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론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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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독론은 조직신학에서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다루는 학문으로, 신론과 인간론 다음에, 구원론 앞에 위치한다. 기독론은 고전적, 현대적, 통합적 방법론을 통해 연구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제시한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자 인간이라는 두 본성을 가지며, 니케아 신조와 칼케돈 공의회를 통해 그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교리가 정립되었다. 기독론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예표와, 신약성경에 묘사된 그리스도의 사역, 그리고 다양한 명칭들을 다룬다. 또한, 속죄에 대한 다양한 이론과 기독론의 오류들을 다루며, 가톨릭 영성, 칼케돈 정의 등 여러 관련 주제들과 연결된다.
조직신학에서 기독론은 신론과 인간론 뒤, 구원론(성령론) 앞에 위치한다. 조직신학은 하나님의 창조, 인간의 타락, 그리스도의 구속, 성령에 의한 구속의 적용 순서로 전개된다. 인간론의 마지막은 언약의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다루며,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사다리이신 주님과 대속을 다룬다. 그러므로 인간론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중보자 하나님이심을 가르친다.[1] 루이스 벌코프와 같은 신학자는 그의 조직신학 책에서 기독론을 위격, 신분(비하, 승귀), 직분(선지자, 제사장, 왕직)의 구조로 설명한다.[1]
루이스 벌코프와 같은 신학자는 그의 조직신학 책에서 위격, 신분(비하, 승귀), 직분(선지자, 제사장, 왕직)의 구조로 기독론을 설명한다. 기독론 연구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4]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역사적 증거들은 로마 역사가들의 기록을 포함하여 다양하게 존재한다.
2. 조직신학에서 기독론의 위치
3. 기독론 연구방법론
이러한 방법론 외에도, 예수의 역사성 탐구 또한 기독론의 중요한 연구 방법이다. 다비드 슈트라우스와 에르네스트 르낭은 예수를 삼위일체의 일부가 아닌, 훌륭한 영적 교사로 묘사했다.
3. 1. 고전적 기독론 방법
고전적 기독론은 '위로부터 아래로', 즉 신성에서 인성으로 접근하는 연역적 방법이다.[4] 이 방법은 요한복음과 바울 서신의 신약성서에서 발원하여 고대, 중세, 종교개혁, 개신교 정통주의를 거쳐 현대의 칼 바르트와 초기의 에밀 브룬너 등의 변증법적 신학자들에게까지 이어진다.[4] 이러한 방법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강력하게 선포하여 신앙의 응답을 효과적으로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는다.[4]
그러나 고전적 기독론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 것으로 비판받기도 한다.[4]
첫째, 우리는 '위에' 계신 하나님을 오직 '아래에' 역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위로부터의 기독론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만 가능하며, 인간의 입장에서는 불가능하다.[4]
둘째, 육신을 입은 로고스가 아닌 육신이 없는 로고스로서의 계시 이전의 하나님, 즉 숨어 계신 하나님은 단지 사변적인 하나님일 뿐이다. 따라서 고전적 기독론은 하나님의 본질적 존재를 인간의 역사적 현실과는 동떨어진 비역사적이고 숨어 계신 하나님으로 만듦으로써,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오신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본질적 존재와 삶의 모습이 아니며 신적 존엄성과 영광에 모순된다는 인상을 준다.[4]
셋째,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성의 개념을 확립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가 지적한 대로, 특히 예수의 삶과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그 당시의 유대주의와 전승사적 관련성이 여기서는 간과되기 쉽다.[4]
넷째, 믿음의 본질과 내용에 대한 의문으로서, 케리그마와 믿음 속의 그리스도가 실제로 갈릴리와 유대 땅을 거닐었던 예수와 같은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다. 역사적 현실에 대한 경험적인 근거에 확고하게 서 있지 못한 믿음은 주관적 환상이나 전통 속에 화석화되어 버린 교조주의적 도그마일 수 있다.[4]
3. 2. 현대적 기독론 방법
현대의 기독론 방법은 대체로 '아래로부터 위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서 신성으로 나아가는 접근 방식을 취한다. 이 방법은 귀납법적이다.[4]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연역적으로 전제하지 않고, 역사적 예수의 현실, 즉 그분의 삶, 사역, 죽음, 부활에 대한 역사적 탐구를 통하여 종국적으로 성육신 사건과 신성의 고백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고찰하고 그 신학적 의미와 타당성을 숙고한다.[4]
귀납적인 기독론은 크게 두 가지의 근본적인 가정 위에 서 있는데, 첫째는 인성과 신성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으며 이 연속성 때문에 인성에서 신성으로 옮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4] 둘째는, 복음서에 묘사된 인간 예수에게 관심이 모아졌는데, 이들은 역사의 예수 위에 기독론적 상부구조를 세우기 위한 기초인 하부구조로서의 나사렛 예수라는 인간의 역사적 모습을 복음서, 특히 공관복음서로부터 도출해 낼 수 있다고 가정하였다.[4]
그러나 이러한 두 가지 가정은 각각 다음과 같은 문제점으로 인해 비판을 받는다. 첫 번째 가정은 위가 존재론적으로 아래에, 그리고 종교적 의미가 윤리적 의미에 종속되는 현상을 초래한다.[4] 근본적으로 이미 역사 안에, 우리 안에 있는 것을 관념적으로 투사하여 확증하는 셈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게 된다.[4] 두 번째 가정은 복음서 설화들의 형태에 대한 역사비평적 탐구의 결과, 이들 설화가 기독론 형성 이전의 예수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라기보다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성육신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 안에서 기록된 초대교회의 증언이라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그 근거를 잃게 되었다.[4] 따라서 19세기의 신학자들이 찾아 그려보고자 했던 "역사적 예수"의 상은 성서의 설화들로부터 재구성해 내기 어려운 환상임을 알게 되었다.[4]
