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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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달하는 평북 의주 출신의 일제 밀정으로, 서북학회 총무를 지내며 독립운동에 관여하는 척하며 정보를 수집했다. 1913년 중국으로 건너가 조선총독부 밀정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가들을 밀고하고 회유하는 등 반민족 행위를 했다. 1925년 다물단과 의열단에 의해 처단되었으며, KBS 방송을 통해 김달하가 김규흥에게 거액의 활동비를 지원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김달하의 후손들은 동구학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동구학원은 일제강점기에 설립 인가를 받았다.
김달하는 평안북도 의주 출신으로, 외아문(통리아문) 주사를 지냈다. 1906년 서울에서 관서지방 출신들을 중심으로 서우학회가 조직되자 이에 참여했다. 이후 애국계몽운동 단체인 서북학회의 총무를 맡았는데, 이 단체는 안창호, 이갑, 박은식, 이동휘 등이 주도하여 기존의 서우학회와 한북흥학회를 통합해 창설한 것이다. 서북학회에는 국권 회복을 목표로 하는 서북 지역 출신 인사 2,300명에서 2,500명 가량이 회원으로 참여했다.[1]
김달하의 후손들은 현재 서울특별시에서 동구여중과 동구마케팅고 등을 운영하는 동구학원을 소유하고 있다.
[1]
저널
대한제국의 애국계몽운동 터전…해방 이후 원조 대학로
https://news.naver.c[...]
한겨레
2018-10-25
2. 생애 및 살해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되자 중국으로 건너갔으며, 1913년부터는 조선총독부의 밀정이 되어 북경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는 초기 중화민국 총리를 지내기도 한 북양군벌의 거물 단기서의 비서로 일하면서, 또 다른 고급 밀정인 정운복(초대 서북학회 회장)과 연계하여 약 10여 년간 암약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만주와 중국 등지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가와 독립운동 단체에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정보를 캐내 일제에 밀고하거나 독립운동가들을 회유하는 등 반민족 행위를 일삼았다. 그의 밀정 활동으로 인해 수많은 청년 독립운동가들이 피해를 입었으며, 김창숙, 이회영 등 주요 독립운동가들에게 접근하려다 밀정임이 발각되기도 했다.
1925년 3월 30일, 박용만의 귀순 공작을 시도했다는 혐의 등으로 독립운동 단체인 다물단과 의열단 단원들에 의해 북경에서 처단되었다. 김달하 처단에는 의열단의 이종희와 이기환, 다물단의 최주영과 이규준 등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은 당시 동아일보 1925년 4월 4일 자 기사에서 "밀정, 필경 피살"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운동가들에게 밀정의 존재는 일제의 공개적인 탄압과 토벌 못지않은 실질적인 위협이었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불신과 의심을 조장하여 내부 분열을 유도했기 때문에, 일제의 고등경찰보다 더 악랄한 존재로 여겨졌다. 따라서 밀정은 독립운동가들에게 큰 증오와 경멸의 대상이었으며, 김달하는 동지와 민족을 배신하고 독립운동을 파괴하다 결국 처단된 대표적인 밀정으로 기록되고 있다.
김달하 처단에 가담한 다물단(단장 황익수)은 친일파와 밀정 처단, 독립군 자금 모금 등 의열투쟁을 전개했던 단체이다. 신채호, 유자명 등이 관여한 무정부주의 성향의 조직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물'이라는 명칭에는 용감, 전진, 쾌단 등의 의미와 함께 '빼앗긴 것을 되찾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1931년 체포된 다물단 단원 이우민의 일제 신문 기록에 따르면 "입을 다물고 실행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2]
최근 KBS의 보도[3]에 따르면, 김규흥이 일제에 보낸 친필 편지에서 김달하와의 관계 및 활동 자금 요청 내용이 확인되었다. 2019년 8월 20일 방송된 '시사기획 창'의 '밀정 2부 - 임시정부를 파괴하라' 편에서 공개된 이 편지에서 김규흥은 "김달하와 함께 각지의 독립운동가들을 북경에 모아서 조선으로 돌아가려는 계책을 갖고 있습니다. 활동비로 김달하에게는 3만엔, 저에게도 2만엔를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이는 김달하가 김규흥보다 더 많은 활동비를 받는 주요 밀정이었음을 시사하며, 둘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준다.
