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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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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자현은 1872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 1933년 순국한 일제강점기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세에 결혼했으나 남편이 을미사변 때 의병으로 활동하다 전사한 후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3·1 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군자금 모집, 독립운동가 지원, 여성 계몽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으며, 무장 투쟁을 지원하고, 국제연맹에 혈서를 보내 독립 의지를 알리기도 했다. 1933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과 단식 투쟁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병보석으로 풀려난 후 순국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으며, '여자 안중근'으로 불리며 여성 독립운동가의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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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남자현
이름남자현
한글남자현
한자南慈賢
로마자 표기Nam Ja-hyeon
출생 및 사망
출생일1872년 12월 7일
출생지조선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일직현
사망일1933년 8월 22일 (60세)
사망지만주국 하얼빈
신상 정보
국적조선 → 대한제국
본관영양
배우자김영주
자녀김성삼
친척남매 2명
활동 정보
주요 활동무토 노부요시 암살 작전
소속서로군정서
훈장
상훈[[파일:건국훈장2대통령장.png|x10px]] (건국훈장 대통령장, 1962)
기타 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남자현(독립유공자 공훈록)

2. 생애

남자현은 1872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한문학한시를 익혔다. 19세에 김영주와 혼인하였으나, 남편은 을미사변 이후 의병 활동 중 전사하였다.[15] 남자현은 남편 사후 영양군으로 이주하여 유복자 김성삼을 낳아 길렀으며, 시부모를 봉양하여 효부상을 받기도 했다.[19]

2. 1. 유년 시절과 혼인

남자현은 1872년 12월 7일 경상북도 안동에서 아버지 남정한과 어머니 진성이씨(이원준의 딸) 사이에서 1남 3녀 가운데 막내딸로 태어났다.[11]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부친 남정한이 일찍부터 글을 가르쳤는데, 7세에 한글을, 8세에 한문을 터득하고, 12세에 소학대학을 읽었으며, 14세에는 사서를 독파하고, 한시를 지었다고 한다.[12]

1891년 19세의 나이로 김영주와 혼인하였다.[13][14] 1895년 남편 김영주는 을미사변에 분노하여 의병을 일으켰으나, 1896년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15] 그는 진보군 진보면 흥구동에서 있었던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전해지며,[16] 해방 이후 아들 김성삼의 회고에 따르면 '한국 의병 소장'이었다.[17]

2. 2. 시가 생활과 유복자 양육

남자현은 남편 사망 후 영양군 수비면 계동으로 이주했다.[18] 1896년 12월 6일 유복자 김성삼을 낳아 기르면서 시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시어머니를 잘 봉양하여 진보에서 효부상을 받았다고 전해진다.[19]

3. 독립 운동

1907년 가을, 남자현의 아버지 남정한 선생이 의병을 일으켜 자택을 임시 의병장소로 삼고 활약할 때, 남자현은 장정 소집과 정보 수집 책임을 맡아 적의 후방 교란 등 대담한 활약을 펼쳤다.[20]

1924년 참의부채찬(이청산)과 함께, 1926년에는 박청산, 이청수와 함께 한국 내로 잠입했고, 두 번째 잠입은 사이토 마코토 총독 암살이 목적이었다.

3. 1. 만주 망명과 초기 활동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아들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면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남자현은 곧바로 김동삼서로군정서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 독립운동가 옥바라지 등으로 만주 지역 독립운동의 대모로까지 불리게 되었다.[20] 한편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각 단체와 군사기관, 농어촌을 순회하면서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동만주 12곳에 교회와 예배당을 세우고 10여 곳에 여자교육회를 설립해 여성을 계몽하는 데도 힘썼다.

편강렬, 양기탁, 손일민 등이 만주 지역 무장 독립운동 단체의 통합을 추진할 때 참가했으며, 무장 투쟁이나 테러 위주의 독립운동을 적극 후원하고 참여했다.