예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철두철미하게 기독론적이었다. 알베르트 슈바이처에 의해 결정적으로 초래된 19세기의 역사적 예수의 탐구의 퇴조는 루돌프 불트만의 양식사 비평으로 인한 성서의 사실성에 관한 심각한 회의주의로 인해 더욱 가속화되었다.[4]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일시적으로나마 다시 전통적인 위로부터의 기독론이 득세하였다. 카를 바르트의 변증법적 말씀의 신학과 불트만의 실존론적 성서해석은 위로부터 기독론의 절정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부에 들어서서 에른스트 케제만은 예수에 대한 믿음이 "예수가 누구였으며, 무엇을 행하셨는가?"에 대한 역사적인 연구의 바탕 위에 세워져야 할 필요성을 다시금 강조하였다.[4] 후기의(변화된) 에밀 브루너는 "예수 인식의 길은 인간 예수로부터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께 이른다."라고 하여 아래로부터의 방법론을 잘 대변하였다.[4] 오늘날 아래로부터의 방법론에 따라 기독론을 전개하는 가장 대표적인 신학자는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이다.[4]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에 관한 객관적인 역사적 증거들과 주관적인 믿음의 해석은 에드워드 스킬레벡스의 해석학적 표현을 빌면 구원의 제공과 그리스도인의 응답이라는 상호연관성 안에서 하나의 통전적인 단일한 실재를 구성한다.[4]
3. 3. 통합적, 통전적 기독론 방법
바람직한 통전적인 기독론은 연역법과 귀납법을 상호 배타적이고 모순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 안에서 파악하며 양자를 비판적으로 통합하는 방법론을 통해 가능하다.[4] 오늘날 기독론의 접근 방식에 있어서 연역법적인 '위로부터'의 방법론은 부활의 주님으로서 오늘 교회의 설교 속에서, 그리고 개인의 삶과 역사의 현장 속에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신앙의 그리스도를 만나는 방식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그 길로 인도해 주는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귀납법적인 '아래로부터'의 방법론은 성서 안에 그려진 역사적 예수의 현실, 즉 나사렛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고, 병 고침과 이적을 행하고, 고난당하고 십자가에 죽음을 당하신 지상의 예수의 모습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 두 가지 기독론적 접근 방법이 상호 순환적으로 통합될 때, 올바르고 통전적인 기독론이 구성될 수 있다. 그러므로 '위로부터'냐 '아래로부터'냐, 연역법적이냐 귀납법적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강요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이 둘은 상호 배타적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성 안에서 조화롭게 종합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기독론적인 접근 방법은 또한 "미래로부터", 그리고 "바닥으로부터"의 방법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하고 실천했던 하나님 미래의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를 위한 변혁적 실천에 달려 있다고 하는 사실에 대한 깊은 인식으로 말미암는 실천적 기독론이다. 기독론적 과제는 미래의 인간 실존과 세상의 역사를 창조적으로 변혁시키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역사에 실천적으로 동참하는 데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단지 역사적 현실을 아는 것만도, 성육신 교리를 아는 것만도, 또한 그분의 은혜를 아는 것만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는 것은 그분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위로부터'와 '아래로부터'의 방법론과 더불어,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위한 연대성으로부터 삶의 '바닥'에서 창조적인 변혁과 구원의 '미래를 향한' 실천적 행동과 헌신의 결단을 기독론의 출발점과 궁극적인 목표로 삼음으로써 우리는 온전하고 통전적인 기독론의 이론과 실천을 지향하여 나아갈 수 있다.
3. 4. 역사적 예수 탐구 방법
예수의 역사성 탐구는 기독론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다비드 슈트라우스와 에르네스트 르낭은 예수를 삼위일체의 일부가 아닌, 훌륭한 영적 교사로 묘사했다.[3]
아돌프 폰 하르낙은 복음서가 예수의 초기 생애에 대해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그의 전기를 구성할 수 없다고 보았고, 예수의 기적을 부인했다. 그는 예수의 메시지에 대해 자유주의 신학 입장에서 고전적인 진술을 했다.[3] 조지 티렐은 "하르낙이 본 그리스도는 깊은 우물의 바닥에서 보이는 자유주의 개신교도의 얼굴의 반영일 뿐"이라고 비판했다.[3]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자유주의 탐구가들의 선입견을 지적하고, 예수에게서 종말론적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이런 예수가 현대적인 인물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3] 마르틴 켈러는 소위 역사적 예수와 역사적인 성경의 예수에서 역사적 예수는 비교적 영향력이 없지만, 신앙의 예수는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주장하며, 복음 뒤에 가려진 사건들보다 의미 있는 역사 위에 믿음을 세우자고 제안했다.[3]
이후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는 잠시 주춤했지만, 20세기에 들어 에델베르트 슈타우퍼와 요아킴 예레미아스 등에 의해 다시 연구되기 시작했다.[3]
4. 역사적 문헌들
초기 비기독교적 자료들만으로도 복음서를 재구성할 수 있는데, 예수는 그리스도로 불렸고(요세푸스), 본디오 빌라도에게 (타시투스) 유월절 날 매달려 죽었으나(바빌론 탈무드), 보름달인데 일식이 있었고 (탈루스),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 구세주가 되었고(요세푸스), 그의 제자들은 그를 하나님으로 경배하면서(플라이니 더 영거) 믿었다.
세속적, 성경적 역사 모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한 증거는 많다. 1세기 때, 열두 사도들을 포함한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쳐 순교했다는 사실은 예수의 존재를 보여주는 가장 큰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위해 죽을 수는 있지만, 거짓인 줄 아는 것을 위해 죽지는 않기 때문이다.
