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에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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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오에 장은 우에스기 가문의 가신 나오에 가네쓰구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상경 요구에 대한 답변으로 보낸 서신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이에야스는 우에스기 가게카쓰의 상경 지연과 무기 수집 등을 문제 삼아 상경을 요구했고, 이에 가네쓰구는 나오에 장을 통해 이에 반박했다. 서신은 이에야스의 의심에 대한 반박, 우에스기 가문의 입장을 변호하는 내용, 그리고 이에야스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강경한 어조와 도발적인 내용으로 인해 이에야스를 격노하게 하여 세키가하라 전투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나오에 장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으며, 진본설, 위서설, 윤색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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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에 가네쓰구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걸쳐 우에스기 가문을 섬긴 무장으로, 우에스기 가게카쓰를 보좌하며 가문의 중신으로 활약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보낸 나오에장으로 유명하며, 세키가하라 전투 후 요네자와번 번정을 이끌며 가문 재건에 힘썼다. - 요네자와 우에스기가 - 우에스기 가게카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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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에 장 | |
---|---|
기본 정보 | |
![]() | |
작성 시기 | 게이초 5년 (1600년) 경 |
작성자 | 나오에 가네쓰구 |
수신인 | 도쿠가와 이에야스 |
배경 | |
발단 | 우에스기 가게카쓰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한 상경 불응 |
원인 | 이에야스의 가신 후지타 시게카쓰와 가사이 하루치카의 모략, 우에스기 가문의 영지 문제 |
결과 | 아이즈 정벌의 계기 |
내용 | |
주요 내용 |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오만함과 부당함을 비판하고, 우에스기 가문의 정당성을 주장 |
특징 | 거칠고 도전적인 문체, 이에야스를 조롱하는 표현 다수 포함 |
역사적 의미 | |
평가 | 아이즈 정벌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나오에 가네쓰구의 강직한 성품을 보여주는 자료 |
영향 | 에도 시대에 나오에 가네쓰구의 충절을 기리는 이야기의 소재로 활용 |
기타 | |
다른 이름 | 나오에장 (直江状) |
2. 서신의 배경
2. 1.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의 정세
2. 2. 우에스기 가문의 상황
2. 3. 이에야스의 상경 요구와 나오에장의 작성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우에스기 가게카쓰에게 상경하여 해명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가게카쓰는 이를 거부하고, 가네쓰구는 이에야스 측에 서신을 보내 해명하고자 했다. 이 서신이 바로 나오에장이다.이에야스가 가게카쓰에게 상경을 요구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우에스기 가게카쓰의 상경이 늦어지고 있다는 점
- 아이즈에서 무기를 모으고, 길과 다리를 만들고 있다는 점
이에 대해 가네쓰구는 나오에장에서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 상경 지연: 가게카쓰는 일찍이 국경을 넘어 상경했고, 작년 9월에 귀국했다. 올해 정월에 상경하면 언제 나라의 정무를 보아야 하는가? 또한, 아이즈는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 10월부터 3월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 무기 수집: 상경 무사들은 다기 등의 도구를 가지고 있지만, 촌 무사들은 철포나 활 등의 무기를 준비하는 것이 당연하다.
- 도로 정비: 길과 다리를 만들어 교통을 편리하게 하는 것은 나라를 소유한 자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가네쓰구는 또한, 참언하는 자를 조사하지 않고 모반의 혐의를 제기하는 것은 이에야스에게 표리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나오에장은 강경한 어조와 도발적인 내용으로 인해 이에야스를 격노하게 했고, 이는 세키가하라 전투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3. 서신의 주요 내용
一、교토와 후시미 사이에서도 여러 가지 헛소리가 끊이지 않는데, 먼 변방의 우에스기 가게카쓰와 같이 미천한 자에게 잡설이 도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가게카쓰가 재작년에 영지를 옮긴 지 얼마 안 되어 상경했고, 작년 9월에 귀국했으며, 올해 정월 즈음에 상경했으니, 그사이에 일 등을 맡기려 하는것에 의문을 표했다. 특히 우에스기 가문의 영지는 눈이 많이 오는 곳이라 10월부터 3월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우에스기 가문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에게 문의해 보라고 요청했다.
