 1966
[209] 서적 The Balkans: a history of Bulgaria, Serbia, Greece, Rumania, Turkey https://archive.org/[...] 1915
[210] 간행물 "Austria-Hungary, Turkey and the Balkans." 1962
[211] 서적 The Ottoman Turks: An Introductory History to 1923 1997
[212] 논문 The Impact of the Dual Alliance on the Germans in Austria and Vice-Versa 1980
[213] 서적 The War That Ended Peace: The Road to 1914 2013
[214] 논문 Foreign Policy and the Nationality Problem in Austria-Hungary, 1867–1914. 1967
[215] 서적 From Sadowa to Sarajevo: the foreign policy of Austria-Hungary, 1866–1914 1972
[216] 서적 The War That Ended Peace: The Road to 1914 2013
[217] 서적 First World War Atlas 1970
[218] 서적 The Annexation of Bosnia, 1908–1909 https://books.google[...] Cambridge UP 1937
[219] 논문 Serbian-Bulgarian relations on the eve of and during the Balkan Wars. 1962
[220] 뉴스 Balkan Wars 2012-11
[221] 서적 War and Society in East Central Europe: Planning for war against Russia and Serbia: Austro-Hungarian and German military strategies, 1871–1914 1993
[222] 논문 The Serbian Documents from 1914: A Preview https://www.jstor.or[...] 1976
[223] 서적 The Unification of Germany and the challenge of Nationalism 1789–1919 Fourth Edition https://books.google[...] Hodder Education 2015
[224] 서적 European Alliances
[225] 서적 European Alliances and Alignments, 1871–1890
[226] 서적 Struggle for Mastery
[227] 간행물 Eastern Question https://link.gale.co[...] 2006
[228] 서적 The Eastern Question, 1774–1923 1966
[229] 서적 European Alliances
[230] 서적 Defending the Rights of Others: The Great Powers, the Jews, and International Minority Protection 2004
[231] 논문 Minority rights in Europe: from Westphalia to Helsinki. 1997
[232] 서적 Bulgarian Horrors and the Question of the East https://archive.org/[...] 1876
[233] 논문 Midlothian: the Triumph and Frustration of the British Liberal Party https://www.jstor.or[...] 1960
[234] 서적 From Bismarck to the World War: A History of German Foreign Policy 1870–1914 1927
[235] 서적 Diplomatic History of Europe Since the Congress of Vienna 1958
[236] 서적 European Diplomatic History: 1871–1932 1933
[237] 서적 Bismarck: The White Revolutionary, Volume 2: 1871–1898 1986
[238] 논문 Bismarck and the Containment of France, 1873–1877 http://utpjournalsre[...] 1994
[239] 서적 The War Scare of 1875: Bismarck and Europe in the mid-1870s 2010
[240] 논문 The War-Scare of 1875 https://www.jstor.or[...] 1919
[241] 서적 Struggle for Mastery
[242] 서적 European Alliances and Alignments, 1871–1890 1950
[243] 논문 From 'War-in-Sight' to Nearly War: Anglo–French Relations in the Age of High Imperialism, 1875–1898 2006
[244] 서적 European Alliances and Alignments, 1871–1890 1950
[245] 서적 Great power diplomacy, 1814–1914 1992
[246] 서적 St. Petersburg and Moscow: Tsarist and Soviet Foreign Policy, 1814–1974
[247] 서적 The Lost History of 1914: Reconsidering the Year the Great War Began https://books.google[...] Bloomsbury Publishing 2016-02-24
[248] 서적 The Struggle for Mastery in Europe: 1848–1918
[249] 서적 The Decline of Bismarck's European Order: Franco-Russian Relations, 1875–1890
[250] 서적 War in the Balkans: An Encyclopedic History from the Fall of the Ottoman Empire to the Breakup of Yugoslavia https://books.google[...] ABC-CLIO 2014
[251] 서적 The War That Ended Peace: The Road to 1914
[252] 서적 The diplomacy of the Balkan wars, 1912–1913
[253] 서적 The Balkan Wars, 1912–1913: Prelude to the First World War
[254] 서적 The Eastern Question, 1774–1923
[255] 서적 The origins of the First World War Routledge
[256] 서적 The Sleepwalkers: How Europe Went to War in 1914 https://www.amazon.c[...]