4. 1. 기독교 외부 자료
사마리아인 역사가 탈로스(Θαλλός)는 52년에 쓴 기록의 단편들에서 그리스도가 죽을 때 일식이 있었다고 증언했다.[3] 타키투스(Publius Cornelius Tacitusla, 56년 - 117년)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처형된 그리스도의 죽음과 로마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였다.[3]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la, A.D. 37년~ 100년 경)는 그의 저서 《고대사》(Antiquities)에서 야고보를 ‘그리스도라고 불렸던 예수의 형제’로 언급하였다.[3]
마라 바 세라피언(Mara bar Serapion)은 A.D. 73년 경에 그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의인을 박해하면 화를 입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죽인 유태인들에게는 패망과 추방이 뒤따랐다고 기록했다.[3] 플레곤(Phlegon of Tralles)은 티베리우스( Tiberius ) 통치 기간 동안 지진이 동반된 일식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3] 수에토니우스(Gaius Suetonius Tranquillusla A.D. 120)는 로마 대화재 사건을 언급할 때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3]
비티니아의 총독인 소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Caecilius Secundusla, 61-113)는 초기 기독교 예배 관습을 기록하였고, 애찬식과 성찬례를 언급하였다.[3] 유대인 탈무드(Jewish Talmud, 400-700AD) (산헤드린 43a)는 예수의 십자가형이 유월절 전날 이루어졌다는 것을 기록했다.[3] 사모사타의 루시안(Lucian of Samosata, 115-200)은 예수님께서 기독교인들에 의해 경배를 받았고, 새로운 가르침을 소개하였으며, 또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처형되셨다는 것을 인정하였다.[3]
4. 2. 영지주의 문서
영지주의 문서인 진리의 복음, 요한의 외경 등도 예수를 언급하고 있다.[3]
5. 기독론의 역사
루이스 벌코프와 같은 신학자는 그의 조직신학 책에서 위격, 신분(비하, 승귀), 직분(선지자, 제사장, 왕직)의 구조로 기독론을 설명한다. 기독론은 시대마다 세상의 문화와 철학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고, 반대로 윤리, 문화, 정치 등 많은 영역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13]
르네상스 이후 칸트에 이르기까지 철학의 영향으로 지성인들은 신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과 자율성에 최고의 심판권을 부여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성경은 인간의 이성과 체험에 의해 비판을 받게 되었고, 자유주의 신학과 현대 신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자유주의 신학은 기존의 정통적인 신학 방법을 파괴하고 인간의 이성, 감정, 체험을 중심으로 신학을 전개하는 방식이다. 19세기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에 의해 시작된 자유주의 신학은 21세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통주의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을 거부하며, 역사비평학을 통해 역사적 예수 연구에 관심을 가졌다.[13]
카를 바르트의 출현으로 자유주의 신학은 일시적으로 멈추게 되었지만, 루돌프 불트만과 폴 틸리히 이후 현대 신학은 급진적으로 변화하였다.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는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을 제시하여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다.[13]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신학은 규범적인 형태가 해체되어 다양한 형태의 상대적 주장을 담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관용의 신학으로 변하고 있다. 기독론은 종교다원주의 관점에서 그리스도를 보게 되었다.[13]
기독론의 역사는 교부들로부터 시작하여 현대 신학자들까지 이단과 논쟁을 통하여 발전해 왔다.[13]
- 교부들은 로고스 기독론을 강조하였다.
- 니케아 공의회는 아리우스의 성자 종속론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아타나시우스가 주장한 아들의 신성, 즉 아버지와 동일 본질(homoousios)을 결의하였다.
- 네스토리우스파(이단)는 그리스도 안에 두 본성(신성과 인성)이 영원부터 구별되었다고 주장했다.
- 유티케스주의는 신성과 인성의 혼합으로 보았다.
- 칼케돈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혼합되거나, 변하거나, 분리되거나, 나뉠 수 없다고 정의하며, duae naturae, una persona- 이성 일 인격(신인 이성 일 인격)을 강조하였다.
- 중세에는 정통적인 그리스도론에 구속론적인 기독론을 첨가하였다.