1928년 만주 길림에서 김동삼, 안창호 등 47명의 독립 운동가들이 일본의 사주를 받은 중국 경찰에 검거되자, 지성으로 간호하며 석방 운동에 힘써 보석으로 풀려나게 했다.

1931년 김동삼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을 때도 탈출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2. 무장 투쟁 참여와 지원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아들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면서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김동삼서로군정서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 독립운동가 옥바라지 등으로 만주 지역 독립운동의 대모로 불렸다.[20] 독립운동 단체와 군사기관, 농어촌을 순회하면서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동만주 12곳에 교회와 예배당을 세우고 10여 곳에 여자교육회를 설립해 여성 계몽에도 힘썼다.

편강렬, 양기탁, 손일민 등과 함께 만주 지역 무장 독립운동 단체의 통합을 추진했으며, 무장 투쟁이나 테러 위주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참여했다.

1924년 참의부채찬(이청산)과 함께, 1926년에는 박청산, 이청수와 함께 한국 내로 들어왔고, 두 번째 잠입은 사이토 마코토 총독 암살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1928년 만주 길림에서 김동삼, 안창호 등 47명의 독립 운동가들이 일본의 사주를 받은 중국 경찰에 검거되자, 이들을 간호하며 석방 운동에 힘써 보석으로 풀려나게 했다.

1931년 김동삼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을 때도 탈출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3. 3. 국제연맹에 독립 호소와 최후

1932년 만주국 수립 후 국제연맹에서 파견한 리튼 조사단이 하얼빈에 오자, 남자현은 손가락을 잘라 흰 수건에 '한국독립원(韓國獨立願)'이라고 혈서를 썼다. 이 혈서를 조사단에 보내 한국의 독립 의지를 국제사회에 알렸다.[21]

1933년 이규동 등과 함께 주만일본대사이자 관동군 사령관인 무토 노부요시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밀정의 밀고로 1933년 2월 27일 하얼빈 교외 정양가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21] 60세가 넘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6개월 동안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며, 보름간의 단식 투쟁으로 건강을 잃고 보석으로 풀려났다.[22][23]

남자현은 보석으로 풀려난 직후 고려여관이라는 조선인 여관에서 생을 마감하였다.[22][23] 임종 직전 아들 김성삼에게 독립 축하금으로 사용할 돈을 남기고, '독립은 정신에 있다'는 유언을 남겼다.[24][25]

4. 사후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같은 해 3월 1일, 정부는 이봉창, 신채호 등 독립운동가 58명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했으며, 남자현은 이들과 함께 최고등급 훈장을 받았다.[5] 국가보훈처 차관을 지낸 김시복은 남자현의 손자이다.[26]

5. 평가

남자현은 '여자 안중근'으로 불리며, 일제강점기 여성 독립운동가의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27] 이상국 시인은 저서 《나는 조선의 총구다》에서 남자현의 삶을 "식민지 여성으로서 가장 자기 초월적인 생"이라고 평가하였다.[27]

이상국 시인은 "왜 이토록 역사는 남자현을 지워버렸는가"라는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 그녀의 삶이 던져주는 강렬한 메시지는 마흔이 된 나이에 문득 '아녀자'의 질곡을 벗어버리고, 죽음을 불사한 투쟁에 뛰어든 것에 있다. 저 흑백사진 속의 남자현이 그토록 뚫어지게 우리를 바라보는 이유는, 시대를 관통하는 진실을 전하려는 그녀의 의욕이 아닐까? 그녀가 죽은 이후에도 얼마나 많은 지식인들과 리더들이 변절하고 말을 바꿨던가…그녀는 식민지의 여성으로서 가장 자기초월적인 생을 걸었다.

2002년 독립기념관에는 위와 같은 구절을 새긴 남자현 어록비가 세워졌다. 고정희 시인은 〈남자현의 무명지〉라는 시를 통해 남자현의 독립 의지를 기렸다.[28]

고정희의 시 〈남자현의 무명지〉는 다음과 같다.

