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야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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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대중은 동아대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야구 선수이다. 1990년 풀타임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하며 10승을 거두었으나, 1992년 부진한 성적으로 은퇴했다. 1989년 광주 원정 경기에서 패전 마무리 투수로 등판했을 때 광주 구장에서 연호가 나오기도 했다. 그의 아들 김선호는 한화 이글스에서 야구 선수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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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KBO 리그 야구 선수이자 감독인 이정훈은 1987년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하여 신인왕을 수상하고, 1991년과 1992년에는 2년 연속 타격왕에 올랐으며, 은퇴 후에는 여러 팀의 코치와 감독을 역임하며 선수 시절 '악바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 빙그레 이글스 선수 - 이강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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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야구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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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정보 | |
선수명 | 김대중 |
원어명 | Kim Dae-Jung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대한민국 충청남도 천안군 |
생년월일 | 1963년 03월 16일 |
수비 위치 | 투수 |
투구 | 우 |
타석 | 우 |
프로 입단 정보 | |
프로 입단 연도 | 1987년 |
드래프트 순위 | 1987년 1차 2순위 (빙그레 이글스) |
선수 경력 | |
소속 구단 | 빙그레 이글스 (1987년 ~ 1992년) |
KBO 리그 기록 | |
첫 출장 | KBO / 1987년 |
마지막 경기 | KBO / 1992년 |
2. 빙그레 이글스 시절
동아대학교 사회체육학과를 졸업하고 1987년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우투우타의 사이드암 투수였던 그는, 1987년부터 1992년까지 빙그레 이글스에서 활동했다.
2. 1. 1987 시즌
우투우타의 사이드암 투수로 유명했던 그는 동아대학교 사회체육학과(학사)를 졸업하고, 1987년 선발 투수로 데뷔하여 13경기에 출장, 4.16의 평균 자책점과 2승 6패를 기록하며 데뷔 첫 해 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올렸다.[1]2. 2. 1988 시즌
1988년 23경기에 출장하여 3.86의 평균 자책점, 7승 7패 1세이브, 119이닝을 소화하며 팀의 핵심 선발 투수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1]2. 3. 1989 시즌
Kim Dae-jung|김대중영어은 1989년에 25경기에 출장하여 3.76의 평균 자책점, 7승 2패, 93.1이닝을 기록하며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1]1989년 4월 8일 해태 타이거즈와의 광주 원정 경기에서 빙그레 이글스의 패색이 짙어지자 패전 마무리 투수로 마운드에 등판했을 때, 광주 구장 응원석에서 김대중 연호가 크게 나오기도 했다. TV 중계를 하던 캐스터와 해설위원도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는 일화가 있다.[1]
2. 4. 1990 시즌
Sidearm영어 투수로 유명했던 김대중은 1990년에 35경기에 출장하여 3.76의 평균 자책점, 10승 9패 2세이브, 146이닝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달성, 풀타임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이 해에 처음으로 10승을 거두었다.[1]2. 5. 1991 시즌
사이드암 투수로 유명했던 김대중은 1991년 중간 계투로 보직을 변경하여 32경기에 등판, 3.34의 평균 자책점, 8승 6패 1세이브, 105이닝을 기록하며 팀의 필승조 역할을 수행했다.[1]2. 6. 1992 시즌
1992년 다시 선발로 복귀했으나, 7경기에서 6.28의 평균 자책점, 1승, 14.1이닝이라는 부진한 성적을 남기고 은퇴했다.김대중 선수는 현역 시절 지역 연고 의식이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정 경기 구장에서 유독 환영받고 응원받은 곳이 있었는데, 바로 광주였다. 1989년 4월 8일 해태 타이거즈와의 광주 원정 경기에서 빙그레 이글스의 패색이 짙어지자 패전 마무리 투수로 마운드에 등판했을 때, 광주 구장 응원석에서는 "김대중" 연호가 크게 울려 퍼졌고, TV 중계 캐스터와 해설위원도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3. '김대중 연호' 사건
김대중 선수는 현역 시절, 특히 광주 원정 경기에서 많은 환영을 받았다. 1989년 4월 8일 해태 타이거즈와의 광주 원정 경기에서, 빙그레 이글스가 크게 뒤지고 있는 상황에 그가 마운드에 등장하자, 광주 구장 관중석에서 그의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당시 TV 중계를 하던 캐스터와 해설위원도 이례적인 상황에 씁쓸한 웃음을 지을 정도였다.[1] 이는 당시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4. 가족 관계
아들 김선호는 현재 한화 이글스에서 야구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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