신학자 | 주요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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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 죄를 속죄하는 그리스도에게 신학의 중심을 두었고, ‘유한은 무한을 포용할 수 있다’(Finitum capax infiniti)는 사상으로 속성의 교류 교리를 발전시켰다.[13] |
장 칼뱅 |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주장하고 구속주 되신 하나님으로서 신성과 인성에 대한 주장이 칼케돈 신조를 따르고 있다. 승천한 후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는 ‘유한은 무한을 포용할 수 없다’(finitum non possit capere infinitum)는 사상이다.[13] |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 절대적으로 완전한 신 의식의 소유자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을 갖는 것을 부인하고, 신성 대신 신 의식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스도의 속성의 교환과 니케아 신경과 칼케돈 신경을 부인한다. ‘아래로 부터’(from below) 기독론을 주장한다. 그는 예수의 영원한 출생과 신적 로고스(영원한 하느님의 아들) 교리가 아니라, 신 의식의 인간 예수로부터 기독론을 시작한다. |
알브레히트 리츨 | 그리스도의 인격보다는 사역에 강조를 두어 신격화 한다. |
카를 바르트 | 자유주의 신학 비판, 기독론을 신학의 중심으로 삼음. 요한복음 1장 12절("말씀이 사람이 되었다")을 중시. 하지만, 박윤선 박사에 따르면, 바르트는 역사적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시킴.[13] |
에밀 브루너 |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점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 동정녀 탄생, 역사적 예수, 대속, 육체 부활을 부인.[13] |
폴 틸리히 |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용해시키는 새 존재(New Being)라고 주장.[13] |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을 제시.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에 관한 객관적인 역사적 증거들과 주관적인 믿음의 해석은 상호연관성 안에서 하나의 통전적인 단일한 실재를 구성한다고 봄.[13] |
칼 라너 | 안셀무스의 보상 속죄론을 반대.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를 온 세상에 선포한 보편적인 사건으로, 보편적인 구원의 효과를 지닌다고 주장하며, 제한 속죄를 부인. 익명의 그리스도인 개념을 통해 교회 밖과 다른 종교에도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13] |
존 힉 | 예수는 구원을 위한 접촉점(the saving point of contact)이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신인임을 부정하고,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를 주장.[13] |
레슬리 뉴비긴 | 그리스도만이 구원을 준다고 하면서도, 비 기독교인들도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 그러나 타종교를 통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함.[13] |
5. 1. 초대 교회의 신학
속사도 교부들과 변증가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구원자이며, 구약과 사도들의 가르침에 근거한 기독교의 참된 주체성을 변호하였다.[13] 초기 교부들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교회의 형태가 나타나고, 관련 교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단 교리와의 논쟁을 통해 건전한 성경적 전통들이 체계화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교부들은 철학을 사용하여 기독교 진리를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진술하였다. 예를 들어, 클레멘트와 오리게네스는 필로를 통해 플라톤의 이원론 사상을 신학 방법과 성경 해석에 도입했고, 터툴리안은 스토아 철학을, 후에는 어거스틴이 신플라톤 철학을 이용하여 기독교 신학을 발전시켰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헬라 철학과 라틴 사상이 기독교 신학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기독교는 니케아 공의회와 칼케돈 공의회를 통해 기독론을 정립하였다.[13]5. 2. 서방교회와 중세 신학
서방 교회는 비잔틴 로마의 전통을 지닌 동방 교회와 분리되어 독자적인 신학을 발전시켰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교황을 중심으로 교회를 제도적으로 조직화하고 계급적 교권을 확립하여 세속권에 대한 지배력을 확장했다. 이 과정에서 로마교회는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고, 서방 교회의 신학은 천주교회의 수장인 교황의 권위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을 보였다.[13]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 개념을 도입하여 은혜의 주입 사상(gratia infusa)과 성변화(transubstantiatio)와 같은 서방 교회 신학의 핵심 교리들을 정립하였다. 이를 통해 철학적으로 재해석된 스콜라 신학이 탄생하게 되었다.[13]
5. 3. 종교 개혁시대의 신학
루터와 츠빙글리를 중심으로 시작된 종교 개혁은 부패한 서방교회를 개혁하려는 시도였다.[13] 종교 개혁가들은 교황의 권위에 맞서 오직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오직 구원을 위한 이신칭의를 강조했다.[13] 부쩌, 파렐, 불링거, 칼뱅과 같은 개혁자들은 성경적 종교개혁 사상을 후대에 전파했다.[13]종교 개혁의 반작용으로 위기에 처한 로마 가톨릭 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를 통해 신학과 교회적 결속을 다졌다.[13] 특히 로마 가톨릭 교회는 종교 개혁가들의 성경관과 해석에 반대하며, 성경 해석의 권한은 개인이 아닌 추기경이나 주교에게 있다고 결정했다.[13] 성경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권위 있는 자가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13]
반면, 개혁자들은 성경의 명료성(the clarity of Scripture)을 강조했다.[13] 기독교 구원 진리에 관한 성경 이해는 누구에게나 분명하다는 것이다.[13] 성경의 명료성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는 종교 개혁가들의 새로운 성경 해석 원리의 기반이 되었다.[13] 칼뱅은 성경의 명료성을 바탕으로 간결성과 용이성(brevitas et facilitas)이라는 독창적인 성경 해석 방법을 사용하여 독자들의 성경 이해에 크게 공헌했다.[13]
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잘못된 교리에는 하나였지만, 성찬례 해석과 같은 중요한 신학적 해석에서는 차이를 보였다.[13] 말버그 회의(1529)에서 루터와 츠빙글리가 갈라지면서 루터파는 공재설을, 츠빙글리는 기념설을 주장했다.[13] 칼뱅은 영적 임재설을 주장하여 두 견해의 중간 입장을 취했지만, 개혁자들은 일치를 보지 못하고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13]
개혁의 후예들은 지역, 국가, 언어, 문화, 신학적 차이에 따라 루터파, 칼뱅파, 재세례파 등으로 나뉘어 각자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13] 이 시기를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의 기간이라고 부른다.[13] 개혁자들의 후예들은 초기에는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고 기독교 교리의 순수성을 밝히려고 노력했지만, 점차 자신들이 속한 교파의 울타리를 치고 경계심을 형성했다.