> …
난공불락, 왜세의 도마 위에
섬섬옥수 열 손가락 얹어 놓고 하는 말

천지신명 듣거든 사람세상 발원이요
탄압의 말뚝에 국적 따로 있으리까

조선여자 무명지 단칼에 내리치니
피로 받아쓴 대한여자독립원
아직도 떠도는 아낙의 무명지

남자현은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사후에 받았다. 1962년 3월 1일 정부는 독립운동가 58명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하였고, 남자현은 이봉창, 신채호와 함께 최고등급 훈장을 받았다.[5]

국가보훈처 차관을 지낸 김시련은 남자현의 손자이다.[6]

참조

[1] 웹사이트 강인국은 방응모, 염석진은 노덕술? '암살'은 진행형 https://entertain.na[...] 2019-05-07
[2] 웹사이트 진취적 삶을 살았던 경북여성 1호 조명 http://news.naver.co[...] 2019-05-07
[3] 웹사이트 여걸 남자현 의사를 추모하며 http://www.iusm.co.k[...] 2013-08-15
[4] 웹사이트 남자현 https://terms.naver.[...] 2019-05-07
[5] 웹사이트 여자안중근 남자현, 잊혀진 그녀의 불꽃같은 삶 http://news.naver.co[...] 2019-05-07
[6] 뉴스 다시쓰는 독립운동列傳 - 남자현 친손자 “日警이 준 음식 거부 2주 단식” http://news.khan.co.[...] 경향신문 2005-04-11
[7] 서적 나는 조선의 총구다 세창미디어 2012
[8] 뉴스 진취적 삶을 살았던 경북여성 1호 조명 https://news.naver.c[...] 여성신문 2014-07-17
[9] 뉴스 강인국은 방응모, 염석진은 노덕술? '암살'은 진행형 http://entertain.nav[...] 오마이뉴스 2015-08-05
[10] 뉴스 1000만 순항중인 '암살'에서 놓쳐서는 안될 몇 가지 http://entertain.nav[...] 스포츠조선 2015-08-06
[11] 서적 남씨동보 (4권) 남씨종회 1999
[12] 서적 남자현 여사 약전 1956
[13] 서적 양남씨세보 9
[14] 서적 의성김씨동보 4권
[15] 뉴스 여걸 남자현 의사를 추모하며 http://www.iusm.co.k[...] 울산매일신문 2013-08-15
[16] 서적 만주지역 한인사회와 항일독립운동
[17] 뉴스 남자현여사의 장남 회고 동아일보 1946-03-03
[18] 서적 나의 생애 양군지편찬위원회 1976
[19] 서적 독립운동사상 홍일점 여걸남자현여사 양군지편찬위원회 1948-12
[20] 서적 청사에 빛나는 선열들(남자현 편) 1982
[21] 서적 독립혈사 2
[22] 웹사이트 아주스페셜 - 독립투사 남자현⑭ 작고한 남자현손자, 김시련 마지막 인터뷰 https://www.ajunews.[...]
[23] 웹사이트 정3품 집안 딸이 만주 무장투쟁가로-남자현을 아는가 https://www.joongang[...]
[24] 웹사이트 남자현 손자 김시련 http://www.hang-il.c[...]
[25] 웹사이트 손가락 잘라 혈서 쓴 ‘여자 안중근’ 남자현의 유언 https://www.joongang[...]
[26] 뉴스 다시쓰는 독립운동列傳 - 남자현 친손자 “日警이 준 음식 거부 2주 단식” http://news.khan.co.[...] 경향신문 2005-04-11
[27] 뉴스 조선女人 남자현 "총독은 내가 처단하겠다" https://news.naver.c[...] 노컷뉴스 2014-05-27
[28] 간행물 여성해방의 문학 또 하나의 문화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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