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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부부인 송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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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방부부인 송씨는 판중추부사 송복원의 딸이자 지돈녕부사 송현수의 누이로, 영응대군과 재혼하여 딸 길안현주를 낳았다. 성종 대에는 폐비 윤씨가 폐위된 후 어린 연산군을 잠시 보살폈으며, 승려 학조와 간통하여 무오사화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송씨의 질투심 많고 사나운 성품과, 궁중에서 외명부로서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2. 생애

판중추부사 송복원의 딸이자 지돈녕부사 송현수의 누이이다. 몸이 병약하여 강제 이혼당하여 친정으로 돌아갔다.[1] 영응대군은 재혼했지만 아내를 잊지 못하여 송씨의 사가에 찾아갔고 두 사람 사이에 두 딸이 태어났다.[2] 단종 때 송씨는 영응대군과 재결합했다. 영응대군과의 사이에 아들을 여럿 낳았으나 모두 죽고 살아남은 것은 길안현주 뿐이다.[3] 1479년 성종 대에 윤씨가 폐위되자 어린 원자는 잠시 송씨의 집에서 보살핌을 받았다.[4][5]

2. 1. 학조와의 간통과 무오사화

김종직학조를 매우 혐오하여 경멸하고 비판했는데, 그의 제자들 중 누군가가 실록을 편찬할 때 송씨와 학조의 불륜 사실을 기사로 넣어 문제가 되었고, 이는 무오사화의 한 원인이 되었다.[6]

송씨는 군장사란 절에 올라가 설법을 듣다가 계집종이 깊이 잠들면 승려 학조와 사통을 했다.[6][7] 이 사실은 무오사화 당시 사초에도 들어 있었다.[6]

박경은 김일손과 기맥이 통해 홍인문 밖에서 '영응대군 부인 송씨가 중 학조와 사통(私通)을 했다'는 방문(榜文)을 보고 알렸다가, 김일손이 사초에 적는 바람에 호된 고문을 당하고 겨우 살아난 적이 있었다.[11]

3. 성품 및 평가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송씨가 질투심이 많고 사나운 성품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영응대군은 송씨를 매우 총애하다가 나중에는 두려워했으며,[8] 누군가에게 낡은 옷을 한 벌 주려 해도 송씨의 허락이 필요했고, 허락 없이는 주지 못했다고 한다.[8]

송씨는 평소 궁중에 자주 드나들면서 외명부 중에서도 각별히 총애를 받았는데, 조카 송영이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송씨 덕분이었다.[9] 송영이 논핵을 당했을 때, 송영의 처가 8촌 오라비 홍석보의 집을 찾아가 남편의 일을 청탁하며, 시고모인 송씨가 마음이 불편해 병이 났다고 전하자 윤은로 등이 송영을 탄핵하였다.[9] 그러나 성종은 이를 듣지 않고 윤은로 등을 벌하였다. 송현수의 아들 송거가 아버지의 죄로 인해 관직에 나아가지 못할 때, 송씨는 조카의 과거 응시를 성종에게 부탁하기도 했다.[10]

조선왕조실록에는 성종과 연산군이 송씨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노비와 쌀, 베 등 물품을 하사한 기록이 등장한다.

4. 가족 관계

관계이름
아버지송복원
친정 오라비송현수
친정 올케민씨
조카정순왕후
조카사위단종
남편영응대군
길안현주 억천(吉安縣主 億千)
사위능천부원군 구수영
외손자능양위 구문경(綾陽尉 具文璟)
외손부휘신공주(연산군의 딸)
외손녀구순복(具順福)
외손서임희재(1472년 ~ 1504년, 임사홍의 아들)
정인학조


5. 기타

대방부부인 송씨와 관련된 사건은 무오사화의 원인 중 하나였다. 김종직은 승려 학조와 송씨의 간통 사건을 혐오하여 비판했는데, 그의 제자 중 한 명이 실록 편찬 시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무오사화로 이어졌다.[6] 박경은 김일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가 김일손이 사초에 기록하여 고초를 겪었다.[11]

5. 1. 무오사화의 원인

승려 학조와의 간통 사건은 훗날 무오사화의 원인 중 하나가 된다. 김종직은 학조를 매우 혐오하여 이를 경멸하고 비판했는데, 김종직의 제자 중 한 명이 실록을 편찬할 때 송씨와 학조의 불륜 사실을 기사로 넣어 문제가 되었고, 이는 무오사화까지 이어졌다.[6]

박경은 김일손과 뜻이 통해 홍인문 밖에서 '영응대군 부인 송씨가 중 학조와 사통(私通)을 했다'는 방문(榜文)을 보고 알렸다가, 김일손이 사초에 적는 바람에 호된 고문을 당하고 겨우 살아난 적이 있었다.[11]

5. 2. 박경의 고변

승려 학조와의 간통 사건은 훗날 무오사화의 원인 중 하나가 된다. 김종직은 학조를 매우 싫어하여 이를 경멸하고 비판했는데, 김종직의 제자들 중 누군가가 실록을 편찬할 때 송씨와 학조의 불륜 사실을 기사로 넣어 문제가 되었고, 이는 무오사화까지 이어진다.

박경은 김일손과 친분이 있어 홍인문 밖에서 '영응대군 부인 송씨가 중 학조와 사통(私通)을 했다'는 방문(榜文)을 보고 알렸다가, 김일손이 사초에 적는 바람에 호된 고문을 당하고 겨우 살아난 적이 있었다.[11]

참조

[1] 간행물 세종 123권, 세종31(1449) 3월 18일 1번째기사 《조선왕조실록》 1449-03-18
[2] 간행물 단종 9권, 단종 1(1453) 11월 28일 4번째기사 《조선왕조실록》 1453-11-28
[3] 간행물 성종 86권, 성종8(1477) 11월 10일 6번째기사 《조선왕조실록》 1477-11-10
[4] 서적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심리학자가 만난 조선의 문제적 인물들) 역사의 아침 2009
[5] 문서 영응대군
[6] 서적 사관 위에는 하늘이 있소이다 가람기획 1999
[7] 서적 사화로 보는 조선 역사 석필 2005
[8] 간행물 예종 8권, 예종1(1469) 10월 6일 3번째기사 《조선왕조실록》 1469-10-06
[9] 간행물 성종 157권, 성종14(1483) 8월 26일 2번째기사 《조선왕조실록》 1483-08-26
[10] 간행물 성종 69권, 성종7년(1476), 7월 11일 1번째 기사 《조선왕조실록》 1476-07-11
[11] 뉴스 말과 글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http://www.pressian.[...] 프레시안 2007-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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