一、가게카쓰에게 다른 마음이 없다면 맹세하는 문서를 통해라도 말해야 한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주장에 대해, 작년부터 여러 통의 맹세서가 휴지 조각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一、히데요시 사후, 가게카쓰가 성실한 인물이라고 이에야스가 생각하고 있다면 지금에 와서 의심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一、 참언하는 자를 조사하지 않고 모반 혐의를 제기하는 것은 이에야스에게 겉과 속이 다른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一、 겐신의 추선공양(追善供養) 이후, 문병을 위해 상경(上洛)할 예정이었으나, 참언하는 자의 말만 듣고 상경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一、 참언하는 자를 조사하고 혐의를 밝혀주지 않으면 상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一、 모반의 혐의가 있는 상황에서 사자를 보내는 것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심을 살 수 있으므로, 참언하는 자를 조사해야만 이에야스에게 사자를 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一、 지방 무사들의 관습일 뿐이며, 천하를 도모할 의도는 없다고 주장했다. 상방(上方)의 무사들은 다기(茶器) 같은 물건을 소지하지만, 지방 무사들은 철포(鐵砲)나 활 등의 무기를 준비하는 것이 관습이라고 설명했다.
一、 영지 경영을 위한 당연한 조치이며, 다른 다이묘들도 마찬가지라고 반박했다. 우에스기 가게카쓰의 영지인 아이즈는 여러 지역과 접해있고, 각 지역과의 경계에 모두 길을 만들고 있는데, 유독 호리 나오마사만이 길을 만드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전투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모반의 의도가 있다면 오히려 길을 막고 방어 시설을 정비할 것이라며 반박했다.
一、 이에야스에게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면모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가네쓰구는 이에야스가 가게카쓰에게 역심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참언하는 자의 말만 듣고 누명을 씌우려 한다고 주장했다.
一、 특히 호리 나오마사의 참언을 지적하며, 이에야스가 진정으로 충의를 분별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가네쓰구가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답지 않다"라고 언급한 부분은, 이에야스가 사소한 일에 얽매여 대국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의심이 많아 참소에 휘둘리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3. 1. 이에야스 측의 의혹에 대한 반박
나오에 가네쓰구(나오에 가네쓰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측에서 제기한 우에스기 가문의 모반 혐의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군비 증강: 지방 무사들의 관습일 뿐이며, 천하를 도모할 의도는 없다고 주장했다. 상방(上方)의 무사들은 다기(茶器) 같은 물건을 소지하지만, 지방 무사들은 철포(鐵砲)나 활 등의 무기를 준비하는 것이 관습이라고 설명했다.
- 도로 정비: 영지 경영을 위한 당연한 조치이며, 다른 다이묘들도 마찬가지라고 반박했다. 우에스기 가게카쓰의 영지인 아이즈는 여러 지역과 접해있고, 각 지역과의 경계에 모두 길을 만들고 있는데, 유독 호리 나오마사만이 길을 만드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전투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모반의 의도가 있다면 오히려 길을 막고 방어 시설을 정비할 것이라며 반박했다.
- 기타 반박:
- 히데요시 사후, 가게카쓰가 성실한 인물이라고 이에야스가 생각하고 있다면 지금에 와서 의심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 참언하는 자를 조사하지 않고 모반 혐의를 제기하는 것은 이에야스에게 겉과 속이 다른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한다.
- 겐신의 추선공양(追善供養) 이후, 문병을 위해 상경(上洛)할 예정이었으나, 참언하는 자의 말만 듣고 상경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 참언하는 자를 조사하고 혐의를 밝혀주지 않으면 상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 모반의 혐의가 있는 상황에서 사자를 보내는 것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심을 살 수 있으므로, 참언하는 자를 조사해야만 이에야스에게 사자를 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3. 2. 상경 거부 이유
가네쓰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우에스기 가문에 대한 의심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참언하는 자들의 말을 믿고 우에스기 가문을 의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가네쓰구는 참언하는 자들을 조사하고, 우에스기 가문의 결백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상경할 수 없다고 밝혔다.가네쓰구는 교토와 후시미 사이에서도 여러 가지 헛소리가 끊이지 않는데, 먼 변방의 우에스기 가게쓰카쓰와 같이 미천한 자에게 잡설이 도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가게쓰카쓰가 재작년에 영지를 옮긴 지 얼마 안 되어 상경했고, 작년 9월에 귀국했으며, 올해 정월 즈음에 상경했으니, 그사이에 일 등을 맡기려 하는것에 의문을 표했다. 특히 우에스기 가문의 영지는 눈이 많이 오는 곳이라 10월부터 3월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우에스기 가문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에게 문의해 보라고 요청했다.