이 당시 소위 정통신학은 단순한 성경 진리를 파수하고 전파하기보다는 자신들이 만든 교리를 스콜라신학으로 만들기 시작하여 성도들의 삶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13] 이는 성경 본문에 근거한 성경적 신학 탐구보다는 철학적, 논리적 교리 체계를 강화한 개신교 스콜라신학의 태동이었다.[13]
이러한 지나친 교리로 인해 죽은 정통신학에 반기를 든 운동이 슈페너를 중심으로 한 경건주의였다.[13] 경건주의는 딱딱한 교리보다는 실제적인 기독교인의 삶과 신앙 실천을 강조했다.[13] 그러나 정통주의와 경건주의는 모두 장점이 있었지만, 한쪽 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결과 기독교의 진리와 본질을 현실 문제와 적절하게 조화시키는 균형을 보여주지 못했다.[13] 루터와 종교 개혁가들은 성경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길을 가르쳤다.[13]
루터는 죄를 속죄하는 그리스도에게 신학의 중심을 두었고, '유한은 무한을 포용할 수 있다'(Finitum capax infiniti)는 사상으로 무한이 유한과 한 인격 안에 통일되어 있음을 강조하며 속성의 교류 교리를 발전시켰다.[13] 칼뱅은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주장하고 구속주 되신 하나님으로서 신성과 인성에 대한 주장이 칼케돈 신조를 따르고 있다.[13] 칼뱅은 승천한 후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는 '유한은 무한을 포용할 수 없다'(finitum non possit capere infinitum)는 사상이다.[13]
5. 4. 근대의 신학
르네상스 이후 칸트 등의 영향으로 인간 이성이 강조되었다. 이러한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자유주의 신학이 등장하여 성경은 인간의 이성과 체험에 의해, 즉 인간의 인식 한계 안에서 역사적이며 비평적으로 비판받게 되었고, 역사비평학이 발전하였다. 그리스도의 초월성과 창조주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직 이성의 한계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였다.5. 5. 자유주의 신학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를 필두로 자유주의 신학이 발전하면서 기존의 정통신학을 비판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이성, 감정, 체험을 중심으로,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주관적으로 신학을 전개하는 방식이다. 19세기 슐라이어마허에 의해 시작된 자유주의 신학은 21세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통주의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을 거부하며, 역사비평학을 통해 역사적 예수 연구에 관심을 가졌다.[13]5. 6. 현대 신학
칼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며 기독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바르트의 신학은 역사관과 성경관 등에서 정통신학과 다소 차이를 보였다.[13] 루돌프 불트만과 폴 틸리히 이후 현대 신학은 급진적인 변화를 겪으며, 사신신학과 같이 극단적인 주장까지 등장하였다.[13] 이러한 상황에서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는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을 제시하여, 역사적 예수 연구를 통해 기독론을 정립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다.[13]신학자 | 주요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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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바르트 | 자유주의 신학 비판, 기독론을 신학의 중심으로 삼음. 요한복음 1장 12절("말씀이 사람이 되었다")을 중시. 하지만, 박윤선 박사에 따르면, 바르트는 역사적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시킴.[13] |
에밀 브루너 |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점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 동정녀 탄생, 역사적 예수, 대속, 육체 부활을 부인.[13] |
폴 틸리히 |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용해시키는 새 존재(New Being)라고 주장.[13] |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을 제시.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에 관한 객관적인 역사적 증거들과 주관적인 믿음의 해석은 상호연관성 안에서 하나의 통전적인 단일한 실재를 구성한다고 봄.[13] |
칼 라너 | 안셀무스의 보상 속죄론을 반대.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를 온 세상에 선포한 보편적인 사건으로, 보편적인 구원의 효과를 지닌다고 주장하며, 제한 속죄를 부인. 익명의 그리스도인 개념을 통해 교회 밖과 다른 종교에도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13] |
존 힉 | 예수는 구원을 위한 접촉점(the saving point of contact)이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신인임을 부정하고, 타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를 주장.[13] |
레슬리 뉴비긴 | 그리스도만이 구원을 준다고 하면서도, 비 기독교인들도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 그러나 타종교를 통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함.[13] |
5. 7.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신학은 규범적인 형태가 해체되어, 다양한 형태의 상대적 주장을 담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관용의 신학으로 변하고 있다. 기독론은 신학의 중심, 역사의 중심이 아니라, 종교의 한 부분이며 신에 이르는 길로서 하나의 메시아이며 하나의 구원주로 여겨진다. 즉, 종교다원주의 관점에서 그리스도를 본다.[13]6. 구약과 그리스도
조직신학에서 기독론은 신론과 인간론 뒤에, 구원론(성령론) 앞에 위치한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 인간의 타락, 그리스도의 구속, 성령에 의한 구속의 적용으로 이어진다. 인간론은 언약의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다루며,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중보자이신 주님을 통해 대속을 설명한다.[5]
그리스도는 성부와 동일 본질로서 창조에 참여했다. 구약에서 그리스도는 창조주, 구속주, 심판주로 나타났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구약에 자신이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누가복음 24장 44-48절에서 이 모든 기록과 사건들이 신약에서 성취되었다고 기록한다.[5]
'''창세기와 그리스도'''
- 창세기 1장 26절: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 (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2위도 포함)
- 창세기 2장: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와 ..."
- 창세기 3장 15절: "'''나는 너를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
- 창세기 3장 21절: "가죽옷.." (그리스도의 피를 의미)
- 창세기 6-7장: 마지막 종말의 심판주로서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직접 언급)
- 창세기 12장 3절 (축복의 근원), 창세기 22장 18절, 요한복음 8장 56절에서 인용됨. 창세기 22장 18절(씨), 이사악의 번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예표 (히브리서 11장, 요한복음 8장 56절)
'''시편과 그리스도'''
- 시편 22편: 의인의 고난과 영광
- 시편 40편: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는 그리스도
- 시편 69편: 수치와 성전을 향한 열심과 신원의 기도와 찬송
- 시편 114편: 출애굽 사건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루실 일에 대한 예표적 사건으로 증거
'''선지자 이사야와 그리스도'''
- '''고난의 종; 이사야 53장''': 고난의 메시아 - 세상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
- '''전능하신 하나님; 이사야 9장 6절''': "우리를 위하여 태어날 한 아기, 우리에게 주시는 아드님, 그 어깨에는 주권이 메어지겠고 그 이름은 탁월한 경륜가, 용사이신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것입니다." (공동번역). 그리스도의 초림 전, 선지자 이사야는 이 말씀으로 이스라엘을 위로했다. “전능하신 하느님”은 그리스도에게 알맞는 이름이며, 하나님의 영이 하신 말씀이다. 그리스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 '''창조주이신 그리스도; 이사야 40장 25-26절''': "내가 누구의 모습이라도 닮았다는 말이냐? 내가 누구와 같다는 말이냐?" 거룩하신 이께서 말씀하신다.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아라. 누가 저 별들을 창조하였느냐?..." 이사야가 언급한 창조주는 “길을 닦아라”하고 말하는 자, 강한 팔을 가지고 오셔서 상 주시는 분, 목자와 같이 양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품에 안으시는 분, 즉 그리스도이다.[5]
6. 1. 그리스도가 언급한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
예수 그리스도한국어는 누가복음 24장에서 구약성경이 자신을 가리킨다고 직접 언급하였다.[5]- 누가복음 24장 44절에서 예수 그리스도한국어는 '''모세의 율법, 선지자들의 글과 시편'''에 자신을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5]
- 46절에서는 자신의 고난, 부활, 회개, 그리고 복음 전파가 구약에 이미 기록되었다고 직접 주장하였다.[5]
6. 2. 구약성경 전체에 나타난 그리스도
다음은 구약성경의 여러 인물과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예표하는지 보여준다.- '''아담''' - 로마서 5장 14절은 아담을 첫 사람으로 묘사하며, 그의 불순종이 사망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2의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성부의 말씀에 순종하여 죽음의 권세를 깨고 생명을 주는 분으로, 아담이 그리스도의 예표임을 나타낸다.
