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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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금돌성은 삼국시대에 축성된 포곡식 산성이다. 성 안에는 군사 활동을 위한 회곽도가 있으며, 이를 따라 성벽이 축조되었다. 보문곡을 중심으로 내성과 외성이 있으며, 총 길이는 7km에 달한다. 660년 신라 무열왕이 백제 정벌을 지휘했던 곳이며, 1254년에는 몽골 침략군을 물리친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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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돌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금돌성 정보 | |
국가 | 경상북도 |
유형 | 문화재자료 |
지정 번호 | 131 |
지정일 | 1985년 8월 5일 |
주소 |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산98번지 |
면적 | 3,227,107m2 |
문화재청 ID | 31,01310000,37 |
2. 역사
백화산 정상부의 능선과 골짜기를 따라 쌓은 성으로, 신라 김유신 장군이 백제군과 격전한 곳이라고 전한다. 역사·지리적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세력이 서로 맞부딪친 곳에 있어 삼국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성이다.
1978년 국방유적 보수사업으로 80m의 성벽이 복원되었다. 무너진 성벽은 약 4m 폭으로 쌓여 있었으며, 총 둘레는 2∼3km이다. 골짜기를 내려오는 성벽 일부는 약 30cm 정도의 아랫부분만 남아있다. 복원된 성벽은 밑부분 폭이 360cm이며, 150cm 정도 높이에 군사들이 서서 활동할 수 있는 단을 설치하고, 거기서 다시 아랫폭 125cm, 윗폭 85cm의 성벽을 150cm 높이로 쌓았다.[4]
삼국시대에 축성한 포곡식 산성으로, 성 안쪽에는 군사들의 활동을 위해 돌로 회곽도를 만들고, 회곽도에서 약 1.5m 높이로 성벽을 쌓았다. 성은 보문곡을 가운데로 하여 산 정상인 한성봉을 한 변으로 하는 내성을, 그 동쪽으로 외성을 쌓았는데 총 길이는 7km가량 된다. 보문곡으로 들어서기 전 계곡의 폭이 가장 좁은 곳에 차단성을 쌓았는데 길이가 약 600m가 확인된다.[5]
2. 1. 삼국시대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7년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又命太子大將軍庾信。將軍品日흠春。等。領精兵五萬人以援之。王次金돌城。|또 태자와 대장군 유신, 장군 품일과 흠춘(혹은 순이라고도 한다) 등에게 명하여 정예병사 5만 명을 거느리고 응원하도록 하고, 임금은 금돌성에 가서 머물렀다.중국어
이는 백제 정벌 시 전진기지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4]
이 성에는 660년 7월 김유신이 이끄는 백제 정벌군을 떠나보낸 신라의 무열왕(김춘추)이 총지휘소로 사용하면서 백제가 항복한 소식을 듣고 소부리성을 떠날 때까지 머물렀던 대궐 터가 있다.[5]
2. 2. 고려시대
1254년(고종 41년) 10월 자랄타이가 이끄는 몽고 침략군을 맞아 상주의 백성들이 황령사 승려 홍지의 지휘 아래 한 달여의 싸움 끝에 물리친 유서 깊은 성이다.[5]2. 3. 현대
1978년 국방유적 보수사업으로 백화산성 성벽 80m가 복원되었다.[4]3. 구조
금돌성은 백화산 정상부의 능선과 골짜기를 따라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신라 김유신 장군이 백제군과 격전한 곳이라고 전해진다. 성은 1978년에 국방유적 보수사업으로 80m의 성벽이 복원되었다.[4]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7년조에는 금돌성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으며, 이를 통해 백제 정벌시 전진기지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4]
3. 1. 성벽
복원된 성벽은 밑부분 폭이 360cm이며, 높이 150cm 정도에 군사들이 서서 활동할 수 있는 단을 설치하고, 그 위에 다시 아랫폭 125cm, 윗폭 85cm, 높이 150cm의 성벽을 쌓았다. 무너진 성벽은 약 4m 폭으로 쌓여 있었으며, 총 길이는 2~3km로 추정된다.[4] 골짜기를 내려오는 성벽의 일부는 약 30cm 정도의 아랫부분만 남아있다.[4]3. 2. 시설
성 안쪽에는 군사들의 활동을 위해 돌로 만든 회곽도가 있었고, 회곽도에서 약 1.5m 높이로 성벽을 쌓았다. 성은 보문곡을 가운데로 하여 산 정상인 한성봉을 한 변으로 하는 내성과 그 동쪽으로 외성을 쌓았는데 총 길이는 7km가량 된다. 보문곡으로 들어서기 전 계곡의 폭이 가장 좁은 곳에 차단성을 쌓았는데 길이가 약 600m가 확인된다.[5]이 성에는 660년 7월 김유신이 이끄는 백제 정벌군을 떠나보낸 신라 무열왕(김춘추)이 총지휘소로 사용하면서 백제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소부리성을 떠날 때까지 머물렀던 대궐 터가 있다. 또 1254년 10월 자랄타이가 이끄는 몽고 침략군을 맞아 상주의 백성들이 황령사 승려 홍지의 지휘로 한 달 여의 싸움 끝에 물리친 유서 깊은 성이다.[5]
참조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
[2]
뉴스
상주 백사모, 금돌성 국가문화재 지정에 총력
http://www.gukjenews[...]
2016-02-01
[3]
웹인용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
2019-10-09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
[5]
문서
현지 안내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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