[257] 서적 Germany 1866-1945
[258] 서적 German foreign policy 1871-1914
[259] 서적 The spirit of British policy and the myth of the encirclement of Germany G. Allen & Unwin
[260] 서적 British history in the 19th century and after 1782-1919
[261] 서적 The New Cambridge Modern History, Vol. 11: Material Progress and World-Wide Problems, 1870–98
[262] 간행물 "The Taboos of Defeat: Unmentionable Memories of the Franco-Prussian War in France, 1870–1914." Palgrave Macmillan
[263] 간행물 "Alphonse de Neuville's 'The Spy' and the Legacy of the Franco-Prussian War" https://www.jstor.or[...]
[264] 서적 The War That Ended Peace: The Road to 1914
[265] 서적 Grandeur and Misery: France's Bid for Power in Europe, 1914–1940
[266] 서적 The Fall of Imperial China
[267] 서적 France 1814–1919: The rise of a Liberal-Democratic Society
[268] 서적 The diplomacy of Imperialism: 1890–1902
[269] 서적 The Struggle for Mastery in Europe, 1848–1918
[270] 서적 Lord Salisbury and Foreign Policy: The Close of the Nineteenth Century
[271] 간행물 "Splendid Isolation to Finest Hour: Britain as a Global Power, 1900–1950."
[272] 서적 The diplomacy of imperialism: 1890–1902
[273] 서적 Lord Salisbury
[274] 서적 England and Germany, 1740–1914
[275] 서적 The Development of modern France, 1870–1939
[276] 간행물 "Rival Approaches to Morocco: Delcasse, Lyautey, and the Algerian-Moroccan Border, 1903–1905."
[277] 간행물 "Algeciras Revisited: European Crisis and Conference Diplomacy, 16 January-7 April 1906." http://cadmus.eui.eu[...]
[278] 서적 The War That Ended Peace: The Road to 1914
[279] 서적 German Foreign Policy 1871 – 1914
[280] 서적 The Sleepwalkers: How Europe Went to War in 1914
[281] 서적 Handbook for the Diplomatic History of Europe, Asia, and Africa 1870–1914 https://web.archive.[...] 1918
[282] 서적 Tirpitz: Architect of the German High Seas Fleet https://www.amazon.c[...] 2008
[283] 서적 The War That Ended Peace: The Road to 1914 2013
[284] 서적 From Bismarck to the World War: A History of German Foreign Policy 1870–1914 1927
[285] 논문 "The Holtzendorff Memorandum of 22 December 1916 and Germany's Declaration of Unrestricted U-boat Warfare." https://muse.jhu.edu[...] 2004
[286] 웹사이트 The Holtzendorff Memo (English translation) with notes http://www.gwpda.org[...]
[287] 서적 A Companion to World War I 2012
[288] 서적 The First World War and International Politics 1988
[289] 서적 The Major International Treaties of the Twentieth Century: A History and Guide with Texts, Vol. 1 Taylor & Francis 2001
[290] 서적 Great Power Diplomacy: Since 1914 2002
[291] 서적 Peacemakers: The Paris Peace Conference of 1919 and Its Attempt to End War 2002
[292] 서적 Europe in the Twentieth Century https://www.amazon.c[...] 2011
[293] 서적 Diplomatic History of Europe Since the Congress of Vienna 1958
[294] 서적 The Illusion of Peace: International Relations in Europe 1918–1933 2003
[295] 서적 The Lights that Failed: European International History 1919–1933 2007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