- '''아벨''' - 히브리서 12장 24절은 아벨의 희생을 죄 없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연결하여, 아벨이 그리스도의 예표임을 보여준다.
- '''모세''' - 신명기 18장 15절은 모세를 대선지자로 묘사하며, 이는 말씀이신 하나님, 즉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 '''유월절''' - 고린도전서 5장 7절은 유월절 어린 양을 그리스도와 연결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희생되실 것을 예표한다.
- '''만나''' - 요한복음 6장 32절은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온 참된 떡인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하여, 만나가 그리스도의 예표임을 나타낸다.
- '''놋뱀''' - 요한복음 3장 14절은 놋뱀 사건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예표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 '''대제사장''' - 구약의 대제사장은 백성의 죄를 속죄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대제사장이심을 예표한다.
6. 3. 그리스도의 선재성이란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 이전에 이미 존재하신 분이다.(창세기 1:1, 요한복음 1:1) 요한복음 6장 38절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며, 요한복음 8장 58절에서는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셨다고 기록한다. 또한 요한복음 17장 5절에서는 창세 전부터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영광 가운데 계셨다고 기록한다.미가 5장 2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만세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심을, 이사야 9장 6절은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심을 보여준다. 요한묵시록 1장 8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하나님으로서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이 되신다고 묘사한다.
그리스도의 선재 교리는 성육신 이전에 그리스도의 존재, 즉 인격적 존재를 주장한다. 요한복음 1장 1-18절이 관련된 성경 구절 중 하나이다. 삼위일체 해석에서 그리스도는 로고스(말씀)라고 불리는 선재적 신성을 가진 위격으로 동일시되었다. 이 교리는 요한복음 17장 5절에서 예수님이 이별 담화 중에 "세상이 있기 전에" 아버지와 함께했던 영광을 언급할 때 반복된다.[3] 요한복음 17장 24절은 또한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였다고 기록한다. 삼위일체설에서 그리스도의 선재는 그리스도의 영원성과 신성의 핵심이며, 오리게네스는 성자의 영원성을 주장하였다.
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선재하신 하나님이며, 여러 구약의 인물들은 신약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구약에서 그리스도는 창조주, 구속주, 심판주로 나타났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직접 구약에 자신이 기록되어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기록과 사건들이 신약에서 성취되었다고 누가복음 24장 44-48절에서 주장한다.[6]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성에 대한 성경적 증거는 다음과 같다.
- 구약성경에 증거된 그리스도: 구약에 나타난 여러 사건을 통해 볼 때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 전부터 선재하셨음을 알 수 있다. 구약에서 그리스도는 여러 사람에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셨다.
- 신약성경에 증거된 그리스도: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 땅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에 선재하셨음을 증거하고 있다.