김규흥은 같은 편지에서 "상해에 있는 단원들로 인해 때때로 강박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밀활동이 드러나 난처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잠시 다른 곳으로 피신합니다"라고 덧붙여, 자신의 밀정 활동이 발각될 위험에 처했음을 알리기도 했다. 이러한 내용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 이후, 일제가 우쓰노미야 다로 조선군 사령관을 중심으로 독립운동가들을 밀정으로 포섭하여 임시정부를 내부에서부터 와해시키려 했던 공작의 일환으로 해석될 수 있다. 김규흥과 우쓰노미야의 부적절한 만남은 우쓰노미야가 남긴 일기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으며, 이는 학계에서 김규흥의 친일 행적에 대한 논란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4]
3. 가족 및 동구학원
김달하는 아내와 사별 후 김활란의 언니인 김애란과 결혼했다. 당시 김달하는 이미 두 번의 사별 경험과 5명의 아들이 있었다. 김달하와 김애란 사이에서 태어난 딸 김정옥은 조석봉과 결혼했다. 따라서 조석봉은 김달하의 사위이며, 김활란과는 처이모-조카사위 관계가 된다. 조석봉과 김정옥의 아들이 조웅이며, 그의 부인은 최길자이다. 김활란은 동구마케팅고의 초대 설립자 중 한 명이었으며 이후 이사장도 역임했다. 김활란의 호인 우월(又月)은 형부인 김달하가 지어준 것이다. 동구학원의 또 다른 설립자이자 초대 교장인 조석봉은 김달하의 사위이고, 현 이사장인 최길자의 남편이자 전 이사장인 조웅은 김달하의 외손자이다.
동구학원은 1942년 조선총독부로부터 설립 인가를 받았다. 학교 설립을 주도한 인물은 조석봉과 김활란이다. 동구학원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동구마케팅고등학교와 동구여자중학교를 운영하는 사학법인으로, 한국 사학 운영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최초 학교 건물과 부지는 1941년 미감리교회 조선선교부 유지재단으로부터 무상 사용을 승낙받은 것이며, 해방 후 1950년 재단법인 설립 인가 당시에도 설립자들의 재정 출연 기여도는 미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의 성북동 일대 교지 약 38,000평은 적산을 불하받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사학족벌을 이루고 대를 이어가며 국가 세금으로 학교를 운영하며 온갖 전횡을 저질러 왔다는 비판을 받는다.직책 인물 관계 재임 기간 기간 동구마케팅고등학교 교장 조석봉 김달하의 사위 1942년 ~ 1978년 36년 동구마케팅고등학교 교장 조웅 조석봉의 아들 (김달하의 외손자) 1978년 ~ 2005년 27년 동구여자중학교 교장 김정옥 조석봉의 부인 (김달하의 딸) 1969년 ~ 1981년 12년 동구여자중학교 교장 최길자 조웅의 부인 1994년 ~ 2002년 8년 동구학원 이사장 김활란 김달하의 처제 (역임) - 동구학원 이사장 최길자 조웅의 부인 (현 이사장) -
조선총독부는 태평양 전쟁 발발 직후이자 조선에서의 징병제 시행을 앞둔 1942년에 동구학원의 설립을 인가했다. 같은 해, 대표적인 친일 잡지였던 '조광'은 당시 5개 여학교 교장들을 모아 '징병령과 여자교육'이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조석봉을 비롯한 교장들은 징병제 실시에 발맞춰 여학생들에게 '군국(君國)의 어머니'와 같은 서적을 적극적으로 읽히고, 군인의 아내와 어머니로서 여성을 교육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설립자 중 한 명인 김활란 역시 적극적인 친일 행적을 보였다. 그는 1941년 임전보국단 결전부인대회에서 '여성의 무장'이라는 주제로, 1942년 싱가포르 공략 대강연회에서는 '대동아건설과 우리 준비'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또한 여러 잡지에 '징병제와 반도여성의 각오', '뒷일은 우리가', '남자에 지지 않게 황국 여성으로서 사명을 완수' 등의 글을 발표하며 조선 민중들에게 일제강점기 일제의 침략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5][6]
참조
[2]
저널
"[3·1 운동 100주년 연중기획-독립운동가 열전 <삶과 넋> ⑦] 교사 출신의 다물단 단원 최주영"
https://web.archive.[...]
매일노동뉴스
2019-08-24
[3]
서적
밀정, 우리 안의 적
지식너머
[4]
저널
“임시정부를 파괴하라”…집요한 밀정 공작
https://news.naver.c[...]
KBS
2019-08-19
[5]
저널
"[권종현의 교육희망] 사학법인이 징계권을 남용해도 어쩔 수 없다는 교육부?"
https://web.archive.[...]
민중의소리
2019-08-24
[6]
저널
3대째 족벌체제 학교에 드리운 '친일' 그림자
https://news.naver.c[...]
오마이뉴스
201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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