가네쓰구는 우에스기 가게쓰카쓰에게 다른 마음이 없다면 맹세하는 문서를 통해라도 말해야 한다는 이에야스의 주장에 대해, 작년부터 여러 통의 맹세서가 휴지 조각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3. 3. 이에야스에 대한 비판
나오에 가네쓰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면모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가네쓰구는 이에야스가 우에스기 가게카쓰에게 역심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참언하는 자의 말만 듣고 누명을 씌우려 한다고 주장했다.가네쓰구는 특히 호리 나오마사의 참언을 지적하며, 이에야스가 진정으로 충의를 분별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가네쓰구가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답지 않다"라고 언급한 부분은, 이에야스가 사소한 일에 얽매여 대국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의심이 많아 참소에 휘둘리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4. 서신의 진위 논란
4. 1. 진서설
이마후쿠 타다시는 현존하는 사본을 비교한 결과, '「당시 그대로의 문구」는 아니라는 조건 하에, '나오에장'의 존재를 용인하고 싶다'고 하였다.[12] 야마모토 히로후미는 오타니 요시츠구가 이에야스 측으로 쓰여 있는데, 이는 후세의 위작가가 쓸 수 없는 표현이며,[13]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이 쓰여 있다며 원본 또는 사본이 존재했다고 보고 있다.[14]키리노 사쿠진은, 나오에장의 내용이 당시 상황과 일치하고, 우에스기 카게카츠가 중신에게 보낸 서장의 내용과 매우 유사하며, 토요토미 정권의 삼봉행・산츄로가 이에야스의 우에스기 정벌을 간했던 연서장에 '이번 나오에 소행이 미치지 못한 일, 분노하시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있는 점 등을 들어 '다수의 전본이 있고, 적지 않게 이견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신용할 수 있는 사료'라고 하였다.[15]
시라미네 쥰은 자신의 연구에서 나오에장의 사본이 『우에스기가 어년보』, 『역대고안』, 『각상공 어서집』등에 수록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에도 시대 우에스기 가문의 수사작업에서 나오에장이 진본으로 여겨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16]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무라카미 요리카츠에게 자신의 서장에 나오에장의 사본을 첨부하여 보냈다는 사실은, 호리 가문과 그 관계자에게 사본이 보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17]
후쿠시마현 문화진흥재단은, 신분 있는 상대에게 불경하게 보일 수 있는 체언 멈춤의 남용과 정중한 문체의 표현이 일관성을 잃은 표현이 되는 것이 부자연스럽다고 여겨지는 위서론에 대해, 나오에장의 감정 기복에 따른 표현, 카네츠구가 한시에 통달했다는 점, '증우・대형소'라는 약칭이 다른 나오에 카네츠구의 문서에서도 엿볼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박했다.[18] 또한 날짜의 부자연스러움에 대해서는, 죠타이가 후시미에 체재 중인 3월 말부터 4월 1일 사이에 쓴 서장을, 이나가 전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급한 편으로 보냈다는 것도 생각할 수 있으며, 중대한 일을 서둘러 알린다는 것은, 죠타이와 카네츠구의 오랜 교우 관계에 따른, 카네츠구에 대한 배려로 여겨진다고 하였다.[19] 향지원 신지 축성에 대한 답변이 없는 것은, 진서라고 한다면 설명이 불필요했거나 불가능했기 때문이며, 후세의 창작이라면 창작자가 진다이성 축성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20]