- 선재하신 그리스도의 창조 사역: 예수님께서는 창세 전부터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선재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 창조 역사에 동참하셨다. 성경에는 선재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 역사에 대한 여러 증언이 있다.[7]
6. 3. 1. 구약과 그리스도의 성품과 예표
구약 인물/사건 | 예표하는 그리스도의 모습 |
---|---|
아담 | 로마서 5장 14절에 따르면, 아담은 첫 사람으로서 불순종으로 사망을 가져왔지만, 제2의 아담이신 그리스도는 성부의 말씀에 순종하여 죽음의 권세를 깨고 생명을 주는 분임을 보여준다.[7] |
아벨 | 히브리서 12장 24절은 아벨을 죄 없는 그리스도의 희생의 모습으로 예표한다.[7] |
모세 | 신명기 18장 15절에서 모세는 대선지자로서 말씀이신 하나님을 예표한다.[7] |
유월절 | 고린도전서 5장 7절에서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대속을 상징한다. |
만나 | 요한복음 6장 32절에서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
대제사장 | 구약의 대제사장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예표한다. |
놋뱀 | 요한복음 3장 14절에서 놋뱀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구원을 상징한다.[7] |
6. 4. 구약에서 구세주로서 예언된 그리스도
창세기 3장 15절에는 "나는 너를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여자의 후손, 즉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을 예언한 것으로 해석된다.[7] 창세기 12장 3절은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 민수기 24장 17-19절은 야곱의 혈통에서, 예레미야 23장 15절은 다윗의 혈통에서 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을 예언한다.[7]미가 5장 2절은 베들레헴에서 그리스도가 탄생할 것을 예언했고, 다니엘 9장 25-26절은 그리스도가 탄생할 시기를 예언했다.[7] 판관기 7장 14절은 동정녀 탄생을 예언하기도 했다.[7]
6. 5. 그리스도 자신은 구약 성경을 어떻게 보셨는가
그리스도는 구약성경을 유기적이고 통일성 있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보았다. 마태복음 26장 54절과 56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성경 전체가 유기적이며 통일성을 가지고, 모든 부분이 일치를 이룬다고 보았다.[7]예수는 마태복음 5장 17-18절에서 자신이 구약을 완성시키러 왔으며, 구약의 예언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였다.[7]
예수는 마태복음 4장 4절, 4장 7절, 4장 10절에서 구약 성경은 절대 진리이며 순종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또한 누가복음 24장 44절을 통해, 자신이 가르친 내용이 구약 성경임을 밝혔다.[7]
7. 신약성경과 그리스도
신약성경에는 다양한 기독론적 접근 방식이 나타난다. 바울로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통해 그리스도를 단순한 직함이 아닌 고유 명사로 사용했으며, 그의 기독론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통합적으로 다룬다. 또한 예수를 개인적 주님을 넘어 온 우주의 주님으로 고백하여 우주적 기독론의 근거를 제시했다.[8] 바울의 기독론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지만, 그의 신학적 해석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8]
공관복음은 예수를 하느님 나라를 실현할 메시아로 묘사하며, 특히 마르코는 이적 행위자, 마태오는 율법 완성자로서의 예수를 강조한다.[8] 요한복음은 예수를 선재하는 로고스로 묘사하며, 헬레니즘이나 영지주의의 이원론과 대조되는 독특한 기독교 사상을 제시한다.[8]
이 외에도 히브리서의 대사제 기독론, 에페소서의 우주적 화해자 기독론, 요한 묵시록의 영광의 어린 양 기독론 등 다양한 기독론이 존재한다.[8] 이러한 다양한 관점은 서로 조화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어느 하나만을 옳다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해준다.[8]
그리스도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7. 1. 바울의 기독론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단순한 직함이 아닌 고유한 이름으로 사용하였다.[8] 바울의 기독론은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면모와 신적인 면모를 모두 포괄하는 통합적인 기독론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주님일 뿐만 아니라 온 우주의 주님으로 고백함으로써, 우주적인 기독론의 기반을 제공하였다.[8] 바울의 기독론은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들에 기반하고 있지만, 그 근간을 이루는 것은 순수한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그의 신학적 사고 안에서 해석된 역사들이다.[8]7. 2. 공관복음의 기독론
공관복음은 예수를 메시아로 묘사한다. 신약성서 안에는 다양한 기독론적 은유, 상, 명칭, 접근방식들이 나타나는데, 공관복음은 하느님 나라를 실현시킬 메시아(그리스도)로서의 예수를 제시한다.[8] 특히 마르코는 이적 행위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마태오는 율법의 완성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준다.[8]7. 3. 요한복음의 기독론
요한복음은 예수를 선재하는 로고스로 묘사한다.[8] 요한의 기독론은 영과 육, 정신과 물질을 상호 배타적으로 이해하는 헬레니즘이나 영지주의의 이원론과는 대조적인 독특한 기독교적 사상이다.[8] 공관복음과 비교했을 때 요한복음은 유사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두드러진다.[8]8. 그리스도의 명칭
루이스 벌코프와 같은 신학자들은 조직신학에서 기독론을 위격, 신분(비하, 승귀), 직분(선지자, 제사장, 왕직)의 구조로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명칭은 이러한 기독론의 주제들 중 하나로, 그리스도의 본질(성질, 신성과 인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1]
9. 그리스도의 본성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며 인간이라는 두 가지 본성, 즉 신성과 인성을 가진다.[9]
9. 1. 그리스도의 신성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교회는 아리우스파 이단에 반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나셨고 피조되지 않으셨다는 것과 그의 신성이 성부 하느님과 ‘동질’(homousios|호모우시오스grc)이시라는 것을 선언하였다.[10] 이 확정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제2위(位)는 성부 하느님과 동일한 본질이심을 선언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의 본체는 곧 하느님의 본체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단순히 하느님과 ‘유사’(homoiusios|호모이우시오스grc)한 분이 아니라 그 자신이 바로 하느님이시다.[10]9. 2. 그리스도의 인성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정상적인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보여준다. 즉 그는 피곤을 느끼시고(요한 4:6), 갈증(마태 11:19, 요한 19:28)과 배고픔(마태 4:2, 마태 21:18)을 느끼기도 하셨다. 십자가를 지실 때 채찍과 가시관, 못 박힘과 죽으심(요 19:34)을 통하여 실로 우리가 당할 수 있는 모든 육체적 고통을 그대로 다 당하셨다.[11]10. 그리스도의 이성
그리스도는 하느님이면서 인간이라는 두 가지 본성, 즉 신성과 인성을 가진다.[9] 기독론은 교부들의 로고스 기독론에서 시작하여 현대 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이단과의 논쟁을 통해 발전해 왔다.[13]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아리우스의 성자 종속론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아타나시우스가 주장한 성자의 신성, 즉 아버지와 동일 본질(homoousios)을 결의하였다. 네스토리우스파(이단)는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이 구별된다고 주장했고, 유티게우스주의는 신성과 인성이 혼합되었다고 보았다. 칼케돈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혼합되거나 변하지 않고, 분리될 수 없다고 정의했다.
중세 시대에는 정통적인 그리스도론에 구속론적인 기독론이 더해졌다. 루터는 죄를 속죄하는 그리스도를 강조하고, ‘유한은 무한을 포용할 수 있다’(Finitum capax infiniti)는 사상으로 속성의 교류 교리를 발전시켰다. 칼뱅은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주장하고, ‘유한은 무한을 포용할 수 없다’(finitum non possit capere infinitum)는 사상을 제시했다.
