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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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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단규는 후한 시대의 환관으로, 십상시의 일원이었으며, 하진을 암살하고 소제와 진류왕 유협을 옹립하여 도주하다가 자결했다. 영제 시대에 소황문의 지위에 있었으며, 하인들의 악행으로 인해 제북상 등연과 갈등을 겪기도 했다. 영제가 죽고 소제가 즉위한 후, 하진과 대립하여 하진을 암살하고 장양과 함께 소제와 유협을 데리고 도주했으나, 동탁 등의 추격을 받아 장양과 함께 자결했다. 《삼국지연의》에서도 비슷한 최후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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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규
단규 (段珪)
후한 십상시
후한 십상시 중 한 명
이정 (利征)
생몰년도미상
출생지미상
사망지낙양
관직 및 경력
직위중상시
상서령
주요 활동십상시의 일원
영제의 총애를 받음
하진 제거 모의
소제 납치 및 살해 시도

2. 생애

단규는 후한 말기의 환관으로, 십상시 중 한 명이었다. 영제 사후 정치적 혼란기에 대장군 하진 제거에 가담했으며, 이후 벌어진 십상시의 난소제진류왕 유협을 데리고 도주하다가 민공에게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장양과 함께 강물에 몸을 던져 최후를 맞이했다.[1]

2. 1. 초기 생애와 권력 장악

십상시의 일원으로, 정권 혼란기에 황제를 보좌하며 황권 강화를 시도했고 대장군 하진을 제거하는 데 가담했다.[1]

후한 영제 시대에 후람, 왕보, 조절 등이 중상시로서 권력을 휘두를 때 단규는 소황문의 지위에 있었다. 당시 단규는 후람과 함께 제북국에서 농업을 경영했는데, 그의 하인이 약탈과 같은 악행을 저질렀다. 이에 제북상이었던 등연이 단규와 후람의 하인을 잡아 살해하고 시체를 효수하자, 단규와 후람은 격분하여 영제에게 등연을 무고했고 결국 등연은 면직되었다.

이후 왕보는 형사 처벌을 받고 후람은 자살했으며 조절도 병사하면서 기존의 환관 세력이 몰락했다. 그 뒤를 이어 장양과 조충이 새로운 권력자로 부상했는데, 이때 단규도 중상시로 임명된 12명의 환관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189년, 영제가 세상을 떠나고 유변이 황제로 즉위하자, 단규를 포함한 십상시는 외척 세력의 대표인 대장군 하진과 권력 다툼을 벌였다. 하진이 지방 군대를 수도로 불러들여 환관 세력을 제거하려 하자, 십상시는 선수를 쳐 하진을 궁궐로 유인하여 암살했다. 이때 단규는 필람과 함께 병력을 이끌고 직접 하진을 살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하진전).

2. 2. 십상시의 난과 최후

십상시 중 한 명으로, 영제 사후 혼란기에 황권을 강화하고자 대장군 하진 제거에 가담했다.[1]

189년, 영제가 사망하고 소제가 즉위하자, 십상시는 외척인 대장군 하진과 권력 다툼을 벌였다. 하진이 군대를 동원하여 환관 세력을 제거하려 하자, 단규는 필람 등과 함께 선수를 쳐 하진을 궁궐로 유인하여 암살했다.

하진 암살 후 십상시는 가짜 조칙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했으나, 하진의 부하였던 원소 등이 군사를 일으켜 궁궐로 쳐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조충 등 많은 환관이 살해되었다. 이를 십상시의 난이라고 한다.

십상시의 난 속에서 단규는 장양과 함께 소제와 그의 동생인 진류왕 유협을 데리고 궁궐을 탈출했다. 그러나 동탁, 노식, 오광 등의 추격을 받았고, 결국 하남 중부연리 민공에게 발각될 위기에 처했다.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고 판단한 단규는 장양과 함께 강물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삼국지연의》에서도 비슷한 최후를 맞이하며, 민공이 그의 목을 베어 거두는 것으로 묘사된다.

3. 기타

후한서 권78(중국어판 위키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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