4. 2. 위서설
도쿠토미 소호는 "세키가하라 전투 중의 일대 쾌문이다. 아니, 도요토미 말기부터 도쿠가와 초기까지 이러한 쾌문은 거의 비할 데가 없다"라고 절찬했지만,[8] 1980년대에는 쿠와타 타다치카는 "후세의 호사가가 위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고,[8] 후타키 켄이치는 "'나오에장'이라고 칭하는 고문서까지 위작되었다"라고 주장했다.[9] 서신에 사용된 어휘나 문체가 당시의 것과 다르다는 점, 오타니 요시쓰구, 마스다 나가모리와의 관계가 강조된 점 등이 부자연스럽다는 지적이 있다.4. 3. 윤색설
미야모토 요시키는 1998년에 나오에 장의 문구 문제를 지적하며 후대의 수정 또는 날조 가능성을 제기했다.[10] "가피존의안후(可被尊意安候)"는 "가피어심안후(可被御心安候)", "가신선후(可申宣候)"는 "가신입후(可申入候)"여야 하며, 동격 이상의 상대에게 "하착(下着)"이나 "다행행행(多幸々々)"과 같은 체언(体言) 종결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주장했다. "존서(尊書)"나 "배견(拝見)"과 같은 용어도 의문을 제기하며, "시자주달공황경백(侍者奏達恐惶敬白)" 또한 통례에 익숙하지 않다고 지적했다.[10]또한, 이시다 미쓰나리의 거병에 가담하는 오타니 요시쓰구·마스다 나가모리와의 관계가 이 시점부터 강조되는 점도 부자연스럽다고 보았다.[10] 미야모토는 2008년 논문에서[11] 사자인 이나 아키쓰나와 가와무라 나가토가 4월 10일에 후시미를 출발했음에도, 나오에 장에는 4월 13일에 사자가 아이즈에 도착했다고 쓰여 있어 당시 교통 사정상 3일 만에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승낙 서찰만 먼저 전달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서찰에 "사자의 구두에 말씀 포함시키다(使者の口上に申し含め候)"라고 적혀 있어 사자와 서찰은 일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증우·대형소(増右・大形少)라는 경칭이 없는 표현도 도요토미 정권의 중책을 맡은 두 사람에게 배려했다면, 나오에 가네쓰구는 마스다 나가모리를 마스다 우에몬노조 전(増田右衛門尉殿), 오타니 요시쓰구를 오타니 교부쇼유 전(大谷刑部少輔殿)이라고 적는 것이 신분제 사회의 예의이며, 실제로 게이초 3년 2월 10일자 가네쓰구 서찰에는 지부쇼유 전(治部少輔殿)이라고 경칭이 사용되고 있어 이와 비교해도 부자연스럽다고 한다.
5. 서신의 영향과 역사적 평가
5. 1. 세키가하라 전투의 원인
5. 2. 역사적 평가
6. 한국사와의 관계
6. 1. 임진왜란과의 연관성
6. 2. 더불어민주당과 우에스기 가문 (인물)
6. 3. 세키가하라 전투 (사건)
참조
[1]
문서
山本、245頁
[2]
웹사이트
「『直江兼続とその時代展』解説」
http://www.lib.yamag[...]
[3]
웹사이트
直江状
http://rarebook.dl.i[...]
[4]
간행물
鹿苑日録』第三巻
太洋社
[5]
논문
直江状についての書誌的考察
[6]
논문
直江状についての書誌的考察
[7]
문서
山本、263-268頁
[8]
서적
関ヶ原の戦
[9]
서적
関ケ原合戦―戦国のいちばん長い日―
中央公論社
1982
[10]
논문
"直江状"の信憑性
[11]
논문
内府(家康)東征の真相と直江状
[12]
서적
直江兼続
[13]
문서
山本、255頁
[14]
문서
山本、258頁
[15]
기사
検証:直江状の真偽-名門上杉氏の意気を示した本物
[16]
논문
直江状についての書誌的考察
[17]
논문
直江状についての書誌的考察
[18]
간행물
福島県文化振興財団
[19]
간행물
福島県文化財団
[20]
간행물
福島県文化振興財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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