현대에는 교회론의 여러 문제와 함께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슐라이에르마허는 그리스도를 절대적으로 완전한 신 의식의 소유자로 보았고, 리츨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강조하여 신격화했다. 바르트는 기독론을 신학의 중심으로 보았고, 브루너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점으로 보았다. 폴 틸리히는 예수를 새 존재(New Being)로, 해방신학자들은 사람들을 억압에서 해방하는 분으로 본다.
칼 라너는 안셀무스의 보상 속죄론을 반대하고 제한 속죄를 부인하며, 익명의 그리스도인 개념을 주장했다. 히크는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신인임을 부정했다. 뉴비긴은 그리스도만이 구원을 주지만, 비 기독교인들도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을 가지지만, 한 인격(person)이다. 인격은 지식, 감정, 의지를 가진 행동 주체를 가리키며, 이러한 특질은 인격보다는 성(nature)에 속한다.[15]
10. 1. 칼세돈 공의회(451년)
칼케돈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혼합, 변화, 분리 없이 연합되어 있음을 정의했다.[13] 이 회의는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in duablus naturis inconfuse, immutabiliter, indivise, inseperabibliter, 앞의 두 단어는 유티게우스주의에 반대하며, 뒤의 두 단어는 네스토리우스파(이단)에 반대한다고 강조하였다.[13]10. 2. 니케아 신경(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아리우스파 이단에 반대하여 예수는 영원히 나시었고 피조되지 않으셨다는 것과 그의 신성이 성부 하느님과 ‘동질’(homousios)이시라는 것을 선언하였다.[10] 이 확정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제2위(位)는 성부 하느님과 동일한 본질임을 선언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의 본체는 곧 하느님의 본체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단순히 하느님과 ‘유사’(homoiusios)한 분이 아니라 그 자신이 바로 하느님이시다.[10]10. 3.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
필리오케 논쟁은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다는 교리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10. 4. 이성의 필요성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은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구원 중보자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9] 예수 그리스도는 신인(神人)으로서 인간을 죄와 사망, 마귀의 권세에서 구원하고, 백성의 죄를 구속하기 위한 대제사장이 되며, 연약한 인간들을 돕는다.[15]11. 그리스도의 사역
루이스 벌코프 등 여러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선지자직, 제사장직, 왕직의 세 가지 직분으로 구분한다.[1]
- 선지자직: 예수는 공생애 동안 예언적이고 계시적인 기능을 수행했다.[1]
- 제사장직: 그리스도는 모든 신자를 위해 하나님과 화평케 하고 교제케 하는 제사장 역할을 한다.[1]
- 왕직: 예수는 왕으로서 세상을 다스린다.[1]
그리스도의 사역은 굴욕(비하)과 승귀(높아지심)의 두 가지 측면으로도 나눌 수 있다.[1] 굴욕에는 성육신, 십자가에서의 죽음, 음부에 내려가심 등이 있으며,[1] 승귀에는 부활, 승천, 하나님 아버지 오른편에 앉으심, 재림 등이 있다.[1]
11. 1.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기초지식
루이스 벌코프와 같은 신학자는 그의 조직신학 책에서 기독론을 위격, 신분(비하, 승귀), 직분(선지자, 제사장, 왕직)의 구조로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다음 내용을 포함한다.[1]- 예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예언적이고 계시적인 기능[1]
- 예수의 왕 되심과 그의 다스리심[1]
- 모든 신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제사장적 역할 (하나님과 화평케 하고 교제케 하는 역할)[1]
- 그리스도의 굴욕당하시는 사역 (성육신, 십자가의 죽음, 음부에 내려가심)[1]
- 그리스도의 고귀하게 되시는 사역 (부활, 승천,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심, 재림)[1]
11. 2. 속죄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
기독교 신학에서 속죄는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루이스 벌코프를 비롯한 여러 신학자들은 속죄의 의미와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속죄는 죄로 인해 멀어진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1] 속죄에 대한 이해는 신앙 생활에 있어서 핵심적인 부분으로, 죄인이 어떻게 용서받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1]속죄에 대한 대표적인 이론들은 다음과 같다.[1]
이론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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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설 | 안셀무스가 주장한 이론으로, 인간의 죄는 하느님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하느님께 무한한 만족을 드려 죄를 속죄했다는 이론이다. |
도덕감화설 | 아벨라르가 주장한 이론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인간에게 큰 도덕적 감화를 주어 죄에서 돌이키게 한다는 이론이다. |
본보기설(모범설) | 소시누스가 주장한 이론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인간에게 순종의 본보기를 보여주어 죄를 극복하게 한다는 이론이다. |
통치설(정부설) | 그로티우스가 주장한 이론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하느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면서 동시에 인간에게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여 죄를 멀리하게 한다는 이론이다. |
대속설(형벌대리설) | 종교개혁 전통에서 강조하는 이론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신 것으로, 죄의 대가를 완전히 치렀다는 이론이다. |
위의 이론들은 각각 속죄의 다른 측면을 강조한다. 이 이론들을 비교하고 대조하여, 어떤 이론이 가장 성경적이고 적합한지 판단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전통적으로 칼뱅주의를 포함한 개신교에서는 대속설(형벌대리설)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1]
12. 관련 주제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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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한눈에 보는 성경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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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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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주조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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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구약성경:구원의 의 약속
평택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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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성
https://web.archive.[...]
2017-11-30
[8]
웹사이트
기독론, 한국컴퓨터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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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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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그리스도의 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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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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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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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ker Book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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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한눈에 보는 성경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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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일인격성(一人格性)(출처: 김효성,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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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기독교 신학개론
성광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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