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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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형남은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로, 포지션은 포수였다. 현대 유니콘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97년 쌍방울 레이더스로 이적 후 1998년에 은퇴했다. 1996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현대 유니콘스의 정명원과 배터리를 이뤄 KBO 포스트시즌 역사상 유일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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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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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선수 이름 | 김형남 |
로마자 표기 | Gim Hyeongnam |
국적 | 대한민국 |
신장 | 180cm |
체중 | 95kg |
포지션 | 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96년 |
드래프트 | 1996년 2차 6라운드 ( 현대 유니콘스) |
첫 출장 | 1996년 |
마지막 경기 | 1997년 |
선수 경력 | |
선수 | 현대 유니콘스 (1996년 ~ 1997년) 쌍방울 레이더스 (1998년) |
2. 선수 경력
김형남은 1996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1] 그 해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1] 1997년 쌍방울 레이더스로 이적하여 67경기에 출전했으나,[1] 1998년에는 1군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은퇴했다.[1]
2. 1. 현대 유니콘스 시절
1996년에 현대 유니콘스와 계약했다.[1]한국시리즈 4차전에 선발 출전하여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1]
1996년 10월 20일 인천구장에서 열린 해태 타이거즈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정규 시즌 동안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던 정명원이 깜짝 선발로 등판했다. 김형남은 신인 포수로서 정명원과 배터리 호흡을 맞춰 노히트 노런을 작성했다. 이는 포스트시즌에서 유일한 대기록이다.[1] 부상으로 빠진 주전 포수 장광호를 대신하여 백업 포수였던 김형남이 합작한 대기록이다.[1]
김형남의 볼배합과 습성을 몰랐던 해태 타선은 속수무책이었다.[1] 정명원은 시속 147km의 강속구와 체인지업, 포크볼을 던지며 해태 이대진과 투수전을 벌였다.[1] 1회초 이종범을 4구, 동봉철을 사구로 출루시키며 흔들렸다. 홍현우의 희생번트로 1사 2·3루 위기를 맞았지만 이호성을 삼진, 박재용을 파울플라이로 잡아냈다.[1] 이대진도 7회까지 3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현대는 8회말 무사 만루서 박진만과 김인호의 적시타로 2-0을 만들고, 2사 만루서 이숭용의 2타점 우전적시타로 4-0 승리를 거뒀다.[1]
정명원은 해태 29타자를 상대로 4사구 3개를 내주며 삼진 9개를 잡았다. 아웃카운트 27개 중 땅볼이 7개, 뜬공이 10개였다. 정명원의 KS 첫 승이었다.[1]
2. 2.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1997년 쌍방울 레이더스로 이적하여 그 해 67경기에 출전했다.[1]1998년에는 1군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고 은퇴했다.[1]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의 재정난은 김형남의 선수 생활이 짧았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3. 1996년 한국시리즈 4차전
1996년 10월 20일, 인천구장에서 열린 해태 타이거즈와 현대 유니콘스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현대 선발 투수 정명원은 정규 시즌에 5경기밖에 출전하지 않은 신인 포수 김형남과 호흡을 맞춰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1] 이는 KBO 포스트시즌 역사상 유일한 노히트 노런이다.[1]
당시 해태 타자들은 정규 시즌에 거의 출전하지 않았던 김형남의 볼 배합과 습성을 파악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1] 정명원은 1회 초 이종범을 볼넷으로 내보내는 등 흔들렸으나, 이후 안정적인 투구를 보이며 해태 타선을 막아냈다.
현대 타선은 8회 말, 박진만과 김인호의 적시타로 2점을 먼저 얻고, 이어 이숭용의 2타점 적시타로 4:0으로 달아나며 승리했다.[1] 정명원은 9이닝 동안 4사구 3개, 삼진 9개를 기록하며 한국시리즈 첫 승이자 첫 완봉승을 노히트 노런으로 장식했다.[1]
4. 출신 학교
5. 특이 사항
김형남은 1996년 해태 타이거즈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 선발 출전하여 정명원과 함께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1] 이는 KBO 포스트시즌 유일의 노히트 노런 기록이다.[1]
당시 현대는 주전 포수 장광호가 부상으로 빠져 백업 포수였던 김형남이 선발 출전했다.[1] 시즌 중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던 정명원이 깜짝 선발 등판하여 김형남과 호흡을 맞췄다.[1]
해태 타자들은 김형남의 볼배합과 습성을 파악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1] 정명원은 147km의 강속구와 체인지업, 포크볼을 던지며 해태의 이대진과 투수전을 펼쳤다.[1] 1회 초 이종범과 동봉철을 볼넷과 몸에 맞는 볼로 출루시키며 위기를 맞았지만, 홍현우의 희생번트 이후 이호성을 삼진, 박재용을 파울플라이로 잡아내며 대기록의 발판을 마련했다.[1]
현대는 8회 말 박진만과 김인호의 적시타로 2점을 먼저 얻고, 2사 만루에서 이숭용의 2타점 적시타로 4:0으로 승리했다.[1] 정명원은 해태 타자 29명을 상대로 삼진 9개를 잡고, 4사구 3개를 내주며 한국시리즈 첫 승을 완봉승으로 장식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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